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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2년차를 소포모어(sophomore)라 부른다.
또 징크스(jinx)를 붙여 2년 째 되는 해가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KBO리그는 신인이 신인왕 수상은 고사하고 1군 땅을 밟는 것조차 흔치 않다.
2016년 신인 가운데 1군 기록을 남긴 이는 총 33명(투수17명.야수16명).
전체 인원 중 32.7%에 불과하다.

투수 중에서는 김주한(SK.사이드암)이 단연 돋보였다. 역시 대졸 신인 고봉재(두산.사이드암),임대한(삼성.우완), 그리고 해외파 정수민(NC.우완)도 나름 선전했다.
고졸 투수로는 박세진(kt.좌완),박준영(NC.우완), 정동현(KIA.좌완) 전상현(KIA.우완)이 가능성을 보였다.

타자 중에서는 대졸 외야수 조수행(두산)이 공수주를 앞세워 많은 게임에 출전했다. 국내리그 로 유턴한 김동엽(SK)도 거포 본능을 드러내며 김주한과 나란히 비룡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고졸 타자로는 최원준(KIA)이 가장 눈에 띈다.
수비 포지션은 아직 제자리를 확보하지 못했으나 날카로운 방망이만큼은 팬들의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신인 대부분의 목표는 1군 입성이다. 이를 데뷔 첫 해 달성한 33명은 일단 출발선에서 한 발 앞서 나간 것일 뿐 성공했다 말하긴 이르다.
나머지 선수들도 실망하거나 기죽을 필요 없다.
설렘과 긴장감 속에 적응을 마친 소포모어들의 활약은 이제 부터가 진짜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란다.
여기 삼성- KIA -LG에서 소중히 여기는 고졸 2년차 야수 3명이 있다.
비록 첫 시즌 만족할 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는 황선도-김규성-김주성.
이들의 데뷔 첫 시즌에 대한 소감과 2017시즌에 대한 각오를 들어 보았다.

* 황선도
1997년 8월 28일 생 / 대전고 졸업
184cm 90kg / 우투우타 / 외야수
2015년 청소년국가대표
2016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전체 50번) 계약금 7000만원
2016시즌 1군 성적 : 1경기 4타석 3타수 1안타 1볼넷 1삼진
(10월 8일 문학 SK전)
2016시즌 퓨처스 성적 : 23경기 71타석 62타수 13안타 (타율 2할 1푼) 2홈런 8타점 8볼넷 26삼진 1실책
“전반기까지는 BB 아크에서 지내다 6월 한 달 풀타임 게임을 뛰었던 것이 전부라 기록이 적다. 그래도 잊지 않으시고 확대 엔트리 기간에 불러주셔서 난생 처음 1군 무대를 경험했다. 비록 한 게임이었지만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기회 주셔서 감사드린다.”
2016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은 단 한명의 외야수를 보강했다. 바로 황선도였다. 거포 우타자 부재에 대한 보강 차원이었다. 스윙 스피드와 궤적이 양호하고 임팩트가 뛰어나 향후 변화구 대처 능력만 갖춘다면 장거리 타자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삼성은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판단,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고 나쁜 습관을 고치고자 BB아크 1대 1맞춤 훈련 대상자로 선정했다.
특별대우를 받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되려 고맙고 동기부여도 됐다. 하지만 게임을 뛰지 않는 것은 선수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엔 차근차근 해야지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 나가는 동기들이 너무 부럽더라. 감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도 느꼈다. 실제로 타석에서 뻔히 눈에 보이는 볼을 놓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수정한 폼을 실전에서 활용해보는 차원이다 보니 스스로 어색하고 스윙이 부자연스러웠다. 반복되는 개인 연습이 나중엔 지루해지더라(웃음). 그러면서 슬럼프도 찾아오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야구가 재미가 없어졌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니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 한 게임 한 타석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대전고 3학년 시절 그는 45타수 14안타 타율 3할 1푼 1리 5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OPS가 1.178(장타율 0.711 출루율 0.467)로 높았다.
좌타석 일색이라 오른손 거포로 불린 그는 청소년 대표 발탁의 영광을 안았고 또 실제로 보란 듯이 세계청소년대회에서 2개의 홈런아치를 그려내며 기대에 부응했다.
“고등학교 땐 그냥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타격을 했다. 몸이 반응하는 대로(웃음). 그런데 조금만 고치면 더 나아질 거라는 욕심에 바꾸고 또 바꾸고(웃음) 어느 순간 원래 내 폼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프로에 들어와 깨달은 것은 자기관리의 중요성이었다. 지난해 그는 1군 캠프를 따라갔었다. 그러나 웨이트 운동을 하다 헬스기구에 발목을 다쳐 골절부상으로 조기귀국길에 올랐다.
“그래서 이번엔 최대한 몸 사리며 다치지 않으려고 했다. 괌 1군 전훈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더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대전고에서 (안)익훈이형 (송)우현이 (임)석진이 등 비슷한 또래끼리 모여 같이 운동을 했다. 꾸준히 웨이트를 한 덕분에 체중도 90대에 진입했다. 스프링캠프 가면 자연스레 빠질 거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더 불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황선도는 지난해 10월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했다.
현장에서 그를 지켜본 김한수 감독은 ‘차세대 삼성의 4번 타자감’ 이라는 극찬했다.
“치고 달리고 정신없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잘하지 못했는데 칭찬을 해 주셔서 오히려 민망하다.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웃음).”

그는 프로 첫 시즌에 대한 아쉬움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팀에 들어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임을 뛰지 않다 보니 퇴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불안했다. 기회가 와도 더 잘하고 싶은 욕심만 앞섰을 뿐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 떨쳐내지 못했다. 선배님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당연한 일인데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마무리캠프에 이어 1군 캠프도 가게 됐으니 이제 여유를 갖고 내 야구를 해보고 싶다.”
대전시 유성구의 한 커피숍에서 메뉴를 고르면서도 그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는 차는 피하고 몸에 좋은 건강음료를 선택했다.
겉보기엔 자유분방하고 활달할 것 같지만 차분하고 진지한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박)해민이 형이 잘 챙겨주시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요즘도 매일 연락을 주고 받았다. 배울점 많은 선배님이시다. 형처럼 나도 팀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당연히 올해 목표는 1군에서 뛰는 것이지만 서두르지 않을 작정이다. 어디든 상관없이 많은 게임에 나가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하고 싶다는 것이 황선도의 작은 바람이다.
* 김규성
1997년 3월 8일 생 / 선린인터넷고 졸업
183cm 75kg / 우투좌타 / 내야수
2016 신인드래프트 7라운드(전체 63번) 계약금 4000만원
2016시즌 퓨처스 성적 :
22경기 25타석 24타수 7안타 (타율 2할 9푼2리) 3도루 1볼넷 7삼진 4실책

김규성은 2015년 당시 서울권 대표 유격수 박준영(경기고)-최원준(서울고) -김주성(휘문고)에 비해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3학년 때 전국대회 성적이 18경기 출전 59타수 14안타 타율 2할 3푼 7리 7타점 4실책으로 평범했다.
비교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방망이에서 인상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로 2번 타자 겸 유격수로 나섰던 그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만큼은 확실하고 견고하게 막아내고 처리했다.
프로직행이 가능할 수 있었던 또 하나 이유는 제69회 황금사자기 우승이었다.
“정말 생각도 못했다. (김)대현이 (이)영하가 잘 던져주기도 했지만 (이)진영이 (홍)성호,(안)준모 등 타자들도 정말 펄펄 날았다. 다른 애들에 비하면 난 못한 편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팀이 성적을 내면서 많은 게임을 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운이 좋았다.”

고졸 신인이 입단년도 퓨처스 주전을 꿰차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개 대학팀 상대로 연습게임을 뛰거나 볼보이 혹은 게임 진행요원으로 게임 전력 밖의 이방인이 되기 십상이다.
지명을 받고 왔으나 세 자리 수 등번호(014)를 달고 육성선수로 시작하는 등 첫 시즌 행보는 순탄치 못했다.
“확실히 프로다 보니 고등학교 때 보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멀지만 여기 함평 숙소에서 지내면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시즌 초반엔 연습경기를 하다 내가 친 타구에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잠시 재활조에 머물기도 했다. 시즌 초반엔 주로 대학 팀과의 연습경기에 출전했다. 그런데 워낙 내가 파워가 없어서 만족할 만한 타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2군 경기는 8월에 집중해 나가 출장 게임이 얼마 되지 않는다.”
평소 함평 구단 숙소에서도 지내지만 쉬는 날이나 비활동기간엔 광주에서 산다.
“(최)원준이랑 돈을 반반씩 보태 광주에 집을 구했다. 고등학교 때까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웃음). 작년엔 거의 원준이 혼자 지낸 날이 많았다. 1군 경기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기 스윙을 다부지게 하는 모습도 부러웠지만 타고난 파워나 타격 센스가 부럽다. 그런데 원준이는 반대로 나를 부러워한다. 같이 지내면서 서로 조언도 해주고 죽이 잘 맞는 편이다.”

KIA는 FA 최형우를 영입하며 타선강화의 뜻을 이뤘으나 보상선수로 강한울을 잃었다. 유격수 백업으로 누가 대체 가능할지 여부에 귀추가 쏠리는 와중에 그의 이름 석 자도 언급됐다.
“나도 들었다. 내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랐다. 주변에서 지금이 기회라는 이야기도 해주시더라. 그런데 연차수로 넘볼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찬호 형은 군대를 가지만 (고)영우형(개명 장혁), 최병연 선배님, 홍재호 선배님 또 새로 오신 김지성 선배님도 계시고 많다. 또 (최)원준이도 있지 않나? 원준이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캠프 기간에 정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원준이가 외야 수비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내야로 오면 내가 위험하다(웃음).”
김규성은 마무리 캠프에 이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연이어 승선했다. 내심 기대는 했으나 현실로 이뤄질 줄은 몰랐다. 그래서 기쁨과 설렘이 두 배다.
“대선배님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다치지 않고 많이 보고 배워 오겠다.”
그는 시즌 목표에 대해선 아프지 않는 것이 우선이고 가능하다면 친구와 나란히 챔피언스필드를 밟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김주성
1998년 1월 30일생 휘문고 졸업
180cm 82kg / 우투우타 / 내야수
2015년 청소년국가대표
2016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전체14번) 계약금 1억 원
2016시즌 퓨처스 성적 : 36경기 72타석 63타수14안타 (타율2할 2푼2리) 4타점 5도루 8볼넷 6삼진
지명순번에서 알 수 있듯 김주성은 전국 랭킹 상위 순번의 유망주였다.
수원 신곡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덕수중학교를 거쳐 휘문고 진학하지마자 주전자리를 꿰차고 3년 내내 붙박이 유격수로 활약했다. 1,2학년 때 평균 타율 3할을 넘겼고 OPS도 9할이 넘는 뛰어난 타격감과 강한 어깨로 시선을 끌었다.
3학년 때도 불방망이는 여전했다. 8경기 출전 40타수 29타석 15안타 타율 5할 1푼 7리, 1홈런 7타점 3도루. OPS가 무려 1.553(출루율 0.622 장타율 0.931)이었다.
이는 그해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최원준(서울고. 타율 4할 7푼.OPS1.451)보다 앞선 기록이다.
“팀이 전국대회에서 조기 탈락하는 바람에 게임 출장 기록이 적었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유격수로는 최원준 다음으로 두 번째에 호명됐다. 더구나 평소 좋아하고 응원했던 LG . 이루고 싶은 꿈이 완벽하게 이뤄진 순간이었다.
“고3이라면 누구나 청소년대표와 프로 지명 두 가지를 소망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기뻤다. 프로라는 곳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잘 할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천 챔피언스스 파크 합류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팔꿈치를 다치면서 2군 대만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LG는 신인선수들을 우선 체력위주 훈련을 하는 편이라 1군 캠프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군 캠프는 당연히 따라 갈거라 생각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재활군 소속이 되면서 주변 눈치를 보고 의기소침 한 날이 많아졌다.
겨우 팔꿈치가 낫자 이번엔 공 던지는 모습을 지켜본 코칭스태프로부터 외야 전업을 권유받았다.
평소 세게 던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있을 뿐 폼이 딱딱하고 정확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어 왔던 터라 그는 겸허히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수비 자세나 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었다. 그냥 실전에서 실수 없이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프로에 와보니 그게 아니더라. 기본기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나마 방망이는 괜찮은 편이니 장점을 더 살리기 위해 수비 부담감을 덜자는 것이 코치님들의 생각이셨다. 심리적으로 위축 된 것을 고치는 것이 한계가 있다 판단해 그러기로 했다.”
그러나 외야도 만만치 않았다. 멀리서 날아오는 타구를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냥 막연히 할 수 있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외야도 내야만큼이나 어려웠다. 수비가 안 되다 보니 방망이도 덩달아 맞지 않더라. 야구를 시작한 이래 작년이 최악이었다.”

시즌종료 후 양상문 감독은 젊은 선수들 27명을 추려 고치에서 마무리캠프를 지휘했다. 김주성도 참가했다.
“감독님 뿐 만 아니라 1군 코치님들과 함께 한 것이 처음이라 긴장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2군보다 더 편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다. 1군은 2군과는 좀 달랐다. 활기 넘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양상문 감독님께서 시즌 중간 이천에 오셨을 때 ‘고등학교 때는 제법 잘 하는거 같더니 왜 이렇게 망가졌느냐’ 고 하셨었는데 이번 마무리캠프 때 ‘공 던지는 것이 괜찮아졌다’ 고 한마디 해 주셨다. 그 말에 자신감이 팍 생기더라.”
그 날 이후 양상문 감독의 지시로 원래 자기 자리 내야로 돌아왔다.
“마무리캠프 기간 타격이 살아나면서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다시 기회를 주신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하겠다.”

2017년 시무식 행사 후 선수들에게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을 통보했다. 김주성은 포함되지 못했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올해는 2군 스프링캠프를 일본으로 간다고 들었다. 기대된다. 이번엔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오고 싶다. ”
12월부터 1월까지 비활동기간 그는 모교 휘문고에서 개인 훈련을 해왔고 2월 1일 이후 이천 2군 숙소로 들어간다.
“구체적인 기록보다는 기죽지 않고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하는 것이 올해 목표다. 최종적으로는 오래 야구를 하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 시즌 한 시즌이 중요하다.”
찬란하고 멋진 첫 시즌을 기대한 이가 어디 이 셋뿐이랴.
만족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뒤범벅되어 있을 2년차의 젊은 선수들이여!
올시즌 KBO 리그를 쥐락펴락 하는 중심에 서길 바라며 목청 높여 파이팅을 외쳐본다.
기사제공 홍희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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