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와 성녀 벨라뎃다
"볼리"라는 이름의 방앗간에서 벨라뎃다는 아버지 프란체스코, 어머니 루이즈, 형제, 자매 뿐 아니라 이모의 가족들과 함께 물레방앗간을 하며 10년 동안(1844-1854) 이곳에서 살았다.
벨라뎃다 성녀가 태어난 집 볼리 방앗간 라빠가의 개울물을 이용하여 물레방아의 돌 멧돌을 돌려 방아를 찧었다. 벨라뎃다의 부모님은 1843년 1월 9일 혼인성사를 했으며 그 다음 해에 벨라뎃다가 태어난다. 벨라뎃다는 이 곳에서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는 가족과 함께 조용하고 행복한 어린시절 10년을 보냈다
집의 구조는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거실과 부엌이 있어 일상적 생활과 저녁 기도의 공간이 되었으며 윗층은 두 개의 방이 있다.
윗층의 한 방에서 벨라뎃다는 1844년 1월 7일 태어났으며 1월 9일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세례를 받았다.
루르드 박물관에 있는 벨라뎃다 성녀의 신발
벨라뎃다 성녀가 지니셨든 스카풀라(?)
1853년 부터 큰 시련이 시작된다. 증기식 방앗간의 등장과 경쟁, 기근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1855년 루르드에 콜레라가 번져 5주 동안 38명의 주민이 죽게 되고 벨라뎃다 또한 전염병에 감염되어 얻은 천식으로 인해 평생 고생을 하게 된다.
집세를 더 이상 지불 할 수도 없었으며 결국 이리 저리 옮기며 방앗간을 했지만 결국 1856년 방앗간은 문을 닫고 벨라뎃다 역시 학교 교육이나 교리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이 가족은 더 이상 집세도 지불할 수 없어 도시의 폐쇄된 감옥인 "까쇼"(Cachot)에 정착한다. 여기서 벨라뎃다는 성모님 발현 3주 전인 1858년 1월까지 생활을 했다.
아마 까쇼를 드나들 때 사용했던 열쇠가 아닐런지요.
가장 가난했던 시절 입었던 머릿수건과 신발입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까쇼 내부입니다. 한 때는 죄인들을 가두던 방이었지만 가장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이들을 거두어 준 방입니다. 얼마나 춥고 배고팠겠습니까?
성녀 벨라뎃다가 세례를 받은 성당입니다.
성체등과 감실
한 손에는 성체와 성혈 또 다른 한 손은 당신의 성심을 가르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주님께 무엇을 돌려 드릴 수 있을까요?
성당 입구의 성수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의 삶에서 다가오는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청했을까요? 기억하십시오. 지금 당신 곁에는 당신의 수호천사가 당신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하고 있습니다.
성녀 벨라뎃다가 첫영성체를 했던 작은 경당의 제대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발현과 벨라뎃다
첫번째 발현[1858년 2월 11일. 목요일] 벨라뎃다가 시냇물을 건너가기 위해 양말을 벗으려고 고개를 숙였을 때, 갑자기 '폭풍우 같은 바람 소리 (벨라뎃다의 표현을 그대로 빌어온 곳이다)'가 들려 왔다. 벨라뎃다는 문득 고개를 들고 포플라가 우거진 가브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변의 나뭇가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나무 잎사귀들은 죽은 듯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벨라뎃다가 착각을 일으켰나 보다 생각하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려고 발을 막 집어넣으려고 할 때였다. 또 다시 조금 전의 거대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벨라뎃다는 얼른 고개를 들고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서로 엉클어진 채 넝쿨을 뻗치고 있는 장미 덩굴과 나무 딸기 줄기가 여전히 바위를 뒤덮고 있는 정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곧 흰옷을 입은 한 소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키가 나보다 더 큰 것 같지 않았어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는 듯하더니 팔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내민 팔의 손을 활짝 폈습니다. 오른쪽 팔에는 묵주를 걸고 있었습니다. 나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서 동생과 친구를 부르려고 했으나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자꾸 내 눈을 비벼서 이 환상을 얼른 물리치려고 애썼습니다. 소녀가 따뜻하게 미소지으며 나더러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평소에 무엇을 보고 놀라서 무서워하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그곳에 그렇게 얼마든지 오래 마주 서서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그곳을 도망쳤을 것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묵주를 꺼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기 위하여 손을 이마로 가져갔으나, 왠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소녀가 나를 향해 서서 큰 묵주를 손에 들고 성호를 그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내 손도 움직여지면서 성호를 그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묵주 기도를 드렸습니다. 소녀는 묵주알을 손가락으로 넘겼으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할 수 있는 한 그녀를 살펴보았습니다. 소녀는 발끝까지 내려온 흰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발끝만 조금 보였고, 목에는 끈이 달린 레이스를 두르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어깨와 팔까지 덮은 베일을 쓰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발끝에는 노란 장미꽃이 있었고, 허리에는 무릎까지 내려뜨린 하늘색 띠를 매고 있었습니다. 묵주의 줄은 노란색인데 묵주 알은 하얗고 커다랬습니다. 소녀는 아주 예쁘고 쾌활해 보였으며, 소녀의 둘레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묵주 기도를 마치자 소녀는 내게 웃음을 담뿍 담아 보내며 머리를 약간 숙이며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굴속으로 몇 발자국 뒷걸음치더니 갑자기 사려졌습니다.
(그후 소녀는 벨라뎃다에게 열일곱 번이나 더 나타났다. 언제나 처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소녀는 벨라뎃다가 확실하게 느껴서 알 정도로 호의적이고 친절하게 대했다. 벨라뎃다는 처음 얼마 동안은 그녀를 '저기 서 계신 분'이라거나 '소녀', 혹은 '어린 숙녀'라고 불렀으나 이러한 표현들은 아무래도 공손하지 않았으므로 곧 부인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두번째 발현(1858년 수난주간 전주일)
벨라뎃다는 동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너희도 무릎을 꿇어,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를 하고 있어야만 해!" "하늘이 저렇게 환해지니 금새 부인이 오실 거야!" "저기 계시지? 오른쪽 팔에 묵주를 걸고서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지 않니!" 그러나 벨라뎃다만이 그 부인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면 여기에 오래 머물러 계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부인을 향해 마구 성수를 뿌렸다. 부인은 고요히 미소를 머금었다. "흰옷을 입은 부인이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러 계신다. 너희들은 보이지 않니?"
세번째 발현 (1858년 2월 18일. 목요일)
밀레 부인은 촛불을 켜서 돌 위에 세워 놓고 묵주를 꺼내 경건하게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벨라뎃다가 손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계신다!" 그들은 묵주기도를 계속했다. "가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이신지 물어 봐." 페이레가 벨라뎃다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빛과 함께 나타난 부인은 동굴 안쪽으로 조금 물러섰다. 벨라뎃다는 부인에게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쓸 필요는 없단다." "14일 동안 이곳에 나타나겠다고 약속하마!" "나는 네게 행복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 행복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내세에서 너의 영혼에게 베풀어질 것이다."
네번째 발현 (1858년 2월 19일. 금요일)
벨라뎃다는 성모송 기도를 세 번 마쳤을 때 탈혼 상태에 잠겨 들었다.
다섯번째 발현 (1858년 2월 20일. 토요일)
부인과 벨라뎃다가 매우 친밀한 얘기를 나누었다.
여섯번째 (1858년 2월 21일. 일요일)
동굴 근처에는 아침 일찍부터 경찰들이 배치되고 가브 강의 건너편에는 남자들이 떼지어 몰려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석공들도 섞여 있었다. 부인은 벨라뎃다에게,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일곱번째 (1858년 2월 22일. 월요일)
벨라뎃다가 동굴 앞에 꿇어 있었으나 부인은 나타나지 않으셨다. 부인께서는 그날 벨라뎃다의 영혼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어린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주셨지만, 그것을 훗날 얼마나 크게 갚으셨던가! 여덟번째 (1858년 2월 24일. 수요일)
'바위에 나타나신 부인'께서는 "통회하라!"고 거듭 외치자 여덟 번째의 탈혼에 잠긴 벨라뎃다도 이 외침을 따라 자기도 메아리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아홉번째 (1858년 2월 25일. 목요일)
벨라뎃다는 앞서서 가는 부인을 따라 동굴 속까지 무릎으로 기어갔다. 나중에 벨라뎃다는 "부인께서는 '샘물로 가서 마시고, 또 씻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벨라뎃다는 부인이 지시하는 대로 모랫더미를 손으로 긁어내고 계속 깊이 파헤쳤다. 벨라뎃다가 연약한 손으로 둘레가 2미터나 되는 커다란 바위의 틈을 파헤치자 그 바위 밑에서 샘이 나타났다.
열 번째 (1858년 2월 26일. 금요일)
발현이 없었다.
열 한번째 (1858년 2월 27일. 토요일)
벨라뎃다는 동굴 앞으로 가기 위해서 군중의 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날 벨라뎃다는 탈혼 상태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성스러운 부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지시하는 명령을 들었다. "사제들에게 가서 이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일러라!" 부인은 벨라뎃다에게 또렷하게 지시하셨다.
열 두번째 (1858년 2월 28일. 일요일)
벨라뎃다는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다.
열 세번째 (1858년 3월 1일. 월요일)
부인께서 많은 것을 말씀하셨다. 그때 벨라뎃다는 다른 사람에게서 잠깐 빌린 묵주를 사용하여 기도를 올렸는데, 부인께서는, '네 것을 사용하라!'고 하셨다. 또 부인께서는 이곳에 새 성당을 지은 다음 '그 성당의 참배 행렬을 원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동굴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그중에는 호기심으로 동굴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진지한 참배 객의 수가 훨씬 많았다.
열 네번째 (1858년 3월 3일.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동굴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벨라뎃다는 또다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부인의 발현이 없자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조금 후에 깨끗이 사라졌다. 벨라뎃다는 9시쯤 마사비엘로 다시 갔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증인이 말했다. "벨라뎃다는 무릎을 꿇고 앉아 발현하신 부인과 한참을 이야기한 후에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열 다섯번째 (1858년 3월 4일. 화요일)
2만명이나 되는 군중이 가브 강 건너편으로 밀려와서 모두 발현을 보고자 했으나, 벨라뎃다 혼자만이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부인을 본 그의 눈은 금새 빛났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벨라뎃다는 장미 덩굴이 엉키어 있는 동굴 쪽을 향하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루르드 본당 신부는, 부인이 누구신지 신분을 밝혀 주시면 부인이 원하시는 것 -성당의 신축과 행렬-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벨라뎃다에게 말씀드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참으로 단순하고도 시효 적절한 말이었다.
열 여섯번째 (1858년 3월 25일. 성모 영보 대축일)
마침내 부인께서는 벨라뎃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셨다. "오, 부인이시여, 당신이 누구신지 제발 알려주세요!" 이때 빛나는 부인께서 두 팔을 아래로 내리시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가슴에 모으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당신의 비밀을, 이 세상 것이 아닌 영혼의 값진 말로 알려 주셨다. "나는 무염 시태인 성모이다.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께서는 두 번 더 벨라뎃다에게 나타나셨다. 열여덟 번째가 되는 마지막 발현 후, 벨라뎃다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 조용히 살아갔다. 7월 16일 성모 성의 축일 저녁에, 간선된 어린이인 벨라뎃다는 동정녀의 그치지 않는 미소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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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바다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바다
첫댓글 루르드 영화가 상영 중이라고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사진은 처음 보는 것이 많으나, 성모님 발현 사실은 또 읽어도 숙연해집니다.
전 왜 눈물이 날까요
가난한 사람, 사람들의 눈에는 불쌍해 보이겠지만
우리 하느님께서는 그를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성모님께서 벨라뎃다에게 약속하셨다지요,
가장 큰 축복, 행복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 품에 안긴 라자로처럼
하느님 나라에서 주시겠다고...
아멘~
사진 속의 수녀님은 우리나라 분이신가 봐요? 신발이나 쓰시던 물건을 진열해 놓음은 별로 인데요?... 성모님이 중심이 아니란 느낌에....
루르드에서 한국성지순례자들을 위해 파견된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수녀님이십니다.
조금 마음을 넓게 봐 주시면...
루르드, 성모님이 중심임은 두 말 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을 맞이 했던 벨라뎃다 성녀를 기억함 또한 우리들을 위함이겠지요.
우리들 성당에 모신 한국 순교 성인들의 유해가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 살펴 보게 하듯이...
ㅎㅎㅎ 죄송~ 제가 저길 안 가보고 그림만 봐서 드는 느낌일 수도 있어요. 사람들을 불러들이려는 도구 쯤으로 언뜻 느껴졌거든요. ^^
아멘, ~~~(의미 있음)
전, 침대 벽 조명에 희망을 엿 봅니다. 잠을 잔다는 것, 쉰 다는는 것, 무엇을 위해서.....
루르드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 저 골목이 생각나요.. 가슴이 뭉클함은 무엇 때문이지 모르겠네요...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 아멘
아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보게된 사진과 성모님의 발현하신 광경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저도 글 읽는 내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