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로마 15,20).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항상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이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던 랍비들과 달리,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마르 1, 38)고 하시며 온 나라를 두루 다니신 예수님의 선교방식 그대로이다. 예수님은 특히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시어 격의 없이 어울림으로써 그들을 밝은 빛으로 이끄셨다. 그렇게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
사도가 천막을 짜는 노동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했던 이유는 첫째로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1테살 2,9), 둘째로 누구나 자기 손으로 일해야 한다는 표양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1테살 4,11-12; 2테살 3,7-9). 그러나 한편 초기교회의 대다수 가난한 신자들(1코린 1,26; 2코린 8,1-2)과 똑같은 조건 하에서, 그들 삶의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가 복음을 전파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사도이기에 같은 일을 하던 프리스카와 아퀼라, 심지어 노예인 오네시모와도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처음에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 즉 마지막 때가 일찍 찾아올 줄 알았다(1테살 4, 15-17; 5,23). 그러나 종말이 곧 오리라 믿으며 자기들만의 구원을 염원했던 쿰란과 같은 폐쇄적인 공동체와는 달랐다. 사도는 ‘단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율법 안에 있는 유다인들이거나, 율법 밖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거나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는’(1코린 9, 19-23), 곧 이웃을 향해 문을 활짝 연 개방적인 선교방식을 취했다. 이처럼 사도는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서는 선교방식과 개방적인 선교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생업과 학업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봉사자 재원확보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서 이런 추세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 나간다면, 교회가 그들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학교나 직장, 군대나 교도소, 병원이나 시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 작은 교회를 설립하고, 이미 설립되어 있는 곳에는 더욱 지원을 늘려야 할 것이다.
한편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은 젊은 층들과 마찬가지로, 따분한(?) 신앙생활보다는 자기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교육이나 레저·스포츠·문화 활동 등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재 추세라는 통계다. 그렇다면 교회가 신앙생활로부터 빠져나가는 그들의 발길은 물론 지역민의 발길도 잡아끄는 곳이 되면 어떨까? 교회의 담을 낮춰, 도서실, 공부방, 음악회장, 전시회장, 카페나 운동시설 이용 등 지역민이 이용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 겸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문화공간이 되어보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다 보면 가톨릭의 아름다운 성미술과 고유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익혀 잠재적인 신자가 되는 간접 선교의 효과도 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