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26(3)]매천 황현과 구례의 왕씨 4부자
스승이 없이 독학자습으로 학문의 일가(一家)를 이루는 일은 천고에 흔치 않은 일. 플라톤에게는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플라톤이 있었다. 지난해 9월 라파엘로가 그린 르네상스시대 불후의 명작 <아테네학당>(바티관박물관)을 실제로 보며, 오래 감상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예로부터 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을 것인가. 스승은 아버지와 같다고 했다. 한말에 우뚝선 문장가이자 애국지사인 매천에게 어찌 참스승이 없었겠는가. 태어나기는 광양(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8살? 11살?) 구례의 큰학자 천사(川社) 왕석보(王錫輔. 1816-1868)와 왕사각 부자(父子)에게서 한문을 배웠다. 장성하여 아예 구례에서 순절했으니 ‘구례인’이라 해도 될 터. 스승의 두 아들 왕사천 왕사찬과도 평생 문우(文友)로 지냈으니, 매천과 ‘왕씨 4부자’의 깊은 인연은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일이다.
최근 시문집 『개성가고』(원제 開城家稿, 지은이 왕씨 4부자의 시문집, 구례향토문화연구회 간행, 박완식 옮김, 박소동 교열, 원문 포함 462쪽)를 고향 구례에서 향토사 자료를 연구하며 한학 강좌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박소동 선생으로부터 선물받고 황감해 하며, 이들 왕씨 4부자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됐다. 매천의 스승인 왕씨부자는 특출난 재능을 갖고서도 당시 과거시험의 부정부패에 질려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평생을 은일(隱逸)한 학자였다. 두 아들 역시 시에 뛰어나고 지조있는 불운한 선비들로 문장으로써 호남에 이름을 날렸다. 『개성가고』 원본이 중국에서 『매천집』을 펴낸 매천의 친구 김택영의 주선으로 1913년 세상에 나왔으니 왕석보 사후 45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개성가고』의 국역본은 113년만에 처음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하겠다. 왕석보의 손자이자 사각의 아들 수환이 네 분의 시문을 모아 국경을 넘어 펴낸 것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모두 유실돼 버렸을까. 훌륭한 일을 한 손자이자 아들이다.
수환은 동생 경환과 함께 아버지의 제자인 매천에게서 시를 배웠다. 수환은 1908년 매천의 뜻을 받들어 최초의 민립학교 ‘호양학교’의 교장을 지내며 민족자강을 주장하고 실천했다. 또한 수환의 양자인 경환의 아들 재일(1904-1961)은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 투옥된 애국지사로 1991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왕석보의 7대조 득인(1556-1597)이 정유재란때 호남의 관문 석주관을 지키다 순직한 '7의사'였으니, 지천리 천변마을의 왕씨는 대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이다.
『개성가고』는 4권 1책으로, 왕석보 23수, 왕사각 36수, 왕사천 12수, 왕사찬 220수 등 4부자의 한시 288수가 실려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몇 배 더 많은 시 가운데 김택영이 선정했다고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듯, 세 아들 역시 빼어났으나 특히 4남의 시가 훌륭했으니 하늘이 이들을 내지 않고서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 시문집의 해제를 쓴 박소동 선생은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간 당시 지방 지식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호남 시문학의 맥을 다시 세운 원류로 번역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매천의 삶을 추적하다보면 고비마다 만나게 되는 왕씨 4부자와의 세연(世緣)은 우리로 하여금 사제(師弟)간의 의리가 무엇인지를 곰씹게 만든다.
중국 송나라때 ‘3소’(三蘇)가 있었고, 우리 근대사에도 ‘3변’(三卞)이 있었다 하지만, 구한말 전라도의 조그만 구례읍에서 살다간 문장가 왕씨 4부자는 가히 한국의 ‘4왕’(四王)이라고 하겠다. 3소는 ‘당송 8대가’로 이름을 떨친 문장가 소순(아버지)과 ‘적벽가’를 지은 소식(소동파)과 소철을 지칭하며, 3변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해 활약한 변영만(천재 한학자) 변영태(외교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청백리 정치인) 변영로(주당으로 유명하고 ‘논개’를 쓴 시인) 3형제로, 학식과 기개가 남달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