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다빈치의 노벨라 시리즈 33권을 훑어보는 독자들이 가장 낯설어 할 인물이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일지 모른다. 미국의 공포, 판타지, 공상과학(SF) 작가다. 많은 작품을 썼지만 생전에 유일하게 발표한 작품이 '인스머스의 그림자'다. 국내 출판사 두 곳에서 번역해 소개했는데 '인스마우스'로 옮기는 바람에 적지 않은 혼동을 불러왔다.
줄거리를 옮기자면 이렇다. 1927년에서 다음해로 넘어가는 즈음에 미국 연방정부는 매사추세츠주의 항구 마을 인스머스 많은 집들에 화약을 터뜨려 불태운다. 로버트 옴스테드가 어머니를 뵈려고 오컴이란 도시로 향하던 길에 매표원과 다투는 바람에 우연히 오래되고 괴상한 이 마을 얘기를 듣게 돼 호기심이 동해 이 마을을 찾았다가 소름끼치고 오싹한 경험을 통해 이곳이 존재해선 안된다고 연방정부에 항의해 마을 주민들과 수상한 이들을 체포해 모조리 처치한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도 이들과 같은 핏줄이었으며, 정부의 호언과 달리 이들 수상한 이들은 전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이를 먹으며 점차 얼굴이 변해 괴물이 된다.
작가 본인도 이런 공포를 겪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외모를 가진 이들을 막연히 두려워하며, 그것도 모자라 적으로 여겨 인종차별 논란을 겪었다. 실제로 무솔리니와 히틀러 같은 이들을 추종하고 싶어했다.
놀라운 점은 1926년에 러브크래프트가 집필해 1936년에야 뒤늦게 출간된 이 작품이 오늘날 공포나 판타지, SF 작품들에 자양분을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의 좀비 이미자가 인스머스 마을의 어인(fishmen) 묘사에서 차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은 400부를 인쇄했는데 절반만 팔리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됐다. 그는 끝까지 이 작품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판타지 장르의 창시자 로버트 하워드가 그의 작품들을 읽고 칭찬하는 편지를 보내와 우정을 나눈 것이 고집을 꺾는 계기가 됐다. 그런 하워드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출간된 해였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같은 해 자신은 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 3월 10일 프로비던스의 한 병원에서 삶을 접었다. 스완포인트 묘지에 있는 필립스 가문의 장지에 묻혔는데 40년 뒤인 1977년 고인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새로운 묘비를 세웠는데 '나는 프로비던스다' 글귀가 새겨졌다. 생전에 은둔자로 지냈으나 적지 않은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비롯한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감상을 나누며 유망 작가를 발굴하는 일에 앞장섰던 고인이 생전에 남긴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그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제 정신을 찾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었다. 세 살 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외할아버지가 독서를 권장하고 얘기를 들려줬는데 고딕 소설,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작품들에 눈을 뜨게 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악몽을 꾸기 시작했는데 악몽에 등장하는 유령들이 작품 소재가 됐다. 독학으로 천문학과 화학을 익혔다.여덟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외할아버지 사업이 기울며 어머니와 단둘이 지냈다.
신문에 기고하며 단편들을 집필했다. 고교 입학을 했지만 건강을 이유로 포기했고 대학 진학도 접었다. 1919년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듬해 '크툴루 신화'로 엮이는 단편들을 발표했다. 1924년 유명 펄프 잡지 '위어드 테일스'에 초기 단편들이 소개되면서 작가로 발판을 마련했다. 그와 하워드를 연결해준 것도 이 잡지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아무튼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마을 묘사는 할리우드 영화 스크립트를 보는 것처럼 세밀하며 을씨년스럽고 괴기스럽다. 물고기와 개구리, 인간의 형상을 모두 갖춘 피시멘 묘사는 너무 빼어나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우리 모두가 관찰하듯이 생생하게 옮겨준다. 독자가 마을의 한 장소에서 화자와 함께 머무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임 중에도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스며든 것들이 적지 않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된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영화 '데이곤'(2000)도 작가 본인의 다른 작품 제목을 갖다 썼지만 실은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원안이다. 제작비 제약 때문에 마을 전체의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는 한계가 지적되지만 '우주적 공포'라는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세계관을 나름 전달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클래식 음악 가운데 어울리는 작품을 고르려다 흠칫 헤비메탈 레전드 그룹 메탈리카에 꽂혔다. 1985년 발매된 3집 '매스터 오브 퍼핏'에 수록된 '더 팅 댓 슈드 낫 비'가 대표격이다. 가사에 르뤼에, 그레이트 올드 원, 니알라토텝, 러브크래프트가 하도 출처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고대 마법 책이라고 둘러댔던 네크로노미콘에 수록돼 있다고 꾸며댄 한 구절도 들어가 있다. 사실 메탈리카의 2집 '라이드 더 라이트닝' 수록곡 '더 콜 오브 크툴루', 9집 '데스 매그네틱'의 '올 나이트메어 롱'도 크툴루 신화를 동경하고 있다.
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털어놓았다.
Metallica: The Call of Ktulu (Live) [S&M]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