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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 오르면서 바라본 문수산(1,252m)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네
사람의 키 높이란 늘 같은 것이 아니어서 말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 침묵 ․ 고독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어느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길이다.
―― 신정일,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 산행일시 : 2020년 8월 1일(토), 새벽에는 비, 흐림
▶ 산행인원 : 18명(자연, 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일보, 산정무한, 수담, 메아리,
신가이버, 향월초, 새들, 향상, 해피라이프, 해마, 다올, 무불, 오모)
▶ 산행시간 : 11시간 11분
▶ 산행거리 : 오룩스 맵 도상 21.2km
▶ 교 통 편 : 35인승 버스 대절(두메 님 대차)
▶ 구간별 시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12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04 : 00 ~ 04 : 23 -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 조제(鳥堤),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33 - △876.1m봉
05 : 44 - 안부, 아침요기
07 : 34 - 백두대간, 1,170m봉
08 : 42 - 1,238.2m봉
08 : 57 - 선달산(先達山, △1,239.0m)
09 : 40 - 1,171.9m봉
10 : 22 - △1,136.9m봉(회암봉)
11 : 02 ~ 11 : 33 - 1,096.4m봉, 점심
11 : 40 - 회암령(回岩嶺), ╋자 갈림길 안부
12 : 24 - 어래산(御來山, △1,065.3m)
12 : 57 - 삼도봉(三道峰, 1,040m)
13 : 48 - 922.4m봉
13 : 57 - △923.6m봉
14 : 22 - 829m봉
15 : 04 - 626.4m봉
15 : 34 -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儀豊里), 의풍2교, 산행종료
17 : 18 ~ 19 : 20 - 영월, 목욕, 저녁
20 : 20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21 : 5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사진(선달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사진(선달산, 어래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3. 산행사진(어래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선달산(先達山, △1,239.0m)
원골재가 장령이고 준령이다. 장대비를 힘겹게 뚫고 온 밤중에는 더욱 그렇다. 구절양장 굽
이굽이 돌며 오른다. 해발 750m. 버스 기사님은 밤중에 이 고개는 물론 이런 고개는 처음 넘
는가 보다. 대체 얼마를 더 올라가야 되느냐, 산 정상까지 버스로 가느냐며 불평(?)한다. 기
다시피 서행하여 마침내 고갯마루를 넘자, 자기 버스가 노후하여 이런 준령을 넘으려니 오바
이트하지나 않을까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냉각수가 끓어 넘치고 그로 말미암아 버스가 더
못 가게 될 경우를 걱정했다.
조제(鳥堤). 임씨(林氏)들의 집성촌이라고 한다. 임씨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므로 수풀(林)
이 우거졌고 따라서 새(鳥)가 있기 마련이어서 ‘조제’라 하였다고 한다. ‘제(堤)’는 대천인 내
리천(內里川)의 제방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일 것. 옥동초교 조제분교(2011년 3월 폐교)는
음향역사박물관로 변했다. 그 옆 너른 공터에 버스를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서두른다.
버스 기사님은 다시 원골재를 넘어 우리가 하산할 의풍으로 갈 일을 크게 걱정한다. 날이 밝
으면 원골재도 그다지 높지 않고 험하지 않으련만, 바로 의풍이 가까운 대처로 나가서 여관
에 들어 잠을 자야겠단다. 두메 님이라면 느긋하게 이곳에 주차하고 약간 불편하겠지만 차안
에서 잤을 것이다.
오락가락 하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부슬비다. 오늘은 오모 님이 오지산행 방학특강의 산
행대장이다. 오모 님 선두로 대로 따라 산자락을 잠시 돌고 오른쪽 생사면의 덤불숲을 헤친
다. 내 앞에 가던 일행이 벌집을 건드렸다. 세 방을 동시에 쏘인다. 내 뒤에 오던 향상 님도
쏘였다. 뜨끔하더니 금방 통증이 속속들이 쑤신다. 수담 님의 상비약을 바르고 먹는다.
큰 고통은 작은 고통을 구축하는 법. 곧추선 사면의 오르막을 후끈거리는 봉침을 이기느라
힘이 드는 줄 모른다. 앞사람이 내는 갈지자 그리는 발자국계단을 쫓지만 되게 미끄럽다. 일
보전진하려다 이보후퇴하거나 제자리걸음하기 일쑤다. 비 못지않게 땀을 쏟는다. 입안이 찝
찔한 건 빗물이 아니라 땀이 흘러들어서다. 또한 헤드램프 불빛 보고 온갖 나방들이 마구 몰
려들어 눈 코 귀 입을 헤집으니 성가시기 짝이 없다.
능선이 제법 모양 나고 가파름이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봉화 춘양이 가까워서인지 등로 주변
에는 아름드리 적송이 볼만하다. 750m봉. 산행시작한 지 50분이 지났다. 인원 점검한다. 선
두와 후미 간 길어야 5분 차이이니 휴식시간도 짧다. 적송 사열하며 한 피치 오르면
△876.1m봉이다. 부엽토 쓸어 판독한 삼각점은 ‘예미 466, 2004 재설’이다.
2. 왼쪽 멀리는 망경대산
3. 비 멎은 등로
4. 왼쪽은 문수산
5. 왼쪽 멀리는 백운산(?)
6. 꼬리풀
7. 일월비비추(日月---), ‘경북 일월산에 나는 비비추’라고 해서 일월비비추다.
기대했던 산릉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장려함이 없이 날은 희뿌옇게 밝았다. △876.1m봉 내
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아침 요기한다. 비는 멎었다. 백두대간 주릉까지 줄곧 오르막이겠지만
완만하다. 향긋한 손맛 느끼려 풀숲 사면을 누비며 간다. 나는 풀숲 빗물 털어 땀을 식힌다.
932.8m봉을 넘으면 금방일 것 같던 백두대간 주릉이 아직 멀다.
가도 가도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전후좌우 조망은 수렴에 철저히 가렸다. 등로 벗어나 사면
으로 내려 수렴을 걷으려고 해도 신통치 않다. 그래도 저 앞 공제선에 오르면 조망이 트일까
하고 숨차게 가보면 공제선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있다. 그런 공제선을 또 쫓느라 이때만
큼은 내가 선두다. 풀숲의 빗물 털어내고 거미줄을 걷어내며.
백두대간 1,170m봉에 올라선다. 옥돌봉 넘고 박달령을 지나 선달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길이
다. 탄탄대로다. 이제 당분간 왼발은 경상북도 땅을, 오른발은 강원도 땅을 밟는다. 1,170m
봉을 약간 벗어나면 장의자 놓인 쉼터가 나온다. 휴식한다. 이번에는 나방이 아니라 파리 떼
가 극성이다. 손 한번 휘두르면 여러 마리가 잡힐 정도다.
파리 떼에 쫓겨난다. 백두대간 길도 여전히 숲속이라 조망이 가렸다. 언뜻언뜻 나뭇가지 사
이로 운해 넘실거리는 목우산 연릉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풀숲 들여다보면 일월비비추가 한
창이다. 일월비비추는 경북 일월산에 나는 비비추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이우철, 『한국
식물명의 유래』). 지금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란다. 그러나 비비추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
는 자세히 아는 학자가 없다. 막연히 옥잠화(玉簪花)라고 하는데, 옥잠화가 옥으로 만든 비
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긴 하다.
1,238.2m봉을 길게 올랐다가 쭈욱 내리고 한 피치 잠깐 오르면 선달산 정상이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예미 25, 1995 재설. 선달
산은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이 근처 백두대간 뭇 봉우리들의 맹주이기도 하고, 어래산, 곰봉
으로 이어진다. 주변 나뭇가지에 달린 산행표지기를 세어보니 105개나 된다.
‘선달산’은 조선시대 어떤 문헌이나 고지도에도 산 이름이 보이지 않아 지명의 유래를 알기
어렵다고 한다. 다만 향토지에 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선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고, 산
남쪽의 곡저에는 산 이름에서 유래한 ‘생달’이란 자연마을이 있는데, 선달(先達)의 음이 변
한 지명이라고 한다. 또한 산세가 너무 웅장하여 속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신선들만
거처한다 하여 선달산이라 한다.(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
나는 생각을 약간 달리한다. 선달산은 생달 마을에서 가깝다. “생달 마을은 선달산에서 흘러
내리는 하천의 형세가 마치 두 개의 달과 같아 쌍달이라 부르는 것이 지금에 와서 생달이라
부르게 되었다.”(월간, 『사람과 산』 2001.12)고 한다. 흔히 마을이 생기고 나서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정하기 마련이다. 생달이 변성하여 선달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8. 일월비비추(日月---)
9. 일월비비추(日月---)
10. 이질풀
11. 멀리는 문명산, 청량산, 축융봉과 그 주변
12. 선달산 정상에서
13. 선달산 넘어 어래산 가는 길
▶ 어래산(御來山, △1,065.3m)
선달산 정상을 조금 내리면 ┣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은 늦은목이로 가는 백두대간 길이
고, 오른쪽이 어래산으로 간다. 외씨버선길 11길(상운사에서 김삿갓문학관까지 산릉
15.4km) 이정 안내는 선달산에서 어래산까지 6km, 약 3시간을 예상한다. 이 구간은 평균고
도 1,100m의 숲속 외길이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길이 아주 잘났
다. 길 벗어난 좌우 사면은 괜히 누벼보고 싶은 너른 초원이다.
10분 도리로 봉봉을 넘는다. 1,171.9m봉 넘고 다시 10분이 지나 1,134m봉을 넘는다. 초원
의 안부는 ╋자 갈림길이다. 길게 오른 다음 왼쪽으로 직각 방향 틀어 다가간 △1,136.9m봉
(회암봉)의 삼각점은 ‘예미 463, 2004 복구’이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방향 틀어 내리다 암
릉과 맞닥뜨리고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밧줄 잡고 가파른 협곡을 내리기 직전이다. 좌우
로 암봉이 있어 거기에 오르면 조망이 트일 것 같아 배낭을 벗어 놓고 들른다. 잡목 헤치며
미끄러운 슬랩을 달달 기어올랐지만 짙은 운무에 가려 무망이다.
1,096.4m봉은 너른 공터다. 더덕 공부하느라고 늦어지는 후미를 기다리느니 이른 점심밥 먹
는다. 오늘도 비가 올 것을 예상하여 신가이버 님은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해왔다.
한 차례 쏟아져 내려 바닥 친 안부는 회암령(回岩嶺)이다. 좌우로 흐릿한 길이 나 있다. 회암
령(回岩嶺)이 여느 산간고개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유래는 깊다.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
랫폼 지명사전의 설명이다.
“회암(回岩)은 지동(池洞)의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는 큰 명당이 있었다고 한
다. 의상(義相)대사가 676년에 문무왕(文武王)의 명을 받고 절터를 찾으러 다니다가 이곳
에다 절을 지으려고 했는데, 까치가 대패밥을 물고 영주군 부석면 북지리(北枝里)로 날아가
서 그곳에다 부석사를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浮石寺)를 건립할 명당에 큰 너럭바위가 있어 고민하던 중, 이 바위가 저절로 공중에
서 떠서 옮겨간 뒤 그 곳에다 절을 건립하고 이름을 부석사라 하였다. 이때 큰 바위 하나가
이곳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마을의 지명을 ‘회암(回岩)’이라 부르고, 바위를 ‘구들바우’라 하
고 바위가 넘어온 고개를 ‘회암령(回岩嶺)’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음 휴식은 어래산이다. 완만하고 긴 오르막 2.5km이다. 멀리서는 1,016.3m봉이 어래산으
로 보이지만 정작 어래산은 그 뒤로 한참 떨어져 있다. 두 집(오지산행과 자유인산악회) 살
림하는 수담 용대장님은 어래산을 오르는 중은 물론 휴식 중에도 바쁘다. 겉으로는 소득이
보잘 것 없는데(대간거사 총대장님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수시로 좌우사면을 누빈다.
어래산. 너른 헬기장이다. 헬기장 가장자리에 조그만 정상 표지석이 있다. 여전히 사방 나무
숲에 가려 아무런 조망이 없다. 어래산의 유래에는 양설이 있다. 옛날 어느 때 나라 임금님이
이 산에 행차하였다 하여 어래산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이 산 아래에 ‘어래사’라는 절이 있
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세상에 어느 임금이 이런 후미진 산을
찾았을까 의문에서다.
14. 1,171.9m봉 내린 ╋자 갈림길 안부에서 휴식 중
15. 회암령 가는 암봉에서 목우산 쪽 조망
16. 회암령 가는 암봉에서 단풍산 쪽 조망
17. 꽃송이버섯, 모닥불 님 작품이다.
18. 어래산 정상에서
19. 뒤돌아본 삼도봉
어래산에서 150m 가면 ‘삼도봉’이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삼도봉의 정확한 위치는 거기서
200m를 더 간 1,040m봉이다. 여기서 강원도와 충청북도, 경상북도가 만난다. 혹자는 아예
어래산을 ‘삼도봉’이라고도 한다. 삼도봉 지나고 여태의 길 상태와는 전혀 다른 오르내리막
이 심한 길이 이어진다. 고도 240m를 겁나게 떨어져 내리고 펑퍼짐한 안부 지나 가파르게
오른다.
950m봉 오른쪽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922.4m봉 직전에서 왼쪽 풀숲 헤친다. 우리의
호프인 신가이버 님이 대표로 922.4m봉을 들른다. △923.6m봉은 잘 다듬은 외씨버선길 11
길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는 외씨버선길과 작별하고 생사면을 치고 △923.6m봉을 오른다.
삼각점은 ‘예미 457, 200? 재설’이다. 새터와 의풍2교를 향한다.
예고 없는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길 없는 우리의 길을 간다. 절벽 내리고, 슬
랩 트래버스 하고, 협곡 내리고, 슬랩 기어오르고, 잡목 헤쳐 암봉인 829m봉에 오른다. 경점
이다. 운무는 걷혔지만 우중충한 날씨다. 문수산, 소백산 신선봉, 형제봉, 마대산이 가깝다.
829m봉 내리는 길도 험하다. 나무뿌리를 자일 삼아 붙들고 가파른 슬랩을 내린다.
암릉과 만나고 왼쪽의 낙엽이 수북이 쌓인 너덜 골짜기를 더듬거려 내렸다가 바위 사면을 길
게 트래버스 하여 능선 마루금을 잡는다. 능선에는 시원한 바람이 인다. 마지막 휴식한다. 배
낭 털어 먹고 마신다. 오늘로 오지산행 두 번째인 다올 님의 분투가 가상하다. 아까부터 장딴
지에 쥐가 나는 듯 성장통을 심하게 앓고 있다.
험로는 끝났다. 잡목만을 헤치며 쭉쭉 내린다. 626.4m봉 넘고는 가파름도 수그러든다. 소나
무 숲길이다. 무덤 나오고 인적이 흐릿하게 보인다. 인적을 꼭 붙들고 내린다. 그러나 산기슭
에 가까워서는 놓쳐버린다. 잡목 숲에 이어 덤불숲 뚫고 내린다. 새터 마을이다. 마을 길옆
의풍경로당 지나 곧 의풍2교 앞이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나눈다.
부기1) 우리 버스는 어디에 있을까? 기사님은 여관에서 잘 주무셨을까? 오모 대장님은 기사
님더러 우리가 의풍2교로 16시에 내릴 것이니, 내비게이션에 인근의 ‘영춘초교 의풍분교
장’를 목적지로 정하여 늦지 않도록 오시라고 했다. 지도에도 분명하게 표시해주었다. 그런
데 기사님은 영춘초교 근처에 있었다. 기사님은 지도를 볼 줄 몰랐고, 내비게이션은 영춘초
교 의풍분교장을 몰랐다. 영춘초교에서 우리가 하산한 의풍2교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부기2) 산행 이튿날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특히 옆구리, 등, 얼굴에 집중되었다. 벌에
쏘인 데는 아물었는데 두드러기가 돋은 데는 백약이 무효로 가렵다. 풀독에서인지 독충에 쏘
였는지 모르겠다. 여름철 산행 때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특히 심하다. 장마로 가
뜩이나 무더워 끈적끈적하니 땀이 배는 밤이다. 긁느라 잠 못 이룬다.
20. 싸리버섯, 가을 냄새가 난다.
21. 곱돌재 지나 922.4m봉 가는 길
22. 왼쪽은 문수산
23. 형제봉
24. 오른쪽은 마대산
25. 상사화, 새터 마을 화단에서
첫댓글 선달산은 오랫만이었네요. 명산은 역쉬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일월비비추가 거기서 유래된 이름이군요. 재밌어유.
조망없는 길에서
발품 팔아 구석구석 카메라에 담으셨네요.감사합니다.
면역력 저하인 건가요?
피부가
빨리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 왔으면 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오대장님!
멋진 산행 준비해 줘서 고맙고 수고 많으셨네요.종종 부탁드려요잉~~
역시 악수님 조망을 만들어 내셨군요. 항상 좋으신 분들과 좋은산을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