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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제목 : 하나님의 자녀,
이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와 관련된 신분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만큼 귀한 신분이 없습니다. 죄 지은 인생은 너나할 것 없이 권세를 추구합니다. 이 세상 논리는 힘을 바탕으로 권세를 바탕으로 남을 지배하고 거기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약육강식의 세상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권세가 있으시니 이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권세를 한번 맛보면, 한번 붙들리면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권세라고 번역된 단어는 '엑수시아'입니다.
헬라어에는 '권세'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여러 개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영어의 power로 번역이 가능한 단어들입니다.
먼저 크라토스— 영어 democracy에서 파생되었고 크라토스는 여러 형태의 '정치적 권세' 혹은 '통치의 권세'를 뜻합니다. 듀나미스-- 폭발적이고 이적적인 능력. dynamic dynamite 단어들이 파생되었고 '힘, 권세, 권위' 등으로 번역됩니다. 엑수시아-- '권위'라는 뜻으로. 이적적인 능력이나 정치적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적 격상'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권위'를 말합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위'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엑수시아'라는 단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단어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께 '듀나미스'나 '크라토스'를 달라고 떼를 쓰지요. 예수님을 믿어 자녀가 되어도 진정한 장성한 분량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세상적인 것이 남아있어 이름내고 싶고 대단하다는 찬사와 명성과 박수갈채를 받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지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고자인데 그 깊은 속심은 자기를 들어내고 싶은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 능력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1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신분적 권위 '엑수시아'인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전도서에 보면
전 1: 2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전 2: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서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와 지혜를 가졌다는 솔로몬 왕이 쓴 것입니다.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보았지만 죽을 때가 되어보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 뿐입니까? 옛날 어르신들도 그랬고 어떻게 되다보니 저도 어딜 가도 이제 어르신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잠이 달게 옵니까 아니면 음식이 맛이 있습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마음이 편안합니까?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 아니면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에 암행어사가 한번 뜨면 산천초목이 떤다 하였는데 이는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세 앞에는 산천초목뿐만 아니고 귀신들도 벌벌 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 놀라운 하나님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칠십인 전도대가 기뻐하며 돌아와 가로되
눅 10:17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로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병마가 물러가고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말이 권세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습니다.
지금도 권세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왕의 말이 권세가 있어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 순종할 때에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문둥병을 고쳤습니다.
이와 같은 권세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자녀는 이 권능을 누리며 사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사용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권세를 부여 받았다는 것은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접하여 생명을 경험한자에게 죄책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신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아무리 물을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는 샘처럼 말씀 묵상하면 할수록 쏟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가 되기만 하면 이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12절은 ‘데’라는 헬라어 접속사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입니다. 참 빛이 세상에 오셨는데 아무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참 빛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일하심’에서만 비롯되는 것이지 인간 쪽에서의 어떤 도모나 노력도 거기에 기여하거나 보태질 수 가 없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대표적인 인간 쪽에서의 도모를 ‘혈통, 육정, 사람의 뜻’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을 자기들의 구원의 근거로 알고 있었습니다. 13절의 ‘혈통’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하이마톤’은 ‘피’나 ‘혈연’을 의미하는 ‘하이마’의 복수 소유격입니다. 그러니까 ‘육체 적인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빛을 보고 그 빛을 영접하는 데에 ’육체적 혈연관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음 ‘육정‘ 이라고 번역이 된 ’델레마코스 사르코스‘는 ’육체적인 욕망‘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닌 모든 세상 적인 육체적 욕구나 정욕, 그리고 거기서 나온 사회적 명망이나 권력, 부, 세상의 가치 체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의 선생이었고 관원이었으며 부자였던 니고데모가 주님께 찾아와서 ’주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그래 너는 참 많은 것을 이루어 냈구나, 성경도 열심히 공부했고, 부지런히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성실하게 네 삶을 살았으니 네가 가진 것에다가 조금만 보태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scrap everything you've done Nicodemus' ‘네가 이루어낸 것은 다 갖다 버려라‘ ’네가 이루어낸 어떤 것도 너희 구원에 도움이 안 된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셨습니다. 니고데모가 가지고 있던 그 많은 것들이 바로 ’육정‘’델레마코스 사르코스‘입니다.
다음은 ‘사람의 뜻’ ‘델레마토스 안드로스’는 절대자에게 도달하려고 하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이나 수양, 율법 준수 같은 것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뜻으로는 절대 주님을 알아보거나 영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피를 물려받은 사이이기 때문에 부부는 갈라질 수 있는 인륜사이어도 자녀만큼은 갈라질 수 없는 천륜사이입니다. 한 번 자녀는 잘나나 못나나, 정상이나 장애인이나 전혀 관계없이 영원한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1. 하나님께로부터 낳은 자입니다.
요 3:5 -6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습니다.
이 성경을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히 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론 교리에 양자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는 법적인 것이고 실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낳으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양자는 내가 낳지 않아도 양자 삼아 아들이 되지만 하나님의 양자는 하나님께로서 거듭 낳아서 자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방법이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의 생명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신약의 최고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이 시대의 가장 큰 기적은 죄인이 예수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 자녀인 것입니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쪽에서 나오는 어떠한 인본주의적 수단도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롬 9:14-1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2. 아버지를 닮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요일 3: 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누구를 닮아야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엡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을 닮아라는 뜻입니다.
마 5:9에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자녀는 뭐가 닮더라도 닮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닮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히 닮으시기 바랍니다.
3. 아버지의 기쁨의 대상입니다.
자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셨습니다.
마3:17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자녀된 우리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자식이 된다면 그 기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을 보세요.
요 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만 기쁨이 대상이 아니라 천사들과 사람에게도 칭송의 대상입니다. 롬 14:17-18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 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그 몸 성전에 좌정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랑과 은혜와 덕이 넘쳐 해와 같이 빛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4. 천국의 상속자입니다.
마 25:34에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19:29에 “영생을 상속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좋은 모든 것이 다 자녀 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다 구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의심하는 자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막11:24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런 백지 수표가 어디 있나요? 그러나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완전한 믿음으로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5. 충성하는 자입니다.
히 3:6에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모세도 충성했습니다. 다윗도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님만큼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익이 있어야 충성하지만 자녀는 이익이 없어도 부모에게 충성합니다. 다른 사람은 조금만 서운해도 떠나도 아들은 떠날 수 없습니다. 혹시 서운해 떠나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자식입니다. 이것이 자식의 다른 점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에 빛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윗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합니다. 참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악한 영들 마귀의 세력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매일처럼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간증이 넘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