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을 늦게 청한 까닭에 8시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너무나 환한 가을 아침이었는데, 맑고 선선한 이상적인 아침이기도 했다.
아침을 고구마로 챙겨 먹고 간단하나마 청소를 한 뒤 샤워도 하고는, 밀려있던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그런데 요즘, 나날이 방안으로 더 깊게 들어오고 있는 햇볕이 성가시긴 했지만(어느새 컴퓨터있는 곳까지 파고 들어, 작업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기 시작해),
일단 당분간은 지켜보다가 시월로 넘어가면서는 '동절기 시스템'으로 방의 구조를 바꿀 예정이라(떼어놓았던 반투명의 창문을 달면 어느정도 햇볕을 차단할 수 있다.)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 뒤 다시 시작한 '가와 사' 교정 작업(한 장)을 조금 했고, 그 와중에 빨래가 다 돼서 널어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9시 반이 넘어가기에 바로 어제 돈을 뺐던 은행에 전화를 걸었는데(그 은행은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 그저 길을 가다 들렀던 곳이어서 인터넷 지도를 켜놓고 길을 따라 검색을 하면서 찾았던 전화번호였는데),
아침 개장시간이라선지 안내의 7-8 번의 '기다려 달라'는 말이 반복되도록 전화 연결이 안 되다가, 가까스로 됐던 한 여직원에게 어제 일어났던 얘기를 해 준 다음,
내 실수였기 때문에 은행 측에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CCTV라거나 하는 걸로 그 상황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몇 시쯤이었는데요? 해서,
여기 '명세서'에 적힌 걸로 보면 12시 58분인데요...... 하자,
그럼, 고객님 계좌번호는요? 하고 요구해 와서,
내 계좌번호를 알려 주었더니,
남궁 문 고객님 맞으신가요?
예!
근데요, 여기 나온 기록으로는 그 시간에 있었던 거래가 취소됐네요.
예? 그게 무슨...
그러니까, 말씀하신 그 거래의 기록은 정확하지만 바로 취소가 됐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금액은 다시 재입금된 걸로 나와 있는 거지요.
예에? 그렇다면...
그 돈은 그대로 통장에 남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다행이에요.
그러게요!
나는 깜짝 놀랐고, 은행에 감사를 드릴 정도로(자동화 시스템의 혜택을 받은 점에) 기뻤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직은 치매는 아닌가 보네...... 했던 건,
어제, 그 돈을 잃어버린 걸 확인한 뒤에, 여러가지 각도에서 잃어버린 가능성을 추측해 보았는데,
두 가지로 압축해서,
하나는 은행 자동인출기에서 현금을 빼지 않았을 거라는 것,
또 하나는, 평소에도 돈 간수에 야무지지 못한 나라서, 그 돈을 대충 가방에 넣고 돌아오다가, 아무래도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두세 곳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을 때 돈을 털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두었는데(난 휴대용 가방도 지퍼를 열어놓은 상태로 잘 다니기 때문이고 어제도 사실 그랬기 때문에),
너무나도 정확히 전자에 해당되었던 실수로 드러났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었다.
그만큼 내 기억도 또렸했다는 말이니까.
근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한 번 물어 볼 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자동인출기에서 일정 시간 돈을 꺼내지 않으면 다시 돈이 들어간다는 건가?)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돌아온 그 돈으로,
난 이제 원래의 계획이었던, 여기 서울여대 화방에 지고 있던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이번 주말에 실행이 될 수도 있는 조그만 '자전거 여행'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란, 어제는 흐림, 오늘은 맑음일 수도 있고, 오늘은 갬, 내일은 비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껏 기분이 좋아졌던 나는,
이 좋은 아침에 뭘 한다지? 하며, 일단 우유를 전자랜지에 데워서 커피 믹스를 하나 탄 다음,
음악도 틀고 앉아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 세상엔 하나 가득 밝음만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고, '군포'에 사는 한 친구(S)였다.
응!
오늘은 뭐 하냐?
글쎄, 뭐든 하겠지......
안 나가?
지금 당장 나갈 일은 없는데......
그럼, 내가 갈까?
올 수 있어?
응, 오늘 '곤지암' 쪽에 문상갈 일이 있는데, 오후에 갈 생각이니, 가는 길에 너한테 먼저 들러 점심이나 같이 먹게......
그래, 그럼, 와!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그는 나에게 '죽부인'을 실어올 것이었다.
그 얘기는,
지난 여름 내내 나는 여기 '내 자리'에서 '가와 사'를 잡고 완성을 위해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여름이 끝나갈 무렵 군산의 또 한 친구(Ch)가 날 데려가고 싶다며 오라기에(기획했던) 갔다가, '무주 구천동'에 가게 되었고(S와 셋이서), 그 때 또 다른 한 친구 L도 군산에 벌초를 하기 위해 와 있었는데,
우리가 무주구천동에서 돌아와 L과 함께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그 죽부인을 넘기게 됐는데,
일단 그 얘기는,
그 친구(L)는 어머니가 자기 친정인 전남 '담양'에서 지내시는데, 가끔씩 어머니를 뵈러 담양에도 가기에, 막 더위가 시작될 무렵, 그러니까 지난 여름,
너, 어머니 뵈러 담양에 갔다 오는 길에 나에게 죽부인 하나 사다 줄래? 하자,
웬 죽부인? 하고 되묻기에,
야! 나, 혼자 사는 사람이 외로움도 달랠 겸(?) 죽부인이라도 들이려고 하는데, 거기에 이유가 있어? 하면서 웃었던 일인데,
나는,
그냥 싸구려 중국산 말고, 니가 어차피 담양까지 가는 길에 한국 사람이 우리나라 대나무로 만든, 그러면서도 흔한 이쁘장하거나 정형적인 것 말고 뭔가 인간 냄새가 나는(여기서의 얘기는, 그 장인의 인간적인 숨결이 느껴질 수 있는 걸 강조했다.), 그러니까 만들다 실패를 했다거나 그 모양새가 좋지 않아도 좋으니, 좌우간 자연스러운 거면 더욱 좋고! 하는 단서를 달기는 했었다.
그런데 L은 그 뒤로 감감 무소식이더니, 추석 전에 군산에 벌초하러 가는데(나도 엉겁결에 무주구천동에 갔을 때) 담양에 사는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