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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큰맘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우연히 얻게 된 정보입니다. '짚으로 집을 만들다?' 기발한 아이디어네요. 지금은 '아이디어'로 세상에 나왔지만 원래는 '생활'이였던 집짓기입니다.
인간 삶의 단편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영원한 로망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장문의 글이긴 하지만 따뜻한 차 한 잔 옆에 놓시고 천천히 읽어 보시길 권해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하 펌글...........................................................
황해문화 2009년 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주간이신 얼음쇠 님의 양해를 얻어 9회에 걸쳐 연재 할 생각입니다.
글이 조금 길고 재미없긴하지만 찬찬히 읽어 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 2009년 3월 13일 동강사랑에서 홍화씨 / 홍순천
1. 스트로베일 하우스?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 낮선 이름이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를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볏짚으로 집짓기’라 할 수 있다. 스트로(Straw)는 볏짚, 보릿짚을 말하고 베일(bale)은 덩어리를 뜻한다. 소먹이로 묶어둔 볏짚으로 짓는 집을 스트로베일하우스라고 한다.
스트로베일하우스의 역사는 100여 년 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원 지대인 미국의 네브라스카 주에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나무나 돌이 부족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잔디를 쌓아 집을 지었었다. 목축이 주업이던 그곳 사람들에게는 밀짚을 많이 비축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19세기 말, 그들은 말을 이용해 볏짚을 압축하는 베일러(baler)를 만들었다. 그 기계로 오늘날 우리가 목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각 볏짚을 만들어 내었다. 압축된 베일을 저장해서 임시창고를 만들면서 그들은 스트로베일 하우스를 고안해 내게 되었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전문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농부들의 손에 의해 탄생되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재로 부담 없이 창고를 만들다가 탄생된 집이다. 가축을 농업의 보조수단으로만 여긴 우리 선조들이 목축업을 주업으로 했다면 우리나라에서 ‘볏짚으로 집짓기’가 먼저 생겨났을 수 도 있었을 터이다.
시멘트가 대중화되고 나자 콘크리트 주택은 신속하고 저렴한데다 세련되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사람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콘크리트 주택이 일반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스스로 살집을 지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나 콘크리트 건물의 취약한 단열 성능을 높이려고 하이샤시 창이 개발되면서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유해가스가 실내에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질환이 아이들에게 생겨났다. 완벽한 단열을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새로운 부작용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것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 조금씩 감지될 1980년 무렵,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미국 여성 에티나 스틴(Athena Steen)은 자신의 집을 스스로 짓겠다고 결심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가족들이 어울려 직접 집을 지었던 것을 기억해낸 에티나 스틴은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서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소재와 방식으로, 그것도 이혼녀 혼자 집을 짓는 것이 기이하고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완전하지 않지만 현대 주택보다 훨씬 건강하고 자연스런 집을 지어냈다. 그 일을 계기로 에티나 스틴은 생태 건축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생태 건축 전문가인 빌 스틴(Bill Steen)을 만나 결혼하면서 생태 건축에 대한 연구는 더욱 깊어졌다. 그들 부부는 한층 향상된 생태건축 전문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20-3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서구에서는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생태 건축의 한 분야로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각양각색의 비전문가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데 그 이유가 있다. 다양함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원칙이다.
‘볏짚으로 집짓기’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재료의 생태성이다. 공업 생산에 의한 재료를 온전하게 배제 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재료를 자연소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재의 경우 3~40년의 세월이 흘러야 건축재로 사용 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볏짚은 매년 생산되는 것이라 확보가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하다.
둘째는 단열성이 뛰어나다. 볏짚 뭉치를 통째로 쌓기 때문에 단열과 보온성이 좋아 따로 보온재를 쓰지 않아도 집을 아늑하게 유지해 준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당연히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해서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셋째는 통기성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공기는 안정적이지만 살아 숨 쉬는 벽체 때문에 생활하면서 생기는 각종 냄새를 자연스럽게 배출해 준다. 겨울 내내 청국장을 끓여도 냄새가 남아 있지 않아 집안 공기가 늘 쾌적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값싸게, 생태적이고 기능이 탁월한 집을 지을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볏짚으로 집짓기’는 거대자본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기획해 만들어 가는 집의 전형이 되기에 충분한 방법이다. 이웃과 함께 주체적으로 삶을 기획해 볼 일이다.
2. 어쩌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해마다 여름이 오면 나는 도시를 벗어나 산으로 바다로 향했다. 영동과 경부 고속도로에 짜증 섞인 공회전을 하는 자동차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어도 의례히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일 년에 한번 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사를 뒤로 하고 바닷가에 서면 마음의 먼지가 일순간 사라지는 듯했다. 일렁이는 포말에 발목을 담그다가 몸을 던져 바다와 하나가 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희열을 느꼈다.
신발을 벗어들고 갯바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제 까지 보이지 않던 수많은 바닷가 생물이 눈에 들어왔다. 갯지렁이부터 따개비, 점령군 같은 바닷가의 갯강구!, 홍합 등속의 생물들은 빼곡히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생명의 향연이었다. 파도에 떠밀려온 미역이나 다시마 줄기를 주워 들고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 만나는 것 중에 가장 민첩하게 관심을 끄는 놈은 단연 게다. 콩만 한 것부터 자갈만한 게들은 물 빠진 바닷가 백사장에 수 없이 많은 모래성을 쌓고서 자신들의 영역을 사수 하기 위해 분주하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제 자리를 지키려던 게들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일제히 몸을 움츠리고 제 집으로 숨어들기 바쁘다. 미역 줄기를 팽개치고 게가 숨어든 구멍을 파헤치다 보면 어느덧 기나 긴 여름해가 산을 넘어 갔다. 꿈결처럼 달콤한 며칠 휴가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그렇게 지나갔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하는 도시로 귀환해서야 겨우 바닷바람 속에 섞여 있던 짭짤한 추억을 떠 올리며 나머지 일 년을 버텨내야 했다.
입대 전에 누렸던 첫사랑처럼 삶은 그저 달콤한 현실만을 내내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퇴근 후 당장 피곤한 몸을 뉘어야 할 집이 필요했고 아침이면 숙취를 달랠 따뜻한 콩나물국을 끓일 도구가 필요했다. 그 도구는 그저 기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훨씬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을 갖춰야 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시장 때문이었다. 세련되고 멋스런 도구로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 먹는 나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 주어야 했다. 허접한 ‘상품’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내놓아 조금 더 비싸게 값이 매겨지는 상품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게 눈 감추듯 라면을 끓여 허기를 감춰도 옷은 그럴듯하게 차려입어야만 했다. 겉치레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에 편입하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출판 일을 업으로 하던 젊은 날, 도시는 내 생각쯤은 게 눈 감추듯 무시하고 욕심을 추구해야 나답다고 부추기던 시절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감성을 집어 삼켜 게 똥처럼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를 쌓아 올렸다. 그 마천루 속에 삶을 저당 잡혀 포로가 된 도시는 스스로 시장에 삶을 내던진 상품이 되었다. 집은 집대로, 삶은 삶대로 자기 정체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 생에 뿌리를 내리고 실현하고자 했던 일쯤은 게 눈 감추듯 하고 어물전에 질펀하게 퍼질러 앉은 ‘아귀’처럼 비싼 값에 팔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상품이 되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나는 한 순간에 상품이 되었다. 삶이 뭐지? 물어 보기도 전에 이미 짓이겨진 게맛살처럼 비닐봉지에 포장된 상품이 되었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3. 집이 뭐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필요조건 중에 집은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원시주거로부터 꾸준한 진보를 거쳐 온 집은 오늘날 놀라우리만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집으로부터 야기되는 질병과 에너지 문제로 건강하고 생태적인 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가치로만 치부되던 집이 이제는 건강한 생활이라는 부분과 만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대체 집이란 무엇이며 건강한 생활, 건전한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도 지나칠 수 없는 과제였다.
제5공화국이 칼날 같은 권력을 들이 댈 무렵, 나는 경기도 일원의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갔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당시의 서울은 제3공화국의 개발 정책이 무르익어 가던 차라 도시 전체가 온통 공사판이었다. 가난한 시골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내게 전세는 물론 사글세라도 방을 얻어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안면이 있는 아버지의 친구 분 집을 전전하는 것으로 내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초롱초롱한 별을 헤아리며 잠이 들 수 있었던 생활이 그리웠지만 그런 것은 일체 허접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응암동이나 홍제동의 산골짜기 판자 집에라도 삶의 뿌리를 내려야 서울양반으로 행세를 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삶의 근거지를 옮겨 왔다.
시카고학파를 형성한 설리번(Sullivan, Louis Henry)의 기능주의 건축이 성서처럼 답습되던 당시 건축학계의 주류는 말 그대로 기능주의였다. 건축의 모든 부분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건축 구조와 재료의 경제성, 역학적 합리성, 건물의 합목적성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물들이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공간과 기능, 경제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분은 제5공화국을 닮아 누구도 간섭 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새마을 운동을 첨병으로 이 땅에 기능주의 건축이 들어오고 나서 우리 살림집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설계를 했고 건축업자들은 돈이 되는 집을 다투어 짓기 시작했다. 시장의 논리에 최대한 충실한 집이 들어서면서 집을 짓는 것은 전문가들의 일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것으로, 사두면 돈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집은 그저 재산의 일부이거나 재산을 늘리는 도구로 전락했다. 넓은 평수에 첨단 시설을 한 것이 부의 기준이고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다. 그런 집에서 살다보니 문화도 달라졌다. 문화도 그저 돈을 주고 사면 되는 것으로 전락했다. 비슷비슷한 외관에 비슷비슷한 문화, 거세된 가축처럼 사육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남루한 서울 생활을 전전 하면서 피곤한 육신을 뉠 자리 하나 변변히 장만하지 못했던 나는 급기야 침낭을 싸들고 강의실에서 한 학기를 보내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조석 바닥에 침낭을 깔아도 파고드는 한기를 어쩔 수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밤을 새며 내게 과연 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당시의 건축계에서 나는 내 집짓기를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자본의 부속으로 편승 하는 것이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동안, 나는 집짓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나무를 줍기 위해 뒷산을 어슬렁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던 내게 집은 살아 있는 생명이었다.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쓰다듬고 보듬어야 하는 친구였다. 삭정이 하나라도 더 먹여야 온기를 잃지 않는 삶의 그릇이었다. 구구한 진단이나 허망한 논리로 설명 할 수 없는 생명을 집은 스스로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늘까지 닿을 마천루를 세우다가 멸망한 문명의 흔적은 역사의 도처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모태를 벗어나 피곤한 몸을 추스르다, 육신을 벗어 날 때 함께 스러지면 족한 것이 집이 아닐까? 달팽이도 전복도 자기 집을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않는다. 집은 그저 알몸을 가리는 한 벌 옷의 기능을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얼굴이 삶의 여정을 드러내듯 집은 삶을 드러내는 기호다. 그릇이다.
4 내가 살고 싶은 집
현명한 눈을 가진 톰 하트만(Thom Hartmann)은 그의 저서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원제 The last hours of ancient sunlight)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문명인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분별없이 퍼 쓰지 않았고, 피조물들 속에서 신성을 느끼며 근대인들보다 더 여유로웠다.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는 의식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한정된 에너지 속에서 현명하게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또한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은 인구증가와 생태계 파괴 등의 악순환을 초래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 이전의 인류들이 살아오던 방식, 즉 미국 인디언 부족의 공동체적 생활방식과 세계관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매우 거창한 집이다.
첫째,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것. 그래서 문명이라는 이름에 지배당해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문명의 결과물로 생겨난 많은 제품들은 에너지의 집적이 과다한 것들이다. 그 제품으로 만들어진 집을 장만하자고 치자면 인생을 팔아서 집을 사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에너지의 집적이 적은 재료로 집을 짓자는 생각이다. 물론 기존에 만들어진 모든 재료를 깡그리 폐기하고 생태적인 재료만을 취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집 짓는데 드는 에너지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집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은 집이어야 할 것. 그래서 또한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 문명이라는 이름에 지배당해 품위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재료만 생태적이라고 해서 생태적인 집은 아니다.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비용이 아니다)를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한 생태주택의 최대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집짓기가 늘 진행 중인 집이다. 완성된 꼴로 내 손에 굴러들어 온 것이 아니라 늘 보듬고 쓰다듬어서 나를 닮아가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하고 깔끔한 것만을 추구하는 완성형 주택은 그 뒤에 감춰져 있는 에너지 문제와 독성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전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 살림집을 기성품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유산 3호로 확보한 동강 제장마을에 살림집을 지어야 하는 과제가 생기자 그런 고민이 다시 살아났다. 기왕에 선조들이 삶을 의탁하던 생태주택이 많긴 했지만 안락하고 따뜻한 삶터를 고려하자면 부족한 점이 느껴졌다. 에너지 투여가 많았던 대갓집 건축도 가치는 있지만 그것만을 우리의 전통이며 생태주택이라고 하기에도 억지가 있었다. 안락하게 품위를 유지 할 수 있지만 생태적인 집을 짓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몸을 움직여 얻는 생활방식을 택하는 것이야 말로 진보이며 삶의 진정성을 담보 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했다. 동강 제장마을에 집을 짓는 것은 내 삶을 시험하는 장이었다. 지난한 과정과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감내하고 동강사랑(東江舍廊-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동강 사무소)을 짓고 난 후의 소회(所懷)는 남달랐다. 내겐 인생의 또 다른 거울이 되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완성된 집이 아니다. 무릇 살아 있는 것은 늘 변해서, 그 변화무쌍함이 오히려 좋아서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집이다.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변화를 거부하는 집이야말로 숨통을 쥐고 삶을 옭죄는 짐인 것에 틀림없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살아 있는 집이다. 나를 쥐고 흔드는 집이 아니라,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집이다.
5 어떻게 만났나?
내겐 동강 제장마을에 짓는 집에 거는 욕심이 많았다. 먼저 생태적인 재료로 집을 짓고 싶었다. 아울러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집을 짓고 싶었다. 살면서 에너지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다 실현하자면 해결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더욱이 농촌에 살거나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채택 할만한 집의 대안 한 가지를 제시하자는 욕심까지 끌어안다 보니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술잔이 한 순배 돌자 나는 답답한 속내를 쏟아놓았다. 그 때 마침 스트로베일 건축(Strawbale Building, 볏짚으로 집짓기)에 관심이 많았던 이웅희 씨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자료를 꺼내놓았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사진자료들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포근한 시골정취가 느껴지는 사진 자료들은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집짓는 방법이나 효과에 대해서 몇 마디 질문을 하고는 당장 그 방법으로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볏짚으로 집짓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호주에서 열리는 교육에 참가 할 준비를 하며 동강 제장마을에 집을 짓는 일은 활기를 띄었다. 물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고 시공 후의 하자에 대해서 책임질 마땅한 근거가 부족해서 고민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기후에 안전 할 것인가? 내구성, 혹은 내화성을 보장 할 수 있을까? 단열을 보장 할 수 있을까? 외형이 우리의 정서에 맞을 것인가? 시공의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가?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까?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2005년 4월. 호주에서 교육을 마친 친구들이 동강으로 오면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볏짚으로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열악한 환경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4개월간의 혹독한 노동을 통해 2005년 8월 27일, 드디어 동강사랑을 미래세대에게 드린다는 헌정식(獻呈式)을 치룰 수 있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결과를 본 많은 분들의 박수와 격려에 그간의 어려움이 봄 눈 녹듯 사라졌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건강한 공동체와 건강한 집이 살아 있었다. 과학과 기술문명이 초고속으로 가속도를 붙인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는 듯 하지만 실상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특히 이웃과 나누던 삶의 한 자락은 우리를 풍요롭게 했다. 요즘처럼 골방에서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한 현대인들을 광장으로 불러내는 것은 지난한 일로 보인다. 특히 세상의 주인이 될 젊은이들을 공동체 마당으로 불러내는 일은 무엇보다 어렵지만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맥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삶의 형태를 바꾸면 이웃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부터 시작 할 일이다. 어깨를 걸고 상생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어우러지는 살림의 문화를 다시 일구어내야 한다.
6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산업사회로 접어든 인류는 각종 에너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그 당연한 결과로 각종 오염물질과 쓰레기가 배출 되었고, 이를 정리하고 치우는데도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물질을 생산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고, 그 속에서 살다보니 새로운 각종 질병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열은 지구를 덥혀 빙하를 녹이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농작물의 재배 가능 위도가 달라지고 연안과 원양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가 달라져서 어부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한 교토의정서[京都議定書(경도의정서), Kyoto protocol]가 채택되었다. 교토프로토콜이라고도 하는 교토 의정서는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의 국제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95년 3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1차 당사국총회에서 협약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방안으로서, 200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를 근간으로 했다. 이 의정서가 채택되기까지는 온실가스의 감축 목표와 감축 일정, 개발도상국의 참여 문제로 선진국 간, 선진국·개발도상국 간의 의견 차이로 심한 대립을 겪기도 했지만, 2005년 2월 16일 공식 발효되었다.
교토의정서의 의무이행 대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총 38개 나라이다. 각국은 2008∼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평균수준의 5.2% 감축하기로 했다. 감축 목표량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8~+10%로 차별화했고 이를 2012년까지 실현하기로 약속했다. 그 분야는 에너지효율향상, 온실가스의 흡수원 및 저장원 보호, 신·재생에너지 개발·연구 등도 포함된다. 주로 산업생산 분야에 주목하고 있지만 이제 와서 바라보는 교토의정서는 애초의 취지를 확대해 더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실천방안을 만들어 구현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 상,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의무대상국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몇몇 선진국들은 한국·멕시코 등이 2008년부터 자발적인 의무부담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4차 당사국총회에서 아르헨티나, 카자흐스탄 등 일부 개발도상국이 자발적인 의무이행을 선언한 상태라, 어느 정도 경제적인 위상을 확립한 우리나라로서도 더 이상 이를 외면만 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해 2001년 3월 탈퇴해 현재 미국은 교토 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통령 당선자인 버락 오바마는 출마 연설에서 교토 의정서의 비준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이 공약을 실천하기위해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CO2 배출량 세계 10위, OECD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 1위인 우리나라 역시 2012년까지 배출가스를 줄이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 막대한 범칙금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맹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의무가 부과된 일본이 이미 민관 합동으로 노력하는 예를 보자면 우리도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현실이다.
1990년 초반은 내가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얘기하기 시작 할 때였다. 그 때만해도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환경논의가 이제는 돈과 결부되는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결국 시장에 내놓은 상품으로서의 환경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이 시대의 필요 불가결한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는 비용대비 생산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이 갈 자리를 잃게 된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삶을 규정하는 몇 가지 요인 중 중요하게 치부되는 주거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7 아버지의 집 짓기, 나의 삶 짓기
경기도 양주의 고향집에는 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문패가 아직도 걸려있다. 어머니는 여섯 자식을 부양하며 함께 살아온 아버지 평생의 노고가 쉬 잊히는 것이 아쉬우신 모양이다. 고등학교 무렵인 70년대 후반, 아버지와 함께 초가집을 헐어내고 번듯한 블럭집을 짓는 역사가 여름방학을 틈타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도와 집을 짓는 것은 청소년기의 내겐 지나친 노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에겐 평생의 역사였다. 돌아가실 때까지 지붕손질 한번 못하고 늙은 몸을 의탁하셨던 그 집은 아버지의 삶이었다. 2005년 봄, 볏짚으로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집짓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희미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꽃보다 고운 5월의 신록이 꽃향기 속에서 짙어지는 즈음, 숲에서는 검은등 뻐꾸기가 ‘홀딱 벗고’ 삶을 노래한다. 봄이면 일제히 피어오르는 들풀은 제 이름값을 들고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다가 가을이 오면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한다. 사십 중반까지 무던히도 많은 길을 찾아 헤매던 나는 강원도 정선의 동강 가에서 농부로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봄비를 맞으며 고추모종을 내던 날에도 검은등 뻐꾸기는 여전히 빗속에서 ‘홀딱 벗고’ 노래하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집을 지어 들인 토종닭이 알을 낳아 품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던 박새새끼가 이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어설픈 지식과 관념으로 공허한 울림만 남기는 숱한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다. 머리를 굴려 곡식을 사고 정보를 팔아 야채를 사며 그것이 내 자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쌀 한 톨 생산하지 못하는 컴퓨터 앞에 평생을 붙들려 앉아 있기는 싫었다. 자기 수저 챙기기에만 급급한 시장(市場)에 더 이상은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 자연에 다가 가는 것이 삶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제야 겨우 내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농부’다. 새로 산 옷처럼 아직은 몸에 착 감기지 않는 이름이지만 온갖 허울을 ‘홀딱 벗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밭을 갈고 잡초를 뽑으며 묵직하게 가라앉은 마음의 때를 하나하나 덜어 내는 듯하다. 자기 이름에 값하는 몸놀림이야말로 삶을 짓는 일인 듯하다. 태어나 이름을 부여 받고 다음세대로 이어줄 온전한 삶을 짓는 것은 모든 생명의 자연스런 의무다.
아비가 되면 자식을 키울 집을 만드는 것이 큰 과제다. 지빠귀 둥지에 탁란(托卵)하는 뻐꾸기는 예외이지만 대개의 생명은 스스로 제 집을 짓는다. 집짓기는 유전인자를 전하는 정보이자 교육이다. 아비의 집짓기를 통해 자식은 자신의 이름에 값하는 삶을 배운다. 집은 온 생애를 담는 그릇이며 생을 기록하는 도구이다.
초여름이 시작되면 봄 농사를 마무리한 농부들이 삽을 씻으러 강가에 모여든다. 이름에 값하는 삶을 위해 제 철을 거스르지 않는 온갖 생명들 사이에서 나는 ‘농부’로서 튼실하게 뿌리 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꿈꾼다.
8 왜 스트로베일하우스인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받게 될 경우 국제사회는 막대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증가 할 것이다. 1990년 대비 6%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일본의 경우 2008∼2012년 동안 매년 2조 엔의 관련 비용이 예상(일본 中央環境審議會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일본 GDP의 0.4%에 해당하는 비용이라고 한다.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환경세의 도입은 불가피해지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세금 부담이 커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에너지 경영은 교토의정서의 향방을 떠나 중장기적인 이익으로 환원될 가능성이 이미 충분히 보이고 있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녹색소비자(green consumer)가 증가하고 있고, 제품마다 에코 프리미엄(제품의 환경부하가 낮을수록 가치 상승)이 반영되고 있다. 게다가 화석연료의 고갈이 예상되는 요즘 유가가 상승되고, 자재비가 상승되는 점을 고려해 봐도 녹색경영은 모두에게 심각하고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공개프로젝트)를 비롯하여 CO2배출이 기업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해 기업은 체질을 바꾸는데 이미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시점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화두를 떠나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이나, 집을 선택하지 않고는 삶을 유지 할 수 없는 시대가 곧 다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기나 석유로 난방을 할 수 없다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에너지 준위를 낮춘다는 것은 이미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서도 내게는 절실한 것이었다.
동강사랑을 ‘볏짚으로 집짓기’ 방식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나 스스로도 감출 수 없는 의문점 몇 가지가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질만한 비슷비슷한 의문점을 나도 역시 가지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동강사랑을 지으면서 만나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먼저 짚으로 집을 지어도 안심 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할지에 대한 의문이다. 볏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 ‘아기돼지 삼형제’의 동화를 떠올린다. 볏짚으로 지은 맏형의 집이 늑대의 입김에 날아간다는 이야기. 하지만 압축 볏짚 1개의 평균무게가 20kg인 것을 감안한다면 베일 한 덩어리만 방치되어 있어도 바람에 날아 갈 일은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평균 20kg인 볏짚을 벽돌 쌓듯 쌓아올리며 철근이나 대나무를 볏짚에 박아 서로 연결시키고 양면에 5-7cm 정도의 흙 미장을 하므로 구조적으로 취약할 이유는 전혀 없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하중 시험의 결과(1999년-ASTM E72 인증 자료집)를 참고하지면 10평의 스트로베일 벽(특히 로드베어링 방식)이 견딜 수 있는 무게는 무려 25톤이나 된다.
베일에 흙 미장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샌드위치 패널의 구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샌드위치 패널의 내부는 구조적으로 약한 스티로폼이지만 양면이 얇은 철판에 단단하게 접착되어 있다. 이 구조가 무거운 하중을 견디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찬가지로 볏짚 양쪽을 흙으로 미장해 건조시키면 어떤 하중이라도 견뎌 낼 수 있는 견고한 벽이 된다. 샌드위치 패널과, 볏짚에 흙미장을 해서 건조 시키는 것은 같은 구조라 볼 수 있다.
볏짚으로 집을 지어도 바람에 날아 갈 일은 전혀 없다. 동강사랑을 지어 다섯 해 째 살아가는 동안 전혀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재작년 평창 지진에 집이 크게 흔들렸어도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볏짚이라 습기에 노출되면 쉽게 썩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볏짚에는 여러 가지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습기에 노출된다면 일 년도 되지 않아 집이 폭삭 주저앉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볏짚은 습기에 약하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습기로부터 베일을 격리시키는 작업을 잘 하면 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캐나다 금융 협회(주택 담보 대출 협회) 조사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2000년)를 보자.
“스트로베일 벽은 습기에 강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따로 방수막을 설치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습도 조절 기능이 있다”
장마철이 긴 우리나라에서 과연 볏짚으로 지은 집이 안전할까를 많은 사람들이 염려한다. 우리보다 더 자주 비가 오고 습한 영국에서도 볏짚으로 지은 집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장마를 네 번이나 겪은 동강사랑은 아직까지 아무런 보수 작업을 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없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에서는 2002년까지 1000여 채가 넘는 집이 볏짚으로 지어져 주목을 받고 있다.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타버리지는 않을까? 이 문제 역시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거나 실수로 불똥이 튀었을 때 집이 몽땅 재로 변할 것 같은 공포감이 가끔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동강사랑을 짓는 과정에서 그라인더로 철근을 갈다가 볏짚 더미에 불이 붙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불에 대한 염려는 더욱 커졌다. 급기야 볏짚 더미를 놓고 토치램프로 불을 붙여 보았다. 처음에는 겉에 있는 덤불에 불이 쉽게 붙는 듯 하더니 단단하게 결속된 볏짚더미에는 불이 옮겨가지 않았다. 한참을 가열해도 볏짚더미에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나다가 말았다. 스트로베일하우스는 불에 취약한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서 쉽게 불이 나는 것은 구조체의 문제가 아니라 실내장식을 담당한 대부분의 재료가 석유화학 제품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스트로베일 벽을 섭씨 1012도의 열로 2 시간 넘도록 가열했는데 전혀 불이 붙지 않았고, 반대편 벽의 온도의 상승은 5도 이하였다”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안전 테스트(1993년-ASTM E119 인증 자료집) 결과다. 볏짚을 흙으로 미장한 벽은 화재에 전혀 문제가 없다. 1994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 산불이 발생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만, 볏짚 더미를 흙으로 미장한 의자만 남아있는 사진 한 장은 흙 미장한 베일 벽의 방염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볏짚이 불에 약하다는 것은 일반 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특히 흙으로 미장한 볏짚더미는 화재에 강하다.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어른들이 집을 짓는 방식대로, 볏짚을 썰어서 황토에 반죽해 벽을 채우는 방식에 익숙한 내 경우, 볏짚 더미에 흙을 바르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볏짚더미와 흙이 밀착되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결함이 생겨서 집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과연 볏짚 더미와 흙 반죽이 잘 결합해 든든한 벽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민은 미장을 시작하며 봄눈 녹듯 사라졌다. 적절하게 배합한 미장재료를 벽에 대고 손을 놀리자마자 둘 사이가 찰떡궁합이라는 사실이 손끝에 전해 왔다. 압축하여 절단한 볏짚더미에는 어떤 자재보다 흙이 잘 붙기 때문에 초보자가 미장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심하고 미장해도 된다.
그밖에 여러 가지 의문점은 많았다. 볏짚으로 집을 지으면 얼마나 싸게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쉽게 배울 수는 있을 것인가? 공사기간은 얼마나 잡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정서에 맞을 것인가? 짓고 난 후에 생각만큼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 등에 관한 의문이 끊임없이 나를 두드렸다. 동강사랑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 삶터 삼아 살아 온지 벌써 5년, 볏짚으로 지은 집에 살고자 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짓는 일은 인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 집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조로 지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많은 시간을 두고 여러 방면으로 살피고 스스로 풀어 가야만 한다. 고민이 깊어져 포기 할 것을 포기 하고 정말 중요하게 취 할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 한 후에야 스스로 만족 할 수 있는 좋은 집을 만들 수 있다. 그 생각의 깊이나 폭이 넓을수록 많은 것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삶과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의 편리함이나 깔끔한 관리에만 마음이 쓰인다면 볏짚으로 집짓기는 절대 택할 수 없는 방법이다.
버리는 만큼 채울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얘기는 거짓이 아닌 듯하다. 삶의 유한함, 사고의 편향이 인생을 경계 짓는 틀이다. 그 틀을 벗어 던질 용기가 있다면 훨씬 자유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용기를 내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어 볼 일이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삶의 유한함을 논하는 것은 접더라도, 현실적인 가치기준에 묶이는 우(愚)를 벗어 날 수 있어야 살아 있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전 해 볼 일이다.
9 마음으로, 더불어 짓는 집
고추잠자리가 빼곡하게 날아다니고 고야가 익어갈 무렵, 동강에서 집을 짓던 일꾼들은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며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정네들끼리 밥을 해 먹으며 집을 짓는 것이 여간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사일정에 쫒기고 여건이 불리한 가운데 심리적인 압박까지 가해져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한 여름이 다가오면서 심신이 모두 지쳐가고 있을 때 아내가 방학을 한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에 왔다.
일을 하다 말고 밥을 해야 했고 설거지를 끝내야 일을 시작 하던 상황은 여간 더디고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지만 가족들이 현장에 오자 사정이 급격히 달라졌다. 잠자리가 없어서 비닐하우스 안에 텐트를 치기는 했지만 일단 마음이 안정되었다. 밥 먹을 곳이 없어서 이집 저집을 전전하던 어려움도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현장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강에 나간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다가 돌아오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에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아이들이 빨리 집에 들어 갈 수 있게 서두르자는 마음에 일꾼들은 다시 힘을 얻은 듯 했다. 아이들은 그저 제 나름대로 놀아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사듯 집을 산 적이 있는가? 우리들 대개는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집을 돈으로만 보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잠식했다. 건축업자가 부추기는 대로 선택의 기준을 바꾸고 그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까지 했다.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등 떠밀려 낮선 이름표를 달고 있는 꼴이다. 작은 습관 하나, 생각 하나를 바꾸면 세상이 전폭적으로 달라진다. 스트로베일로 집짓기는 그런 의미에서 가히 현대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돈 주고 열쇠를 받아 쥐는 집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하고 이웃을 만나는 과정을 거쳐 내가 살 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생애 전반을 돌이켜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동강에 집을 짓고 난 후에 한국스트로베일연구회를 만들었다. 연구회는 매년 여러 차례 웍샵을 진행했고 많은 집을 지었다. 그간의 경험과 시행착오로 기술도 많이 향상되었다. 이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로 하고 외부 에너지를 유입하지 않고도 유지 할 수 있는 집을 목표로 정진 중이다. 그동안 개설한 카페에는 2만 여 명의 회원이 생겼고, 지역마다 품앗이 방이 생겨서 정기적으로 모여 더불어 집짓기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나누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땅에 남아있던 두레나 부역을 이제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이 사람들을 시장이라는 구조로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폐해는 에너지의 과다 소비를 불러 왔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참으로 급하고 절박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골방에서 홀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다. 스트로베일로 집짓기는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시장이 손아귀에 틀어 쥔 집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자본에 지배당해 살다가 이제야 그 폐해를 인식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시장의 방식과 같이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먼저 사람을 회복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제 살 집을 이웃과 더불어 스스로 지으며 관계를 회복해보는 일이야말로 삶을 돌이켜보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스트로베일하우스는 더불어 살기의 시작이다. 무한경쟁을 기치로 사람들을 속도전으로 내몬 시장에 이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이 광란의 질주가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내 몰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제웅이라 부르고 이것으로 한해의 액을 털어버리던 조상들의 풍습이 있었다. 제웅은 제용 혹은 처용(處容)이라 불렀다 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의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일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대보름 전날인 음력 정월 14일 밤에 제웅을 만들어 액년을 당하는 사람의 옷을 입히고 성명이나 출생한 해의 간지(干支)를 적어 길바닥이나 다리 밑에 버린다. 그렇게 하면 그 액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믿었다.
올해도 짚을 나잇수 대로 엮어 불을 지피고 떠오르는 대보름달을 바라보며 복을 빌어봐야겠다. 그간의 액을 버리고 상생의 문화로 거듭 날 수 있기를....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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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한 글입니다. 수현이가 하기엔 아직 힘이 좀 딸리겠어요.ㅎㅎ
저도 좀~~ ^&^
간단한 움막정도는 1주일만에 짓더군요.... 보통의 가정집도 1달 정도....
읽기전에 커피와 뎃글 먼저 하나 남기고 글 감상 들어갑니다 좀 길긴 하겠다 ㅋㅋㅋㅋㅋㅋ
잘 읽을게요~~
에고고 한참 동안 읽었네 눈이 아프지만
잘 읽고 갑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음에 깊게 새기고 갑니다
휴~~~~~
이 글을 수현이가 언제 다 읽을까요? 피타고라스는 아는데...
수현이가 할 줄 아는게 참 많네요. ㅎㅎㅎ
요즘 수현이는 청도까지 혼자 버스타고 자~알~~ 다녀온다고 하더만요. ㅎㅎㅎ
뭐..이리 길데요. 수현이가 점점 전문가가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