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티구안의 등장은 폭스바겐 코리아의 내일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가격을 내리고, 보증기간은 확대하고 출고 후 1년간 자기부담금을 최대 5회까지 지원키로 했다. 향후 출시하는 모든 차에 이 정책을 적용한다. 소비자 부담을 줄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정책이다.
역시 가격이 먼저 눈에 뜨인다. 가장 낮은 트림인 티구안 프리미엄의 가격은 개소세 3.5% 기준 4,005만 7,000원인데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를 이용해 5% 할인을 받으면 3,802만 7,000원으로 가격이 낮아진다. 시승차인 최고 트림 4모션 프레스티지는 같은 조건으로 4,646만 6,000원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EA288 에보 엔진이다. 신형 티구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디젤엔진이다. 향후 출시하는 디젤 모델에도 이 엔진이 적용된다 하니 폭스바겐 디젤의 주력인 셈이다.
트윈 도징 시스템, 그러니까 배기가스를 두 번 걸러주는 게 이 엔진의 핵심이다. 요소수를 이용하는 배기가스 후처리 시스템, 선택적 환원촉매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SCR 촉매 변환기 두 개를 사용한다. 즉 배기가스를 두 번 처리하는 개념. 마스크 두 개를 쓰는 셈이다.
트윈 도징 시스템은 불완전 연소된 연료, 탄화수소, 일산화탄소 등을 걸러내고 두 차례의 촉매 변환기를 거치는 동안 질소산화물은 80%까지 줄어든다는 게 폭스바겐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 6d를 충족시켰다.
EA 288 에보 엔진은 디젤엔진을 당분간 계속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말하고 있다. 디젤 게이트 이후 소비자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디젤엔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뚝심 있는 혹은 고집스러운 행보다.
티구안은 이밖에 IQ.라이트, 9.2인치 모니터 기반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IB3 등으로 무장해 상품성을 더욱 높였다. 음성명령 시스템은 훨씬 더 인식 범위가 넓어졌고 손동작으로 화면을 쓸어넘기는가 하면, 공조 장치에는 버튼 대신 손가락으로 밀어내는 등의 기능을 넣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폰과 ‘무선’으로 연결된다. 번잡스럽게 USB 포트를 찾아 선을 연결할 필요가 없다. 블루투스는 물론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도 무선으로 연결된다. 이른바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급 차 중에서 무선 연결이 되는 차는 많지 않다. 무선 충전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당근 된다.
주행보조 시스템도 충실하게 챙겼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보행자 모니터링 시스템, 충돌 대비 긴급제동, 레인 어시스트, 360도 카메라와 에어리어뷰, 파크어시스트 등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다. 운전자가 잠깐 방심한 틈을 커버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를 믿고 일부러 방심하는 건 곤란하다. 어차피 책임져야 하는 건 운전자니까.
2.0 디젤엔진은 7단 DSG에 맞물려 150마력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이 1,771kg이니까 마력당 무게는 11.8kg으로 12kg에 가깝다. 무거운 편이다. 그래서다. 티구안은 무난하게 다가온다.
무난한 성능. 크게 부족함이 없고, 넘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다는 의미와 다르다. 패밀리카로 사용되는 차에서 무난함은 가장 소중한 가치다. 매운맛은 자극적이지만 매일 먹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빠르게 달리기보다 편안하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게 어울린다. 단단하지만 충격을 품을 줄도 아는 적당한 탄성으로 노면에서 올라오는 스트레스를 잘 막아내고 있다.
중저속 구간에서 티구안의 무난함은 빛이 난다. 굳이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120km/h까지의 일상 주행영역에서 조용하고 편했다.
이불 덥고 숨죽여 흐느끼는 듯 엔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디젤 인지 가솔린 인지 들어봐야 구분할 텐데 아예 소리 듣기가 힘든 것.
가속할 땐 차근차근 꾸준히 속도를 올린다. 고속주행에 접어들면 가속감은 더디다. 고속으로 갈수록 출력과 무게의 한계가 확연해진다. 코너에서는 속도가 높으면 타이어가 먼저 힘들어한다.
GPS 계측기로 측정한 0-100km/h 가속 시간은 10.1초가 가장 빨랐다. 10초를 넘겨 느리다 할 수 있겠지만 마력당 무게 11.8kg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가속력이다. 9차례 시도 중 가장 느린 기록도 10.85초로 편차가 크지 않은 균일한 기록을 보였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파주-서울 55km를 달린 실주행 연비는 22.9km/L로 측정됐다. 공인복합연비 13.4km/L보다 리터당 10km 가까이 더 달렸다. 작정하고 경제운전 하면 이처럼 놀라운 연비를 만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
무난함, 맛으로 치면 순한 맛이다. 그 순한 맛을 만들기 위해 폭스바겐은 독해졌다. 배기가스를 두 번 걸러낸다는 게 그렇다. 아마도 그 때문에 엔진 출력을 더 높이지 못했을 터. 이를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가격을 낮추는 것도 보통 독한 자세로는 안 된다.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강한 의지, 독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배기량에 비해 엔진 출력은 아쉽다. 출력보다 배기가스가 더 중요한 요소인 만큼 배기가스 인증기준을 맞추기 위해 출력을 고집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건 메이커 입장이다. 2.0 엔진이면 180마력 이상을 기대하는 게 소비자 마음이다. 아니면 그 출력을 유지하고 배기량을 줄이던가. 배기량은 자동차 세금과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어서 배기량과 출력의 관계는 한국에서 더 중요한 요소다.
터치스크린은 자주 닦아줘야 고유의 고급스러움이 유지된다. 게으른 운전자에겐 성가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