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정부 방송국 설립 준비를 위해 미국 세크라멘토에서 수백킬로 떨어진 록키 산맥 깊숙한 그라스벨리란 아주 작은 시골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진짜 강원도라고 하는 정선 산골의 어느 한 마을 같이 작은 곳이지만, 전 세계 방송의 핵심 장비들을 생산하는 회사가 있어 각 나라의 방송기술자들이 연수를 가는 곳이다.
워낙 산을 좋아하던 터라 금요일 오후에 일정을 마치고, 함께 간 동료와 500 킬로 이상 떨어진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기로 했다. 록키 능선을 타고 가야 해서 회사에서 렌트해준 승용차를 중간에 산속에서 잘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 승합차로 바꿔서 가기로 했다. 렌트카 사무실 흑인이 너무도 공손하게 일을 처리 하면서 왜 좋은 승용차를 두고 승합차를 타고 어딜 가려느냐고 해서 요세미티를 가려고 한다고 하니 꼭 가 볼만 한 곳이라며 잘 다녀 오라고 했다.
겨울 해는 짧고, GPS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 한 장 들고 갈 길은 머나먼 산길이라 서둘러 떠나느라 동료는 출장비가 든 지갑도 빠트린 줄도 모르고 산길을 달려 갔다. 한참을 가는데 뒤에서 헤트라이트를 번쩍이고 경적을 울리며 따라 오는 차가 있어 경찰인가 보아도 경광등이 없어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계속 달렸다. 한참 만에야 과속으로 우리의 옆에 와서 차를 세우라는 운전자를 보니 렌트카 회사 그 흑인 이었다. 차를노견에 세우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할 것도 없고, 비용도 출장 온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인데 이렇게 위험하게 따라 왔냐고 했다.
그는 걱정이 되어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소에 연락을 했더니 록키에 밤새 눈이 내린다니 오지 말게 하거나 절대로 주의를 시키라고 했단다. 평생에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것이 해외 출장이고 바쁜 사람들인데 가지 못하게 말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찦차를 끌고 따라 왔단다. 시간없으니 승합차는 자기르 주고 찝차를 타고 서둘러 가라고 했다, 중간부터 눈이 많이 올 것이니 4륜으로 놓고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가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노견에 세우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고도가 낮은 구간에서는 퍼붓듯 내리는 눈을 맞으며 록키답다고 감탄을 하고, 고도가 높은 능선 위로 올라가면 구름을내려다 보며 마치 별들이 보석처럼 쏱아지는 듯한 멋진 세상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로 승용차를 타고 갔으면 500킬로를 더 돌아 가더라도 안전은 했겠지만 이런 절경은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 흑인 사무원의 친절이 없었으면 벌써 중간에 되돌아 가지도 못하고 어느 시골 모텔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른 새벽에서야 겨우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요세 미티를 잘 구경하고, 돌아 올때는 고속도로로 쎈프란시스코에서 하루를 자고 구경을 한 뒤 다음날 저녁에서야 돌아 오는 길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세크라멘토 도심으로 들어 갔다. 축제를 한다고 일방 통행을 시키고, 행사를 위해 비워 둔 도로인줄 모르고 신호등만 보고 들어 갔다가 놀란 경찰의 경고 방송을 듣고서야 중간에 섰다. 차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두 손을 들게 하고는 권총을 겨눈 경찰이 다가 왔다. 면허증을 달라고 해서 허리에 찬 벨트색을 가르치니 자기가 보이게 왼손으로 지퍼만 열어 총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조심스레 확인을 한 뒤 세크라멘토는 미안하게도 한국 마피아들이 드센 도시라며, 멋 모르고 동포들이라고 만나 좋아 했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너희의 안전을 위해서 부탁하는 것이니 자기가 고속도로 입구까지 안내해 줄테니 그라스벨리 방향으로 50킬로쯤에 있는 휴게소가 햄버거를 잘하니 거기서 먹고 가도록 하라고 흑인 경찰이 정중하게 권고를 했다. 그렇게 무사히 돌아 와 남은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렌트회사 직원이 새벽에 세크라멘토 공항에 서둘러 내려 주고 갔다.
한 시간 이상 시간이 남아 개인 여행 가방만 끌고 동이 트는 공항 주변을 돌아 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멀리서 공항 경비원이 빨리 오라며 손을 흔들며 외쳤다. 또 뭘 잘못했나 싶어 달려가니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치며, 우리 보고는 자기를 따라 전속력으로 따라 오라며 비바람이 치기 시작한 활주로로 달려 나갔다. 저멀리 100여명 타는 소형 비행기가 속력을 내서 이륙을 할 지점에 다가가다가 말고 트랩을 내리며 승무원이 빨리 뛰어 오라며 손짓을 하며 소리를 쳤다. 마치 스파이 영화에서나 보던 한 장면 같았다.
짐을 붙이고 시간이 남는 동안 구경할 곳이 없느냐고 물었던 아프리칸 필리피노 흑인 경비에게 땡큐만 연발하고, 숨을 헐떡이며 겨우 올라타자 트랩을 올리고 곧 바로 달려 나가 이륙을 했다. 기다려준 승객들은 오히려 박수를 치며 위로를 했다. 승무원이 미국 서부에 태풍이 몰려 오고 있어 오늘은 이것이 마지막 비행기가 되었다고 했다. 마침 그 흑인 경비가 너희를 기억해 무전으로 사정을 해서 비행기를 세웠다고 했다. 작은 비행기라 앞질러 불어 오는 태풍의 앞 바람에 윙윙 대기만 하고 계속 뒤로 밀리듯 하며 겨우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한국행 비행기를 서둘러 탈 수가 있었다.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떠나 온 지역에 태풍으로 인한 폭우와 홍수 소식들이 긴급 뉴스로 올라 오기 시작했다.
세상엔 수많은 좋은 사람들 속에 극히 소수의 나쁜 사람들이 있지만 정치나, 사상, 종교 등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들이 대표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지방색도 큰 문제다. 여러 착한 흑인들이나 백인들, 심지어 일본인, 중국인들과 친하고ㅡ 도움도 받아 본 경험으로 편견이나 선입견 보다는 개개인의 진실성을 기준으로 보는 쪽이다. 사람을 사귀는 기준도 당연히 그렇다. 충청도 전의 이씨지만 서울 근교의 집성촌에 모여 살면서, 여러 지방 사람들과 교류가 돈독해 가끔 그쪽 사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한 사람이면 인디언이건, 흑인이건 어느 편견으로 피해를 보는 특정지역 사람들일지라도, 내게는 친구나 천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려울때 도와준 이들을 일일 만나 감사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니 또다른 남들에게 대신 베풀며 사는 것이 그들에 대한 도리일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으로 나마 그 착한 천사같은 이들이 아직도 남들에게 베풀며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건강하게 누리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첫댓글 세상엔 착한 사람이 더 많고 국가가 편을 가르고,
남을 탓하고, 지방색이 있다고 우기지만,
어찌 사람 탓을 하겠습니까.
누구나 근본은 착한 것을 ..
아찔할 뻔한 순간들을 천사들의 도움으로 잘 벗어나셨네요.
"글쓰기"에 첫번째로 참여해 주셨네요.
잘 읽었답니다.
하느님을 본따서 창조했다는 인간이
원래 나쁜 사람이 있겠읍니까?
그래서 집단적 편견을 버리고 개개인의 진실성을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소교님도 천사표 !!!
감사합니다.
007영화를 한편 본 기분입니다.
착한 흑인 들을 보니
미국이 다시 보입니다.
똑같은 사람들이고 어떤 면에선 한국인들처럼
냉철하고 합리적인 백인들에 비해 정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