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인사말과 사무적인 만남의 연속으로 채워지는 메마른 일상들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가끔씩 '삶이 무겁다'는 긴장감으로 나를 지치게한다. 보이는 것 만으로 평가되는 세상에서 보여줄 것이 없기에, 이루어 놓은 것으로만 박수를 치는 삶의 무대에서 실패한 것이 더 많았기에 언제나 무대 아래를 서성이는 엑스트라로 만족해왔다. 투명한 유리창을 바라보면 창 밖의 아름다운 세상이 보이지만 거울을 바라보면 부족한 나 자신의 주눅든 모습이 무대를 향한 발목을 웅켜잡고 어깨를 짓눌러왔다.
머리 위로 세월의 하얀 입김이 조금씩 퍼져 갈수록 부피를 더해가는 비움의 지혜로 상실의 서러움을 달래었으나 30여년전 같은시간, 같은공간에서 팔팔한 푸른 봄을 함께 뒹굴다 먼 세월 돌아와 다시 만난 억겁의 인연 만큼은 채워도 채워도 다 못채우는 구멍난 화수분으로 어느새 내 가슴속 장식장 맨 앞줄에서 자리하여 지치고 어깨 눌린 나에게 바로 걸을수있는 에너지를 3개의 막대기로 충전해 주는것이다.
세월의 언저리에 웅크려 있던 그리움의 조각들은 사막 이었던 내 가슴에 작은 샘을 들이고 녹색의 풀들을 심어놓았다. 애저린 그리움의 조각들을 60일 주기로 맞춰 보자던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샘물과 녹색 풀들이었던 내 가슴속 사막은 실개천으로 졸졸거리고 녹색의 풀위로 꽃씨가 흩날리게 되었다. 지난 1.28은 친구들과의 두번째 만남이 있던 날이었다.
언제 부터인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은 여명의 새벽녘에 안개낀 숲길을 홀로 걷는 듯한 미묘한 떨림과 야릇한 전율이-수염이 조금만 자라도 견디지 못하는 나의 별다른 습성상- 삐죽이 살갗을 뚫고나온 볼품없는 수염들을 밀어내는 1회용 면도기처럼 궁상스레 머물러있던 일상의 찌꺼기들을 쓸어내리며 스킨로션을 문질러 대는 깊고 상쾌한 촉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다시 차가와진 겨울바람 보다도 "노래방에서 도우미 손 잡아도 괜찮다"는 아내의 뜨거운 잔소리가 어깨를 움추리게 하였다. 바람의 칼날이야 목도리 조여 매면 되겠지만 취하면 눈이 게슴치레 변하는 수컷의 본능을 어찌 하겠는가? "본능이 있다는건 건강 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란 변명으로 아내에게 당당하려 했지만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알았어"란 단 3글자로 마감후 오후 4시경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두역에서 함께 가기로한 준수를 기다리던중 "오늘이 장인어른의 49제일이라 참석은 어렵겠고 함께 못한 미안함을 대신해 친구들에게 인절미떡을 전달해 달라"는 준수의 연락을 받았다. 집안의 큰 행사에 경황이 없을 텐데도 친구들의 모임을 위해 굳이 떡까지 챙겨서 신경을 써주는 준수의 따뜻한 마음씀이 매서운 겨울거리에 맨살을 드러낸체 떨고 있는 빨개진 콧등을 데펴주었다.
콧등을 지핀 준수의 온기가 머리를 적시며 등줄기를 타고 동동 거리며 꼼지락 대는 발가락에 내려 앉을 무렵 준수를 실은 타이탄이 내 앞에 멈춰섰다. 회사유니폼을 걸친 준수의 건강한 삶의 향기가 이제 막 지펴진 코를 가동시켰다. 준수는 항상 그렇듯 "잘 지냈어?"란 간단한 안부를 확인후 "친구들에게 잘 좀 얘기해달란"부탁과 함께 미안한 표정으로 가져온 떡상자를 나에게 건넸다.
준수에게 "고마워, 잘 전하고 잘 먹을께"란 인사와 함께 받아든 떡상자 무게가 만만치 않았으나 그의 성의와 온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어 짧은인사를 뒤로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푹신한 자리와 따뜻한 실내공기가 얼었던 몸에 말을 거니 얼얼한 냉탕에서 수증기 산발한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듯 나른한 쾌감이 온 몸에 퍼지고 무릎위에 올려진 떡상자의 따스한 온기가 기어이 눈을 감겼다.
노스페이스를 몸에 두른 아들 녀석 또래 계집애들의 재잘거림에는 어김없이 '존나'로 시작해 '씨바ㄹ'로 끝을 맺는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여야 했으나 "어저씨가 뭔데요??, 조용히 갈 길이나 가세요. 존나 우낀 짱이야, 씨바ㄹ~"란 맹랑함이 가슴을 쑤셔댈 것 같았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내 갈 길, 가기로 했으나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꾸겨진 기분을 MP3를 흐르는 나꼼수의 "쫄지마!! 씨바ㄹ~"로 달래며 '존나'나 '씨바ㄹ~'이 아직 비속어라 생각드는 나는 저 아이들 틈에서는 어울릴 수 없는 화성인이었고 그렇고 그런 꼰데가 되어 있었음이 서글펐기에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발전과 편함을 주지만 점점 메말라 가는 정신적 빈곤도 함께 하기에 다가올 시간보단 지나간 세월에 더욱 애정의 눈길이 머물게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하차 후 9호선 환승역에서 꿀꿀한 기분으로 열차를 기다릴때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재철이의 환한 걸음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검은 외투 위에 감싸여진 사연 있는 듯한 검은 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재철이는 외모부터 우수에 익숙한 예술가의 냄새를 물씬 풍겨왔고 문득 '그의 영혼은 참 맑고 자유로울거'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 손에는 가방이 다른 손에는 떡상자가 매달려진 나의 양팔을 보자 마자 재철이는 무거워 보이는 떡상자를 빼앗다시피 그의 맨손으로 가져다 실었다. 마두역에서 들고 올 때 부터 무거움에 버거웠기에 같이 들자 하여도 그의 맑은 심성이 허락치 않았다. 재철이와 작년 11월 이후 길지 않은 만남 이었지만 그 와의 대화에서 필체에서 미소에서 술잔으로 부터 그의 영혼관리에 부끄럼 없었음이 읽혀졌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 왔을땐 약속 시간인 6시가 거의 되어 있었다. 이미 거리는 어둑해졌고 낮시간의 한기에 몸을 녹이던 옷 벗은 가로수들은 오늘 밤의 잠자리를 찾아서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작년 10월 모임때 처음 느꼈던 비릿한 내음을 따라 총총히 발길을 옮기니 내 머릿 속에 저장 되어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청정회수산'의 주황색의 화사한 조명이 한 껏 들뜬 마음을 잡아 끌었다.
조급한 마음에 발 맞춰 계단을 가로질러 예약룸으로 들어서니 먼저 와 있던 광식이, 성인이, 윤구, 성원이, 명성이 상일후배의 환한 미소가 꽁꽁 얼어붙은 머리칼을 녹여 주었다. 맞잡은 손바닥의 따스한 온기가 맨 앞머리의 전두엽으로 전해져 추위에 움츠려 졌던 감성운동에 시동을 거는듯 심장의 박동속도가 서서히 빨라지고 혈관을 흐르는 혈액의 속도는 2차선에서 12차선을 만난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멀리 마산에서, 청주에서, 원주에서, 익산에서, 속초에서 그리고 금촌에서 긴 시간을 달려와 함께 마음을 연다는 가슴 벅참의 근원을 찾고져, 세월에 지친 50넘은 얼굴에서 저리도 해맑은 미소가 번질수 있는지 가슴 두드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 지금부터 많은 잔을 맞대고 취할 테지만 그건 아마도 장고의 문을 나서고 부터 각 자 오랜 시간 간직해 왔던 '순수'란 보석이 옹팡지게 박혀진 '사랑'일 것이다.
잘 다듬어진 TV나 영화의 그 어떤 장면에서도, 잘 쓰여진 유명작가의 그 어떤 글에서도, 잘 표현된 일류화가의 그 어떤 그림에서도 그들의 청명한 얼굴에 담겨진 순수한 미소을 본 적이 없고 읽은 적 도 없었고 느낀 적 도 없었기에 그들과 만남의 순간들이, 횟수를 거듭 할수록 쌓여져가는 감동의 덩어리들이 마른가슴을 촉촉히 적시며 취하게 하는 것이다.
호영이가 친구들의 모임마다 정성스레 보내온 보약을 한 방울 남김없이 몸 속으로 흘려 보내니 '발렌타인'과 '마호타이'의 날 선 위력에 바짝 긴장했던 간덩이가 "사열준비 끝"하며 서서히 전투모드로 접어 들었다. 준수의 사랑이 가득 베인 인절미가 혀를 춤추게 하였다. 2500년전 공자님 말씀대로 술 한 병 들고 오랜 친구와 마주하는 즐거움보다 더한 낙(樂)이 있겠는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여지껏 입어 보았던 여러 낙(樂)의 옷장에서는... 그것이 세월에 고개 숙이고 순리에 겸손해 하는 이 나이만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점점 그 낙(樂)의 숲길로 빠져 들고 있었다. 젊은 날에는 그 낙(樂)을 결코 알 수 없기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에 그 시절의 자만(自慢)에 한 없이 반성하고 싶었다.
30여년이란 세월의 다리를 건너와 그 날 처음 만난 준식이는 반가움에 앞서 아련함 이었다. 푸르렀던 봄의 소년은 세월에 길들여져 하얀 머리칼과 돋보기가 잘 어울리는 중늙은이로 바뀌었어도 그 시절 지녔던 순수함 만큼은 세월을 거부한 듯 변함없이 영롱한 색채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고마웠고 친구들 모두의 가슴을 두드렸기에 머뭇댐 없이 '준식아'를 부르며 그의 손에 각 자의 체온을 전하게 하였다.
뒤이어 도착한 영준이, 현우, 진제, 호영이, 재환이, 두현이, 큰민수도 '장충'이라는 DNA 탓인듯, 하늘을 아는 나이 탓인듯 그리도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변치 않는 솔향을 간직한 오랜지기 준식이와 손을 맞 잡고 껄껄 깔깔대던 모습들이 지금도 'TV동화 행복한세상'의 따뜻한 수채화처럼 가슴 적시는 잔잔한 감동으로 내 기억상자에 고스란이 자리 하고있다.
동기들 이름으로 착한 일 많이 하는 친구에게 주어지는 독수리상이 두현이에게 건네지는 순간 두현이는 겸손의 모드로 얼굴을 붉혔으나 그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됐다. 언제나 바람의 그림자 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으며, 상선약수 처럼 깊게 머물러 있는 듯 해도 소리없이 먼 길을 흐르는 그의 수그림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하늘이 햇빛과 비를 내려서 사과나무를 꽃 피우는 것은 결코 사과가 먹고 싶어서가 아닌것 처럼 바라는 것 없이 베풀기 좋아하는 준수도 고맙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바라는 것은 만추의 가을녁 하루를 마감하는 황홀한 석양빛의 우리들 긴 만남과 늘씬한 치약 광고모델의 매혹적인 입에서 방금 퍼져 나온 알싸한 박하향의 우리들 환한 웃음일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파일롯이라면 심신의 건강 만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신(神)의 몸 일진데 아무런 기별도 없이 너무도 허망히 급작스레 떠나버린 아주 가까왔던 동료로 인해 조금은 우울해 하는 성원이에게 술잔을 건네며 위로를 대신 하였으나 우리가 이미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펐지만 가슴 속으로만 품기로 했다.
문방구 이전 준비 신경쓰랴, 어머니의 깊은 노환에 마음 조이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경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활발 상쾌 모드로 자리한 성인이의 묵직한 소리 한 자락은 그의 고단함을 뱉어 내듯 깊은 울림이 되어 졸고 있던 영혼에 물울 뿌렸으나 가슴에 담겨진 아려움만큼은 지울수 없는 듯 소리의 색깔이 예전 보다 좀 바래 있음이 안타까왔다.
탁자 위에 모자 벗은 빈 병들과 옷 벗은 접시들이 쌓여 갈수록 우리들 사연들도 쌓여갔고 사연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부피가 커질수록 인연의 기쁜 눈물이 하염없이 시간을 적셨다. 참이슬, 발렌타인, 마호타이, 장뇌삼주로 이어지는 간 세척으로 혈중 알콜농도는 이미 운전면허 취소의 수치를 넘어섰고 머리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정신줄을 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마음 뿐 이었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아쉬움의 끝 자락을 당긴다. 흐릿한 정신줄에 기대어 휘청이는 걸음으로 청정횟집을 나서 노래방에서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시름을 달래고 호프집에서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아픔을 보듬으며 해장국집에서 서로의 무릎을 부딪치며 아련함을 쓰다듬던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도 순하고 투명한 미소의 기억들이 내가 기꺼이 긴 시간, 긴 글로 밤을 새며 흐믓하게 하는것이다.
매서운 겨울의 얼어붙은 바람을 견딜수 있는 이유는 '입춘'이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임재범의 노래처럼 내가 괴로울때 위로가 되주고, 서러울때 눈물이 되주고, 허전하고 쓸쓸할때 벗 되주고, 힘들때 웃음이 되어주며, 어둠고 험한길에 등불이 되어줄 그 미소의 주인공들은 나의 영원한 기쁨이고 내가 살아갈 동안 희망의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향기로운 열매나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지나치는 행인들이 쉴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고 새들이 둥지를 틀수 있도록 가지를 내주는 54살의 느티나무 향기가 베어 있는 그들의 체취가 다시 그리워 창문을 열어 제켰다. 추위에 떨고있던 겨울의 칼바람이 여린 볼을 하염없이 꼬집는다. 코끝을 찍어 누르는 쨍하는 싸늘함, 머리가 싸아해지는 찬기운에 누워있던 머리칼이 하늘을 향한다.
그래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버틸 수 있음은 그들의 체취를 맞이 하기 위함이다. 이제 까지의 삶에선 폭풍의 징조가 있으면 뒤로 물러서서 근심스런 표정으로 폭풍이 지나 가기 만을 기다렸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생각은 자꾸만 진화를 거듭한다. 이젠 더 이상 움츠리지 말고 폭풍속에 뛰어 들어 비와 함께 춤을 추라고...마주친 역풍에 쫄지말고 등을 돌려 순풍으로 만들라고...희망의 입김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감사를 찾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