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의 향연, 寒食의 꽃 - 진달래
◀봄이 오면 ◼남덕우(소프라노)
◀ 진달래 꽃 ◼캐슬린 김(소프라노)
◀진달래 ◼박동일(테너)
◀진달래꽃 눈물짓는 날에 ◼김지현(소프라노)
◀진달래꽃 ◼마야 ◼Rolling Quartz
◉모든 사물은 오래되면 그 생명력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갱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불(火)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모자랄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새로 불을 만들어 사용해 온 것이 고대 시대부터 이어온 개화(改火) 의식입니다.
헌 불을 끄고 새 불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개화입니다.
◉오늘이 한식(寒食)입니다. 한식은 ‘찬 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묵은 헌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없어 찬 밥을 먹었다고 해서 만들어진 날입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나라가 새 불을 내리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청명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서 불을 일으킨 뒤 임금에게 바칩니다.
임금은 이 불을 문무백관과 전국 고을 수령에게 나눠줍니다.
각 지방 수령은 한식날 이 불을 백성에게 전달해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살리도록 합니다.
그사이 기다리는 동안에 음식을 요리할 수 없어 한식(寒食)이 생겨났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불에 타죽은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 피우는 것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크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입니다.
동양철학에서 불을 관장하는 이십팔수의 다섯째별 심성(心星)이 나타나는 때가 이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농사력과도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한식과 단오(端午)는 절기가 아니라 명절입니다.
설과 추석을 합쳐 4대 명절로 삼았지만 지금은 설과 추석만 실질적인 명절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한식날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올해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나무 심기에도 적기여서 식목일이 겹치기도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한식날 즈음에 중부 이북 지방까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핍니다.
이 진달래로 미리 만들어 둔 화전(花煎), 즉 꽃부꾸미는 이때 최고 인기 음식입니다.
또 진달래꽃으로 담은 두견주(杜鵑酒)도 함께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식은 마치 진달래 명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5-6일 전부터 진달래가 주변에 피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봄꽃이 올해 지난해보다 다소 늦게 핍니다.
진달래도 일주일 정도 늦은 듯합니다.
그래도 홀로 꽃피워 외롭던 생강나무꽃이 진달래의 등장이 반가운 듯 어울려
아직은 다소 황량한 봄의 숲을 치장하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꽃잎도 크고 색깔도 강렬해서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꼽힙니다.
그래서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 중의 하나입니다.
가곡 ‘봄이 오면’의 앞머리에도 진달래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한국 가곡 개척기에 김동환의 시에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을 담은 이 노래는 한국 서정 가곡의 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가곡의 봄과 같은 노래입니다.
소프라노 남덕우의 노래로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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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은 소월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소월이 이 시를 잡지 ‘개벽’에 실었던 때가 백 년도 더 지난 1922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소월의 감성을 넘어서 진달래꽃을 그려낸 시는 아직 없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일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슬프다는 감정을 진달래꽃을 등장시켜 그려냈습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함께 담았습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앞세운 음악들의 상당수가 소월의 이 시를 인용하거나 걸치고 지나갑니다.
가곡도 그렇고 대중가요도 그렇습니다.
소월 시에 김동진이 곡을 붙인 ‘진달래’는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가곡입니다.
200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 등장한 이후 종횡무진 활약하며 세계 오페라 극장이 가장 선호하는 소프라노가 된
소프라노 캐슬린 김입니다.
마흔여섯 살로 한양대 교수로일하는 그녀를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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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른 봄꽃이 그렇듯이 진달래 역시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는 선화후엽(先花後燁) 식물입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잎도 없는 연한 갈색 가지 끝에 매달려 핍니다.
꽃들이 줄기 위쪽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눈에 잘 들어옵니다.
◉특히 진달래는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위틈새에 무리 지어 나타나곤 합니다.
진달래꽃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일본 본토에서는 진달래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에서는 식물원에 가야 진달래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마도에는 봄이면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섬을 덮는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진달래꽃이 자생하는 것을 보고 대마도와 한국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산과 대마도 거리는 49 Km, 일본 규슈와 대마도 거리는 147 Km로 세배나 됩니다.
한국 꽃의 상징인 진달래가 대마도에 흔하다는 것은과거 우리 땅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 사례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대마도는 조선의 영토였던 적이 있습니다.
진달래는 열악한 환경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영락없는 한국의 꽃입니다.
그래서 대마도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의 진달래를 노래하는 가곡을 한 곡 더 들어봅니다.
이상규 시에 정애련이 곡을 붙인 ‘진달래꽃’을 테너 박동일의 노래로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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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특히 중국에서는 두견화(杜鵑花)란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꽃은 촉(蜀)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의 설화와 관련 있습니다.
신하에게 쫓겨난 망제가 촉나라로 돌아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습니다.
죽은 망제의 혼이 두견새가 돼 밤새 울어서 토한 핏빛이 꽃잎에 물들어 피어난 두견화가 바로 진달래꽃입니다.
그때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귀촉(歸蜀)으로 들렸다는두우의 설화를 모티브로 쓴
서정주의 시가 귀촉도(歸蜀道)입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래서 두견화가 등장하는 시나 노래에는 슬픔과 한이 담겨있곤 합니다.
임형선의 시에 신귀복이 곡을 붙인 ‘진달래꽃 눈물짓는 날엔’입니다.
소프라노 김지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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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yEk2hx14tk
◉슬픔이 담겨있는 소월의 ‘진달래꽃’을 강한 록 음악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진달래꽃’을 탄생시켰습니다.
28살 늦은 나이에 데뷔앨범을 낸 마야는 발라드에 맞을 것 같은 ‘진달래꽃’으로 록을 고집해
어렵게 기획사의 허락을 얻어 냅니다.
첫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길보드’ 차트에서 인기곡으로 부상하면서 역주행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를 끊임없이 튼 길거리 리어커 상인들이 이 노래를 히트시킨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이 노래로 유명해진 마야지만 2013년 이후 앨범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을 외치다 찾아온 성대결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특유의 파워풀한 창법이 아닌 다른 선택으로 노래의 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국악과의 접합이 그 한 선택입니다.
구음을 구사하고 국악기를 활용한 국악 버전으로 만나보는 마야의 ‘진달래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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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8LWyl3uw84?si=helVr3WOuyUoODLb
◉국악과의 접합이 크로스오버 음악으로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 록 버전에 익숙한 탓인지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여성 락밴드 Rolling Quartz의 신나는 연주와 노래로 ‘진달래꽃’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9년 5인조로 출범한 K-pop 여성 록 밴드입니다.
2022년에는 아이튠즈 미국 록 앨범차트에서 한국 인디밴드로는 처음으로 5위에 진입했던 저력을 보여준 그룹입니다.
봄에 산과 들에 피어 있는 서민적인 진달래꽃의 귀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찬란하고도 슬픈 역사를 지닌 백제 고궁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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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VbR7F2YgNQ?si=rdvmhnMODoyFfHPe
◉영변은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 됐습니다.
진달래꽃 때문이 아니고 북한의 핵시설이 영변 약산 서쪽 4Km 지점에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탈북 핵 과학자 김대호는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꽃이 피지 않는다’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핵시설 주변에는 풀도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을 보면서 소월의 시를 읊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진달래가 지고 한참이 지나야 같은 집안의 철쭉이 피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5월은 돼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점이 너무 많은 철쭉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음 달로 넘겨 놓아야 돨 것 같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