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국밥論 ●지은이_박기영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11. 3
●전체페이지_144쪽 ●ISBN 979-11-91914-51-1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세상의 상처와 아픔을 위무하는 수행 시편
박기영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국밥論』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가마솥 국 장사」,「탄생」, 「포하이 상점」 등 46편의 시와 함께 시인 자신의 시 세계를 고백하는 「聖 아침에서 국밥論까지」라는 시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전체 3부로 나누어진 이 시집의 제1부 ‘국밥論’은 제주 4·3 사태를 다룬 산문시 「보말죽」을 비롯해 이 땅의 물이 만들어 낸 특이한 식문화인 국밥 중심의 이야기가 다양한 음식으로 풀어져 있다.
식당 밖 골목에는 우리 그림자/묻기 위해 가로등 눈 커다랗게 뜨고,/덩치 큰 한숨 웅크려 앉은 지붕 위/하루종일 서성거리던 눈발.//긴 탄식 소리로 단숨에/바닥 드러낸 술병은 탁자 위로/외로운 공복 쏟아내고 국밥을 먹는다.//매운 다대기로 일으켜 세운 발걸음에는/오랫동안 얼어붙은 신발 끈/연탄난로에 녹으면서 축축이 젖어 들어온 살갗/돼지비계같이 불어 터져 입 안 겉돌고//멀건 깍두기 국물같이/세상에서 밀려 나와 접시를 떠돌고 있는/서로의 삶을 나누기 위해/그대와 나는 마주 앉아 국밥을 먹는다.//한솥밥의 커다란 우주를 나눠 먹는다.
―「국밥을 왜 먹어」 부분
국밥은 모든 재료를 한 솥에 넣어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높음도 낮음도 부자도 가난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한 그릇, 한 끼의 평등을 만들어 낸다. 그 뜨거운 국밥으로 세상살이 춥고 매워도 “내 몸의 독을 다스리”고 “날숨과 들숨으로 가슴 다독여/갈비뼈 깊숙이 숨어 있는 슬픔 추스르며/어두운 그림자 쓸리는 이야기를/두 발로 끌고 가”(「새벽 국밥집에서」)는 것이다.
제2부 ‘고래의 귀향’ 편은 세월호의 기록과 애도에서부터 고 백남기 죽음까지 우리 사회를 시인이 어떻게 보았는지를 기록한 시편이다.
한겨울에도/눈송이보다 더 많은/노란 나비들이/수없이 날아다니던 하늘//그 아래 걸어가면서/지금도 사월/바다 위를 서성거리는/나에게 편지를 쓴다.//그 봄날/울먹이며 길거리 주저앉아/붉은 꽃잎처럼/가슴에 토해 놓았던/잔인한 맹세//진도 앞바다/퍼렇게 멍든 가슴 출렁이며/외쳐대는 소리/한시도 내 귀를 놓지 않는다.
―「봄 편지」 부분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 그 배가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연결되는 시편은 통한의 울음과 애도의 편린이다. 누군가는 그만하라 하지만 시인은 “문학판에서 멀어졌던 나는 그 사건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닫혀 있던 기록자로서 의무”라고 여겼다. 그리고 말한다. “진도 앞바다/퍼렇게 멍든 가슴 출렁이며/외쳐대는 소리/한시도 내 귀를 놓지 않”고 들어야 한다고. 진정한 애도가 “한 죽음이/또 한 죽음 불러 일으켜 세우며/산 자들 심장 쥐어뜯던 소리”(「탄생」) 가라앉힐 수 있다고.
그리고 제3부 ‘산성 학교’ 편은 이 땅에 이주민으로 유입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최근 중동 사태를 예감하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그녀 심장 향해/신의 이름으로 총을 쏘았다./사람이길 포기한 자들이//타인의 고통을 막기 위해/맨손으로 달려가는 그녀 가슴에/탐욕의 탄환으로 저격했다.//스물한 살 나잔 나사르//영원히 사람들 가슴에/인간이 아닌 자들이 흘리게 만든 피를/두 손으로 받쳐 들고/달리는 여자.
―「나잔 나사르」 부분
우리 인간의 욕망과 “탐욕의 탄환”은 어디까지 저격할 것인가.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참상이 지구 한쪽에서 벌어지면 우리 역시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유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충북 옥천에서 옻나무와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기영 시인은 한때 방송작가와 프리랜서 피디로 전국을 떠돌아다녔으며, 캐나다 이민을 갔다 와서 그곳에서 본 북미 사회를 우화적으로 쓴 『빅버드』라는 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다른 시인과 달리 문단에서 멀어져 『국밥論』을 비롯해 다섯 권의 시집을 묶어 내면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전작 중심의 발표 활동으로 이어온 박기영 시인은 ”남을 위한 시가 아닌 자신의 위안을 위해 시를 쓴다고“ 하면서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으로 시를 택한 자신에게 시는 수행의 한 방법이며, 오래된 도반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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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국밥論
가마솥 국 장사·10
국밥을 왜 먹어·12
순대론·15
보말죽·20
진골목 육국수·26
앞산 선지국·28
도다리쑥국·30
인월 피순대·32
된장시락국·33
따로국밥·36
김치말이 국밥·38
개장국·40
장계장에서·42
정월 대보름·44
수구레국밥·46
하동 재첩국·47
새벽 국밥집에서·50
남당항에서·52
옥야식당 선짓국 1·54
옥야식당 선짓국 2·56
장국수·58
제2부 고래의 귀향
서리·62
탄생·64
항해하는 봄·68
봄 편지·72
상실의 해협·76
동행·80
처벅처벅·82
쇠가 길을 열어·86
둥근 바퀴가 입을 열어·88
분노하지 마라·93
정원 비구에게·96
세월호 인양에 부쳐·99
고래의 귀향·102
와불·104
진도 다시래기·108
물고기는 알고 있다·112
제3부 산성 학교
고당리 겨울밤·116
포하이 상점·118
산성 학교·120
파파야 그늘에서·122
호찌민 9구역·124
퉁·127
롱하우스의 슬픔·130
아부살라·133
나잔 나사르·136
시인의 산문·139
■ 시집 속의 시 한 편
나이 들면 국 장사를 하고 싶었네.
낙동강 모래밭에 흰 뿌리 박은 채, 태백산 줄기 따라 내려온 이야기 쭉쭉 대궁에 큰 키로 키운 대파 듬성듬성 썰어 넣고, 대관령 고랭지에서 푸른 이파리는 하늘에 바치고 장딴지만 허리통만 하게 가꾼 무우 얇게 저며, 무쇠솥에 볶은 뒤 지리산 운봉 구름을 품었던 소고기 삶아 길 가던 사람 배고프면 한 그릇씩 나눠 먹고 싶었네.
우리네 세상살이 아무리 삭막해도 한 그릇 국밥에 담으면 모든 것이 섞이는 법. 생각보다 많은 사람 몰리면 밤마다 가슴에 달 하나 안고 있던 물동이 고여 있던 물 설설 끓은 솥에 붓고, 소금으로 간 한 뒤 주머니 빈 사람도 불러 나눠 먹고 싶었네.
밥상마다 김치며 깍두기로 어설프게 맛 자랑과 달리 세상 사람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차양 아래로 배고픈 그릇 하나 가지고 오면 수북이 국자로 고사리와 숙주가 몸 나누고, 대파와 무우가 뼈를 섞으며 마침내 우거지 야윈 몸마저 전생의 풀기 빼고 솥 아래 가라앉아 사람 기다리는 국 퍼담는 장사를 하고 싶었네.
김밥이나 백반처럼 따로 앉아 혼자 울면서 숟가락 드는 사람 가는 어깨 들썩이는 것 보기 싫어. 커다란 무쇠솥에 온갖 것들 쏟아붓고, 펄펄펄 끓는 국물로 뒤섞게 한 뒤 모든 혓바닥 속내음 털어내는 숨소리 토해내며 이마에 땀 뻘뻘 흘리며 아픔을 걷어내고 한꺼번에 눈물 쏟고 한꺼번에 웃음 터뜨리는 국을 끓이고 싶었네.
사람들 가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로 쉬쉬 소리 내며, 귀신도 영접하지 못하는 뜨거운 가마솥 국 장사로 서로의 삶 나눠 먹고 싶었네.
―「가마솥 국 장사」 전문
■ 시인의 말
한 그릇 국밥으로
밥상을 차려 세상에 내놓는다.
허기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끼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3년 가을
박기영
■ 표4(약평)
시는 내가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나는 어떤 주의나 주장을 하기보다는 그 세계에 내가 어떻게 착지하는 것인가에 더 매달린다. 풍경에 닿으면 풍경이 되는 시를 쓰고 싶고, 사람에 닿으면 사람과 동화되는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시에다 설익은 사상을 담아내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는 남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쓰는 위안의 방법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_「시인의 산문」 중에서
■ 박기영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우리세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성 아침』(2인 시집), 『숨은 사내』, 『맹산식당 옻순 비빔밥』, 『무향민의 노래』, 『길 위의 초상화』와 우화소설 『빅버드』 등이 있다. 현재 충북 옥천에서 옻 연구 중이다.
첫댓글 박기영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국밥論』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가마솥 국 장사」,「탄생」, 「포하이 상점」 등 46편의 시와 함께 시인 자신의 시 세계를 고백하는 「聖 아침에서 국밥論까지」라는 시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지금 교보, 알린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