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 데나 정들면 못 살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가장 그리운가.
방과 곡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 마다 질그릇 조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병기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의 진사동, 국문학자 가람이병기 선강생의 생가가 있다. 이 집은 수우제(守愚祭)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고패형으로 된 안채와 1자형인 사랑채, 고방채, 모정 등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생가를 나와 대나무 숲 오솔길로 발길을 향하다보면 바로 앞에 이병기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이병기 선생의 동상을 한 움큼 바라보고, 다시 그 뒤 오솔길을 따라가면 뒷산 대나무 숲에 선생의 묘를 만난다. 자, 그럼 우리 시 한편 읽으며 전라선타고 교통의 도시 익산으로 떠나 볼까?
밤에, 전라선을 타 보지 않은 者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인생> 안도현
익산역에서 출발해 여수역을 연결하는 전라선.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임실, 남원, 곡성, 구례를 지나 남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고 여수의 푸른 밤바다를 선사한다. 80년대 열정을 싣고 가던 낭만기차를 타기 위해 익산역에는 통기타와 청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그 당시 가장 좋았던 새마을호를 타면 서울 용산∼여수 구간을 새마을로 운행해 5시간 15분 걸렸다. 2001년부터 장장 공사착공 11년만에 KTX운행이 가능해져 1시간 43분 단축된 3시간 32분 만에 이동이 가능해져서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7080 젊은이들이 이제 가족과 함께 여수엑스포, 순천국제정원박람회를 보러가며 들르는 곳, 익산. 잠시 내려 그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 익산을 둘러볼까? 시원한 점심 소바와 맛난 간식 찐빵과 만두가 있던 집, 고려당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당일 재료를 다 소진하면 장사를 하지 않으며 보통 오후 3∼4시면 음식이 동이 난다. 잠시 책을 읽으며 만남을 기다렸던 대한서림, 익산 원도심의 맥을 지금도 이어나간다. 아직도 원도심 추억이 가득한 곳 생맥주집 엘베강, 비좁은 통로에서 값싸고 시원한 얼음맥주 한잔과 먼저 사람이 안주를 남기어 다음 사람에게 이어받는 풍경은 여전하다.
낭만이 있던 시절 기차, 철도의 중심지로 기억됐던 익산의 또 다른 이름은 백제왕도다. 경주, 공주, 부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고도이지만 아직도 미지의 고도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일본출판기념회에서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익산 미륵사지터에 서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던 익산 미륵사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는 익산을 가봤다고 할 수 없다.
달빛 아래 서서 미륵사 빈터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둘러본다.
서탑 심주석은 새로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밤늦게까지 사람들의 손길을 탄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받지 못하는 이 탑에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진다면, 또다시 천 년 후
가장 사랑받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달밤에 비친 미륵사지 석탑> 배용준
미륵사지는 여전히 1400년을 그대로 있다. 최근에 복원된 동탑(1993년)이 그 웅장함을 드러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으로 들어가면 1997년 개관한 이 전시관에는 발굴된 19,000여점의 유물 중 일부인 약 4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함께 들으면 1400년 그 당시 모습을 마음에 담아갈 수 있다. 한편 유명한 서동요의 사랑 말고 숨은 사랑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누군가 정(釘)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 나왔지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익산고도리석불입상> 안도현
너무도 사랑해서 아픈 이별을 한 커플. 250여 발자국 약, 200m정도의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만 보는 이가 있다. 익산 금마에서 왕궁리오층석탑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으로는 논이 펼쳐지는데 논 가운데 석불 두 기가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고도리석불입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석불은 고려시대 말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철종 9년(1858)에 익산 군수로 부임해온 최종석이 쓰러져 방치되어 오던 것을 현재의 위치에 일으켜 세웠다고 당시 쓰인 '석불중건기' 속에 담겨있으며 보물 제46호다. 이 둘은 각각 남자(서쪽)와 여자(동쪽)인데,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이 꽁꽁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안고 회포를 풀다가 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