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10곡】 "이교도, 에피크로스와 그의 추종자들"
나의 선생님은 으슥한 좁은 길을 따라서
도시의 성벽과 고통들 사이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단테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가는데 무덤의 뚜껑이 열려 있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자들이 다 보입니다. 그런데 감시하는 자가 없어 선생님께 다른 이들의 눈에도 누워있는 자들이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 까지 뚜껑이 열려있어야 모든 영혼이 이곳에 모여 자기의 육신과 결합할 것이고 그래야 뚜껑이 영원히 닫혀 진다고 합니다. 9곡에서 보았던 사방이 무덤들 천지였던 여섯 번째 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이곳에서는 이교도뿐만 아니라 에피쿠로스와 그의 추종자들도 같은 벌을 받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편에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그 추종자들이
무덤에 갇혀 있는데
몸이 죽 을 때 영혼도 죽는다고 주장했던 자들이다.
에피쿠로스학파는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철학자로 영혼의 불멸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정신적인 쾌락을 즐기는 숭고하고 철학적인 에피크로스인입니다. 에피크로스학파는 빵 한조각과, 철학적인 대화와 친구와의 명상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는, 개인의 행복에 중점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락타시아(평정심, 고통과 욕심이 없는 영혼의 평정 상태)를 최선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에피쿠로스학파인데 그들의 죄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불신의 죄가 이교도와 동격의 벌을 받는 원인입니다.
사후 세계의 심판은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단테 <신곡>의 기본 틀입니다. <신곡>은 사후 세계를 전제하는데 생전에 죄를 지은 인간은 사후에 그 죄에 합당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이 <신곡>의 이야기를 꾸며가는 뿌리입니다.
그런데 영혼불멸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교 근간을 흔들었을 뿐 아니라 단테 <신곡>의 핵심 사상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해 서서히 정체성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들과 이념을 달리하면 ‘이단’이란 이름을 붙여 단죄하였습니다.
단테는 영혼불멸성을 주장한 그리스 철학자 에피크로스와 그의 신봉자인 피렌체의 기벨리니 당 정치가 파리나타를 통해 이교도로 죄를 주었습니다.
단테는 파리나타를 자신이 부인하는 사후세계에서 영원히 불타는 관속에서 고통 받는 죄인으로 묘사했습니다.
사후 세계와 심판은 인간이 구축한 문화와 문명을 유지하는 인관응보의 대원칙이었습니다.
“오, 토스타나 사림이여! 불의 도시를 거쳐
산 채로 정직하게 말하며 나아가는 사람이여!
이곳에 잠잔 멈추는 것이 좋겠소.“
그때 한 무덤에서 '이곳에서 잠깐 멈추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파리나타(피렌체 기벨리니 당의 지도자)였습니다. 단테와는 가문의 정적인 파리나타 가문의 지도자입니다.
단테와 그의 가문은 대대로 로마교황을 옹호하는 궬프당을 지지하였는데, 파리나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니당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파리나타의 가문과 단테의 가문은 오랜 세월을 정적 관계로, 가문과 가문 사이에 군사를 동원한 전투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긴 싸움 끝에 파리나타 가문은 멸망했고 파리나타는 죽어서 이렇게 지옥에 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그의 무덤에 이르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며 거의 얕보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당신 조상들은 누구인가?”
파리나타는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이 거만함과 지적 교만이 이단의 징후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단테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고자 숨김없이 다 말해주었습니다.
그가 단테인지 알게 된 파리나타는 자신이 두 차례나 단테 가문을 피렌체에서 몰아냈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단테는 자신의 가문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돌아와서 결국은 파리나타 가문을 몰아냈는데 파리나타 가문은 한 번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오히려 비아냥거립니다.
둘이 대화하고 있는데 어떤 영혼이 단테에게 말을 겁니다. 그는 단테의 모습을 알아보고 아들 소식이 궁금해서 일어나서 아들 소식을 묻습니다. 그는 단테의 친구인 시인 구이도의 아버지 카발칸티입니다.
나는 혼자 오지 않았소. 저쪽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날 이 길로 인도하셨소. 당신의 아들
귀도가 경멸했던 그분이지요.
귀도의 아버지는 ‘귀도가 경멸했던’이라고 과거형으로 단테의 말을 오해해서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줄 알고 슬픔에 잠겨 대번에 무덤으로 거꾸러져 들어갔습니다.
파리나타와 카발칸티는 서로의 순례자와의 대화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자기에게 필요한 말만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단테는 이단의 전형이라고 주장한 듯합니다.
파리나타는 귀도의 아버지의 아들을 잃은 슬픔은 상관하지 않고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그들이 그런 기술(51행, 쫒겨나도 두 번이나 돌아온 기술)을 익히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만으로도 이 무덤보다 더 괴로운 일이구먼.“하며
그러나 당신은 여기를 지배하는 여인(페르세포네)의 얼굴이
오십 번 그 빛을 발하기 이전에
그 기술을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리.
파리나타는 보름달이 오십 번 흘러가면(50개월 후) 단테에게 한 번이라도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은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운명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파리나타가 왜 우리 가문을 그토록 모질게 하는지 묻습니다.
단테는 기벨리니당과 궬피당의 격전으로 기벨리니당이 승리하여 피렌체를 파괴하려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파리나타는 전쟁에 참가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며
하지만 모두가 피렌체를 파멸시키려 했을 때
난 피렌체를 위하여 떳떳하게 일어섰지.
그때는 오직 나 혼자였어.
라며 당시의 일을 말했습니다.
단테는 당신의 후손도 언젠가 평화를 찾을 것이라고 위로 했습니다.
지옥의 영혼들은 과거의 사실이나 미래의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새롭게 지옥으로 들어오는 영혼들을 통해서야 비로써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지옥을 여행하는 동안 영혼을 만나면 수시로 그에게 미래의 운명을 예언해 달라고 요청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들은 반대로 단테에게 현재 상황을 질문하는 것입니다.
단테는 다시 파리나타와 대화를 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서 벌을 받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파리나타는 이곳의 무덤에 있는 자들은 수 천 명인데 페데리코 2세, 우발디니 추기경 등 교황에게 파문을 했거나 이단자들의 주장을 방조해 벌을 받고 있다고 얘기하고는 무덤으로 돌아갑니다.
옆에서 단테가 영혼들과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던 스승은 단테에게 주어진 운명의 예언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네가 들은, 네 귀를 거스르는 예언을
가슴속에 잘 새겨 두어라! 그리고
내 말을 잘 들어라! 그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아름다운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그녀의
부드러운 눈길 앞에 설 때 너는
네 삶의 길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벽을 버리고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골짜기의 악취가 우리에게까지 풍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