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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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누토 라바드(Canute Lavard)
축일 1월 7일
덴마크의 왕 카누투스 4세(1월 19일)의 조카이자
덴마크의 선왕(善王)인 에릭(Eric)의 아들인
성 카누투스(Canutus, 또는 가누토)는 어릴 때
색슨 궁에서 지냈고, 나이가 들게 되자
남부 유틀란트(Jutland)의 공작이 되었다.
그는 바이킹의 침략을 격퇴하였고,
자기 영토에 평화를 정착시켰다. 또한 그는
성 비첼린(Viceline, 12월 12일)의 선교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높은 명성을 얻었다.
1129년 황제 로테르 3세는 그를
서 벤드족(Wends)의 왕으로 인정하였으나, 그의
아저씨인 덴마크의 닐스 국왕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2년 후에 살해되었다. 그는
116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로부터
순교자로서 시성되었다.
그는 크누드(Knud)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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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문도(Raymund)
축일 1월 7일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페냐포르트
태생인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1222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볼로냐(Bologna)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또 설교한 경험이 풍부하였다.
1230년 그는 로마(Rome)로 초빙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청의 회의와 칙서 등을
소장하는 업무를 맡았고, 이것의 결과로
'숨마 카수움'(Summa Casuum)이 발간되었다.
1236년 에스파냐로 돌아 온 성 라이문두스는
2년 동안 총장직을 역임한 뒤, 모슬렘과
유대인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
(Thomas de Aquino, 1월 28일)를 격려하여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쓰게 하였으며, 아라비아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그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와
함께 '메르체다리오회'의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100살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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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이놀드(Reinold)
축일 1월 7일
낭만파 시인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의
막내아들인 성 레이놀드는 쾰른(Koln)의
성 판탈레온(Pantaleon)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는데, 주로 건축 담당자로 일하였다.
그는 일단의 석공들의 손에 살해당하였다.
성 레이놀드는 석공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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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치아노(Lucian)
축일 1월 7일
시리아의 사모사타(Samosata) 출신인
성 루키아누스(Lucianus, 또는 루치아노)는
수사학과 철학에서 당대의 최고 권위자였으며,
에데사(Edessa)에서는 마카리우스(Macarius)라는
사람의 지도로 성서를 연구하였다. 이윽고
그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최대 임무로 자각하였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모범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신구약성서에서 오류를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리하여 그는 70인역 성서의 다른 간행본을
서로 비교하고 또 히브리어 원문을 참조하여
구약성서 개정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성 루키아누스 사본이다.
그러던 중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 성 루키아누스도
체포되어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이때 그는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였다.
심문관의 모든 질문에 그는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히 증거한 후 순교하였다.
그의 무덤은 헬레노폴리스(Helenopolis)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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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렌티노(Valentine)
축일 1월 7일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는
라이티아(오늘날의 스위스 동부와 오스트리아 서부 지방)의
초대원장이자 선교사 주교였으며,
성 세베리누스(Severinus, 1월 8일)가 그의 제자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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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1월 7일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968년 프랑스 상스 교구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상스 주교좌 성당 건립을 시작하였다.
그는 또한 생 피에르 르 뱅(Saint-Pierre-le-Vin)
수도원의 열렬한 후원자였으며, 그의 유해 또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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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드릭(Aldric)
축일 1월 7일
성 알드릭은 작센(Sachsen)과 바이에른(Bayern)의
피가 흐르는 귀족 출신으로 12세 때에
샤를대제(Charlemagne)의 궁으로 들어갔으나,
821년경에 프랑스 메스(Metz)로 가서 사제품을
받았다. 루이스 황제는 사제가 된 그를 재차
궁중으로 불러 고해신부로 삼았다.
832년 성 알드릭은 르망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최대 관심사는 빈민 구제와 수도회의 육성이었다.
그는 전례를 중요하게 여긴 결과, 모든 대축일에는
초 10개와 90개의 램프를 밝히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이런 풍습이 타지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임종 전의 2년간은 중풍으로 자리에서 누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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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성 야누아리오(Januarius)
축일 1월 7일
성 펠릭스(Felix)와
성 야누아리우스(또는 야누아리오)는
헤라클레아(Heraclea, 고대도시로 같은 이름의
도시가 여러 개 있다)에서 고통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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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드워드 워터슨(Edward Waterson)
축일 1월 7일
에드워드 워터슨은 원래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에 터키 여행을
하였을 때 그곳의 어느 부유한 터키 여인에게
매혹당하여 결혼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이슬람교도가 된다는 조건으로 딸 하나를
두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이슬람교도가 될 수 없음을 알고 그 길로 몰래
귀향하다가 로마(Rome)에 당도하였다.
그는 이곳의 영국 대학에서 리처드 스미스
(Richard Smith) 박사의 도움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는데 이때가 1588년이었다.
그 후 그는 프랑스 랭스(Reims) 대학에서
공부하고 4년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다음 해 6월에 그는 영국 선교의 성공을 장담하며
잉글랜드(England)로 갔으나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고, 뉴캐슬(Newcastle)에
갇힌 뒤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
(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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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밀리아노(Emilian)
축일 1월 7일
프랑스 반(Vannes)에서 태어난
성 에밀리아누스(Aemilianus, 또는 에밀리아노)는
프랑스 서부 생트(Saintes) 근방 소종에서
수도승이 된 후 보르도(Bordeaux)의 한 숲에서
은수자로서 살다가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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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노(Julian)
축일 1월 7일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1615년 그의 유해가 발견되고 성당에 모셔진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의 칼리아리에서
존경받는 성인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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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켄티게르나(Kentigerna)
축일 1월 7일
성녀 켄티게르나는 성 필란(Fillan, 1월 9일)의
어머니요 고대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의 왕자
켈리(Kelly)의 딸이다. 그녀는 이웃의 왕자와
결혼하여 성 필란을 낳았다.
성녀 켄티게르나는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의 형제인
선교사 성 콤간(Comgan, 10월 13일)과 그녀의
아들인 성 필란과 함께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 로몬드 호수의 육지와 가까운 작은
칼리아흐(Cailleach) 섬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성녀의 이름은 애버딘(Aberdeen)의
성무일도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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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크리스피노(Crispin)
축일 1월 7일
성 크리스피누스(Crispinus, 또는 크리스피노)라는
이름을 가진 성인 주교가 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의 파비아 교구의
교구장을 역임하였다. 첫 번째 주교는 3세기
초부터 35년간 교구장을 지내다가 250년에 사망했고,
두 번째 주교는 교황 성 레오 1세(Leo I, 11월 10일)의
재임기간 중에 주교로 활동하며 451년
밀라노(Milano) 공의회의 결정에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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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레로(Clerus)
축일 1월 7일
시리아인 부제인 성 클레루스(또는 클레로)는
300년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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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도로(Theodore)
축일 1월 7일
이집트의 수도승(은수자)인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는
성 암모니우스(Ammonius)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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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틸로(Tillo)
축일 1월 7일
작센(Sachsen) 출신인 성 틸로는 침략자에 의해
포로가 되어 로우 컨트리(Low Countries, 오늘날의
베네룩스 3국 지역)에 노예로 팔려왔으나
누아용(Noyon)의 성 엘리기우스(Eligius, 12월 1일)에
의하여 속량된 후 세례를 받았다.
성 엘리기우스는 그를 프랑스 중부 리무쟁(Limousin)의
솔리냑 수도원으로 보내어 교육시켰는데, 그 결과
성 틸로는 훌륭한 사제로 성장하였다.
성 틸로는 벨기에의 투르네(Tournai)와
코르트레이크(Kortrijk)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그곳 주민들로부터 그 지방의 사도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스승이 서거한 후
솔리냑으로 돌아와서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지극히 단순하고 엄격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은둔소에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