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솔숲, 정자 하나 ●지은이_구재기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4. 11. 11
●전체페이지_152쪽 ●ISBN 979-11-91914-69-6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자연 속에서 ‘너’와 ‘나’ 상생의 정신을 이루는 시편
구재기 시인의 시집 『솔숲, 정자 하나』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구재기 시인은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농업시편』, 『천방산에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목마르다』, 『겨울나무, 서다』 등 20여 권이 있다. 이번 시집은 초·중·고 40여 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사는 삶의 시편들이다.
잡초가 뽑히고 있다
야생화의 향기와 색깔 속에서
거칠고 날카로운 이름이 걸러지고 있다
차이됨이 없이 똑같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뿌리 내린 야생화 사이사이에서
‘잡초’라는 아픔으로 마냥 뽑히고 있다
앗기는 땅, 그러나 아직은 완전히는
앗기지 않은 땅에서
노예처럼, 전리품처럼 가려지는 잡초
본디 야생화와 한 속[屬]인데
한바탕 한자리에서
잡초는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 것인가?
맨 처음 가졌던 이름도 잃고
이제는 낯선 이름, 한 슬픔이 된
야생화를 뒤로한 채
마지막 거처인
뿌리에 움켜쥔 흙 한 줌
분노마저 몽땅 털려나가고 있다
―「마지막 거처」 전문
시인은 산애재에서 잡초를 뽑아내다 보면 제멋대로(?) 태어나서 어엿하게 자리 잡아 자라나고 있는 일상어(日常語)들과 같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전혀 ‘너’와 ‘나’를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로 절로 사용되어 만나는 사이에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고, ‘너’와 ‘나’ 사이에 마음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의식되지 않고 사용되는 일상생활의 언어들은 분명한 잡초임에 틀림없다. 언어는 일정한 터전을 이룬 우리의 일상에 자리하면서 왕성하게 번지어 나간다. 어느 때는 그 뜻조차 모르고 사용하였다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아름답고 즐거운 마음조차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하게 하는 등 일상어는 우리 사이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하지만,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더욱 더 밀접하게 해주면서 부드러운 정서를 구축하게 한다.
질경이는
줄기를 가지지 않는다
마디를 가지지 않는다
아무리 짓밟히고
짓밟혀도 질경이는 쉽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놓는다
그냥 나오는 대로 마음을 내는
질경이의 거처는
길가, 또는 빈터이다
―「질경이 2」 전문
모든 체험은 일상어로 기억되고 자리하게 마련이다. 체험 속의 언어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어떠한 사태로부터 어려운 일을 가졌을 때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는데, 이때의 과정은 오로지 일상어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언어로 복잡한 뜻을 나타내면서도 서로의 의견을 언어로 교환하여 서로 보다 나은 방향을 모색하게 한다. 이 경우 ‘나’의 지혜로움은 ‘너’를 이끌게 되어 모든 사람의 지혜가 한 사람의 지혜로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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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파문·13
솔잎 끝에·14
강물의 길·16
벌들 사이에는·18
묵도·20
작은 나무의 뿌리·22
물 발자국·24
패각(貝殼)·26
절정 앞에서·28
곡선의 향기·30
은행알들·32
천태산 은행나무·33
꽃무릇, 불꽃을 피우다·34
태산목 꽃을 기다리며·36
겨울나무 한 그루·38
마지막 거처·40
폐월(閉月)·42
제2부
별을 기다리며·45
시새우는 밤·46
햇빛 사냥·48
안팎·50
도장공(圖章工)·52
인연론·54
구절초·55
솔숲, 정자 하나·56
봄날 아침·58
먹감나무를 꿈꾸며·60
고운 매듭·62
산수유·64
보드기·66
으름, 속살을 보이다·68
감을 따내리며·70
전지를 하고 나서·72
아침을 위하여, 어둠은·74
새순이 돋고 있는 감나무 가지에 달이 매달렸어요·76
제3부
겨울바람·79
입춘맞이 전·80
낙엽·82
무제(無際)·83
푸른 잎들·84
시가, 과연·86
밤비·87
매미 울음소리·88
질경이 1·90
질경이 2·91
댕강나무꽃 향기·92
질경이 3·94
장마·95
구렁목 바람맛·96
큰비·98
진보적인 밥상·100
제4부
어둠 속의 별·103
한가위 전날에·104
늦가을 오후·106
꺼진 폰 앞에서·108
사독(肆毒)한 새싹·110
옻순을 먹으며·113
겨울 연방죽에서·116
다시, 겨울 연방죽에서·118
가을날에·120
헛된 모양·122
가량(假量)도 없다·124
가증한 허세·126
혼밥의 아침 커피·128
낙화를 바라보며·130
굴향기·132
추어탕을 먹으며·134
가붓한 나무·137
명견 사모예드·138
남은 잎·140
시인의 산문·141
■ 시집 속의 시 한 편
물가의 나무는
조금씩 슬퍼졌다
자꾸만 흔들리는 제 모습에
마냥 슬퍼졌다
햇살 눈부신 아침이 오자
물낯으로 떨어지는
나무의 굵은 눈물
물낯으로 끊임없이 번지는
그 눈물의 파문
햇살이 먼저 흔들렸다
하늘도 구름과
함께 내려와 흔들렸다
온 세상이
한곳에 퍼져
모여, 어른어른
물가의 나무와 함께
파문을 일궈댔다
―「파문」 전문
■ 시인의 말
할 말이 많은데
입 밖으로 나오기가
여전 어렵기만 하다
기다리기
지쳐가도록
할 말은 매일매일
자꾸
늘어만 간다
2024년 10월
산애재(蒜艾齋)에서
구재기
■ 표4(약평)
시를 쓰면서 시작되는 고민 중의 하나는 어떤 언어를 시어로 선택하여 한 편의 시로 이끌어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그것은 시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일상어와 쉽게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어가 시에 쓰이면 곧 시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잡초와 야생화를 굳이 구별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의 언어는 일상어의 꽃이다. 잡초와 같이 왕성하게 자라난 일상어가 일단 시어(詩語)로 등장하면 야생화처럼 피워낸 꽃이 된다. 이른바 일상어에서 발전을 거듭하면 시에 있어서의 시어가 된다. 일상생활에서 체험을 통하여 이어받은 언어는 기술이나 지식 따위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더 높을 정도로 다시 새로운 발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언어의 힘이다. 바로 시어가 가지는 위대한 힘이다._「시인의 산문」 중에서
■ 구재기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농업시편』, 『천방산에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목마르다』, 『겨울나무, 서다』 등 20여 권이 있다. 충청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신석초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을 역임하고, 초·중·고 40여 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