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하는 것이라고 모함한다.
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으로 어둠을 쫓아낼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며,
아무리 깨끗한 사람일지라도 어둠의 세력이 닥쳐올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학 대사와 태조 이성계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둘이 만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태조가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군신(君臣)의 예를 떠나서 모처럼 농담이나 합시다.”
“좋습니다, 전하!”
“그럼 내가 먼저 하겠소.
대사께서는 그간 산중에서만 지낸 탓인지 얼굴이 흡사 산돼지 같구려.”
그러자 무학 대사가 말을 받았습니다.
“하하하, 전하의 얼굴은 흡사 자비하신 부처님을 꼭 닮았습니다.”
“내가 농담을 청했는데 농담이 아닌 아첨을 하다니요?”
“전하,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단점이 자꾸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마음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만큼 교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은
내 안에도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존경스럽고 귀하게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 비추어진 상대방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피정을 다녀온 뒤의 체험을 들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피정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기분 좋게 다른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본당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답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그는
옆 친구와 이야기하던 가운데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격앙된 나머지 자칫 주먹다짐까지 벌어질 뻔했습니다.
앞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더욱 새롭게 살려고 다짐했던 피정이
끝나자마자 친구와 다투게 되어 속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에 만난 피정 지도 신부님은
그 친구에게 오늘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신부님은 피정도 중요하지만
그 뒤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친구에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이야말로 더욱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미사 때에 은총을 체험했으나
성당 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화낼 일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직후에 오히려 성당에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짜증 날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늘 염두에 두면서 성당 울타리 안뿐 아니라
그 너머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루카11,26)
영혼이
하느님의 손으로
깨끗하게 치워진 이들 일수록
악한 영의 유혹을
쉽게 받기 마련이라네.
악한 영은
틈틈이
깨끗한 영혼의 집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손길이 닿았던
영혼의 집 일수록
더욱 더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