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들 - 권법(拳法) / 권혁웅
전승되는 권법 가운데에는 다음의 여덟 가지가 막강해서
이른바 막장(莫掌) 팔대 권법이라 불린다
1. 멱살권(覓殺拳)
몽돌을 쥐듯 손가락을 가볍게 말아서 상대의 촌충과 비중사이를
겨누는 권법이다 창졸간에 안쪽을 파고들기 때문에 적을
기습하기에 좋으나, 근접전에서 상대가 같은 멱살권으로
응수할 경우 대응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2. 수지권(手指拳)
탄지공(彈指功)의 일종으로 검지만으로 먼 곳의 적을
쓰러뜨리는 비기다 수지권을 실행할 때에는 온몸에 어린(魚鱗)이
돋는데, 비어(蜚漁)의 비늘이다 자신의 몸을 감추고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암기여서 전문 살수들이 많이 익혔다
3. 저작권(詛嚼拳)
수지권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으나, 그 힘은 수지권의
몇 배의 힘에 이른다 단전 아래 소문(所聞)에서 끌어올린 기가
척추를 지나 하악(下顎)에 이르면 상악(上顎)과의 마찰에
의해 증폭되는데, 능히 상대의 근육을 끊고 뼈를 부순다
4. 채발권(採髮拳)
규방권(閨房拳)의 하나로 아녀자들이 힘써 배운다 밧줄을
당기는 자세로 회오리를 만들어 상대의 성문과 백회를
공격하는 권법이다 이 권법에 걸리면 지하철 문에 머리카락이 낀
여자의 꼴이 되어, 혼과 백을 동시에 건사하기가 어렵다
5. 통침권(痛針拳)
상대를 기습할 때 쓰는 암기 가운데 으뜸이 통침권이다
합장한 자세에서 이어 붙인 검지를 빼고는 주먹으로 바꾼 다음,
손끝에서 하완골까지를 일자로 만들어 적의 장강을 직격한다
그 고통이 대침에 찔린 것 같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6. 간질권(癎疾拳)
유권(柔拳)으로는 간질권만 한 게 없다. 손을 뱀처럼
부드럽게 만든 후에 공격하는 상대의 실루엣을 타고 넘는
권법이다 공격을 받은 자는 온몸의 경혈에서 기가
뿜어져 나와 쓰러지는데, 그 모습이 간질을 앓는 자와
흡사하다고 전해진다
7. 두락권(頭樂拳)
서양의 권법인 내술(來術, Wrestling)에서 유래했으며
손으로 덫을 만들어 상대의 머리를 잡아채는 권법이다
여기에 걸리면 지극히 혼미해지기 때문에, 살아서 극락에
다녀온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혹은 정신을 놓아버린다는
뜻을 가진 해두락권(解頭樂拳)의 준말이라고도 한다
8. 빙하권(氷下拳)
화상권(火上拳)이 양기를 극대화한 기술이라면 빙하권은
음기를 극대화한 기술이다 만년한철로 변한 양손을 처음엔
수평으로, 다음엔 수직으로 뻗고 내려 적의 슬안, 잠룡,
야광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권법이다 서양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는데, 이를 아이스케키라고 부른다.
* 촌충은 목젖 바로 옆, 비중은 바로 아래, 단전은 배꼽 아래,
성문과 백회는 정수리, 장강은 항문 부위, 슬안은 무릎,
잠룡은 허벅다리 안쪽, 야광은 사타구니의 급소.
소문들 - 진법(陳法) / 권혁웅
본래 진법은 논변과 같은 것이다 삼군(三軍)을 놀려 적진을
무너뜨리는 논전(論戰)의 기술이기도 하다 여기 새로이
개발한 진법을 소개해 둔다
1. 개무시진(開武示陣)
허허실실의 진이 개무시진이다 팔문금쇄진에는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라는 여덟 출구가 있다
이 가운데 개문으로 적을 유인한 후에 도륙하는 진이 개무시진이다
적군이 이진에 빠지면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바닥없는 절망에 이르게 된다
2. 묘탁번진(妙卓番陣)
양익이 나서면 학익진이고 중군이 앞서면 추형진이다
묘탁번진은 이 두 진을 합쳐 적을 포위하는 동시에 돌파하는
진이다 이 진을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관건이므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병들을 활용해야 한다 혹자는
탁번을 학번(虐番, 교대로 학살함)이라고도 부른다.
3. 후다마진(後多馬陣)
보병으로 일자진을 펴고, 그 뒤에 기병을 숨겨 아군의 진
깊숙이 들어온 적을 섬멸하는 진이다 후방에 말들이 많다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혹은 패주하는 적들을 끝까지 추격할 수
있어서 이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이 진에 걸리면 거의가
전멸하게 되어 있어서 재기하기가 어렵다
4. 비우순진(飛羽殉陣)
기러기가 날개를 편 모양으로 돌격하는 진을 안행진이라 한다
비우순진은 이를 극단적으로 전개한 것으로, 양익의 끝에
별동대를 두어 적을 감싸 안고 후방부터 무너뜨리는
진법이다 아무리 강력한 진이라도 우그러뜨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별동대의 피해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5. 단죽진(斷竹陣)
쐐기 모양의 추형진은 강력한 기동력을 앞세워 적진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돌파하는 진이다 단죽진은 세로로
쪼개오는 파죽진을 맞아 가로로 맞서는 방어진이다
움푹 파인 진의 모습이 해오라기와 같다하여 단청진(斷鶄陣),
선봉을 먼저 깨부수므로 단전진(斷前陣)이라고도 부른다
6. 말돌려진(靺突旅陣)
기마민족인 말갈과 돌궐의 진법에서 따왔다 500명을
한 대(隊)로 삼는 군제를 여(旅)라 하는데, 기병으로 이루어진
여로 둥근 방원진을 이루고 이를 물고기 비늘처럼 연속해서
전개하는 진이다 무서운 속도로 적진을 공략하므로
아무리 원거리에 있는 적이라도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
- 권혁웅 시집 <소문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