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루에 문장을 놓다
박미정
오래된 집에는 시간이 산다. 기둥과 서까래, 문살과 마루에는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숨결이 나이테처럼 겹쳐 있다.
채미정 마루에 앉으니 먼저 나무의 시간이 등을 받쳐 준다. 우리는 벽에 기대거나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잠시 말이 없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먼 곳을 바라본다. 문학을 이야기하러 온 사람들이지만 정작 이 순간에는 침묵이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문학은 어쩌면 말보다 침묵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채미정은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자신의 뜻을 쉽게 바꾸지 않았던 한 사람의 정신이 오래된 공간에 머물러 있다. 문학을 생각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장소가 또 있을까. 문학 역시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고 세상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문학은 오래된 질문 하나를 놓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루에 문인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서로 살아온 길도 다르고 마음속에 품은 이야기도 다르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세월이 있고, 또 한 사람의 눈빛에는 아직 쓰지 못한 문장이 숨어 있다. 우리는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인생 한 권을 품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책이다. 기쁨이라는 장도 있고 상처라는 장도 있으며,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못한 페이지도 있다. 작가는 그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펼쳐 세상의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다.
좋은 글은 화려한 문장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오래 바라본 눈에서 태어나고,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쉽게 돌아서지 않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꽃 한 송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 늙어 가는 부모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시간을 발견하는 사람, 길가의 빈 의자 하나에서도 누군가의 부재를 읽어 내는 사람에게 문학은 찾아온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더 자세히 바라보겠다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문학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오래된 문살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백 년을 견딘 나무 앞에서 우리의 한 생은 얼마나 짧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 짧은 생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문장으로 남긴다. 인간은 사라지지만 문장은 때로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몇 줄의 글이 오늘의 우리를 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나는 문학이 세상을 크게 바꾸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편의 수필이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한 편의 시가 가난을 단숨에 없애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한 사람의 마음을 아주 조금 움직일 수 있다. 미워하던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타인의 눈물을 자신의 일처럼 바라보게 한다. 그 작은 움직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세상의 변화도 결국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채미정 마루에 앉은 문인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문학을 말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어쩌면 문학이 우리에게 삶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얼마나 많은 문장을 남겼느냐보다 그 문장 속에 얼마나 진실한 자신을 담았느냐고 묻는 것 같다. 글과 삶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결국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문장이 되고, 우리가 바라본 세상이 한 편의 수필이 된다.
마루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서면 오늘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기억이 될 것이다. 함께 앉았던 사람들의 얼굴도, 나무 기둥에 내려앉던 햇빛도 세월 속으로 조금씩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 마음에 들어온 한 문장만은 오래 남을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 사라지는 것 가운데 사라지지 않는 무엇을 붙잡아 두는 일이다.
채미정을 나오며 뒤를 돌아본다. 고요한 정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은 떠나고 계절도 지나가지만 오래된 나무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마루에 앉아 다시 삶과 문학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문학은 거창한 이름으로 우리 곁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문학을 말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말하는 일이고, 사람을 말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오래 묻는 일이다.
첫댓글 진실 되게 살면 되는 일
댓글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먼지 만큼이라도 내가 아닌 이에게 득이 되게 하는 일.
사유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협회 봉사에 수고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채미정으로 갑니다.
입구부터 몰려오는 솔향과 더불어 입구부터 몰려오는 산소덩어리를 내가 다 소화할 수 없어 나머지는 구미 시민들께 나눠 줍니다.
야은 선생의 영정이 있는 영모각 뒷편엔 대나무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겨주지요.
어디까지가 건축물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일까요...
채미정은 제겐 참 좋은 곳입니다... 박미정 선생님을 만나게 해 준 곳도 연원을 따지고 보면 채미정입니다...^^
채미정으로 문단에 들어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연간집 원고를 보내면서 제가 쓴 글을 아내에게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작품상을 받은 박 선생님의 '우포늪'을 같이 보여 줬습니다....
그 때부터 제 아내는 박선생님의 찐펜이 됐습니다...^^
아!
그런 일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