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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514-518
While we were waiting for the map, Shaposhnikov poured me a cup of
strong tea. He said he was very tired, and he looked it. I left Shaposhnikov and
went straight to Western Front Headquarters.
On the way I studied the situation on the map using a pocket flash-light. I
was very sleepy, so every now and then I had the driver stop the car and took
short runs to shake off sleep.
우리가 지도를 기다리는 동안 샤포쉬니코프는 나에게 진한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는 매우 피곤하다고 말했고, 그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샤포쉬니코프를 떠나 곧장 서부전선 본부로 갔다.
나는 손전등을 이용해 지도상의 상황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나는 너무 졸려서 가끔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졸음을 떨치기 위해 짧게 달렸다.
It was night when I reached Western Front HQ. The duty officer reported
that the commanding officers were in conference with the Front Commander.
The Commander’s office was dimly lit with stearin candles. Sitting at a table
were Konev, Sokolovsky, Bulganin and Malandin. Everyone looked exhausted. I
told them I was there on the Supreme Commander’s order to investigate the
situation and phone in a report at once.
내가 서부전선 본부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당직사관은 지휘관들이 전선 사령관과 회의 중이라고 보고했다.
사령관 집무실에는 스테아린 촛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탁자에는 코네프, 소콜롭스키, 불가닌, 말란딘이 앉아 있었다. 모두가 지쳐 보였다. 나는 상황을 조사하고 즉시 보고 전화를 하라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그곳에 왔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What Lt.-Gen. Malandin, Chief of the Front HQ Operations Division, was
able to tell me in reply to my questions about the latest developments,
supplemented and specified the information we already had.
What had happened on the Western sector?
말란딘 중장, 전선 본부 운영부서장이 내가 질문한 최근 전개에 대해 말할 수 있던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정보를 보완하고 구체화한 것이었다.
서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At the time the German troops started advancing on Moscow, three Fronts
were defending the far approaches to the capital. They were: the Western
(Commander Col.-Gen. Konev), the Reserve (Commander Marshal Budenny)
and the Bryansk (Commander Lt.-Gen. Yeremenko). In late September the three
Fronts had a combined strength of about 1,250,000 men, 990 tanks, and 7,600
mortars and guns, 677 planes. Most of the troops, means and equipment were on
the Western front.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시작했을 때, 세 개의 전선이 수도 접근로의 먼 곳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부전선 (사령관 코네프 상장 ), 예비 전선 (사령관 부데니 원수 ), 브랸스크 전선(사령관 예멘코 중장)이었다. 9월 말, 세 전선은 합쳐서 약 1,250,000명의 병력, 990대의 탱크, 그리고 7,600개의 박격포와 총기, 677대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력, 자산, 장비는 서부전선에 있었다.
1
After regrouping his troops on the Moscow sector, the enemy had a force
superior to the combined strength of our three Fronts. He had 40 per cent more
men, 70 per cent more tanks, 80 per cent more mortars and guns, and twice as
many planes.
모스크바 지역에서 병력을 재편성한 후, 적은 우리의 세 전선을 합친 것보다 월등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은 40퍼센트 많은 병력과 70퍼센트 많은 탱크, 80퍼센트 많은 박격포와 총기, 그리고 두 배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2
The German offensive, code-named Typhoon, began on September 30 with
attacks by Guderian’s tank group and the 2nd Army on the Bryansk Front forces
in the sector between Zhukovka and Shostka. On October 2 the enemy dealt
powerful blows at the troops of the Western and Reserve Fronts. Hitting
especially hard from areas north of Dukhovshchina and east of Roslavl, he
succeeded in piercing our defences. The enemy shock units lunged forward from
the south and the north, enveloping the Vyazma grouping of the Western and
Reserve Fronts.
암호명 태풍작전인 독일의 공세는 9월 30일 주코프카와 쇼스트카 사이 지역의 브랸스크 전선에 대한 구데리안의 탱크 부대와 제2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10월 2일 적은 서부전선과 예비전선의 부대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두호프슈차이나의 북쪽과 로슬라블의 동쪽 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타격하여 적은 우리의 방어를 뚫는 데 성공했다. 적의 충격 부대는 남부와 북부에서 앞으로 돌진하여 서부전선과 예비전선을 묶은 뱌즈마를 포위했다.
An extremely grave situation developed to the south of Bryansk where the
3rd and 13th armies of the Bryansk Front found themselves faced with the threat
of encirclement. Encountering no real opposition, Guderian’s troops headed for
Orel, where we did not have the forces to repulse the offensive.
브랸스크 남쪽에 극히 심각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곳에서 브랸스크 전선의 제3군과 제13군이 포위의 위협에 직면했다 .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구데리안의 부대는 공세를 물리칠 병력이 없는 오렐로 향했다.
On orders of the Supreme Command, a reinforced 1st Guards Rifle Corps
was formed under Major-General Lelyushenko on October 2. Its mission was to
hold up the enemy advance and enable the Bryansk Front to withdraw its troops.
On October 3, developing their offensive, the Guderian forces captured
practically undefended Orel, with the Nazi 24th Motorized Corps emerging in
the rear of the Bryansk Front.
최고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10월 2일 렐류셴코 소장 아래 강화된 제1근위소총군단이 구성되었다. 그들의 임무는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 브랸스크 전선이 부대를 철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10월 3일, 공세를 전개하여 구데리안군은 사실상 무방비인 오렐을 점령했고, 나치 제24기동군단이 브랸스크 전선 후방에 나타났다.
The 1st Guards Rifle Corps, deployed in the
Mtsensk area, engaged the enemy’s motorized group and panzers. It held them at
bay for several days, inflicting considerable casualties and destroying much of
their weaponry. For the first time, the tankmen of our 4th and 11th brigades hit
enemy vehicles from ambush. And the troops of the Bryansk Front took
advantage of the good show put up by the 1st Guards Rifle Corps to withdraw to
the appointed line.
므첸스크 지역에 배치된 제1근위소총군단은 적의 기동집단과 탱크와 교전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들을 잡아두며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히고 그들의 무기 상당량을 파괴했다. 처음으로 아군 제4, 제11여단의 탱크들이 매복하여 적 차량을 타격했다. 그리고 브랸스크 전선의 부대는 제1근위소총군단이 보여준 선전을 이용하여 지정된 선으로 철수했다.
Here are the recollections of the episode by General Guderian, commander
of the Nazi 2nd Panzer Army: “2nd October… Simultaneously in the operational
zone of the 24th Panzer Corps near Mtsensk, north-east of Orel, bitter fighting
broke out, involving the 4th Panzer Division… A large number of Russian T-34s
was engaged in the battle, causing considerable losses to our panzers. The
superiority that our panzers had so far was now lost and seized by the adversary.
This wiped out the chances of a rapid and unintermittent success.”
나치 제2기갑군 사령관 구데리안 장군의 일화를 회상해본다. "10월 2일… 동시에 오렐 북동쪽 므첸스크 근처의 제24기갑군단의 작전 구역에서 4기갑사단이 연관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많은 수의 러시아제 T-34탱크가 전투에 참여하여 우리의 팬저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우리의 팬저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우월성은 이제 상대방에 의해 사라지고 장악되었다. 이것은 신속하고 비간헐적인 성공의 기회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He added: “The planned swift offensive on Tula had had to be put off.”
True enough. Not only had Guderian put off the offensive on Tula, he also
never captured the city. But the Bryansk Front was cut. Suffering losses, its
troops were rolling back east, fighting all the way. A menacing situation took
shape on the Tula sector.
그는 덧붙였다. "툴라에 대해 계획된 신속한 공세는 연기되어야 했다."
충분히 사실이다. 구데리안이 툴라에 대한 공세를 연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도시를 점령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브랸스크 전선은 잘렸다. 손실을 입고 그 부대는 동쪽으로 물러났고, 줄곧 싸웠다. 위협적인 상황이 툴라 지역에 형성되었다.
Col.-Gen. Konev, Commander of the Western Front, ordered a counteroffensive from the north of Vyazma against the enemy’s northern grouping that
was trying to outflank his troops. Unfortunately, that counter-offensive was not
successful. Late on October 6 a considerable part of the troops of the Western
and Reserve Fronts was encircled west of Vyazma.
서부전선 사령관 코네프 상은 뱌즈마 북쪽에서 자신의 군대를 포위하려는 적의 북쪽 집단에 대한 반격을 명령했습니다. 불행히도, 그 반격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10월 6일 늦게, 서부전선과 예비전선의 부대 중 상당 부분이 뱌즈마 서쪽을 포위당했다.
From my talks with the officers at Western Front Headquarters and an
analysis of the situation I got the impression that the disaster in the area of
Vyazma could have been averted. Despite the enemy’s superiority in manpower
and materiel, our troops could have avoided encirclement.
서부전선본부에서 장교들과의 대화와 상황 분석을 통해 뱌즈마 지역의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적이 병력과 물자 면에서 우월했지만, 아군은 포위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To do so it had been
necessary to determine more exactly and in time the directions of the enemy’s
main effort and concentrate on those directions the bulk of the troops and
weapons at the expense of the inactive defence sectors. However, this was not
done, and our defences were not able to sustain the enemy’s concentrated blows.
Large gaps were made in our defence line, which we had nothing to close with
— there were no reserves at the Command’s disposal.
그러기 위해서는 한산한 방위지역을 희생시키면서 적의 주력 방향을 좀 더 정확하게 제때에 파악하고 그 방향에 우리의 병력과 무기를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리의 방어로는 적의 집중 타격을 버틸 수 없었다.
우리의 방어선에 큰 공백이 생겼고, 우리는 메울만한 게 없었다. 사령부가 동원할 예비군도 없었다.
At 2:30 a.m. on October 8 I phoned Stalin. He was still up and working.
After outlining the situation on the Western Front I said:
“The main danger now lies in the weak Mozhaisk defence line. Because of
this, enemy armoured troops may suddenly appear near Moscow. We must bring
up forces quickly from every place possible to the Mozhaisk line.”
10월 8일 오전 2시 30분에 나는 스탈린에게 전화했다. 그는 아직도 깨어 일하고 있었다.
서부 전선의 상황을 요약한 후에 나는 말했다:
"현재 주요 위험은 약한 모자이스크 방어선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적의 기갑부대가 갑자기 모스크바 인근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곳에서 모자이스크 방어선으로 신속하게 병력을 모아야 합니다."
“Where are the 19th and 20th armies, and Boldin’s group of the Western
Front?” Stalin asked. “Where are the 24th and 32nd armies of the Reserve
Front?”
“They’ve been encircled to the west and northwest of Vyazma,” I replied.
“What do you propose to do?”
"19군과 20군, 서부전선의 볼딘의 부대는 어디에 있소?" 스탈린이 물었다 "예비전선의 24군과 32군은 어디에 있소?"
"그들은 뱌즈마의 서쪽과 북서쪽으로 포위되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I’m leaving at once for the Reserve Front to see Budenny.”
“Do you know where the Reserve Front’s headquarters is?”
“I’ll look for it in the neighbourhood of Maloyaroslavets.”
“All right. Go to Budenny and call me from there.”
"즉시 예비군 전선으로 가 부데니를 만나겠습니다."
"예비 전선 본부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말로야로스라베츠 근처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좋소. 부디니에게 가서 거기서 전화하시오."
A steady drizzle was falling, and the thick fog clinging to the ground
restricted visibility. When on the morning of October 8 we drove up to the
Obolenskoye railway station we saw two signalmen laying a cable from the
bridge across the River Protva to Maloyaroslavets.
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짙은 안개가 땅에 깔려 시야를 막고 있다. 10월 8일 아침, 우리가 오볼렌스코예 기차역으로 차를 몰았을 때, 우리는 두 명의 통신병이 프로트바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말로야로스라베츠까지 전을 깔고 있는 것을 보았다.
“Where are you pushing these wires to, comrades?” I called out to them.
“Right where we’ve been ordered to push them,” one of them, a huge man,
replied without even looking up.
I had to tell them who I was, and that we were looking for Reserve Front
HQ.
"이 전선들을 어디로 밀고 가는 거요, 동지들?" 나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밀고 가라는 명령을 받은 바로 그곳까지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인 덩치 큰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누군지, 그리고 우리가 예비 전선 본부를 찾고 있다고 말해야 했다.
The huge signalman stood at attention and said:
“Excuse me, Comrade General, did not know you by sight. That’s why I
answered the way I did. You’ve already passed headquarters. It was moved here
two hours ago, and housed in the cottages over there in the forest on the hill. The
sentries there will show you the way.”
덩치큰 통신병은 차렷자세로 말했다:
"실례합니다, 장군 동지, 육안으로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본부를 지나쳤습니다. 본부는 두 시간 전에 이곳으로 옮겨져 언덕 위 숲 저쪽의 오두막집에 마련되었습니다. 그곳의 초병들이 당신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The car turned around. Soon I was in the room of Army Commissar 1st
Class L. Z. Mekhlis, a GHQ representative, who was with Major-Gen. A. F.
Anisov, Chief of Staff of the Front. Mekhlis was on the phone, giving someone
hell.
차를 돌려 갔다. 곧 나는 총사령부 대표인 메클리스 육군 정치위원 1급 의 방에 있었는데, 그는 전선 참모장 아니소프 대장와 함께 있었다. 메클리스는 전화로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었다.
I asked them where the Commander was, and the Chief of Staff answered:
“Nobody knows. He was with the 43rd Army during the day. I’m afraid that
something unpleasant may have happened to Budenny.”
“Have you taken steps to find him?”
“Yes, I’ve sent liaison officers but they haven’t come back yet.”
나는 그들에게 사령관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참모장이 대답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낮에 43군단과 함께 있었습니다. 부데니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을까봐 걱정입니다."
"그를 찾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까?"
"네, 연락관들을 보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Mekhlis addressed a question to me then:
“And what assignment brings you here?” he asked.
“I’ve come as a Stavka member on the Supreme Commander’s instructions
to investigate the situation here.”
“You can see that the situation is none too good. Right now I’m rounding up
the stragglers. At assembly points we’ll arm them and form new units out of
them.”
메클리스는 그 때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이곳 상황을 조사하라는 최고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스타프카의 일원으로 왔습니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겁다. 지금 저는 낙오병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합류 지점에서 우리는 그들을 무장시키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부대를 구성할 것입니다."
My talks with Mekhlis and Anisov gave me very little concrete about the
situation of the Reserve Front troops or about the enemy. So I got in the car and
rode on to Yukhnov, hoping to quickly find out more on the spot.
나는 메클리스와 아니소프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예비전선 부대의 상황이나 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에 올라타 육노프로 향했고, 그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신속히 알고 싶었다.
As we drove across the Protva River I involuntarily recalled my childhood. I
knew the area very well, as I had walked through it many times in my youth. My
native village of Strelkovka was ten kilometres away from Obninskoye where
Reserve Front HQ was located. My mother, my sister and her four children were
living in Strelkovka.
프로트바 강을 건너가면서 나는 어린 시절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다. 나는 어릴 때 이 지역을 많이 걸어 다녔기 때문에 이 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스트렐코브카의 내 고향은 예비전선 본부가 있는 오브닌스코예에서 1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네 명의 조카들이 스트렐코브카에 살고 있었다.
“How are they? Suppose I call on them?” But that was
impossible, there wasn’t time. I asked myself what would happen to them if the
fascists came to the village. What would they do to a Red Army general’s
relatives? Shoot them, surely. “First chance I get,” I thought, “I’ll have them
brought to Moscow.”
"그들은 어떻게 지낼까? 내가 그들을 부르면 어떨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자문했다. 만약 파시스트들이 그 마을에 온다면 그들에게 무슨일이 벌어질까? 그들이 붉은 군대 장군의 친척들에게 무슨 짓을 할까? 당연히 쏠것이다. 나는 생각했다."첫번째 기회가 오면, 그들을 모스크바로 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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