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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스제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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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젊음의 낭만 중년의 향수 그리고 추억 - 월미도 연가
민지홍(8기) 추천 0 조회 240 12.05.22 18: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월미도는 낭만의 대명사

 

여름 휴가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을 찾는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삼면 바다가 다 특색이 있다.

그 중에 동해바다는 검푸른 물결에 파도가 끝없이

넘실거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동해바다는 흥분의 바다다. 보기만 해도

빠져드는 감정이입의 결정체가 되는 바다다.

 

거기에 비해 서해바다는 차분하다. 조용하다.

동해바다와 같은 푸른 물결은 아니지만 회색빛 바다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사색을 하게 하는 철학의 바다다.

 

서해바다 최고의 휴양지는 바로 월미도이다.

휴양지로서의 월미도의 역사는 이미 백 년이 넘는다.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그 증거를 옛 사진으로 보자.

 

 

(최성연 선생이 그린 1910년 인천지도. 화도진 도서관 소장)

 

강화도조약으로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을 하게 되지만 월미도는 이미 그 전부터

서양 열강들이 앞다투어 인천으로 들어오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월미도로 가는 제방길. 차량통행도 가능했다.(화도진 도서관 소장)

 

인천에 조계지가 설정되고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들자 월미도는 유원지가 되었다.

(중구청 앞 인천 근대개항박물관 소장)

 

수영복, 수영모자까지. 사진으로 봐서는 아래 사진들보다 세월이 좀 지난 뒤의 것으로 보인다.

(화도진 도서관 소장)

 

서해바다의 특성상 조류간만의 차가 크므로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해수풀장이 생겼다.

나중에 생긴 송도해수욕장도 이런 방식으로 만든 해수욕장이다.(화도진 도서관)

 

(화도진 도서관 소장)

 

호텔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서양식 목욕탕이 있었고 이런 남자 욕조도.(화도진 도서관 소장)

 

(화도진 도서관 소장)

 

다시 말해서 월미도는 일제 강점기 시절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휴양지가 된 셈이다.

이는 인천의 동공원과 서공원(현 자유공원)과 더불어 인천에 새로운 문화를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만 해도 외국인들을 위한 유양지였고 후일 우리나라 상류층 사람들이 드나들다가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후 군부대가 들어서고 나서는 해수욕장은 없어졌다.

 

하지만 월미도에는 선착장이 있다. 우러미도 앞 인근의 섬으로 가는 배를 위한 선착장.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선착장이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아직도

운항하고 있다.

 

서울 등 외지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천 사람들 중에 중년 이상이라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인근의 섬, 특히 영종도에 놀러간 경우가 많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영종도에 인천공항이 들어서고 승용차나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아직도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와 함께 노는 낭만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문화의 거리라는 월미도로 사진여행을 떠나보자.

총 2편의 글을 올리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고

또한 최근에 음악분수가 완공되어 매일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원래 30분 간의 음악분수쇼를 사진에 담기 위한 목적이 강했으나 인천을 알리기 위해서,

월미도의 현재(서해바다의 낭만과 추억)를 먼저 소개하는 순서라 생각되어 아래 사진들을

올리기로 했다. 음악 분수쇼는 2편에.

 

 

월미도 버스 정류장에 내려 먼저 선착장으로 향했다. 인천 광광 안내도 눈에 띄여

월미도 부분만 촬영했다. 월미공원 맞은편이고 월미산에는 갑문 방향으로 전망대도 있다.

 

선착장 가는 길 시멘트 벽돌 담에 그려진 벽화.

 

 

 

 

 

버스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향하다 보면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수백억원이나 투입된 월미 은하레일이 운항 한 번 못해보고 고사된 상황이다.

 

며칠 전 음악분수 개장시 송영길 시장이 해법을 찾고 있다니 기대가 되지만

직후 나온 뉴스에서는 시운전 때 부품이 밑으로 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고.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제법 길다.

그래서 이 은하레일의 월미도 역과 이민사박물관 역 두 곳이 있다.

 

 

위 사진이 월미도 문화의 거리 끝에 있는 박물관역사이다.

 

승용차로 올 경우 인천역을 지나 선창산업을 지나서 월미도 입구에 오면 먼저 월미공원을 만난다.

이곳이 삼거리인데 우회전하면 선착장, 월미도 버스 정류장 방향이고, 좌회전하면 이민사박물관

방향이다. 어느 곳으로 가도 월미도를 드라이브하며 관통할 수 있으니 편하게 가고싶은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선착장 옆의 오래된 철담으로 제법 높은 데 벽화가 그려져 있고 구조물을 등대모양으로.

세월이 흘러 좀 흉물스럽게 변했으니 보을 맞이하여 색을 다시 입혔으면 좋을 것같다.

 

월미 문화의 거리는 해안을 따라 약 800미터쯤 된다.

 

선착장 옆의 해양경찰서. 예전에는 이곳이 선착장 대합실이었다.

주말이면 인근 섬으로 놀러가려는 차들이 배를 기다리며 차가 일렬로 늘어서는데

그 길이가 수 백미터에 이를만큼 대단한 곳이었다.

 

선착장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방금 마지막 배가 출항을 하니 갈매기들이 배를 향해 날아든다. 승객들이 별로 없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빽빽하게 차들이 들어서고 계단 위로 승객들이 아주 많았다.

사랑스런 두 남녀가 추억을 만들고 있다. 과자를 주면 갈매기들이 와서 물어간다.

   

제법 멀어질 때까지 갈매기들이 배를 쫓아간다. 배는 영종도로 향하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해변으로 갈 수 없었다. 군인들이 못가게 했고 초소도 있었다.

축대 위에서 소주 대병을 사다놓고 안주라고는 각자 쥐포 하나만을 쥔채 돌아가면서

한 잔씩 마시던 젊은 시절도 있었는데......

 

매표소이다. 다만 작약도는 운항하지 않는단다.

 

 

특이한 것은 주말 운항이 평일 운항보다 편수가 적다는 것이다.

학교나 출퇴근이 없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 옆으로 관광안내소가 있고 상주하는 직원도 보였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물론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소극적인 홍보방식이다. 안내방송이나 대형 전광판 같은

방법으로 관광객들에게 정보 전달을 하면 좀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월미도나 인천 오랜 사진들부터 최근의 모습까지 담은......

(실제로 화도진 도서관에 가면 그런 모니터가 있다.)

 

해질무렵 서둘러 귀항하는 어선들이 아주 많다. 얼마 전 연안부두에서 전망대에서 봤을 때도

연안부두 안으로 귀항하는 선박들도 많았는데 이곳을 지나는 작은 어선들도 많다.

 

월미도의 명물 코스모스 유람선이 귀항하고 있다. 역시 갈매기들이 좇고 있는데

승객들은 많지 않다. 작약도 운항도 안하고 있는 요즘 저 마저도 운항이 없어질까 저어된다.

 

십 여 년 전에 오촌 당숙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했는데 마지막날 회식을 저 유람선

연회장을 통채로 빌려서 했다. 당시에 매일 기념 촬영을 위해 미술관에 갔다가 나도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추억이 생각난다.

 

사실 나도 몇 년 만에 와보는 곳이다. 그랬더니 벤치가 아주 낭만적으로......

잔뜩 흐린 날씨가 아쉽기만 하지만 이것도 서해바다 인천의 특징이다.

안개가 자주 낀다. 그것도 박무가.

 

순서가 좀 이상하지만 선착장을 지나 문화의 거리 초입에 있는 조형물이다.

뒤로 넓고 길게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도 문제가 없다.

 

멀리 인천대교가 보이고 먼 마다로 나가는 배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면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페리호들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금요일이라 제주도 가는

페리호가 방금 전에 출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낭만을 즐기며 추억을 쌓고 있는 젊은이들. 역시 인생은 추억만들기이다.

 

흐린 날씨라 아름다운 노을은 볼 수 없지만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화의 거리 중간쯤에 새로 조성된 음악분수광장이 있는데 그 앞의 해변쪽에 이런 무지개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세금을 쓰더라도 이렇게 쓰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방금 떠난 코스모스 유람선이 홍예교 아래로 보인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날씨지만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은 마냥 즐거워 한다.

 

자전거를 몰고 온 바이클족도 행복할 뿐이고.

 

바람개비가 돌고 어선이 지나가고......젊은 사람들 가슴엔 사랑이 더욱 커지고.

월미도를 찾은 사람들의 반은 젊은이들인데 저런 모습을 많이보니까 웬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나도 젊을 때 많이 와서 우정도 쌓고 마눌과 데이트도 했던 곳이라 향수가 일어난다.

 

 

월미도에 세워져 있는 안내비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월미도와 인천을 폐허로 만들었던 인천상륙작전.

 

역사는 이 작전을 기회로 연합군의 반격으로 삼아 인천과 서울을 수복하고

이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이후로 월미도는 오랜 세월 아픔으로 신음했고

인천의 주 도심이었던 신포동, 해안동, 전동, 답동은 물론이고 동구 일대는 아직까지

달동네가 즐비하다. 

 

그 달동네들은 광역시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현대화가 안 된 곳이 인천임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 3대 봉사단체 중의 하나인 제이씨(JC)에서 세운 조형물.

나도 인천지구의 인천JC 소속으로 인천JC 산하 대학생JC인 인천 Youth JC회원으로

오랜 시간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카페의 카페지기를 맡고 있다.

 

청년비 앞에 젊은 남녀가 껴앉고 있다. 요즘은 저런 모습은 흉이 아니다.

월미도에서는 서로 안고 키스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안내비인데 노래비이다.

 

나도 이 노래 가끔 부른다. 웬지 구슬픈 노래.

 

 

문화의 거리 끝부분에 있는 야외공연장. 예전에는 지금의 음악분수광장에 야외공연장이 있었는데

철거되고 이곳으로 자릴 옮긴 것같다.

 

월미도에는 놀이기구도 좀 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바이킹은 물론이고

 

이게 뭘미도 놀이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제법 오래된 것인데 아직도......

많을 때는 수십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이거 타려면 꼭 바지 입어야 한다.

그리고 꼭 붙들지 않으면 걍 내동댕이 쳐진다. 힘이 약한 여성분들 내동댕이 쳐지는

모습들 여러번 봤다.^^

 

이것도 사람 쥑이는 기구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빙빙 돌아가며 바이킹처럼 움직이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난 저런거 절~~대 못탄다.ㅎㅎㅎ.

 

음악분수광장.

밤 8시에 30분간 진행되는 분수쇼를 촬영하기 위해 시간을 계속 허비중이다.^^

 

이곳에 올라 기념 사진 찍어준 사람들이 꽤된다. 봉사가 뭐 별거인가?^^

 

추억에 젖어본다. 많은 식당과 레스토랑이 있는데 유독 관심이 가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노란색의 카페 '바다노을 그리고 사랑'이라는 카페인데 그 옆의 '예전'이라는

원조 카페보다 훨씬 뒤에 생긴 것이지만 대학 후배 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그 옆의 카페인 '예전'은 원조카페다. 이곳이 처음 월미도의 카페인지는 모르지만

월미도를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만들며 많은 대학생들을 끌어모은 곳이다.

왜냐하면 30여 년 전에 이곳을 운영하던 사람이 '인하공전 항공운항과'와 연관 있다.

 

그래서 이후로 항공운항과 아리따운 여학생들이 즐겨찾고 그 뒤를 쫓는 남학생들이

안 올 수 없으니......당시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여학생들은 많은 대학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인하대와 같은 정문, 후문을 사용하지만 인하대 남학생들조차

한 번 미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했다. 다행히 난 동창 여학생이 있어......^^  

군시절 면회도 와주던 동창과 친구들이 기억나 추억에 잠시 빠져봤다.

여러해 전에 삼성의료원에서 수술받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그 동창 지금은 잘 지내는지......

  

어두워지자 이제 본격적으로 월미도의 많은 상점들과 식당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제법 걷고 촬영했더니 배가 고프다. 저녁 먹을 시간이다. 핫도그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예전엔 월미도에서 번데기 안주 삼아 소주도 자주 마셨다.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해서 고민끝에 칼국수 한 그릇 먹으려고 분수광장 건너편의 식당에 들어왔다.

활짝 열어놓은 식당 문 앞에 분수광장이 보이고 젊은 연인이 다정하게 보인다.

 

벽에 쓰인 젊은이들의 낙서가 청춘임을 증명한다. 젊음은 참 좋다.

 

   해물이 제법 있어서 시간이 남아 나도 추억을 회상하며 홀로 소주도 한 병 다 마셨다.

관광지라 가겨이 제법 비싸다. 칼국수 7천원. 그건 뭐 각오해야 한다.

식당 안에 젊은 연인 한 팀, 중년 여성 두분이서 사이좋게 한 팀. 결국 나 만 혼자인데

외롭기는 하지만 난 그래도 좋다. 아직 육신이 멀쩡해서 추억으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까.

 

이상 월미도 이모저모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음악분수쇼를 촬영했는데 이는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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