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유대인 중에서 유대 종교법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이들은 하레디 그룹으로, 전체 인구의 약 12~1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이들 하레디 그룹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시오니즘의물결이 확산될 당시 상당수 하레딤은 시오니스트 세력들이 주도하는 독립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을 받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민족주의 정치운동인 시오니즘이 유대교의 가르침을 도외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오니즘을 단순히 세속적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치운동이라 여겼다. 그래서 언젠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메시아가 도래하면 종교국가인 참 이스라엘이 건국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그룹의 일부는 극단의 증오심을 표출하며 시오니스트들은 종교국가 이스라엘을 시험에 들게 하는 악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중에는 ‘설령 이스라엘이 건국되더라도 최고의 성지인 예루살렘만큼은 시오니즘 국가 이스라엘의 영토에 절대로 포함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反유대주의가 유럽을 휩쓸면서 안전한 도피처를 찾을 필요성이 커지면서 유대민족의 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이 정치적 현실로 다가오게 되자 다수의 하레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오니즘과 타협하였다. 오늘날에도 시오니즘 국가로서의 현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레딤의 시각은 복잡하다. 하레디 그룹 내에서도 분파마다 인식과 견해가 서로 다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하레딤 중에는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하느님께서 유대인에게 내린 벌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의 어려움을 핑계로 거주하던 국가의 문화나 풍습에 동화되면서 스스로 유대교의 가르침을 저버린 데 따른 일종의 인과응보라고 믿는 것이다. 또한 시오니짐에 의해 건국된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하레딤도 있다. 이들은 메시아가 오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 국가를 마음대로 건설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나 배반이며, 그런 점에서 오늘의 이스라엘은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같이 시오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하레딤은 비록 소수이지만 이스라엘 내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 하레딤의 다수는 시오니즘 자체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체제는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지만, 유대 종교법의 관점에서는 갈수록 취약한 세속적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토라를 열심히 공부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유대 종교법상 요구되는 각종 계율과 전통을 지키는 등 종교적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 언젠가 메시아가 도래할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는 神政국가의 모습을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하레딤은 종교정당을 결성해서 총선에도 참여하고 연립정부에서 각료직을 맡는 등 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정치와 국정 운영에 있어서 이들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정권이 집권하는 시기에는 하레딤 세력이 정권 존립의 주요 변수로서 일종의 킹메이커 역할을 해왔다. 이를 두고 진보언론이나 세속적인 세큘라 그룹에서는 민주국가를 표방하는 이스라엘에 정작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사우디나 이란처럼 종교국가가 되어 간다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