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를 심으러
주말은 경주 친구네 산방에서 하룻밤 묵고 일요일 아침나절 창원으로 복귀했다. 집에서 점심을 들고 산방 후기를 써 지인들에게 메일로 넘기고 문학동인 카페 내 글방에 올려두었다. 아직 반나절이 남은지라 나는 자투리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빈 배낭을 메고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얼마간 걸어 멀지 않은 창원종합운동장 맞은편에서 소답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일과 7일 소답장은 창원에서 꽤 유서가 깊은 전통 장터다. 비록 소답 장날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에서 볼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소답 장터는 오일장은 오일장대로 다른 날은 다른 날대로 상설시장 기능을 했다. 나는 소답 장터 농자재 가게에서 쪽파 종자를 사려고 시장에 들렸다. 농자재 가게 앞에는 제철을 맞은 배추 모종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사려는 쪽파 종자도 보였다.
농자재 가게 주인장은 배추 모종을 사려는 손님을 맞고 있었다. 나는 그 손님을 뒤 이어 쪽파 종자를 찾았다. 쪽파 종자는 무게를 달아 팔지 않고 바가지로 팔았다. 한 바가지에 6천원이라고 했다. 나는 세 바가지를 샀더니 덤으로 더 얹어 주었다. 쪽파 종자를 들고 흥한 월가 아파트 건너편에서 북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렸다. 월영동 종점에서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나는 그 버스를 타면서 승산마을 산기슭에서 농장을 일구고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넣었다. 지인은 화천리까지 마중을 나와 줄 거라고 했다. 화천리에 닿으니 지인은 포터 트럭을 몰아왔다. 그새 내가 주말이 시간이 바빠 보름을 거르고 스무날 만에 만난 지인이었다. 지인의 포타 조수석에 앉아 산모롱이를 돌아 농장으로 들어갔다. 주말에 많이 내렸던 빗물이 휩쓸린 자국이 역력했다.
나는 농막에 배낭을 벗어 놓고는 곧바로 작업을 개시했다. 미리 지인에게 내가 쪽파 종자를 마련해 갈 테니 심을 공간을 마련해 놓으십사고 했다. 지인은 지나간 앞 주말에 가을 채소 씨앗을 심어 놓았더랬다. 무와 배추, 그리고 겨자채와 상추였다. 싹이 터 파릇하게 쌍떡잎을 펼쳐 있었다. 그 가운데 상추는 씨앗이 오래 되어서인지 발아율이 떨어져 새로 보식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내가 가져간 쪽파를 심을 자라는 두 군데였다. 관리사와 인접한 자리는 간밤까지 내린 비로 배수가 되지 않아 쪽파 종자를 심을 형편이 아니었다. 밭둑에 단감나무가 선 자리 곁에는 들깨를 심은 곳이 있었다. 그곳 들깨는 근년에 들어 초기 생육은 좋아 깻잎을 잘 따 먹었으나 여름 이후 새삼이 붙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지인은 새삼이 칭칭 휘감아가는 들깨들을 모두 뽑아내었다.
내가 소답 장터에서 마련해 간 쪽파 종자는 그곳에 심을 요량이었다. 지인은 농막에서 두엄과 비료를 실어왔다. 나는 두엄을 흩뿌리고 지인은 비료를 흩었다. 나는 괭이로 이랑을 지어 일정 간격으로 쪽파 종자를 심었다. 한 이랑을 심고 괭이로 다시 이랑을 지었다. 그러면 앞서 심은 쪽파 종자는 절로 묻어졌다. 지인도 곁에서 도와주었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마쳤다.
내가 심어둔 쪽파는 며칠 후 촉이 돋을 것이다. 한 달 후면 통통하게 자라 뽑아 먹을 수 있다. 지인 농장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든다. 가을철 지인 농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이 쪽파였다. 내가 잠시 품을 들여 심어둔 쪽파는 지인 농장을 찾아올 이들은 누구나 뽑아가도 좋다. 나는 쪽파를 심어둔 그 자체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사실 내가 집으로 뽑아갈 쪽파는 몇 줌 되지 않는다.
쪽파 종자를 심느라 움직였으니 땀이 흘렀다. 농막에서 땀을 씻고 연이어 할 일이 기다렸다. 고구마이랑으로 가 잎줄기를 땄다. 언젠가 멧돼지가 다녀가 수난을 겪은 고구마다. 그물망 울타리를 둘렀더니 더 이상 피해가 없다. 부추 이랑으로 가 부추도 좀 잘랐다. 부추 꽃이 하얗게 피어났다. 고구마 잎줄기와 부추를 배낭에 챙겨 놓고 지인과 곡차를 몇 잔 나누었더니 날이 저물었다. 1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