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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i Opera 'Il Trovatore' Collection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 곡모음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 |
↓ 대장간 무쇠를 두들기는 장면이 신나네요.
이 곡은 베르디(1813~1901)가 구티엘러스 의 희곡 '트로바토레' 를 각색한 대본으로 작곡하여 1853년 1월에 로마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인 '일 트로바토레' 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트로바토레는 유럽 중세의 음유시인을 일컬으며 15세기 초 스페인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숙명적인 싸움과 집시의 복수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레오노라'라는 여자를 둘러싸고 기묘한 운명으로 인생이 엇갈린 두 형제, 루나 백작과 만리코가 벌이는 대립을 축으로 어두운 음모와 복수가 소용돌이치는 오페라입니다. 이 합창곡은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뒤지지 않는 베르디의 합창곡인데, 만리코의 어머니로 행세하는 집시 노파인 아주체나의 부하들인 집시들이 부르는 합창입니다. 이 합창곡의 분위기는 시종 박력에 차있으며, 흥겨운 곡입니다. 중세 유럽에는 음유시인 또는 유량가객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처없이 방량하며 멋진 노래를 짖거나 부르고 다녔습니다. 그들의 노래들은 지금도 전해지며 중세문학의 주요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무술도 뛰어나서 훌륭한 기사 이기도 합니다. 지성을 갖추고 풍류를 아는 멋진 사나이들 이라고나 할까, 로시난테를 타고 유량하는 돈키호테와 비슷한 기사도 정신이 강한 사람 일련지... 아무튼 그들은 신분과 관계없이 기사 계급에 준 하는 대우를 받았으며, 평시에는 지역 영주들에게 극진한 손님 예우를 받았고 전시에는 용병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우기도 한답니다. 유럽의 지방도시에서 벌어지는 전국 노래자랑, 또는 무술대회에서 우숭하면 영웅 대접을 받기도 한다지요. 게다가 외모마져 멋있는 음유시인은 성안의 아름다운 처녀들의 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음유시인을 이탈리아어로 트로바토레trovatore)라고 합니다.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이 음유시인을 주인공으로하여 만든 사랑과 복수의 무용담 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오페라의 하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 랑을 얻고있는 명작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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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에 항거하는 민중의 전쟁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현실성이 없는 사건들이 얽히고 설킨
매우 통속적인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음악에 있습니다.
아주 쉽고 대중적이면서도
귀에 착착 달라붙는 멜로디가
줄줄이 이어 나옵니다.
'일 트로바토레'의 힘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중세 스페인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음유시인 또는
유랑 가객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탈리아 어로 그렇게 부르고,
스페인 어로는 엘 트로바토르,
'일', '엘', 이라는 정관사를 빼고
음악사 책에는
'트루바토르'라고 나오지요.
중세 음악을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취급되는 사람들입니다.
중세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시대에
음악활동이 활발할 수 없었겠지요.
음악하면 교회에나 가야 듣는 것,
그리고 장바닥에서 만날 수 있는
거친 형태의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 때에 땅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주로 기사 계급의 사람들이
떠돌아 다니면서
시와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것이고,
그 노래들이 이른바
세속음악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 오페라는
중세 스페인을 무대로 하고,
유랑가객을 주인공으로 하여
펼쳐집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만리코입니다.
그는 기사입니다.
젊은 기사들의 무술 시합,
많이 나오는 이야기지요.
무명의 기사였을 때
만리코는 어느 무술 시합에서
우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귀부인에게서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내란이 일어나고
두사람은 서로 반대편 진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니죠. 만날 수는 있지요.
목숨을 걸고
적진 깊이 숨어 들어갈
용기가 있다면요.
우리의 주인공 만리코는
그런 사내입니다.
만리코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은
'레오노라,
지금은 적이 된 아라곤 왕국의
궁에 있는 여자입니다.
글쎄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체가 높은 궁녀쯤 되겠지요.
그러니까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적군의 심장부,
바로 왕궁 안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레오노라를 사랑하는
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는 사람,
백작입니다. 루나 백작.
중세에 백작쯤 되는 귀족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권력을 행사했는지,
사실 우리로서는
짐작이 도지 않는 일입니다.
그들은 영주였습니다.
즉,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스리는 지역의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겠지만,
대부분은 잔인한 폭군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 루나 백작의 가문에서도
여러 가지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오페라와 직접 연관이 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집시 여자가
백작의 아들이 예뻐서
잠시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그 아기가 병이 들었다...
백작은 집시가 악령을 불어 넣어
아기가 아프다고 해서
그 여자를 잡아다가
고문하고, 불태워 죽여 버렸다.
그런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백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권력을 가진 백작과...
만리코와...
레오노라와의 삼각관계...
자, 1막을 볼까요?
중세 스페인을 무대로 한
백작과 만리코, 레오노라의 삼각관계
서곡도 없이 막바로 막이 오릅니다.
캄캄한 밤.
군인들이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왜냐? 그들의 주인인 백작이
오늘밤 레오노라의 창문을
밤새 지키기 때문입니다.
레오노라에게
밤에 애인이 찾아 올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때면
백작은 이와 같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밤샘 지키기를 하는 것이 빈번하다.
얼마나 고약한 자인지 알 수 있지요.
군인들은 백작가문의
끔찍한 이야기를 합니다.
좀전에 이야기했던
화형당한 집시여인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화형을 시키긴 시켰는데,
보니까 백작의 아들이 없어졌더라,
그런데 화형장을 치우면서 보니까
죽인 집시 여인의 뼈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의 뼈도 함께 나오더라...
그러니 집시의 딸이
백작의 아이를 훔쳐다가
죽인 게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
끔찍한 복수의 이야기지요.
장면이 바뀌면,
궁안의 정원입니다.
레오노라가 시녀와 함께
애인을 기다리면서
그이를 사랑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오늘 밤도 못오시는 모양이야...
두 여인은 궁으로 들어갑니다.
밤새어 지키고 있는 루나 백작.
그런데 이때 유랑가객의
노랫 소리가 들려옵니다.
뛰어 나오는 레오노라.
세 사람이 부딪칩니다.
격렬한 음악,
만리코의 신분이 드러납니다.
적군의 장수,
부하들을 불러
잡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을 놓고 다투는 사이에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수치,
두 사람은 칼을 뽑아 들고
결투를 하기 위해 뛰어나갑니다.
여기까지가 1막입니다.
잡담 제하고 본론으로 뛰어들어가 숨쉴 틈도 없이 이야기를 몰고 갑니다. 우리도 막바로 2막의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산속, 집시들의 거처. 새벽. 집시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대장간의 합창 (Anvil Chorus)", 무기를 벼르는 노래입니다. 전쟁에서 부상한 만리코가 여기서 요양하고 있습니다. 이게 거의 회복단계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그 만리코를 돌보고 있습니다. 아주체나는 불꽃의 노래를 부릅니다. 어머니가 화형당한 이야기, 그리고 "복수, 복수"를 부탁하던 어머니의 음성. 만리코는 아주체나에게 더 확실한 이야기를 부탁합니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 대목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체나는 불타 죽은 집시 여인의 딸이었습니다. 갓난 아기를 둔 젊은 엄마였지요. 군인들이 잔혹한 미소를 띄우며 어머니를 창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장작 더미위로 몰고 가 기둥에 몸을 묶고... 그리고는 마침내 그 장작더미가 불길에 휩싸이며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마지막 음성 "복수해 다오, 복수..."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백작의 저택으로 숨어들어가 백작의 두 아들 중에서 한 아기를 훔쳐 가지고 나옵니다. 화형장에 다시 돌아와 보니 아직 불길이 이글거리고 매캐한 연기가 뒤덮여 이쓴데, 아, 이 아기를 어떻게 저 불 속에 던지나... 하지만 또다시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음성이 들려오고...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잡아 불길 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백작의 아기가 쌔근쌔근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니, 이럴 수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가 저 불 속에 던져 넣은 아기는, 바로 내 아기가 아닌가? 그래 그 아이였어. 아니 이럴수가...
자, 아주체나는 이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럼 그 백작의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주체나가 그 아이까지 죽일 수 있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는 없었겠지요. 한꺼번에 두 아기를 불 속에 던져 넣을 수 있는 심장은 없지요. 그 아기를 키웁니다. 이 원수의 아기, 그렇지만 키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자식처럼, 남들 보기에도 내 자식처럼 키워야 했습니다. 아, 그 일이 이 가련한 여인에게 얼마나 한없는 고통이었을까요?
그런 고통을 20여년 견뎌내면서 그 아기를 어엿한, 사내다운 사내로 길러 냈을때, 그 여인의 정신이 온전할 수 있을까요? 아주체나는 지금 미친 여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신이 아주 헷갈리는 정도까지는 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아들은 당연히 묻습니다. 그럼 난 누구죠?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가요?
어머니는 순간 진실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냐, 그게 아니고, ... 내가 널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면서 키운 거 네가 모르겠니?... 이러면서 얼버무립니다. (오페라니까 이렇게 얼버무미고 넘어갈 수 있지, 실제로야 아들이 그 정도 이야기 들었으면 모든 것 다 알아버리겠지요.) 그런데... 만리코야, 너 그 때 백작과 결투했을 때, 다 이겨 놓고 왜 죽여버리지 않았던거니? 만리코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때, 땅에 쓰러진 백작을 향해 칼을 높이 쳐 들었을 때,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왔어요. 치지 말아, 치지 말아... 하고.
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적군의 대장이 내 칼 아래 누워 있는데, 장수로서 그 자를 살려 준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요? 장수로서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여기는 전쟁터니까요. 무자비하게 찔러 죽여야 했겠지요. 그런데 그게 안되었던 것입니다. 신비지요. 물론 이쯤 이야기의 내막을 알고 있는 우리는 짐작할 겁니다. 그게 바로 혈육의 신비라고요...
전령이 도착합니다. 전략상의 중요 거점. "카스벨" 성을 함락시켰음, 즉시 그 곳의 책임 대장으로 부임할 것... 또 하나, 이건 개인적인 소식인데, 레오노라가 오늘 밤 수녀원으로 들어간다고 함. 지난 번 전투에서 만리코가 전사한 줄 알기 때문에... 이 두번째 소식이 만리코에게는 충격입니다. 곧 서둘러 출발하려고 합니다. 아직 몸도 온전치 못한데... 어머니의 호소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붙잡고 매달리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만리코는 폭풍처럼 휘몰아쳐 갑니다.
다음 장면은 수녀원 앞, 밤. 백작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옵니다. 레오노라가 수녀원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아예 힘으로 납치해 버릴 속셈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야욕, 하지만 신성한 종교의 계율까지 무시하는 이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됩니다.
레오노라 일행이 들어 옵니다. 경건한 찬송 소리와 함께 여러 수녀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 귀부인이 영영 속세와 인연을 끊는 의식이 진행되려 합니다. 느닷없이 들이 닥치는 시커먼 남자들. 큰 동요가 일어나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사내들의 일당이 그들을 급습합니다. 이럴 때는 병력의 우열이 판가름 내 주지 않죠. 어느 쪽이 상대의 의표를 찌렀는가가 승패를 결정합니다. 당연히 만리코 일행이 사태를 장악합니다.
레오노라에게 이것은 얼마나 큰 놀라움이겠습니까? 자신의 신앙의 결단까지 폭력으로 뒤엎어버리는 이 야수같은 남자의 손에 떨어지려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그것도 꼭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그이에게서 나오다니, 그야말로 지옥에서 한순간에 천국으로 인도된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기적의 순간이지요. 백작의 눈에서는 불이 나겠지요. 아니 독기가 뿜어져 나오겠지요. 그토록 야욕을 불태워 온 여인이 바로 코 앞에서 다른 남자의 품으로 넘어가다니... 하지만 어떡합니까? 기선을 제압당해 버렸는데요. 백작은 만리코가 레오노라와 함께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이를 갈며 바라볼 수밖에 없지요. 전 4막 중에서 여기까지가 2막입니다. 자, 숨좀 돌려 볼까요?
얽히고 설킨 현실성 엇는 사건들, 절묘하게 처리된 음악
이런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엎치락 뒤치락 복잡하지요? 정신이 없습니까? 복잡한 건 또 그렇다 치고, 이게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일까요? 원수의 아기 대신 자기 아기를 불태워 죽였다? 원수를 죽이려는데, 어떤 신비한 소리가 들려 죽이지 못했다? 수녀원에 들어가려는 바로 그 장소, 그 시각에 두 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있음직하지 않은 일들이지요. 물론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닐테지만요. 이런 사건들, 실제로는 일어나기 극히 어려운 상황들이 앞으로 3막, 4막에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오페라는 이와 같이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 "일 트로바로레"는 가장 대표적으로 있음직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비양거림을 받는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초연되었던 1853년부터 지금까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물론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곧 작품이 좋다는 증거는 아니겠지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텔레비젼에서 연속극을 보더라도, 이상하게 비정상적인 삼각관계, 사각관계를 만들어 놓고, 이야기의 흐름을 요리 배틀, 조리 배틀 이끌고 나가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있음직하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런걸 덮어놓고 들여다 봅니다. 대게 그런 작품들을 "통속적이다" 이렇게 말하지요. 그래서 시청률이 높고 인기가 있어도 사람들은 으례 그런 프로를 약간 얕잡아 보려고 합니다. 그저 흥미 위주로만 끌고 가려고 하지 뭔가 전해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자, 이 "일 트로바토레",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통속적이고, 고상하지 못하고, 질이 낮은... 과연 그럴까요? 이 작품의 인기를 끄는 이유 또 하나. 음악이 아주 쉽고 대중적이고 귀에 착착 달라 붙는 멜로디가 줄줄이 이어 나온다는 겁니다. "일 트로바토레"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멜로디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가 계속 나온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극의 내용과 관계없는,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극을 보면서 음악을 듣는데, 그때 그 음악이 계속해서 귀에 착착 붙으려면 극의 내용과 음악이 딱 들어 맞는 경우가 아니면 안됩니다. 즉, 극의 내용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극의 감상에 방해가 될터이고, 그래서 극에 집중하려는 사람에게는 그 음악이 귀에 거슬리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극의 내용에 꼭 들어맞을 때 비로소 음악은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일텐데, 이 "일 트로바토레"의 경우 저와 같이 복잡다단한 이야기. 그 여러가지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음악으로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줄거리가 그렇게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음악에 빠져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샘하는 백작 부하들의 공포가 음악으로 너무도 잘 표현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을 못 알아 들어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고, 밤 중에 오기 어려운 애인을 안타깝게 기다리는 레오노라의 심정이, 서로 원수가 되어있는 만리코와 백작이 레오노라를 두고 또 다시 격돌할 때의 저 치열함이, 화형당한 어머니에 대한 아직도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 아주체나의 저 참혹한 기억이, 원수를 발 아래 두고 죽이지 못했을 때의 만리코의 저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비열한 수단인 줄 알면서도 기어이 레오노라를 차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백작의 심정이, 그리고 지옥에서 한 순간에 천당으로 들어 올려진 것 같은 레오노라의 놀라움과 감격이 음악으로 너무도 잘 포착되어 있어서, 적어도 이 오페라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 줄거리의 문제가 별로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2막까지에 나오는 많은 주옥같은 음악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꼭 한 곡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지요. 바로 2막 처음에 나오는 집시들의 합창, "대장간의 합창"입니다. 아주 유명한 곡이죠. 가사를 좀 읽어 볼까요?
"아, 안돼요!"
"보아라, 하늘에 햇살이 비치면서 어둡던 밤이 물러간다.
남편 잃은 여인의 슬픔이 날이 끝나 상복을 벗어 버리려는 것 같다.
자, 일이다, 일,
쇠망치를 다오,
우리 떠돌이 집시를 누가 흥겹게 해 줄까?
누가? 누가?
그야 집시 여자 뿐이지!
술을 따라라
힘과 용기를 내자.
보아라, 햇살이 술잔에 비쳐 반짝인다.
자, 일이다, 일,
우리 떠돌이 집시를 누가 흥겹게 해 줄까?
누가? 누가?
그야 집시 여자 뿐이지!"
집시들의 유쾌하고 자유 분방한 생활이 머리속에 그려지십니까? 그런데 잠시 생각 좀 해 봅시다. 아까 우리는 집시 여인이 스페인에서 얼마나 가혹한 운명에 처해 있는지 보았습니다. 어린애를 그냥 들여다 본 것이 오해를 받아 화형을 당하는 정도... 집시족이라면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이렇듯 가혹하게 취급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이렇게 즐거울까요?
지금은 내란 중입니다. 이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 우리는 오페라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확살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 전쟁은 한 나라와 다른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지배세력이 각각의 권력을 더 확장시키기 위한 전쟁도 아닙니다. 이 전쟁은 루나 백작으로 대표되는 광포한 권력에 대해 광범위한 항거가 이루어지는 전쟁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관국과 반군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집시족이라는 피압박 민족이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고, 집시의 거처가 전사들의 피신처이자 무기제작, 보급소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장간의 합창"은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의 위협, 긴장, 초조, 이런 것이 장면을 지배할 것 같은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들은 왜 이렇게 마냥 즐겁기만 합니까? 가사를 다시 읽어 봅시다. 과부의 슬픔이 끈나가려는 새 아침, 치켜든 술잔에 햇살이 영롱하게 비치는 아침, 우리는 밤새껏 일하고 이 아침을 맞는다. 일이다, 일, 칼 한자루, 창 한자루라도 더 벼른다. 망치를 다오, 띵, 똥, 띵, 똥... 힘이 솟는 것이지요. 본래 집시족은 여간해서는 노동을 않고 산다고 합니다. 그런 족속이 이렇게 희망에 차서 일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을 때, 작곡가 베르디는 이와같이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합창곡을 그들에게 선사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이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냐를 아는 것은 작품 전체를 아는데 아주 긴요한 요소가 됩니다. 이쯤해서 3막을 보도록 하지요.
만리코의 체포와 죽음까지도 바치는 레오노라의 지순한 사랑
3막은 일단 밝게 시작합니다.
이 오페라 전체가 밤이나 새벽, 그런 시간에 일어나는 일이나는 일이라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인데, 3막은 대낮인 것입니다. 백작의 군인들이 노름을 하고 있습니다. 전투를 앞둔 군인들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는 일이지요. 만리코가 점령하고 있는 카스텔 성이 보입니다. 지금 그들은 카스텔 성을 포위하고 있으며, 내일 아침에는 총공격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집시 여인을 잡아 백작에게 데려옵니다. 전쟁터를 배회하고 있으니 수상했겠지요. 바로 아주체나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정신이 약간 온전치 못한 아주체나는 떠나간 아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고 있던 참입니다. 어쩌면 카스텔 성에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릅지요. 신문과정에서 백작의 부하 한 사람이 아주체나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20여년 전 백작의 아기를 훔쳐갔던 바로 그 집시라는 것을요. (20여년전 얼핏 본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무튼 이렇게 되어 아주체나는 체로되어 묶이는데, 아주체나는 "만리코야, 날 살려다오."라고 소리칩니다. (카스텔 성이 아무리 가깝다해도 그렇게 소리쳐서 들릴 수가 있을까요?) 뭐라고? 만리코의 에미라고? 그거 잘됐다. 이 여자를 이용해 복수해야지. 아주체나는 끌려 갑니다.
장면이 바뀌면, 카스텔 성입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 만리코와 레오노라의 시간입니다. 그토록 서로 갈망했던 두 사람만의 시간, 얼마나 가슴이 벅차겠습니까. 성 밖에는 폭군이 공격할 채비를 차리는 것이 뻔히 보이고, 곧 막강한 병력으로 쳐들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성을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그들만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을 받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풍금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은 경건히 손을 맞잡고 예배실로 가서 부부가 되는 의식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숨을 헐떡이며 부하가 뛰어들어 옵니다. 저 성 아래를 내려다보시오. 어머니가 끌려가는 것이 보입니다. 한쪽에는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기둥을 세워놓았습니다. 화형! 그렇습니다. 그토록 어머니가 몸서리쳐 하던 그 화형을 당하려 끌려가고 있습니다. 아, 한시라도 늦출 수 없어, 전병력을 동원해서 구해와야지. 이렇게 되었는데, 젊은 애인을 돌보고 있을 수는 없지요. 레오노라를 뒤에 남기고 만리코는 모든 걸 걸고 성밖으로 뛰어 나갑니다.
4막. 또다시 밤입니다.
깊은 밤, 높은 탑이 보이는 성 밖, 레오노라가 조심스럽게 들어 옵니다. 저 안에 갇혀 있는 그분, 그분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보겠다고 온 것입니다. 여자로서 얼마나 야무진 생각인지요. 더구나 애인을 감옥에 가둔 장본인이 저 광폭한 루나 백작인데요... 성안에서 나지막한 성가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낮게 깔려옵니다. 세상을 떠날 사람의 영을 위로하는 노래 소리... 아, 그이를 죽이려는가? 레오노라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이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 때 말이죠, 그 찬송 소리를 타고 그이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밤에 날 찾아올때면 불러주던 그 이의 노랫소리, 그런데 지금의 노래는 나에게 지상에서의 이별을 고하는 내용입니다. 밤하늘에 두 애인의 안타까운 아픔이 퍼집니다. 백작이 나타납니다. 사실은 카스텔로 전투에서 백작은 크게 이기고, 만리코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더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레오노라는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쟁판, 내가 점령한 성안에서 꼭 어딘가 있어야할 레오노라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런데 그 레오노라가 제발로 걸어서 지금 백작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게 왠일일까요?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가 여기 나타난 것은 나의 적, 만리코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되지, 그건 안되지. 여자는 절망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지만, 그럴수록 백작의 미워하는 마음은 더 키지기만 합니다. 그럴줄 알지만, 그러면... 레오노라는 그 이를 살려주는 댓가로... 나를 그대에게 바친다고 선고합니다. 백작은 레오노라가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백작은 얼른 마음을 정합니다. 만리코를 놓아주기로 합니다. 그 결정을 부하에게 전달하는 순간, 레오노라는 준비했던 독약을 마십니다. 손에 끼고 있던 반지에 독약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지요. 그리고는 중얼거립니다.
내 몸뚱일 차지하렴, 차갑게 식은 후에."
이제 백작과 레오노라는 둘 다 기쁩니다. 한 사람은 마침내 원하던 여자를 차지하게 되어서, 다른 사람은 마침내 그이를 살려낼 수 있게 되어서...
만리코의 죽음이 과연 민중의 복수일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입니다. 성안입니다.
만리코와 어머니가 갇혀 있습니다. 죽음을 앞 둔 마지막 밤, 두 사람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벌써 여러차레 불태워 죽이는 현장을 보았고, 거의 자신이 당할 뻔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정말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섭습니다. 끔찍합니다. 만리코는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러 온 힘을 다합니다. 두 사람은 산에서 지냈던 안온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서로에게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어머니는 어렵사리 잠이 듭니다.
그런데..., 아니 레오노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구하러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곧 떠나라는 겁니다. 나 혼자서? 당신은? 그게 무슨 소리요?... 그렇구나, 알겠소. 그 녀석에게 몸을 팔았구나... 아 더럽다...
레오노라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이 남자를 도망치게 만드는 것인데..., 내 몸안의 독약이 듣기 전에 떠나도록 만드는 것인데..., 아, 그게 되지 않습니다. 남자가 저런 오해를 하게 되었으니... 기운이 떨어져 갑니다. 죽음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갑니다. 손은 얼음처럼 차지는데, 가슴 속은 불을 삼킨 듯 뜨거워집니다.
당신 없이 사느니 죽기를 원했던 거예요. 만리코는 그때서야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아, 그런 당신을 저주했다니... 두 사람의 아픈 마음이 교차하는데... 백작이 들어옵니다. 그는 모든 사태를 깨달았습니다. 레오노라가 그렇게 애인품에서 죽은 것을 보지요.
저 자를 끌어내! 목을 쳐!
아주체나가 깨어나며 아들을 찼습니다. 봐라! 네 아들 죽었다!
이 때 아주체나는 소리칩니다. 그는 네 동생이다. 뭐라고?
어머니 복수 이루었다!! 소리치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군요. 계속 당하는 사람들, 당하지 않으려고 무기를 들고 일어나 보지만, 또 이렇게 당하는 군요. 어리석어서? 자기 성깔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게 계속 당해야 하는 삶 속에서, 아주체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나마 복수를 해냅니다. 원수로 하여금 자기의 친동생을 죽이게 하는 방법으로... 하지만 그게 진정 복수가 된 걸까요?
그렇긴 하지요. 애초에 지금 죽은 만리코가 애기였을 때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불에 던져 넣으려했던 것이니까요... 이 아주체나라는 인물, 수수께끼 같지 않습니까? 화형을 그토록 무서워하기도 한 평범한 여인인 것 같기고 하고, 무서운 복수광인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너를 모성애를 가진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주책바가지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렇게 오페라의 막이 내렸을 때 이 수수께끼 같은 여인의 모습이 오래 우리 머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급하게 급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그래도 이 인물의 사연과 고통은 우리에게 충실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좋은 경험이구요. 그런 경험을 제공해 주는 작품. 좋은 작품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렇다고 만리코, 루나 백작, 레오노라, 이런 인물들이 "사람"으로서 이와같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주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특히 베르디 중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기세가 한번 크게 꺽인 후에 나왔다고 하지요. 베르디도 모든 것을 보다 신중하게,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와 같이 "사람"에 대한 통찰력과 표현력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하겠지요. 폭군에 항거하는 민중의 전쟁이라는 내용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런 베르디의 "성숙"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일 트로바토레"에서 베르디의 넘쳐흐르는 힘을 만납니다. 그리고 베르디가 독일과 통일을 이루어내야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이 "넘쳐흐르는 힘". 기세였습니다.
3막, 어머니가 화형대로 가는 것을 내려다 보며 만리코가 부르짖는 노래.
"저 장작더미에 피어오를 불,
내 온몸을 떨게 한다.
무자비한 폭군아, 조금만 기다려라
너의 피로 이 칼을 적시겠다.
(레오노라에게)
나는 그대 남편이기에 앞서
저분의 아들이요.
그대가 괴롭다고 하여
날 가로막지 말아주오.
오, 불쌍한 어머니,
구하러 달려갑니다.
못 구하면 같이 죽기라도 하렵니다.
칼을 들어라!!"
싸움의 승패를 떠나서 이렇게 온몸으로 부르짖으며 온몸으로 부대껴가는 힘과 정신. 그것이 한풀 크게 꺽인 이탈리아 애국세력에게 베르디가 전해주고 싶은 것 이었을지 모릅니다.
Jussi Bjorling(유시 비욜링)
( 1911 ~ 1960.9.9 )
1911년 스웨덴 출생으로
음악가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크의
각 오페라를 레퍼터리로 삼아,
단정한 미성을 구성한
그 격조 높은 노래로
오페라 팬을 매료시켰지요.
타고난 음색과 노래 만으로
타계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유시 비욜링...
당신의 목소리는 떨어지지 않고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과도 같습니다...
유시 비욜링이 간직하고 있던
팬레터의 한구절 입니다.
존 바에즈는 2004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유시 비욜링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난 그의 발에 입을 맞출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오페라 La boheme(라보엠) 가운데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손)
유시 비욜링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 한적이 있다고 하지요.
유시 비욜링 앞에서
자신은 아주 평범한 인간일뿐이다...
라고 하면서 그의 역량을
신에게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 하지만
동시에 우수가 담겨져 있습니다.
미세하고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감정을 배가 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을 폭발 시키지 않았다고 하죠.
이탈리아 테너들이
끓어 오르는 감정을
목청껏 표출했던 것에 비해
그는 북유럽 출신 답게
감정을 절제 할줄 알았습니다.
기교와 과장을 싫어했기 때문에
종종 연기가 무뚝뚝하고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는 감정은 연기가 아닌
노래에 담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 흐르는 눈물)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제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
두가지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는 게으름이었습니다.
그는 공연 십분전에 도착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고
레파토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몇십년간 고정된 프로그램만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메트로폴리탄 활동이
바빴다 해도
오페라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무대를 도외시 했고
이탈리아어 공부에도 열중하지 않아
이탈리아어 발음에도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게으름보다
그를 더욱 위태롭게 한 건
알콜 의존증이었죠.
모든 테너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자기 만의 해소법이 있었는데
코렐리는 그것이 신경질이었고
파바로티는 폭식이었으며
비욜링은 폭음이라는
최악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960년 9월 9일...
그가 만 50살도 되기 전에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이유도
거의 중독증상에 가까운
알콜중독증 때문 이었다고 합니다.
스테레오 녹음을 바로 앞두고
예기치 못하게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던져준 꽃을)
주인공 호세가 부르는 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