거절이 두려운 습관성 호구들을 위하여
웹서핑 중 동영상 클립을 보다 이 말에 급소를 맞은 듯 헉! 소리가 나왔다. 엔터테인먼트사 뮤지션들이 단체로 출연한 웹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분이었다. 회사 대표이자 업계 대선배가 후배이자 소속 뮤지션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는 상황이었다. 정답률 7%를 기록했던 수능 수학 문제를 풀어달라고 청했다. 다급한 소속사 대표의 전화를 받은 엘리트 후배는 상황을 전해 듣고 말했다.
그는 벼르고 별러 기대하던 미슐랭 식당에 왔고, 이제 막 음식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오를 대로 오른 지금의 흥을 깨고 싶지 않다며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예상치 못한 거절에 당황함도 잠시, 회사 대표이자 선배 뮤지션은 ‘즐겁게 식사를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업계의 유연함, 회사 대표와 소속 뮤지션을 넘어 음악계의 선후배라는 관계 등등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분명 존재할 거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곳에 속해 있는 한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이라는 건 변치 않는다.
조직의 일원 중 저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 같은 개복치 심장을 가진 사람 중에 저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아니요. 지금 안 그러고 싶은데 왜요?
그래.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습관성 호구였던 내가 해야 했던 대답을 이제야 찾았다. 과거의 나는 왜 이렇게 단호박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거절 못 하는 성격이 고민인 시절이 있었다. 비흡연자인 내게 던지듯 넘어온 판촉물 휴대용 재떨이부터 각종 종교의 포교용 전단, 관심 없는 사람의 관심, 선 넘는 조언, 개고생이 뻔한 일거리, 영혼을 갈아 넣어 봤자 다른 사람의 공으로 넘어갈 결과가 보이는 프로젝트 등등. 원치 않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해 떠안고 낑낑거리며 살았다.
그 무게를 견디다 압사당하기 직전, 겨우 더는 못하겠다며 고심 끝에 어렵게 거절을 하면 천하의 몹쓸 사람이 됐다. 조심스럽게 사양하면 “네가 그럴 줄 몰랐다.” “나는 너만 믿고 있었는데 네가 이렇게 거절하면 나는 어떡하냐?” 등등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거절 못 하는 사람이 제일 괴로워하는 ‘나쁜 사람’ 프레임을 씌운다. 떠넘기는 사람들은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그걸 교묘하게 이용한다.
세상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세상이니까. 친절하게 대하면 막 대하기 시작한다. 호락호락하면 호구 잡힌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하기 싫은 일, 곤란한 일, 힘든 일을 고스란히 떠넘긴다. 처음에는 시한폭탄 같은 일을 떠넘긴 상대방을 원망하다 원망의 화살은 곧 자신에게로 향한다. 애당초 거절했으면 이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거라며 자책하고 만다.
일은 일대로 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에 죄책감에 휩싸인다. 결국은 나 자신을 미워하는 괴로움의 굴레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호구 탈출을 위해 책을 뒤지고, 선배 호구들의 경험담을 물어보고,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거절을 ‘잘’ 할 수 있을까?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 끝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애초에 나의 바람은 실현될 수 없는 거였다. 상처 주지 않고 거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절하는 순간 뭐가 됐든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라 믿은 사람에게 거절당했기에 어쩌면 더 큰 충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늘 차선을 두고 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 아니어도 제2의 호구, 제3의 호구가 존재한다. 그러니 꼭 나까지 그 호구 대열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거절하는 그 순간의 민망함에 대해 눈 꼭 감으면 몸과 마음의 편안함은 오래간다. 순간을 참지 못해 떠안는 찰나 ‘괴로움의 쳇바퀴’에 다시 들어간다. 쳇바퀴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죄책감 따위는 접어 두고 눈감고, 귀 막는 연습부터 착실히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야 ‘잘’ 거절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상처 주지 않는 거절은 없다. 지금 내가 최고급 미슐랭 식당에 온 뮤지션은 아니지만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으니까. 호구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눈 딱 감고 단호박보다 더 단호하게 말해 보자.
아니요. 지금 안 그러고 싶은데요.
원문: 호사의 브런치
첫댓글 생각해보면 이삼십대는 이렇게 호구짓만 하다가 살은 인생인것도 같단 생각도 드네요
늘 주변을 살펴봐야하고 주변인들의 기분과 상황에 맞춰서 살다보니 누군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거의 대부분 안들어줄수가 없게 되는거죠, 우리나라 대부분의 이삼십대 시절의 사람들이 그러할듯 하고, 특히 여성들은 더욱 그러하죠, 사회에서 요구하는 습관적 관념상.
저의 경우도 극단적 사례는 철밥통같았던 직장을 걸고서 상사에게 미움을 받을수밖에 없는 경우의 일에도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에게 나름 당연한 배려이고 도움이라 생각해서 수락했던 일에 대해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되었고 그들은 그 덕분에 짤릴수 있던 상황들을 모면했음에도, 신세가 바뀌니 나중에 그 어떤 사람도 감사하러 오는 사람도 없더군요.
나이든 사람들에게 가장 냉혹한 세상을 배웠던 경우였습니다.
이후로도 못지않게 굵직했던 일들 당해왔고, 이곳에서도 실컨 도움을 줬더니 코인사기 치러 온 나이든 남자들에게 피해당했던 사례들 있었고요.. 인생에서 호구짓은 완전히 끝난다는 장담을 못하겠더군요,
호의를 베풀었던 사기꾼들에게 그렇게 처절하게 당해서 인생이 망했음에도 나중에 또 알수없는 형태도 나타나곤 했으니깐요.
이렇게 몇번 굵직하게 인생에서 참 악했던 인간들을 겪고나보니 이제 왠만하면 사기꾼 느낌이 들거나 (코인, 주식부터 들먹이는 사람들 등)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걸로 자꾸만 가스라이팅 하려는 사람들이 보이면 일단 피하고 보게 됩니다.
내 인생이 그런 일들로 그냥 털린게 아니고 아주 호되고 심하게 피나게 털려서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이 다름과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정치와 종교 영역에서 피토하게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려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안엮이려 하고요, 이건 그냥 가스라이팅이쟎아요
더군다나 정치 이념과도 상관없는 정말 인간도 못되는 정치인을 교주화 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역겨움을 넘어서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최근에 가장 대표적 몇사람 중 하나가 트**였습니다.
가족간에도 종교,정치 얘기는 해선 안될정도로 민감한 주제인데 가까운 사람들끼린 정말 해서는 안되는 내용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판이고 비정상적 인물들이 난립한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그런 이유로 몇년간 가장 살갛게 지낸듯 했던 회원분중 한분과도 일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게 된듯 합니다.
참 트**로 인하여 몇년 알던 회원 한분은 활중도 했었군요,
@청명 그런데 이제 내가 더 이상은 누군가들에게 호구짓은 안할 수 있게 되는 나이와 연륜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이상 아무에게도 의존도 기대도 안하니 가능해진 일이 된듯 합니다.
더욱더 나 자신이 홀로 서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냉청해 지려고 부던히 노력한 덕인듯 합니다.
안 그럴수 없는게 저는 그동안 호구짓을 많이해서 인생이 너무 많이 털려버렸거든요.
그러나 이런걸로 인하여 좋은사람, 좋은인연을 잃기는 싫은 안타까운 마음도 존재하기에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쉽지도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거 같습니다.
저 역시도 매일 호구가 안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지만
비슷한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듯 하여 퍼와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