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례절차 -
일반재가자의 경우 임종 후에는 영전을 마련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불교식의 기준은 전무하다. 지금까지는 유교식의 영전과 상차림에 스님들이 참여하여 염불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러므로 스님들이 독경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자인지 아닌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영정에는 일반적인 제물이 마련되므로 육류와 술이 올려지며 스님들은 이 앞에서 독경을 하고 있으니 불교의 교리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장례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영전에서부터 불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져야 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제물을 차리지 않고 꽃이나 성격만 놓으며, 문상객도 큰 절을 하지 않으며, 향 대신에 꽃을 올린다. 이와 같이 불교적인 영전의 규범이 나와야 할 것이다.
먼저 영전의 뒤에는 탑다라니를 모셔두고 그 앞에 망자의 사진을 모시며, 연꽃형의 위패와 그 내용도 불교식으로 써야 한다. 제물은 사원에서 차리는 것과 같이 과일, 과자, 나물, 밥 등으로 마련하고 고기류나 술은 금하며 茶로서 대신할 필요가 있다. 또 상주들의 상복도 가능하면 남자는 검은 양복, 여자는 흰옷으로 입든지 아니면 재가자들이 입는 법복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염습 때 입히는 수의는 유교식의 삼베옷이나 명주옷보다도 새로운 천으로 대체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교식의 수의는 매장할 경우를 대비하여 오래 동안 보존이 가능한 천을 사용하지만 불교식은 화장할 경우를 생각하여야 한다. 화장할 경우에는 화학섬유나 비단 같은 것은 불이 탈 때 유독성을 뿜으므로 좋지 못하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면종류가 적합하다. 국가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합리적인 것인 염습할 경우에도 매장 때와 같이 시신을 너무 속박할 필요는 없으며,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모시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수의를 입힌 후 시신에 대해서는 일체의 속박을 가하지 않는 것도 무방하다. 관의 경우도 매장에는 좋은 것이 필요할지 모르나 화장에는 불필요하다. 즉 화장은 몇 시간 후면 모든 것이 재로 변하고 가능한 화장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하므로 최소의 경비가 드는 것으로 준비해도 무방하다.
대염 때는 염사가 염을 진행하는 동안에 법주는 염불을 하면서 향탕수를 뿌려준다. 진행과정은 시신을 씻어주는 목욕, 세수, 세족, 속옷을 입히는 착군, 겉옷을 입히는 착의, 모자를 씌우는 착관, 시신을 편안히 모시는 정와, 관에 모시는 입관 등이다. 이점은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의식이다.
성복제는 입관 후 영전이 모셔진 곳으로 와서 제물을 올리고 상주들은 상복을 갈아입고 시작한다. 이제부터 망자로서의 예를 갖춘다. 유교에서는 성복제 이전에는 상주가 손님들에게 절을 하거나 음식을 전하지 않고 곡도 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지만, 불교에서는 이전이라도 상복을 갖추어 입고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
발인제는 발인준비가 다되어 운구하려고 할 때 관 앞에서 거행하는 의식을 말한다. 영안실에서 할 경우에는 영전 앞에서 진행할 수도 있으며, 영결식이 끝난 뒤에 할 수도 있다. 특별히 영결식이 없을 경우에는 발인 후 바로 영구차에 의해 운구된다. 관을 운구할 때는 선두에 법주가 인도하며 스님들 뒤에 위패를 모시고 다음으로 영전사진을 모시며, 그 뒤에 관을 모시고 상주들이 따르며, 문상객들은 뒤를 이어 행진한다. 영구차에 관을 모시고 발인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영결식이 있으면 병풍 뒤에 관을 모신다.
화장터에 도착하여서는 불교의 화장의식에 의하면 된다.
화장인 경우는 관을 인도하여 화장장에 까지 안내하고 화구에 모시면서 염불한다. 화구에 모신 후 문이 닫히면, 거화하여 불을 붙이며 염불한다. 이 때는 번뇌의 불꽃에서 모든 것을 태우는 의식이 되며, 육신이 지수화풍의 4대로 돌아간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이때부터 끝날 때까지 장엄염불이 계속되며, 화구 앞에는 제단이 차려진다. 기골은 화장이 끝나고 유골이 나올 때 하는 염불이다. 이때 유족의 슬픔이 극에 달할 수 있으므로 고성염불의 힘으로 슬픔을 달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음은 유골을 수습하는 습골이 된다. 유골을 분쇄하는 쇄골의식을 거행할 때 불교 특유의 사리를 간별한다. 그리고 산골을 하든지 아니면 영탑이나 납골당에 봉안하게 된다.
출처 : 불교와 사회 강좌(http://compassion.buddhism.org/main7/home7.htm)
- 장례 진행 -
(1) 수 시 : 임종이 확인되면 배설물을 치우고 몸을 씻긴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시신을 백지나 베로 가지런하게 거두는 데 머리는 동쪽으로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불교에서는 서방 정토 아미타 신앙에 따라 머리를 서쪽으로 모신다.(지금은 출입문에서 먼곳에 좌측방향) ※ 병풍, 향로, 촛대, 영정을 모시고 상주는 영가의 머리쪽에서 조문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2) 염 습 :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과정을 말한다. 운명 후 24시간 전, 후에 (보통 오전 11시, 오후 3시)한다. (3) 성복제 : 대렴(입관)이 끝나면 상주들이 상복을 입고 (남좌, 여우) 자손이 상주가 되었음을 고하는 첫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4) 상 식 (유교식 장례법에서 유래된 의식) : 성복제 후 발인 전까지 아침, 저녁으로 (6시) 생시처럼 음식을 올리는 것이다. (5) 발인제 : 발인하기 전 제물을 진설하고 분향 배례하는 것이다. (성복제와 같음) (6) 발 인 : 망인이 빈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7) 산신제 : 묘 쓸 자리 위쪽의 나무나 바위 앞에서 과일, 통북어, 막걸리로 친족이 아닌 타인이 제주가 되어 지낸다. (제물은 그 자리에서 소비) (8) 하 관 : 묘지에 관을 내리는 것을 말하며 보통 11시 ~ 13시(오시)에 한다. 하관시간 기준 : 3번째 횡대 밑에 예단을 넣고 덮는 시간을 말함 (9) 평토제 : 묘지의 평토, 봉분을 만들고 지내는 제사.(성복제와 같음) (10) 반혼제 : 장지에서 돌아와 절에 사진과 위패를 모셔놓고 지낸다. (지에 모실 때는 상청, 지청을 설치하고 초우제를 지냄) (11) 삼우제 (유교식 장례법에서 유래) : 발인 이틀 후 장지에 가서 묘에 이상이 없나 둘러보고 간단히 (술, 과일, 향) 예를 올린다. (12) 49제 (칠칠제라 하기도 함) : 임종 후 49일 안에 다음 생의 좋은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하여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올리는 재(齎)를 말한다. 칠일에 한번씩 재를 지내고 49일째 회향을 한다.
- 49재 및 기제사-
불교장례의식 중 가장 특이한 것이 49재이다. 이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의식이지만 근래에는 천주교에서도 간단하게 행하고 있다. 요즈음은 49재 후 탈상을 하기 때문에 중시되며, 가정에 빈소를 차리지 않고 사원에서 49재를 모시면서 빈소 역할까지 겸하므로 대부분의 불자들은 실천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도 49일간의 중음의 기간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반드시 지내야 한다. 년년 기제사는 지내지 않더라도 49재는 반드시 모셔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가 상당하므로 이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 49재 천도식의 마지막에는 영가와 제자들을 위한 법문을 하여 그 의의와 교화의 장이 되도록 한다면 포교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년년 기제사에 관한 것인데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으로는 4대 봉제사 내지 5대 봉제사가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앞으로는 이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유교적인 관습이며 [朱子家禮]에 의한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새로운 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후손들에게 새로운 기제사의 방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기제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개종하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다. 요즈음 젊은 주부들 사이에 기독교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남아선호사상 중 하나도 부모에 대한 봉제사를 이어 갈 후손을 걱정하므로 아들을 선호한다. 이제는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후손들에게 봉제사의 무거운 짐을 과중하게 안겨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페단을 없에기 위해 불교적인 봉제사의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도 가정에서 모시기 보다는 사원에서 지낸다면 천도의 의미를 포함하게 되므로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으로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다. 만약 외부에서 돌아가시면 객사라고 하여 집에서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할 정도로 혐오하였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적으로 장례식은 모든 가정에서 치뤄졌으며, 별다른 장례식장이나 영안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에서는 주택구조상 대부분은 병원의 영안실이나 아니면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그러므로 현대생활에 있어서 장례식장은 가장 필요한 시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불교도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본인이 대학 졸업 후 3년간 장례업무를 하면서 느낀 바를 적은 것이다.
우선, 의례라는 것이 어떤 개념을 형식화한 것이므로 대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절차를 하려면 비용이 비례하여 증가하므로 고가의 용품 등을 사용하기보다는 유가족들의 참여를 유도하여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임종에서 발인까지 3일 동안의 의식을 영안실의 고비용을 유가족들에게 부담시키지 말고 사원에서 실비로 제공하여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저가의 안치장소, 예를 들면 납골당을 사원 안에 지어 정성스럽게 고인을 봉안할 수 있게 한다면 유가족들에게는 위로를 사원자체에는 안정된 보시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례를 고전적인면은 유지하되, 현실적인 면을 보충하여 행할 수만 있다면 사원과 재가자들은 서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의 불교는 民衆佛敎이다. 민중에 의해 전해지고 유지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불교를 민중불교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교계에서 불자들을 위한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불자들은 솔선수범하여, 불교의례를 실천하고 불교의례의 장점을 더욱더 살려야 할 것이다. 각 사원마다 재가자모임이 있을 것이다. 각 재가자들이 어려움을 당하였거나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서로 자원하여 봉사하고 어려움을 나누려고 노력한다면, 불교의례를 토대로 해서 서로간의 소속감과 단결심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불교와 사회 강좌(http://compassion.buddhism.org/main7/home7.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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