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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시 드라이버
내 친구중에 한 친구가 86년부터 96년까지 장안동에서 자동차 카센터를 했다.
그 친구의 학력은 매우 낮지만 나와 정서가 잘맞고 의리 있고, 자동차 정비실력이
탁월하며 인간미가 풍부한 친구이다.
무엇보다 그친구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서 우린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있다.
나는 이 친구 카센터에서 작업복입고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 같이 정비일을
도와주면서 자동차 정비기술을 완벽하게 배울 수있었다.
나는 입사전 87년부터 88년까지 2년간 공백기때 서울에서 회사택시운전을 약 두달
정도 한 경험이있다.
입사후에도 택시운전에 관심이있어서 95년도 쯤인가 서울 잠실 교통회관에서
서울택시운전자격증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합격율은 그당시 70%
정도였다.
응시자가 한번에 200명을 넘어 대강당에서 필기시험을 보았는데..
OCR 카드 마킹을 태어나서 처음해봐서 연속 실수하는 아저씨들이 무려 10명이상.
애인하고 같이와서 시험보는 친구들
조폭 같이 생긴 친구들
재수생 등등… 시험장은 수라장이다.
시험 문제는 100문항 출제되는데 문제집 풀지않고 가면 거의 불합격한다.
문제내용은
1. 러시아 대사관은 무슨동에 있는가.
2. 몽촌토성은 현재 무슨동인가?
3. 강북구와 도봉구를 나누는 천 이름은?
등등 만만치 않다.
내 옆에있는 아저씨는 3번째 불합격하여 이번시험에 응시 한다고한다.
시험이 끝난후 잠실 교통회관 Lobby는 택시기사 스카우트 열기가 대단했었다.
우리 대학 입시철 대학교정문에서 고등학교 선배들의 커피좌판 부스 행렬을 방불케
했다.
학교명대신에 신사동, 장안동등 동명의 푯말이 높게서있었고 입사를 즉석에서 할 수있었다.
난 전형료 4,000원 , 문제집 2,000 원 짜리 두개를 투자해서 서울택시운전기사증을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에서 발급받았다.
1997년 카센터하는 친구는 불황과 개인 불성실등의 이유로 카센터를 문닫게 되었다.
친구의 새직업은 회사 지입택시를 사서 2 교대로 영업을 하는것이었다.
1998년 추석날에는 택시가 영업을 안한다고 해서 내가 친구택시를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30분 정도 까지 영업하여 185,000 원 벌었다.
처음에 거스름돈 20, 000원 을 받아 택시 영업을 시작했다. 장안동에서 처음 출발했는데…
내차 앞도 빈 택시이고 내뒤도 빈택시, 왜이리도 택시가 많은지?
내 관점 에서는 택시손님들이 물고기로 보였다.
난 물고기를 잘잡는 기량있는 낚시꾼이 되어야 했다.
치열한 경쟁속에 처음으로 한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내릴 때 요금은 고작 1,300 원 정도,
다섯번 손님을 태우고 또 태웠지만
벌리는 돈은 10,000이 채 못되었다.
하지만 난 절대로 합승을하지 않았다.
택시운전해보면 1만원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근검 절약해야된다는 생각이 팍든다.
주위에서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 있으면 택시 운전 1달만해도 생활방식이 바뀔 수있다.
그리고 택시운전기사들이 몇백원같고 문제 삼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들은 메터의 백원단위를 카운트하는 사람들이다.
택시기사를 쪼잔하다고 하기전에 그들의 직업특성과 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도 낮과밤이 교호되어 주인이 바뀌듯 택시와 고객도 시간에 따라 주인이 서로 바뀐다.
예를들어 빈택시만 많이있고 손님이 드문 오전 10시경에는 손님이 주인이어서 서로
태우려고 택시들은 각축전을 벌인다. 이때는 손님이 주인이다.
하지만 밤 12시 넘어 종로에 두줄로 쭉 깔린 손님속을 택시운전하고 지나가봐라.
이때는 누가뭐래도 택시기사가 주인이다.
신림동에서 공항가는 가족 3명을 태웠다. 공항까지 10,000원 정도를 벌었다.
공항에서 줄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는 지금도 이해할수없고
내취향이 아니다. 다시 물고기가 있는 시내로 내뺐다.
다음에 명동 미도파앞 택시 승강장 앞에서 줄서서 기다렸더니
일본여자 한사람과 우리나라 여자 가이더가 짐을 싣고 다시
공항으로 가자해서 요금은 8,500 원 정도인데 팁을받아
10,000원을 받았다.
팁을 받았으니 난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어주고 인사까지 했다.
다음에는 석관동에서 분위기있고 어여쁜 아가씨 한분을 태웠다. 물론 뒷자석에
앉았다.
문래동까지 가자고했다. 난 운행코스를 물어보고 삼일고가를 타고 문래동으로
향했다. 요금은 13,500원 팁으로 1,500원 받았다.
아! 역시 예쁜것도 큰 에너지구나. 예쁜 여자가 역시 팁도 잘주는구나. 하고생각했다.
못생긴 여자한테는 100원도 팁을 못받았다. 아뭏튼 팁받아서 좋은날이었다.
회기동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학생과 여자학생이 내가모는 택시뒤에 탔다.
그런데 왠걸, 둘은 무지 무지 말싸움을 하다 택시를 탄 것이다.
그 피튀기는 분위기는 아무리 표현하려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
둘은 서로 눈을째리고 애증의관계,이기심,질투,원망, 상대에대한 허왕된 바람으로
가득차서 갑작기 택시안 분위기가 썰렁해서 나도 숨을 죽이고 듣던 라디오도
꺼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 애증으로 가득찬 커플은 외대앞에서 금방내렸다.
다시 택시안은 어떤 분위기의 영향도 받지 않은 중성화 된 공간으로 되었다.
다음에는 청계천 4가에서 make up 을 진하게한 야한 여자애(카페에 나가는 것같은
분위기) 를 오후 4시경에 태웠다.
가는곳은 돈암동 2,400원이 나왔다. 팁으로 600원을 받았다.
“야. 니들한테 내가 팁주었는데 니가 날 팁을줘.” 우스웠다.
저녁때 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향갔다 온듯싶은 baskin robbins 나이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내옆에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명보극장 가세요.
내게 이런저런 말을 시킨다. 그것도 내옆에서. 조잘 조잘대면서...
택시 운전이란 정말 공허하고 힘든직업이다.
누구나 타면 곧 내리고 .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오래전 쯤에부터 알았던 사람같이 서로 애기를 해도 내릴 때 쯤이면
언제 보았냐는듯 남이되는것이다.
인생에있어 여러사람들과의 여러 만남의 시작과 끝의 형상을 택시란
Craft 를 타서 단 수십분만에 인간의 만남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화장실도 제때 못가고 몇시간 정신없이 운전하면 입이 쩍쩍마른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연스레 내옆에 타고 내게 말도걸고 게다가 자기가 홍제동에서
카페하니 오면 맥주를 4,000원인데 3,000원에 DC 해주겠다고 명함까지 주었다.
이 여자는 운전에 힘들고 지쳐있는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된것같다.
어느덧 내릴때가 되어 정차하여 메터를 보았더니 7,500정도 나왔는데 5,000원만
받았다.
그아가씨는 10,000원을 주었는데 5,000원 거슬러 주었다.
그냥가세요 아가씨! 하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그 여자는 택시도 DC 해주나요? 어리둥절한 모습을보고 난 출발했다.
대부분 여자 손님들은 뒤좌석에 앉는데 난 내옆에 앉아준 그여자가 고마워서
DC 해준것인데 그 여자는 왜 DC 해주었는지 이유를 아는지,모르는지?
저녁8시쯤되었나 영등포역에서 한 젊은여자애가 택시를 탔다. 그 여자애도
내옆에탔다. 술냄새를 팍 풍기면서..
“아저씨. 추석에도 일하세요? (측은한듯이)
“저 청아 2병 마셨어요. 전 가리봉동에서 일해요.
집에도 못가서요. 친구하고 한잔하고 집으로 가는길이에요.
마음같아선 택시 팽개쳐 버리고 그 애하고 술한잔 하고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디또 그런가. 난 근무중이었고 그 애하고 술한잔해서 무엇 할것인가?
서로 교감이있는것도 아니고 공통분모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쉽지만 애이 그냥가자.
이 애한테는 내옆에 탔어도 요금을 DC 해주지 않았다.
퇴계로 대한극장 앞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철역 입구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나는 우측 깜빡이를켜고 차를 정차했다. 갑자기 짐보따리를 들은 세명이
전철역 지하도에서 나와 택시로 달려왔다.
한분은 그의 아내로보였고 중학생쯤되는 여자아이 그리고 국민학교 남자아이였다.
트렁크를 열어주어 그들은 그들의 짐을 실었다.
아마도 고향에 다녀와 부모님께서준 고추가루,기름 등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 같았다. 그 부부 부모님들의 정이 많아서인지 세 보따리를 아이들까지
짐을지웠다.
네식구로 택시는 가득했다.
얼마나 짐있는사람, 인원많은 사람들을 택시기사들이 안태워 줬으면 숨기기 까지할까?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가는곳은 옥수동 산꼭대기 달동네. 도로에서 산길로 족히 3Km는 갔다.
그것도 일방통행로이어서 꼬불꼬불하고 돌아 나가는길도 잘 몰랐다.
그 남자는 내게 500원을 더주었다. 난 안받겠다고 다시주었지만 굳이 뒷자석에다
놓고 내리고는 머리굽혀 내게 인사를했다.
“고맙습니다”
이들이 평상시 택시나 타고다닐까?
짐과 가족 때문에 택시를 탔는데 택시운전기사들이 얼마나 이들 마음을
아프게 했으면 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그럽게 고맙게 느낄까?
이 가족이 지금은 어디서 무었을하는지 몰라도 잘살길 바라는마음이다.
우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도우려한다.
소년,소녀가장, 양로원, 불우이웃 등등
이들도 우리는 사랑하고 아껴줘야한다.
우리주변에 아니면 우리의 생활속에서도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있다.
예를들어 다팔아야 5,000원도 되지 않는 재래시장에 혼자 앉아서 야채파는
할머님들.
소년,소녀 가장은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안주고 아름답게 살고있는 가난한 부부들
우리는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것도 사랑인 것 같다.
들어갈 시간이되서 화양리 Gas station 에서 충전하고 그 옆에있는 2,000원 짜리 국수를 점심겸 저녁겸 먹고 친구 집으로 갔다.
Gas 비를 제하고 거스름돈 20,000을 합해 친구에게 205,000원을 주었더니 내게 다시 90,000원을 주는 것이 아닌가?
난 받지 않고 다 주었다. 그 친구는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 였다. 난 내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서민 경제의 지표를 택시가 줄을 서는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93년도 무렵 야간 단속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려면 택시 잡기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합승을 하기도 힘들었고, IMF 때와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느라고 줄서 있는 택시들... 현재는 동대문 대형쇼핑몰을 담당하는데 항상 그 앞과 주변에 택시들이 1개차로를 점령한 채 줄을 서있지요. 그래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