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수도회 영성과 영적 습관이 주는 신선한 유익
내가 처음으로 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해 머무는 동안 나는 그곳이 개신교 신자들이 방문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점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환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베네딕트 수도회 영성의 핵심 가치가 방문객들을 반기고 정성껏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성경 말씀에 흠뻑 잠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 사람들은 나에게 "성경에 귀 기울이고 말씀에 푹 잠기라"라는 말을 매일 아침, 오후, 기도 시간마다 온종일 얘기했다. 성찬식에서는 해석이 곁들어진 말씀이 전해졌지만, 그 내용은 매우 짧았다. 수도원에서는 설교를 간략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서는 주일예배에서처럼 시편 몇 구절을 단편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시편 몇 편을 통째로 들었다. 나는 시편 기자와 함께 분노에서 기쁨에 이르기까지, 또 쓰라린 후회에서 환희에 찬양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감정의 영역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신앙 여정의 본질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시편 한 편을 읽은 뒤에 다른 시편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1분의 침묵 시간이 있었고, 성경 말씀 한 대목을 읽은 뒤에는 2분의 침묵시간이 있었다. 이 침묵시간을 맛보면서 내 마음은 하나님 말씀에 더 온전하게 반응했다. 나는 활기차지만 경건한 태도로 성경에 몰두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체험이었다. 우리 교회의 주일예배는 수도원 예배보다 좀 더 어수선하고 '말이 많은' 예배, 즉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 교회의 의사결정을 어떤 높은 권위 집단에 맡기지 않고 회중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자유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개신교 교파로 '조합 교회'라고도 한다]의 전통과 감리교회 및 장로교회의 전통을 지닌 예배였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보낸 단 하루 동안, 나는 그동안 주일예배에 한 달간 참여하면서 들었던 성경말씀보다 더 많은 말씀을 들은 듯했다. 또 그 말씀이 내 마음을 더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나는 수도원의 예배에 끌렸다. 그렇다고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에 능력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더 나은 개신교 신자로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도전이 바로 그들의 진심 어린 환대가 맺은 열매라는 점도 깨달았다. 방문객들을 반기고 정성껏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방문객들을 그들처럼 바꿔놓기보다 방문객들도 각자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오랜 세월 방황한 후 교회를 다시 찾아가고 있던 나에게는 그러한 방식으로 성경을 다시 소개받은 체험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진실한 신앙의 원뿌리를 찾아서
내가 그 수도원에서 값진 체험을 하고 있던 시점과 거의 동시에, 이 책의 저자 데니스 오크홈(Dennis Okholm)도 내가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나와 매우 유사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와 나는 미국인의 영성과 관련한 중대한 시민운동의 구성원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까지 열린 가톨릭교회의 공의회로, 교회의 자각과 쇄신, 교회의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전례 개형 등을 요구했다. ]가 끝난 1960년대 중반부터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수도원이 영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한 좋은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런 기독교 공동체의 '봉헌자'[oblate, 수도사나 수녀가 아닌 신분으로 수도생활에 헌신하는 사람-노동수사, 혹은 조수사라고도 함.]가 되는 과정을 밟는 개신교 신자들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베네딕트 수도원 어느 곳이든 그곳의 방문객 숙소에서 다양한 개신교 교파에서 온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서 나는 영국성공회, 미국연합 그리스도교회, 나사렛교회, 하나님의 성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그리스도 제자교회, 루터교회, 아프리카 감리교회 등 여러 교파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나보았다.
이렇게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수도원에 모이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찬양하고 숙소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사실상 즉석에서 초교파적 모임이 이루어진다. 시편과 복음서와 주기도문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으로 지닌 축복을 한껏 즐거워하면서, 서로를 갈라놓는 요인들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 집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데니스 오크홈은 해박한 지식을 갖춘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자신이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빼어난 안내자임을 이 책에서 입증하고 있으며, 수도원이 개신교 신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다.
그는 개신교 신자들이 수도원에 매료되는 이런 현상은 단지 그들이 쇼핑하듯 가게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영성을 찾아다니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의 원뿌리를 진실하게 되찾고 기독교의 분열 이전의 신앙전통과 생활방식에 다시 접속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증명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덧붙인 후기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 제도에 반대한 본래의 이유를 살펴보는데, 그 부분이 특별히 귀하다.
이 체험 수기는 부드러운 어조에 종종 익살스럽지만, 적당히 요령을 피우면서 살아가는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도전들로 가득하다. 한 가지 예로, 저자는 교회가 새로운 목회자를 찾고자할 때 베네딕트 수도회가 수도원장의 자질로 요구하는 규칙을 모형으로 사용할 것을 권한다.
또 소비생활과 연예인에 푹 빠진 요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베네딕트 수도회의 삶과 기도에 좋은 영향을 받기를 권하며, 그러면 그들이 진짜 세상에 뛰어들고자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의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갖는 종교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 수도원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라고 확신한다.
1986년 내가 봉헌자가 되었을 때 당시 나와 같은 상황을 다루었다고 할 만한 책은 영국성공회의 신자 에스더 드 왈(Esther de Waal)이 쓴 <성 베네딕도의 실>(Seeking God)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베네딕스 수도회의 규칙이 수도사들만이 아니라 더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려고 힘쓰는 교회, 가족, 부부, 개인에게도 유용하다는 것을 개신교 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이 책의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진리로서, 좋은 영적 습관이 영적 건강에 유익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성경이 근원적인 규칙"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들의 초점이며 우리의 참된 시작과 끝이시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캐슬린 노리스(Kathleen Nor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