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의 극적인 역전승을 보며 삶의 한 가닥 희망을 이야기하고, 위기를 잘 넘기면 기회가 찾아오는 프로야구 경기를 보며 인생의 고진감래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네 삶과 가장 닮은 스포츠는 역시 마라톤입니다. 선수들이 42.195km를 달리는 것을 보며, 어떤 이는 인생이 단시간에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임을 읽어내고, 또한 어떤 이는 꾀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미덕을 발견합니다. 이 글에서는 마라톤 영화의 두 주인공을 만나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말아톤’의 초원이와 ‘맨발의 기봉이’입니다.
몸 풀기 - 영화의 줄거리
말아톤의 초원이는 자폐증이 있어 장애인학교에 다니는 십대소년입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본 얼룩말을 좋아해서 그런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하게 합니다. 어렵게 코치를 구해 훈련을 받은 초원이는 우여곡절 끝에 마라톤 풀코스완주에 성공합니다.
‘맨발의 기봉이’의 기봉이는 충청도의 한 시골에서 노모와 단 둘이 살아갑니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며 마을에서 소문난 효자인 기봉이. 어느 날 마을 이장님이 기봉이에게 마라톤 대회에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기봉이는 우승해서 엄마에게 틀니를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몇 주 동안 맹훈련을 합니다. 결국 우승은 못하지만 처음으로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해내고 엄마에게 틀니도 해드리게 됩니다.
초반레이스 - 잘하는 것에 집중하여 문제 풀기
초원이와 기봉이에게 마라톤을 시작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초원이 엄마와 기봉이네 마을 이장님이었습니다. 이들은 초원이와 기봉이의 모자란 것보다는 잘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어떤 일을 바라볼 때 흔히 문제 중심으로 바라보기가 쉽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초원이는 자폐아라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대인관계가 어렵습니다. 또한 그런 초원이로 인해 가족들은 갈등을 안고 살아갑니다. 기봉이 역시 정신지체장애인으로 변변한 직업도 없이, 미래에 대한 대책도 없이 살아갑니다. 문제를 중심으로 보자면 이 두 사람은 모두 여간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변사람들이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만 집중을 해도 노력이 모자랄 판입니다.
하지만 초원이 엄마는 달랐습니다. 초원이가 잘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초원이라는 이름에도 살짝 암시되어 있듯이, 초원이는 마치 드넓을 초원을 질주하는 얼룩말처럼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는 그런 초원이의 다리에 주목합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 “몸매는?” “끝내줘요!” 엄마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주고받는 말로 초원이가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초원이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초원이는 그 백만불짜리 다리로 마라톤 매니아들도 하기 힘들다는 풀코스를 완주해냅니다. 마라톤을 하는 동안 초원이는 나날이 자신감과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초원이 때문에 항상 뒷전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동생과 초원이에게 관심을 쏟지 않아 엄마와 갈등을 빗던 아빠는 초원이가 풀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마음을 열게 되어 가족화합을 일구게 됩니다. 처음부터 엄마가 주목했던 초원이의 백만불짜리 다리가 결국 문제를 해결해낸 것입니다.
기봉이네 이장님 역시 달랐습니다. 이장님은 기봉이의 장애나 문제가 아닌 달리기 실력에 주목했습니다. 이장님은 기봉이가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어 마을을 알리는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장님은 기봉이의 장점을 살려주기 위해 마라톤대회 참가를 제안하고 직접 훈련까지 시켜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봉이는 이장님이 주목한 그 달리기 실력으로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고 엄마의 틀니까지 해드리게 됩니다.
이렇듯 아무리 문제가 많고 심각해 보인다 하더라도 문제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잘하는 것에 주목하고 그 긍정적인 것을 키워 부정적인 것에 대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초원이와 기봉이가 멋진 다리로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반레이스 - 고정관념 깨기
초원이와 기봉이는 달리고 또 달립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초원이와 기봉이가 잘하는 것에 주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봉사명령으로 초원이네 학교에 오게 된 마라톤 코치는 자폐아인 초원이에게 마라톤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원이 엄마에게 호통까지 칩니다. “마라톤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요.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초원이는 묵묵히 달립니다. 운동장을 몇 시간씩 달리라는 무리한 요구에도 달리고, 코치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묵묵히 따르며 달립니다. 결국 코치는 초원이의 노력에 감복하고, 그제서야 그의 재능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엄마 못지않은 초원이의 지원자가 됩니다.
기봉이네 마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봉이가 비록 효자이긴 하나, 장애인이 무슨 달리기냐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봉이의 마라톤 도전을, 대리만족을 위한 이장님의 욕심으로 치부합니다. 이장님을 욕하고 기봉이를 비웃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몇 주 동안 꾸준히 달리는 기봉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뀝니다. 기봉이가 달리기에 제법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잘만하면 마라톤대회에서 1등이 되어 마을을 빛내줄 수 있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나중에는 마라톤대회에 대규모 원정응원까지 가게 됩니다.
초원이의 코치와 기봉이네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 주목한 것은 초원이와 기봉이의 겉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진지하게 초원이와 기봉이의 달리기 재능과 열정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막상 그것을 보고 나서야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겉모습과 고정관념으로만 볼 일이 아님을 초원이와 기봉이는 또한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막판스퍼트 - 스스로 이겨내기
엄마와 이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초원이와 기봉이의 발목을 잡은 사람은 놀랍게도 엄마와 이장님이었습니다. 초원이 엄마는 자신의 욕심으로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강요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원이에게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못하도록 호통을 칩니다. 기봉이네 이장님은 기봉이의 심장이 약해서 마라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기봉이에게 이제 마라톤을 그만두라고 하며 모질게 내칩니다. 하지만 초원이와 기봉이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힘찬 막판스퍼트를 시작합니다.
사람살이는 분명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결국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초원이와 기봉이는 그것을 알았을까요? 그들은 가장 든든한 지원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방해하고 외면해도 달리고 또 달립니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초원이와 기봉이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봐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심장과 두 다리로 당당히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옵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합니다. 그 순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원이와 기봉이는 막판스퍼트를 하며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 바치세요. 자신을 끝없이 긍정하세요. 그럼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다리는 백만불짜리고, 몸매는 끝내주니까요!”
골인, 그리고 마라톤은 계속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마라톤을 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에게 실제로 마라톤을 하고 있는 초원이와 기봉이는 힘주어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의 경기를 보면서는 그들을 겉모습과 고정관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들이 잘하는 것에 주목하여 그것을 키워주라고 말입니다. 또한 자신의 경기에서는 끝까지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열정을 다 태우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도 어디에서든 힘차게 달리고 있을 초원이, 기봉이처럼 멋진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첫댓글 한 장애인복지관 소식지에 올리려는 내용입니다. 이번에도 읽으시는 분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뭐라 조목조목 말하기는 어렵지만 참 좋다. 소식지 나오면 읽고 또 읽을란다.
선생님의 고견을 반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으며 1차로 수정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입부가 훨씬 자연스럽다. 문장이 부드럽다. 편안하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합니다.
그 순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감동의 영화를 이렇게 읽고 정리해주신
김상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뜻과 의지가
꺾이지 않고, 조금씩 이루는 과정과 결과가
가슴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옴을..
다시 깊이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