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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北의 15자
공격 이틀전 北경비정 교신 내용, 우리軍이 감청
당시 정부는 묵살 "계획 도발 아닌 우발적 사건"
- 한철용 감청부대장의 국회 증언… 대북 통신감청 정보를 총괄하는 한철용 5679부대장(육군 소장·사진 왼쪽)이 제2연평해전 발발 3달여 만인 2002년 10월 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해교전 직전 군 수뇌부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며 비밀 문서를 내보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서 한 부대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이상희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안경 쓴 이)이다. /김진평 기자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을 일으킨 북한 경비정 684호가 교전 이틀 전에 상급부대인 8전대(戰隊) 사령부에 보고한 'SI(Special Intelligence·특수정보) 15자'는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월간조선 7월호가 보도했다. 우리의 대북(對北) 통신감청부대인 5679부대가 감청한 'SI 15자'의 존재는 이전에 알려졌지만 그 전모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월간조선이 또 최초로 입수한 당시 북한군 교신록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이 종료되기 전에 황해도 소재 신천통신중계소가 북한 해군사령부의 지시 사항을 북한 경비정 684호가 소속된 8전대 사령부로 중계했다.
당시 북 해군사령부와 서해함대사령부는 선제공격 보고를 8전대사령부로부터 받고 684호에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지시했다. 또 8전대사령부가 현장 부근에 있던 북한 388호에 "불당 소리(포성) 들리냐"고 하자 388호 측에서 "포성 소리 들린다"고 답했다.
제2연평해전을 전후해서 북한군 간에 오간 교신 내용은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패퇴했던 북한이 2002 한일월드컵으로 들뜬 우리 사회 분위기를 틈타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선공(先攻)을 감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정부와 군 일각에서는 이같은 교신 기록을 입수하고서도 제2연평해전을 '우발적 사건'으로 평가해 논란이 빚어졌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인 참수리 357정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으로 이로 인해 357정 정장(艇長)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해군 자료에 따르면 우리 해군작전사령부는 '6월 27일 북 684호 NLL 침범 상황 결과' 문건에서 "등산곶 경비정이 NLL 침범시 아(我) 고속정에 대한 사격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8전대사령부와 사격 기도 관련 교신(SI 15자)을 했다. 기동 전 철저한 사격 준비 상태를 갖추고 왔다"고 분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는 5679부대에서 수집한 '발포'라는 결정적 도발 정보와 해군작전사령부의 분석을 무시한 채 북한 경비정의 의도적인 NLL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북괴의 침공을 눈감아주도록한 주모자들의 명단(물론 대중이와 노무현이는 당연히 등재)을 낱낱이 밝혀 역사의 기록에 남겨서 노무현이가 마든 반민족자 인명 사전에올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