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들어 첫 옥수수를 땄다.
몇 해에 걸처 옥수수를 심으며 봄에는 언제 싹이 트나 조바심하고
싹이 트면 또 언제 크나 기다렸다.
이제는 덤덤하기도 하련만 내 손으로 심은 씨앗이 싹튼다는 사실이
지금도 그저 신기하기만 하고,
그 싹이란 어찌 그리 이쁜지...
이웃영감님은 그 모습을 보고는 해마다 봄이면 되풀이한다.
“허허, 심었으면 나는게지 뭐가 그리도 신기할꼬...”
해마다 옥수수가 익을 무렵이면 오늘이면 딸까
내일이면 어떨까 만지작하다가는,
더 기다리지 못 하고 채 여물기도 전에 따서는 삶는다.
무릇 옥수수란 적당히 여물어야 맛있거늘 그 며칠을 못 참아
성급하게도 풋내나는 옥수수를 따서 찐다.
금년에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참았다.
태풍이 지나고 열흘 남짓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니 수염도 잘 말랐고
만져보는 손 끝에 단단한 알이 잡힌다.
한 솥 그득 쪄서는 들고나며 하나씩 뜯으니 일년을 기다린 보람이라
입 안을 감도는 향은 그윽하고 점심일랑 생각없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로 더운 날이라 하건만 아침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언듯 가을이 벌써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성급한 코스모스는 희고 빨간 꽃을 피웠다.
옥수수밭 위로는 고추잠자리가 종일 맴돌고
애호박일 때 미처 따지 못 한 호박은 늙어간다.
여름이 물러가기란 아직도 이르기만 한데
정선은 벌써 가을을 맞이한다.
그러고보니 절기로도 머지 않아 입추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기로 축제가 제격이라
여기저기에서 작고 큰 축제가 연일 이어진다.
오대천 맑은 물이 숙암계곡을 돌고돌아 조양강과 합류하는 강변에 인형박물관이 있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인형극으로 밤을 보낸다.
가끔 어린이방송에서 움직이는 인형극을 볼 수 있으나 실제로 봄은 처음이라
어른의 눈에도 신기하고 산뜻하다.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멋진 모습을 궁벽진 산촌에서 볼 수 있음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고,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 할 추억이 되겠다.
또한, 아우라지에서는 해마다 뗏목축제를 연다.
경복궁을 재건하고자 강원 산간의 좋은 소나무를 벌목하여 뗏목을 만들고는
그 뗏목을 한양으로 끌고 가서 목재로 썼으니,
그 후로도 육십년 대까지 아라리와 함께 뗏목은 아우라지에서 떠났다.
주말을 맞아 벌어진 축제에서 뗏목은 새로이 만들어지고
열창하는 정선아리랑으로 여름밤은 깊어가는데,
강바람에 능수버들은 한들거리고 나룻배는 오르내린다.
정선을 벗어나 사북, 고한을 지나면 태백준령 험한 산이 나타나니 이른 바 백두대간이라
길목의 정암사에서는 수마노탑이 의연하다.
정암사를 둘러보고 다시 오르면 오래 전의 탄광마을 만항마을이 나온다.
해발고도로 1,100메터에 위치하니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마을이 아닌가 하나
탄광이 문을 닫고는 모두 떠나 빈 집만 즐비하여 스산하기도 하다.
그 스산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빈 집의 담벼락에는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져있어
지금은 그림만으로도 보고 싶은 마을이 되었고,
뒷산인 함백산의 야생화 군락은 잊혀져가던 마을을 되살려준다.
만항마을의 꽃그림, 동물그림을 카메라에 담고 조금 더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 만항재라,
한 발을 내딛으면 영월 상동이고 뒤돌아서면 함백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칠월과 팔월이란 야생화가 만발하는 때라 만항재에서는 이 때를 잊지 않고
야생화축제를 벌였으니 지금이 한창이다.
이름 그대로 야생화란 들에 피는 꽃을 말함이라 망초나 민들레도 이에 들겠으나
이 곳의 야생화는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꽃들로서,
큰제비고깔, 둥근이질풀, 얼레지, 노루귀, 촛대승마, 금강초롱, 일월비비추 등
이름조차 생소하다.
아무리 여름이라 하여도 만항 높은 재에서는 태양도 위력을 잃어
나뭇그늘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면 한기마저 들어 소슬하다.
사람들은 연신 몰려드는 나비와 함께 이런저런 꽃들을 카메라에 담고
시원한 돗자리에서 젖먹이아이들은 낮잠을 잔다.
함백산을 넘으면 태백이고 만항재를 넘으면 영월 상동에 이르고
그리고 정암사로 내려오면 정선이지만,
사람들은 떠나기를 아쉬워하며,
곰배령과 함께 만항재를
“천상의 화원”이라 부른다.
첫댓글 옥수수꽃 개꼬리가 너무도 신기하여 요즘 한창인 옥수수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옥수수꽃 개꼬리를 아느냐고 묻노라면
십중 팔구 모르더군요 ㅎ 삼년된 서당개가 된냥 띄엄 띄엄 설명을 해주면 다들 신기 ㅎ
2층아줌마 시골에서..4층 지인댁에서..보내왔노라고 몇개씩 주시지만 그리던 찰 옥수수의 맛은 아님니다 ㅎㅎ
허락만 된다면 이 참에 정선도 좋고 곰배령도 좋고 어느곳에든 가서 저도 감자심고 옥수수 심어 가꿔가며 살고싶어집니다 ⊙⊙
정선에 와서 첫 해의 옥수수에 영감님이
"개꼬리가 나왔다."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지요.ㅎ
정선은 토질 때문인지 옥수수 맛이 좋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종일 밖에 나와 일을 하는 살림은 하루가 빨리도 지나갑니다.
모두들 연로하시어 놀리는 밭은 많은데 농사짓기가 쉽지 않지요.ㅎ
늘 이말때가 되면 어디서나 축제가 한창입니다
저도 일년을 기다려 엄마표 옥수수고 먹고
은어축제 구경도하고 봉화로 간답니다.
그렇습니다. 여름엔 어디나 축제가 풍성하지요.
참, 이번 주말엔 사북에서 석탄문화제도 열립니다.
어릴땐 수염이 말라도 설익은게 있어서 껍질을 뜯어보곤 했었어요.
산골짜기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부러워 합니다.
껍질을 뜯어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삶아야 알지...ㅎ
강원도 이야기는 천상의 화원이 맞습니다,,,야생화축제라,,정말 귀한 행사네요,
아,,,가을,,,코스모스,,,고추잠자리,,,
단어만 들어도 시원하고,,,정감이 듬뿍 담겨 있어요,,,
낮이면 종일 고추잠자리가 옥수수밭에서 놉니다그려...
옥수수 이야기에서 물흐르듯 이여진 이야기며 자생지에 우리꽃과 천상화원까지
한줄 한줄 읽어가는 재미는 무엇으로 비할때없이 저를 마냥 행복하게 해주시네요
정선 홍보대사로 임명 해야 될것 같아요
서울은 열대야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더운데 아주 좋은 환경에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신 선비님 정말 존경합니다~~~
서울엔 그래서 가지 않습니다.
그리구, 선비란 당치 않아요. 그저 촌영감이라...ㅎ
옥수수 수확은 끝난건가요?
강원도 옥수수는 단단히 여물어도 찌면 쫀득쫀득한게 참 맛있는데요.
이참에 강원도 횡성 둔내에 사시는 형님댁에나 다녀와야겠습니다.
곰배령, 만항재를 모르니...에혀...
해발 1,100M 면 저녁엔 한기를 느끼실만 합니다.ㅎㅎ
이제 따기 시작했으니 한 열흘은 더 따지요.
만항재는 해발 1,330메터랍니다.
옥수수 한솥 그득쪄서 들고나며 드신다는 나그네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나그네님이 찐 그 옥수수향이 여기까지 전해오는듯하네요~~ㅎ
손수 뿌리고 가꾸셔서 수확하시니 그 맛도 다를거라 생각됩니다.
강원도 여러곳을 글로 아름답게 그려주시는 나그네님~~좋은글 감사드려요
말씀대로 손수 뿌리고 거두니 감회와 함께 그 맛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 하지요.
옥수수, 코스모스, 야생화... 잠시 꿈을 꾸는듯 싶네요. 우리나라의 찰옥수수를 생각하며 가끔 옥수수가 보이면
손이 가지만 결국 실망만 하게 되지요. 우리의 옥수수만 있다면 다이어트 확실히 할 수 있는데~~~ ^*^
가끔 노래 불러 보지만 이거 핑계일거 같아요. 옥수수가 있으면 너무 먹어서 아마도 더 안될 듯...^*^
나갈 기회가 생기면 나그네님께서 말씀 하셨던 곳들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돌아보려 마음먹지요.
늘 행복하세요...^*^
같은 씨앗을 심어도 정선의 옥수수가 더 맛있는 것은
토질과 기후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먼 곳에서 건강 조심하시기를...
매번 글을 읽을때마다 마음이 차분해 지고 금방 고향 앞으로 달려가는 느낌입니다
옥수수 삶아서 오고가면 먹는다 상상이 갑니다 저도 옥수수를 엄청 좋아하는데 ... 지금 들꽃이 만발 가서 꽃속에 묻혀보고 싶고 사진도 한컷ㅋㅋㅋ 정선 나그네님 고맙습니다
네, 만항재의 야생화축제는 일요일까지 열리니
가시어 좋은 추억만드시기를...
정선소식에 마음을 치유 하고 정감이 들어 좋습니다.요새는 옆지기 하고 탁구 핸디3개 주고 단식 지고 이기고 하면 땀이 뻠뻑이 되지만 생맥주집에서 500 CC 2잔씩 먹고 나면 살맛나는 세상이 이런 것이 구나 하는 여유를 부려봅니다 ㅎ~~
오랜만이군요. 언제나 열심인 운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선나그네님 나그네님이 아니라 정선주인네님아닌가요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의 모습 부러운듯 엿보고 갑니다
옥수가 군침이 돌듯 입맛 당기네요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정든 이름이라 지금 와서 바꾸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씁니다.ㅎ
어제 영월이 고향인 이웃이 찰옥수수 가져와
푸짐히 나눠주던데 정말 이곳에서 먹는 옥수수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쫀들쫀득~하니 ㅎㅎ
같은 강원도 옥수수라도 다 틀리더라구요
나그네님의 여유로운 일상이 그려지며
시원한 정선겨곡이 그립습니다 에휴~^^
그렇지요. 강원도 찰옥수수는 맛이 달라요.ㅎ
좋은자료 잘보고가요 감사 합니다
네,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옥수수 계절이네요...ㅎㅎㅎ 경주 옥수수 20개짜리 두자루 사서 정말 맛있게 먹고 있는데 어느 지인이 옥수수 여섯자루 주는데 삶아 먹어보니 찰옥수수가 아니라 저걸 어떻하나?? 고민이랍니다...ㅎㅎㅎ 옥수수 부탁하면 또 수고해 주실는지요??ㅎㅎㅎ
저요 ! 저요 ! 저두요! (손번쩍 )ㅎㅎㅎ
금년엔 농협에서 값을 후하게 쳐서 수매하기에 모두들 그 곳에 판다 하네요.
정선 옥수수 믿고 많이 먹어버렸는대요? 채금지셔유...ㅎㅎㅎㅎ
형님~안녕 하신거쥬?
저도 감자...옥수수 젤로 좋아 하는디...형님 텃밭에 심어졌던 옥수수들 ...
그려 지내유...옥상에 화분과 흙퍼 올리느라 죽을똥 살똥...내년엔 나도
형님따라 옥상에 감자 함 심어 볼라요...ㅎㅎㅎ
감자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만항재엔 틈나는대로 오릅니다. 만항마을도 이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