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3.18일에 중앙일보에 실린 나의 편지를 읽고,이름모를 시민들이 학교에 격려의 편지를 많이 보내줬다.
그당시에는 경황이없었고,해결할 일들과 서류들이 너무 많아 시민들이 보내온 편지중에 많은것을 분실하거나, 훼손이되었지만,정리를 하다보니 2장이 남아있었다.
좀 여유가있었을때 그분들에게 답장을 해줬으면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편지의 필체이나 내용을봐서는 좀 연세가 있으신분들같아 30년전일이라 생존해 계셨으면 한다.
그분들의 격려가있어 94년이후 6년만에 부패재단이 복귀해서 절망에 빠졌을때 그분들이 보내준 편지들을 남몰래 읽으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지나가니 그분들이말로
생면부지의 나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내준 숨은 공로자들분인듯하다.
워낙 게으른 나로서는 그분들에게 죄송하고,혹시라도 인연이 닿으면 따끈한 국밥이라도 한그릇 대접하고싶다!
지금은 웃을수있지만,하필이면 교수님의 추천으로 간곳이 문제의 비리학교이니 이것 또한 나의 운명이리라.
다시는 상문고같은 사건이 일어나지않기를 바라며,나같이 불행한 교사가 없기를 바란다.
39년의 교사생활중에 편했던 날은 채 10년도 되지못한다.
부패와의 싸움에서 승리는했지만,나중에 뒷처리와 갈등,희생,아픔이 너무 많았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말할수없는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있지만,혹시라도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누가될까봐 묻어두겠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빛바랜 중앙일보 기사,사회면에 만화옆에 톱기사로 나왔다.
중앙일보를 보고 보내온 서울시민의 편지.
4장으로 보냈다.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인상깊은 글,
석은(썩은곳)은 과감하게 도려내야한다.
내인생에서 가장 편한 세월은 불과 몇년전부터 지금이다.
세월이 벌써 30년이 흘렀다.
너무 힘든시절이었지만,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알게모르게 도와준 모든분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가지고있으며,
학교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된후 몇년동안 전국의 분규가있는 중,고등학교,대학교를 방문하여 나름대로 용기를 보탰지만,
아직 큰빚으로 남아있다.
첫댓글 한샘님의 아무나 할수없는 진정한 용기에 과열찬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날에 내가 있는것은 도와주신분들이 있어서 그런거지요.
다시하라면 못하지만,후회는 하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