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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으로, 바른 길을 가면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이다.
大 : 큰 대(大/0)
道 : 길 도(辶/9)
無 : 없을 무(灬/8)
門 : 문 문(門/0)
큰 길(大道)에는 당연히 문이 없다(無門). 이 말을 거론하기만 해도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16년 영면한 巨山(거산)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이다.
민주화의 거목이었던 대통령은 5공의 폭압정권에 맞서 단식으로 저항, 6.29의 결실을 맺는데 큰 업적을 이뤘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경구와 함께 휘호 작품으로도 많이 남긴 이 성어는 트레이드 마크로 등록이 됐을 만하다.
큰 길이라 삼척동자도 알 만한 말을 그저 했을 리는 없다. 옳은 길, 바른 길, 정당한 길을 향해 가는 데는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는 민주투사의 의지가 담겼다.
이 성어가 워낙 유명해서 당연히 출처도 김영삼 대통령인줄 알지만 실제는 역사가 오래 됐다.
중국 남송(南宋) 때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가 무문관(無門關)의 서문에서 처음 썼다고 한다.
무문관은 무문혜개 스님이 설법한 것을 그의 제자 종소(宗紹)가 엮은 것으로 벽암록(碧巖錄), 종용록(從容錄)과 함께 선림(禪林)에서 중시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화두를 사용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간화선(看話禪)에서 무문관 48칙(則)은 대표적 지위를 갖는다고 한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걸으면 속임수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은데 실제 본래 뜻은 약간 다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大道無門 千差有路.
대도무문 천차유로.
큰 길에 들어서는 문은 없으나, 천 갈래 길이 어디로도 통한다.
透得此關 乾坤獨步.
투득차관 건곤독보.
빗장을 뚫고 갈 수만 있다면, 천지를 홀로 걸을 수 있으리.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쉬운 길이 없다는 의미를 가져 깨달음에 이르기가 무척 어렵다는 은유라 한다. 너무나 유명한 이 성어를 약간씩 변형시켜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측에서 비아냥대기도 했다.
1990년에 3당 합당을 성사시켜 집권의 발판을 닦았을 때 대권 잡는 길에는 거침이 없다고 대권무문(大權無門)이라고 야권에서 공격했다.
큰 도둑이 재벌 집을 털었을 때는 큰 대문도 필요 없다며 대도무문(大盜無門)이라 했다. 이런 패러디 말고 거산의 행보처럼 국민을 위하고 바른 길만 걷는 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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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大道無門)
송(宋)나라 선승 혜개(慧開)가 수행의 이치를 담은 화두를 모은 책 무문관(無門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석 1.
大道無門 千差有路(대도무문 천차유로)
큰 길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길이 천이로다
透得此關 乾坤獨步(투득차관 건곤독보)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에 홀로 걸으리
해석 2.
大道無門 千差有路(대도무문 천차유로)
큰 도를 얻는 데는 문이 없고 수많은 길이 바로 통한다.
透得此關 乾坤獨步(투득차관 건곤독보)
들어서서 통한 자만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리라.
계송만 떼어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앞의 서문을 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
이 내용은 선종(禪宗)의 핵심을 다루고 있다.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가 될 수 없다(從門入者不是家珍)'고 하였고,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쓸데 없는 사족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에는 용감하게 돌진하는 사람에게는 나타건 서역의 28조사건 중국 6조사건 다 굴복할 것이지만,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진리는 문 밖을 지나가는 말처럼 잡기 어렵다고 하면서 주저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요약한 것이 위에 언급된 계송이다. 즉, 불경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미혹되거나 뒤도 돌아보지 말고, 용맹정진해서 자기의 도를 깨치라는 이야기다.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
고사성어라고 보기도 힘들 만큼 쓰이지 않는 말이었으나, 한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좌우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쓴 뜻은 "큰 길엔 아무런 막힘이 없다"는 의미, 즉 자신이 운을 타고 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사실 윗 글과는 의미가 다르다.
김영삼은 문(門)을 장애물의 의미로 사용한데 비해서, 원래 의미에서 문(門)은 자신과는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이 열고 나간 길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대도무문 부분을 제외한 전체 내용, 자신의 길을 그대로 밀고가라는 부분과는 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대도무문을 쓴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클린턴이 뜻을 묻자, 통역을 담당하던 박진 의원이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고 적당히 의역해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의미가 막연했는지 클린턴이 의아해 하자 '대도에는 문이 없다'라고 먼저 직역한 뒤, 미국 스타일로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다'라는 얘기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클린턴이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가 터지자 너무나 유명한 이 성어를 약간씩 변형시켜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측에서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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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문 (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따로 없다는 뜻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걸어야 할 바른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대도무문의 출전은 중국 혜개선사의 저서 무문관에서 나온 말이다. 김영삼 전대통령께서 자주 사용했지만 원래는 선가(禪家)의 용어이다.
우리나라 것으로 번역된것은 이희익 저 선종사부록(禪宗四部錄) 보련각
에 보면 있고, 벽암록(碧巖錄) 고경총서 등이 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여기에 문 없이 큰 도가 있으니 이름하여 무애자심(無碍子心)이라 한다. 무애자심은 무엇이던고? 문이 없는데 들어가고 길이 없는데 가는 고로 대도(大道)라.
문이 없는데 들어간다 함은 무엇을 뜻 함이뇨? 동쪽도 서쪽도 없으며, 남과 북이 없고, 안과 밖도 없고, 앞도 뒤도 없고,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둥근 것도 모남도 없고, 길고 짧음이나, 크고 작음도 없음을 말함이라.
길이 없는데 간다 함은 또 무슨 말이냐? 막힘도 통함도 없고, 밝음도 어둠도 없으며, 거룩함도 평범함도,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으며 늙고 젊음의 구별 또한 없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을뿐더러 선과 악의 나눔이나 진짜다 가짜다, 옮다 그르다의 시비도 있을 수 없음이니 이를 일러 길 없는 길을 간다 함이라.
문 없는 문을 들어서고, 길 없는 길을 감은 걸림이 없는 마음이 그 열쇠인데,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또 무엇을 말함이냐? 물질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신에도 구애받지 않으니, 두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를 뜻함이다.
물질의 본질을 알고 보면 물질이 아니요(色則是色), 정신도 그 본질을 캐보면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닐진대(空則是空), 공연히 인간들이 천만 가지 경계를 짓고 부질없는 이름을 붙여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시비를 하지만, 티끌만큼도 치우침이 없는 것이 걸림 없는 마음이라.
그건 마치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되 산이 물에 젖지 않고, 구름이 산허리를 어루만지며 지나되 높은 산허리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 함이리라.
중생들은 형체도 없는 마음을 있다 하고, 천만 가지 이름 지어 이것이 도(道)다, 저것이 법(法)이다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요, 만 권 서책을 읽어 이루어지는 일은 더 더욱 아닐래라. 그것은 오직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아야 가능할 것인즉......
자신이 깨닫고 경험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비추어 볼 거울은 또 무엇이냐 ?걸림이 없는 마음이란 원래 깨끗하고 맑아 흔들림이 없음이니 만약 헛되고 쓸데없는 생각이 발동하면 하는 일마다 짜증이요. 가는 곳마다 지옥일 따름. 헛되고 부질없는 마음의 경계는 어떻게 허물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욕망의 도깨비는 어느 방망이를 휘둘러 쫓아내어 평안함을 구할 것인가 ?
중생들이여, 거듭 말하지만 그 열쇠는 그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쓸데없는 책속에 빠져 허송 세월 할 생각 말고 , 죽고없는 옛사람의 그림자 좇아 절하고 복 비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라.
천만 파도가 움직여 가지만 바닷물의 근본에 변함이 있더냐 ? 물은 변함이 없되 바람 따라 파도가 일 듯 어리석은 마음이 동하면 괴로움의 파도가 일고, 청정하면 봄 바다가 되는 것이니.
그러나 형제여. 알고 보면 깨달음도 깨달음이 아니요. 미망도 원래 미망이 아니라 그 깨달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법에는 본래 차별이 없음이니라.
깨달음이니 어리석음이니 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 마음의 장난일 뿐. 천지 자연의 이치에는 상도 벌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자는 진실로 깨달았다 할 것이요. 감정에 이끌리고 자제하지 못하면 천만 가지 지식이 머릿 속에 있다 해도 어리석다 할 것이니 인연에 얽매이면 범부일 것이요. 인연도 초월하면 성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 ! 그러나 형제여. 꽃은 분명 아름답건만 필설로 그 아름다움을 다 그려낼 수 없고, 솔거의 솜씨로도 그 향기를 옮겨오지 못함이니, 어찌 말이나 어설픈 글로 큰 도를 설명할 수 있으리요만,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환희도 갈등도 열반 적정도 법에 있는 것이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선지식이 남긴 경전 속에 있는 것도 아님이니, 살아 지옥을 원망말고 죽어 극락을 바라지 마라.
극락도 지옥도, 행복도 불행도, 무지도 성급함도 오로지 그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인즉,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달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고 물으면 나 역시 우매하지만 이렇게 답을 하겠노라.
쓸데없는 서책 던져 버리고 산에 올라 눈 들어 하늘을 보고, 고개 숙여 흘러가는 물을 보라. 물이 그물에 걸리던가? 지나는 바람이 그물에 걸리던가?
(원문)
於此有大道하니 名曰無碍心이라 何謂之大道也오
無門而入하고 無道而行故로 云 大道라 無門而入故로 無東無西無南無北無內無外無前無後無高無下無方無圓無長無短無大無小無始無終이며
無道而行故는 無塞無通無明無暗無聖無凡無男無女無少無老無人無我無善無惡無眞無假無是無非無正無邪하니 是以로 無門而入하고 無道而行이라 是無 碍心이여 名爲大道라
何謂之大道也오 色不碍空이며 空不碍色하니 心境不二이니 是名無 碍라 故로 心無 碍라 是無 碍心은 是淸淨心이요 是淸淨心은 是不動心이요 是不動心은 是本心이요 是本心은 是名眞心也라 妄心이 處處에 有碍면 不得自在하고 眞心이 處處에 無碍면 得成하니라 不得自在則事事皆苦요 得成自在則心心皆如라
境生則生하고 境滅則滅은 是妄心也오 不因境生하고 不因境滅은 是眞心也라 生滅心은 是妄이요 無生滅心은 是眞이나 然이나 於一法中에 有眞有妄하니라
離妄而無有眞하고 離眞而無有妄이라 是以로 波不離水하고 水不離波하니 波則是水하고 水則是波라 法卽一也로다
迷悟가 有差하나 迷則眞 色則是色이요 色本無色이며 空則是空이요 空本無空이며 非色이 爲色이며 非空이 爲空이니 千境萬心이라 逆順圍統하니 一毫無碍로다.
如 雲無得水요 山不碍雲이라 雲興山之互相이 無碍者는 雲山非實이니 是無心故로 虛空性이라 故로 心者는 何也오 非心이 爲心이요 本非心故로 本亦無本이며 亦無心非心이니 千呼萬名이며 摠非實心이라
何以故오 心本無名이요 心本無相이나 廓然虛通이되 亦無虛通相이라 淸淨本然이되 亦無淸淨이라
名言語不着이며 不立文字며 以思不得하며 以論不及하며 學而不知며 有心不求며 無心不了라 唯有自證自悟나 亦無證이요 悟亦無悟로다
如涅槃도 是爲妄也오 悟則生死煩惱도 總是眞也라 旣云眞妄不二라 何以故요 有迷悟之差는 法無迷悟며 人有迷悟라 法無得失이되 人有得失이라 迷者는 人自迷之하고 悟者도 人自悟之며 得者도 人自得之요 失者도 人自得失이니 法無罪過라 知心者悟하고 滯心者迷하고 解言者悟하고 滯言者迷하고 轉文者悟하고 惰文者迷하고 超緣者悟하고 隨綠緣者迷하니 迷悟는 只在於人이며 不在於法이니 是以로 法是一也라
悟則天地無碍하고 迷則事事顚倒하며 天地無碍則處處極樂이요 事事顚倒則處處地獄이라 超越千境萬心이면 是無 碍니 無 碍子心이 是謂大道無門이라.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도유승강(道有升降)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문전걸식(門前乞食),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