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함석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4월의 분을 시원히 풀지도 못해서 5월이 목에 걸렸습니다.
보내드린 잡지를 보시고 소감이 어떠했습니까? 섭섭한 점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엮어내는 자신으로서는 병신자식 낳아 든 엄마로라고 했습니다.
어느 엄마가 병신자식 낳고 싶겠습니까? 낳으려니 꿈인들 꾸었겠습니까? 그러나 내 속에서 나온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그 엄마보고 “무슨 아기를 그따위를 낳아!” 하고 책망하고 비웃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보기 싫은 자식 내다 버리랍니까? 어디 버릴 데가 있습니까? 죽어버리랍니까? 그럼 속이 시원하고 의젓한 새 아들을 낳을 것 같습니까? 아들은 생리적 산물만이 아닙니다.
5월이 다 됐는데 아직도 4월호를 못내고 나올 아기가 아니 나와서 죽으려 드는 엄마처럼 속이 답답해 세상을 온통 부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을 듯한 허깨비가 눈앞에 왔다갔다하는 5월 초하룻날,『동아일보』는 제임스 레스턴의「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이란 논문을 실었습니다. 여러분 그 글 보셨습니까? 나는 그것을 읽다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꾹 참고 병신자식이라도 낳아서 기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레스턴은 글 첫머리에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보다 무엇 때문에 일어났느냐는 데 역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 한국 놈으로서 볼 때는 그 ‘무엇 때문’보다도 무엇 때문이냐를 묻는 사실에 크게 역점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물어서만 사실이 됩니다. 숨이 끊어지는 자연현상이 사실이 아니라 “내 숨 끊어진다” 하고 악을 쓰는 것이 인간의 사실입니다.
레스턴의 말대로 백악관의 위신은 과연 떨어졌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느냐 하는 그 무엇은 그의 지적한 대로 “그 사건을 모의하고 또 그 사건이 성숙할 수 있도록 한 비밀과 사악한 분위기에 젖은 자들의 도덕적 맹목성”에 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 보면 미국은 썩었으면서도 그래도 살아 있습니다. 워터게이트를 터뜨리고야 말지 않았습니까. 내 눈물이 쏟아진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도 고마워서, 그것이 부러워서 말입니다. 미국의 일어서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생각할 때 과연 긴 한숨을 아낄 수 없지만, 그 닉슨 제국의 돈과 기술로 하는 갖은 방법을 가지고도 종시 그것을 막아낼 수 없어서 언론의 수문(Watergate)은 터지고야 말았으니 어찌 시원하지 않고 부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나라에는 워터게이트도 없습니까? 레스턴은 자기 논문 허두에 일부러 월터 리프만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정치인은 인간성을 아주 낮게 평가한다. 그는 무엇인가 얻으려는 사람 또는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사람들과 주로 접촉하게 된다.
한편 그는 특별히 무엇을 요구하거나 불평을 자주 않는 광범하고 조직적이 아닌 대중을 의식하게 된다. 그 정치인은 정치란 결국 특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면서 고상하고 애국적인 언사로 대중을 달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태평한 시대에는 그와 같은 정치인의 생각이 먹혀들어 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어려운 시기에는 통치의 틀은 바뀌는 법이다. 미숙한 듯한 씨알도 분기한다. 그들의 힘은 강하며 엄청나게 크다.”
어쩌면 요렇게 한 자 한 귀도 틀림이 없는 옳은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미국은 살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살았습니다. 역사의 계승은 씨알이 합니다.
병신 아들이 나는 까닭은 “그 사람의 죄 때문도, 그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역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병신자식의 의미는 부모(씨알)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어 “병신자식 더 예쁘다” 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부모마다 병신자식은 다 내리고 죽였다면 인류는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병신 지식을 키우는 동안 짐승은 인간으로 자랐습니다.
그럼 나는 병신자식을 열 두 개씩 낳아 기를 것입니다.
나를 비웃지 마세요, 내 마음이 약합니다.
한삶의 남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씨알의소리 1973년 5월 22호
저작집30; 8-113
전집20; 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