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광학교 학생회 호소문
-헌법재판소의 안마사에 관한 규칙 위헌 결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거나 빛이나 형체를 희미하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을 가진 시각장애 학생들입니다.
저 하늘의 태양도, 날로 푸르러가는 오월의 초록빛도,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도 볼 수 없지만 내 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로 자연의 싱그러움을 알고 손가락 눈 삼아 온갖 사물의 모습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눈이 없지만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손이 있습니다. 이 귀와 손으로 내 삶의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사회에 환원시켜야 한다는 가슴 벅찬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광주세광학교 학생들입니다.
서너 살의 유치원생부터 사오십 대의 중도 실명한 만학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학교 학생들은 오직 하나의 목표인 사회적 재활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우리가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될 때의 그 절망을 아십니까? 어떤 친구가 ‘차라리 죽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말을 한 적도 있듯이 대부분의 시각장애학생들은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주시는 사회 각 부문의 훌륭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그 절망을 딛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사랑으로, 우리도 일반인과 같이 직업도 갖고 결혼도 하여 훌륭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는 부푼 가슴으로 차라리 죽기보다는 죽을힘으로 장애를 극복해보자는 굳은 다짐을 한 것입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청각 및 감각 촉각 훈련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렇지 못한 중도 실명인들은 손가락을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보기도 하고, 칼로 굳은살을 벗겨 내며 점자를 한 자 한 자 읽고, 손가락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안마를 위하여 배워야 하는 교과들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정상적인 몸의 구조와 기능을 익히기 위하여 해부생리를 외워야 했고, 안마를 위한 기타 자극 요법인 침과 뜸, 전기치료, 안마, 마사지, 지압 기술 등을 연마하며 침을 놓기 위하여 수천 개의 혈자리와 음양오행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몸의 구조를 판단하는 병리학을 학습하고 질병을 판단하는 진단학을 배워 종합적인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료임상까지 철저히 학습하고 고학년 때에는 실제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안마사 자격을 취득하는 저희들에게 그 누가 전문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안마사가 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내년, 또는 내후년에는 사회에서 새로운 일꾼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헌법재판소에서는 5월 25일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엄청난 사형 선고와 같은 판결을 하였습니다. 사실 저희도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시각장애인이 이처럼 처절한 사회적 약자인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눈 뜬 사람들에게 수없이 열려 있는 취업의 문이 우리들에게는 거의가 굳게 잠겨 있는 단단한 철문이었습니다. 주변 시각장애인들의 취업 상황을 보면 아주 소수의 선생님과 사회복지사 및 종교인 빼고는 거의가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서부터 군인, 경찰, 공무원, 간호사, 축산업, 교사, 교수, 종교인, 제과, 제빵사, 컴퓨터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등부에 와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그 꿈은 꿈으로만 남고 현실성이 있는 안마업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마업이야말로 감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이 가장 잘 해 낼 수 있는 직종인 것입니다. 여러 선진국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에게는 매점 자판기나 복권업 등 을 유보직종(장애인만 할 수 있는 직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철학의 연장으로 지금까지 안마업만은 시각장애인만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일터로 남겨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이 어찌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초입에 와 있다고 하겠습니까?
노약자와 장애인 석을 남겨두고 운행하는 지하철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기본 정서라 할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평등만을 주장하는 생각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의 소산이라고 봅니다.
우리 학교의 각종 행사 때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보조자를 지원하게 되며, 유아와 어린이, 중,고교생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활동하게 합니다. 평등이란 그런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수치를 재서 반분하는 것이 아니고 그 중심점을 옮겨다니며 평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 말입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이 같은 우리의 입장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 공부만을 열심히 해야 할 학생들이 긴급 학생회를 열어 격론 끝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하였고, 그 입장을 아래와 같이 결의했습니다.
1.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무시하고 평등의 개념을 잘못 해석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퇴진하기를 요구합니다.
1. 대통령은 시각장애인 복지와 직업을 고려하여 이 사회의 음지가 더욱 확대되는 사태가 없도록 개악한 헌법을 제 자리로 돌릴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간구하기를 요구합니다.
1. 국회는 시각장애인들의 안정된 직업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안마업을 시각장애인의 유보직종으로 법령화하기를 요구합니다.
1. 우리가 믿고 공부한 교육과정이 최종 자립 단계인 직업 재활로 완성될 수 있도록 교육부는 대책안을 마련하기를 요구합니다.
1. 전환교육을 주장하며 앞서 가고 있는 국립특수교육원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 마련에 더욱 발 벗고 뛸 것을 요구합니다.
1. 안일하게 대처한 보건복지부는 각성하고 안마사규칙이 법령으로 존치될 수 있도록 발 벗고 뛰기를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
우리는 처절한 싸움터에서 죽지 못해 다시 산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무엇인가를 더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수만의 직업 중에서 우리에게 단 하나 주어진 직업이라도 보장하여 주십시오. 그 날을 위하여 여러분의 아들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진정한 평등을 위하여 이 나라의 각 부문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에 공감하신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주변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6년 5월 30일 광주세광학교 총학생회 일동
첫댓글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힘내시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