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Beneath the Wheel]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소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눈에 띄게 내성적이지만 동네에서 신동이라 불릴 만큼 영특한 아이다. 1900년대 초반 독일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소년의 미래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먼저 주 정부에서 시행하는 악명 높은 선발 고사를 치고 신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실력을 다시 인정받아 튀빙겐대 같은 유명 대학교로 진학해 신학을 공부해 목사나 교수가 돼야 한다. 한스는 마을 대표로 선발 고사를 준비하는 만큼 학교를 마치고는 홀로 그리스어 라틴어 종교 수학 과목의 보충수업을 받았다.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온 동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야 했던 만큼 압박감도 매우 컸다. 시험을 치러 낯선 도시에 가서는 시골 출신인 자신과 달리 좋은 교육을 받은 동년배를 보고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과 마음 상태가 엉망이 된 한스는 시험을 망치고 시무룩해진다. 그런데 정작 결과가 발표되니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신학교 입학까지 7주간의 방학이 ‘선물’로 한스에게 주어졌다. 긴긴 여가의 시간, 그 동안 햇빛 아래 시골 여름은 무성하고 푸르게 익어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폐를 채우자 행복도 온몸으로 퍼져갔다. 한스는 매일 사람 키만큼이나 풀이 자라고 여름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지나 강가로 갔다. 강 물결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낚시찌처럼 시험 준비로 지금껏 눌렸던 기쁨이 마음 위로 다시 떠 올랐다. 그래, 여름방학은 이래야 한다! 이런 여유도 잠깐. 시골 여름의 흥취를 흠뻑 들이마시는 한스를 보고 친절한 동네 목사님이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목사님은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선행 학습을 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결국 한스는 아름다운 여름방학을 포기하고 목사관으로 가서 원어로 신약성경 읽는 법을 배웠다. 여가를 빼앗긴 한스가 대신 얻은 것은 선발고사 준비 당시 자기를 꽤 괴롭히던 두통의 재발이다. 짧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방학 이야기는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수레바퀴 밑에서’에 잠깐 나오고 곧 자취를 감춘다. 누가 알았을까. 한스에게 여가(餘暇)라는 선물이 다시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신학교로 진학한 한스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선생님과 아버지, 목사님 등 어른은 이 가여운 소년을 위로하기는커녕 닦달하고 압박하며 절망에 빠뜨렸다. [수레바퀴 밑에서]는 헤세가 신학교에 진학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화한 책이다. 그의 비판 대상은 젊은이를 수레바퀴 아래 짓눌러버리는 빌헬름 제국 시대의 비인간적이고 성과 중심적인 교육 정책이었다. 하지만 여름방학의 기쁨을 상실한 이는 한스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업적을 내고 자신을 계발해야 하는 현대인은 한스와 마찬가지로 여가라는 선물을 상실한 상태다. 휴가를 가서도 SNS에 강박적으로 사진을 게시하고 타인의 쉼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며 자기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적잖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6일간 창조하고 7일에는 안식했다. 그렇다고 그날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안식으로 “그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창 2:3)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도 바쁨으로 망가져 버린 시간에 무위(無爲)를 위한 여가의 공간을 구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안과 짜증으로 점령된 일상이라도 그 속에서 시간을 축복하고 아름답게 가꿀 터전을 얻게 된다. 여가(餘暇)는 빈둥빈둥 아무 하는 일 없이 다만 먹기만 하는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시간이 아니다.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여가를 가져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시 46:10) 그 긴 은퇴 이후. 100세 시대라는 그 많은 시니어의 삶. 그 [여가라는 선물]을 누리는 복된 여름을 기원하는 것도 신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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