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조천형
공장에 거미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미는
잡은 먹이를 이유 없이 놔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거미줄이 늘어나는 공장을 말없이 걸어 나와
바라본 집 구석
거미가 긴 줄을 늘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빈방에 갇히면 음험한 거미가 되기 쉽다
바람도 통과하기 어려운
촘촘한 실업의 방충망이 처진 거미줄엔
맛있는 나방이 잘 걸리지 않아
일주일을 굶었다
밤마다 먼 곳에서 날아온 밥 냄새만 거미줄에 걸려
즙보다 빠르게 녹아내리고
마지막까지 독을 가져야 하는 이빨이
하나 둘 잇몸에서 빠져나갔다
교미를 하면서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거미도 있다는
교차로 구인란을 잘게 씹어 먹으며
거미줄을 치우고 안전구호를 외치던 공장의 아침
독을 묻혀 멀리 쏘아 보낸 거미줄에 갇혀
파르르 떨던 나방 맛이 그립다
높은 층수에서 거미줄을 치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
늙은 경비원은 끝끝내 무죄였지만
가벼워진 사내의 몸을 감당하기에도
거미줄은 너무 약하다고
삶은 줄을 잘 잡고 끝까지 버티는 일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웅크리고 이빨을 드러낸 여자는
사내가 떨어진 창틀에 알을 까며
출산의 고통으로 울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독한 거미로 살겠다며
여자가 떠난 1403호엔 소독을 핑계로 약이 뿌려졌고
자살 소식은 은밀한 유령거미처럼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여자가 떠난 집에 다시 거미줄이 늘어난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가 떨어진 시간마다
사각사각
복도를 점령하며 천천히 거미줄이 늘어나는 소리를
오래도록 들어야 했다
[프로필]
조천형 : 봉평출생 현재 원주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