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을시구 얼시구 절시구 조을시구
얼(臬)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조상의 빛난 얼’이라든가 ‘민족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그 얼이다.
얼은 명사(名辭)로 정신의 줏대라는 뜻이다.
넓게는 정신이나 넋, 혼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좀 모자라는 사람을 두고 얼빠진 놈이라고 한다. 줏대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얼(臬)은 한자로는 해말뚝 얼(臬)이다.
해말뚝은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재는 말뚝이다. 곧 얼은 해말뚝 시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얼이라는 것은 때를 아는 것을 말한다. 어리석다는 말은 얼이 썩었다는 말이 발음하기 좋게 바뀐 것으로 슬기롭지 못하고 우둔하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제일 우둔한 사람인가?
때를 모르는 사람이 제일 우둔한 사람이다.
반대로 가장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철부지란 말은 철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계절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계절은 크게 나누면 사철이고 작게 나누면 24절기다.
얼이라는 말은 해말뚝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때를 잃지 않고 때를 알고 때에 맞추어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겨레의 정신은 해말뚝 정신이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은 해말뚝에서 나왔다. 해말뚝이 우리 민족 정기의 핵심이다.
밤과 낮을 구별하지 못하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이라고 한다.
천문(天文)을 보는 것은 철을 알기 위한 것이다.
철이 들기 위해서 천문을 보는 것이다.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 밤에는 언제든지 별을 볼 수 있다.
달도 마찬가지다. 달은 초하룻날과 그믐날에만 안 보이고 초이틀 달부터 보인다.
초승달은 해 지고 노을이 지고 나서 어둠이 내릴 무렵에 구름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동짓날 저녁에 다섯 시에 해가 지고 나서 여섯 시에 산에 올라가면
중천에 뜬 별을 볼 수 있다.
8월에는 8시에 보이고, 9월에는 9시에 보이며, 10월 초에는 10시에 보이는 별이 동짓달에는 자정에 보인다.
섣달에는 새벽 2시에 보이고 정월에는 4시에 보이며 2월에는 6시에 보이므로 11개월의 별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달력을 만들 수 없었고
중국에서 만든 것을 중국의 황제들한테 받아서 사용했다.
중국의 황제가 10부나 20부쯤 만들어서 지방의 왕들한테 나누어 주었다.
이씨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을 자처했으므로 모든 달력을 중국에 의존했다.
달력은 천문을 보고 만드는 것이다. 천문을 보지 않으면 달력을 만들 수 없다.
천문을 보고 철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얼이고 정신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미디어가 발전하여 달력을 보지 않고 산다.
스마트폰에 언제든지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게 나오므로 달력을 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은 그 때의 단면이고 조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사람들은 모두 철부지라고 할 수 있다.
각설이들이 부르는 우리 민요에 장타령(場打令)이 있다. 장타령을 동냥아치들이 구걸하는 노래 정도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조상들은 서당의 훈장 집이 잘 살도록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훈장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학생들 집에서 갖다 주는 것으로 먹고 산다. 학생들의 집에서는 훈장이 굶지 않을 만큼만 식량을 갖다 준다.
훈장이 서당을 열면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먹을 것을 갖다 준다. 그래서 거지들은 반드시 훈장 집에 구걸을 하러 간다. 훈장 집에는 동냥아치한테 동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곡식은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각설이들이 자주 와서 대문간에서 한 바탕 춤을 추며 깡통을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각설이타령이라고도 하는 장타령이다. 거지들이 한 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어머니께서 됫박에 쌀이나 보리쌀을 퍼 와서 깡통이나 자루에 담아주곤 하셨다.
각설이들이 제멋대로 춤을 추면서 부르는 장타령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뜻을 담고 있는 노래다. 장타령(場打令)의 장은 마당 장(場)이고 칠 타(打)이며 하여금 령 명령할 영(令)이다. 거지들이 마당에서 깡통을 두들기면서 구걸을 하면서 부르는 타령이다.
거지 셋이 깡통을 두들기고 춤을 추면서 이런 저런 얘기나 신세타령을 하는 것 곧 각설(各說)을 하는 것이 각설이타령이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조합하여 시조나 창, 판소리 가락을 섞어서 하는 타령인 것이다.
장타령의 노랫말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 노랫말이 모든 장타령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지(知) 자(字)나 한 자(字)를 들고나 보니 시구시구 조을시구 얼시구 절시구 조을시구 지화자 조을시구
여기서 시구시구 조을시구 얼시구 절시구 조을시구를 한자로 쓰면 다음과 같다.
矢口矢口 鳥乙矢口 臬矢口 節矢口 鳥乙矢口
제일 앞에 있는 화살 시(矢)와 입 구(口) 자를 합치면 알 지(知) 자가 된다. 알 지(知) 자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은 강조하는 의미다. 조을(鳥乙)에서 새 조(鳥)와 새 을(乙)을 같이 썼는데 새 조(鳥)는 멧새를 가리키고 새 을(乙)은 물새를 가리킨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알자, 알자, 산새도 알고 물새도 안다. 해를 알고 철을 알자.
산새도 알고 물새도 아는 것을 우리도 알자.
새들은 철을 가장 잘 아는 동물이다.
멧새인 제비는 정확하게 3월 삼짓날에 남쪽에서 돌아오고
물새인 기러기와 두루미는 9월 9일 날에 정확하게 북쪽에서 날아온다.
귀뚜라미는 입추 날부터 정확하게 울기 시작한다.
우리 조상들은 때를 아는 것, 철을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철을 아는 것은 천문(天文)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조상들은 제일 먼저 해말뚝을 보고 계절과 시간을 알았다.
춘분날 정오에는 해말뚝의 그림자가 38도 방향에 있고 하지에는 13도 방향에 있다.
위도 37도 지역에서는 춘분날에 37도에 그림자가 정확하게 온다.
현재의 추석(秋夕)이나 춘분(春分) 추분(秋分)은 하루나 이틀씩 오차가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달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지음(知音)이라고 하고 서로 잘 아는 사람을 지인(知人)이라고 하며 가까운 친구를 지기(知己)라고 한다.
모든 아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때를 아는 것이다.
때를 아는 것이 모든 앎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거지는 왜 거지가 되었는가?
때를 잃었기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이다.
알자, 알자, 산새도 알고 물새도 안다.
해를 알고 철을 알자.
산새도 알고 물새도 아는 것을 우리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