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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
[(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수도회] 내가 바쳐야 할 진정한 성전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신명 10,12-22
† 복음 마태 17,22-27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장면 다음에 성전
세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죽었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실
예수님의 몸은 성전 그 자체입니다. 성전의 주인이 세금을 낸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지 않은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불필요한 논쟁과 충돌을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세상 재물의 주인이심을 베드로 사도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낚시를 던지라고 하시며, 잡힌 물고기 입
속에 있던 스타테르 한 닢을 성전 세로 내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두 사람 몫의 성전 세인 한 스타테르를 내면서 예수님의
신기한 능력에 감탄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시는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제와 라삐로 행세하시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제와 라삐는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답하십니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는 대답을 하십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자녀로 여기셨습니다.
콜베 사제 순교자는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하고 말하며
주님의 벗인 프란치스코 가요브니체크를 대신하여 아사 감방으로
갔습니다. 신부님의 희생으로 절규와 비탄의 소리가 가득하였던
아사 감방은 기도와 사랑의 방으로 변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웃들과 만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가야 할 사랑의 길을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라.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10,12-22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2-27
지금까지는 저는 8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어떤
분께서 책을 출판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것? 아닙니다.
사실 제 책들은 이제까지 써왔던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채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바로 프로필을 쓰는 것입니다. 즉, 저를 어떻게 소개할
것이냐는 것이지요.
이미 책 속에 저의 삶이 들어 있지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정리해서 적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모릅니다. 특히
프로필이 책의 가장 겉장에 있기 때문에 기왕 소개한다면 멋지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멋지게만 표현하자니 없는 말을 하는
것만 같고, 그냥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쓰자니 사람들의 별 관심을
받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결국은 그냥 평범하게 있는 그대로 씁니다. 그래도
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은 유혹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실제의 삶 안에서도 자주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주교님께서 “***신부는 자기소개를 할 때 자기 자신이 잘
생긴 것을 먼저 말하고 나서 강의를 시작하고, 조신부는 자기
자랑을 먼저 하고 강의를 시작한다면서?”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한 것인데, 누구는 이를
자기 자랑으로 생각해서 주교님께 말씀을 드렸나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종종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내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 자유로움을 주님께서는 늘 보여주셨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자유를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세금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는 지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제나 율법학자라면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내십니다. 원래는 성전의
주인이시기에 오히려 성전세를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것으로 인해 논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 또한 제자들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에 제자들의 세금까지
특별한 방법으로 내십니다. 즉, 사소한 것까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성전의 주인이고, 그래서 성전세를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에서 자유로우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은
아니었을까요? 이것 역시 우리가 자유로워져야 할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 생각만큼 성취를 제한하는 것도 없다. 자유로운 생각만큼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도 없다(윌리엄 아서 워드).
마리아의 사람, 막시밀리아노 콜베 사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세 가지 팁(최천호)
‘인생에 공짜는 없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라. 내가 준비만 잘하고 있다면 남들이 알아줍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우린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 우린 언제든지 질 수 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릴 때는 일희일비하며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내가
생각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내 안에는 실력이 있다는 자존을 가지고
‘Be Yourself’ 하는 게 잘 사는 방법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하고 후회하면서 오답으로 만들죠. 후회는 또
다른 잘못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잊고 말입니다. 최선을 다한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지 아름다운 인생이 따로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은 사방 천지에 있고, 생명력이 무척 강한 풀과 같습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의 이콘.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내가 바쳐야 할 진정한 성전세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마태 17,22-27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17,22-23.26)
내가 바쳐야 할 진정한 성전세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향한 출발을 앞두고 모였던 갈릴래아에서 두
번째로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그리스도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이나, 사흘 만에
일으켜질 것이라는 것입니다(17,22-23). 이에 제자들은 하느님의
눈에 들기 위한 긴 여정을 떠올리며 ‘몹시 슬퍼합니다.’(17,23).
예수님과 제자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갑니다. 그러자 성전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바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된 유다인들도 이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가 하는 데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전의 주인이신 아버지와 주종관계가 아니라 부자관계에
있기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17,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 세금을 내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에’ 그들의 동족들과
불필요한 갈등과 불화를 일으킬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유다인 남자들은 매년 성전세를 내야했고,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선택된 백성의 일원이라는 표시로 성전세 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성전세를 내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에서
제외되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 유다인들은 성전세 대신 로마에 돈을
바쳐야 했습니다. 로마는 그 돈으로 이교신을 모시는 쥬피터신전을
위해 썼는데, 유다인을 비웃는 행위였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는 유다 통치자들이나 식민통치자인 로마의
압제자들의 강압과 술수에 정복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임을
가르치십니다. 나아가 베드로의 세금까지 해결해 주십니다(17,2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으로 우리가 내야
할 세금을 내주실 것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향한 파스카 희생제사로서
성전을 대체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성전세를 바치심으로써
성전은 정화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질서를
받아들이십니다. 세상을 재창조하시려고 세상을 받아들이신
것이지요.
우리가 바쳐야 할 성전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주님께서 선으로 창조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성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헌신하고 투신하는
세상살이 자체가 바로 성전세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세금은 정의이신 주님을 위해 투신하고,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여
헌신하는 우리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듯 진정한 성전세는 성전이신 예수님께 나 자신 전부를 바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주님의 성전이요, 성령의 궁전입니다. 따라서
성전이 성전에 세금을 낼 수는 없지요. 따라서 내야 할 성전세는
'성전다운 성전이 내가 되고 성전다운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곧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항구히 추구하고,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것이 값진 성전세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며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마음으로 거룩한
공생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성전세입니다.
우리 모두 성전다운 성전이 되기 위해,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않으며, 사람을 차별대우 하지 않고,
이방인을 사랑해야겠습니다.’(신명 10,16-17.19)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신 주 하느님께 모든 좋은 것을 돌려드리고, 모든 좋은 것이
바로 그분의 것임을 깨달으며, 모든 선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리는”
(성 프란치스코, 비인준칙 17,17) 오늘이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순교자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 17,22-27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순교자
교회 역사상 수많은 성인성녀들 가운데 참으로 특별한 성인이 한분
계십니다. ‘성모님의 종’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1894~1941)이십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헌신했던 사목터는 큰
본당이나 학교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습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양떼는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이 아니라 지하 감방 속에서 신음하던 동료
수감자들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폴란드 출신의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인
동시에 원죄 없으신 성모 기사회 창립자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주님의 권고에 따라 한 동료 수감자를 대신해서 죽음의
지하 아사 감방으로 내려간 사랑의 순교자였습니다.
한때 저는 그런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아까운
죽음이다. 그렇게 훌륭한 수도자이자 탁월한 대 영성가였던 콜베
신부님께서 단 한명의 동료 수감자를 위해 돌아가시다니! 이왕이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순교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라도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으셨다면 나중에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 내 지척에서 울부짖는
동료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인권이며 신앙이 철저히 유린되는 강제 수용소 안에서도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계곡 안에도,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도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심을 생생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콜베 신부님의 일대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의 순교는 1941년 8월 14일 단 한번에, 혹은 순식간에
또는 엉겁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제로서,
성모님의 종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순교를 준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감동적인 죽음은 그가 매일 매일 살아온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이 순교하신 후 한참 뒤에 그의 어머니께서 동료
수도자들에게 전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소년 콜베 앞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는데, 그분의 손에는 두 개의 관이
들려져있었습니다. 하나는 희고 하나는 붉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다정한 음성으로 그에게 어느 것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소년은 즉시 둘 다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사라지셨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흰색의 관은 순결을 의미하고 붉은 색 관은 순교를 뜻합니다.
결국 그는 평생토록 한 송이 백합처럼 순결한 수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 아사 감방에서 그토록 원하던
순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콜베 신부님과 함께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견뎌낸 생존자들의
증언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는 폐결핵으로 인해 가장 병약한
수감자중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늘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답니다. 자신에게 배당된 말라비틀어진 작은 빵 한조각도
허기로 고생하는 젊은 동료들에게 양보해주었습니다. 매일 배당되는
강제노역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을 먼저 선택했답니다. 간수들의
번득이는 경계의 눈초리를 피해가며 동료 수감자들에게
사목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콜베 신부님의 영적지도와 고해성사를 통해
지옥의 도가니 속에서도 깊은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었으며 또한
자살충동을 극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인간이 만든 가장 불행한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사랑과 기적의 장소로
변화시켜나갔습니다. 폭력과 증오심을 기도와 사랑으로
이겨냈습니다.
지하 아사 감방으로 내려간 후에도 콜베 신부님의 영웅적 덕행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동료들 한명
한명에게 종부성사를 베풀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평온한 얼굴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갔습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도회]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마태 17, 23)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마태 17, 23)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일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픈 역사안에 콜베 사제가 있습니다.
슬픈 역사를 위로하는 한 사람의 사제가 있습니다.
생명을 위한 겸손한 생명이 있습니다.
가시밭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 사람입니다.
찢어진 우리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한 사람의 삶입니다.
이타적 죽음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살려달라는 한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봉헌합니다.
우리의 이기심을 쏟아내는 시간이길 기도드립니다.
희생과 사랑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우리들 세상입니다.
한 사람을 한 시대를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은 십자가의 삶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분명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또한 우리가 마셔야 할 십자가의 잔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생명을 사랑하는 시간이기를 기도드립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의 눈동자에
비친 하느님 나라는 아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같이 콜베 사제처럼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꿈은 단지 꿈만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선물임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속 깊이 생각하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8월14일 월요일(마태17,22-27)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속 깊이 생각하라.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전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만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 은 반 세겔을 성전세로
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 성전세로 성전을 유지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과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사제들은 납세의
의무로부터 면제 대상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죄짓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못마땅하게 여겨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십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 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 같아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배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하면. 성전유지를 위한 성전세와 같은 것이 오늘의
교무금이나 봉헌금입니다.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성전을 유지하고
사제의 생활을 보장하며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쓰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는
교무금이나 봉헌금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제때에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납세의
의무가 없었지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마련하신 것을 잠시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요즘
종교인과세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혜를 받아 다른 이와의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법과 질서 속에 숨어서 제
잇속만을 챙기려는 위선자들에게 꾸짖음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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