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으려던 내 땅에 옆집 담벼락이…철거 요청하려면
평소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것이 꿈이었던 A씨는 최근 눈여겨보던 한적한 농촌마을의 땅을 매수했습니다. 곧바로 집지을 준비에 착수한 A씨, 주택 신축에 앞서 토지 측량을 하다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립니다. 옆집 담장이 A씨가 매수한 토지 경계를 넘어선 채로 세워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데요.
A씨는 옆집 주인인 B씨를 찾아가 정중히 담장 철거를 요청했지만 "지금껏 문제 없이 잘만 살아왔는데 왜 담장을 허물어줘야 하냐"는 말만 듣고 돌아옵니다.
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장 공사가 지연될 위기에 처한 A씨.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독주택의 경우 이웃 주민과 경계 침범 분쟁이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 기존 건축물을 헐고 다시 건축하거나 땅만 있는 상태에서 건물을 새로 지어올릴 때 자주 발견됩니다. 이웃간 아옹다옹 다투기 보단 서로 한발씩 양보해 합의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작은 경계침범 사건이 아주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토지경계를 둘러싼 분쟁이 생기는 건 해방 후 토지 측량이 처음 실시된 1950~1960년대 측량기술이 부족했던 탓이 큽니다. 부정확한 측량이 이뤄졌고 이 때문에 토지구획과 지적 정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특히 이런 문제는 토지경계가 약 100년 전 만들어진 종이 도면에 점과 선으로 경계점을 표시한 탓에 위치 정확도가 떨어지는 도해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도해지역에선 지적도 경계선의 굵기가 각기 달라 정확한 측정이 곤란하며 측량자별로 오차가 발생하거나 재량에 따라 경계가 변동될 여지도 적지 않습니다. 혹은 과거 경계의 기준점이었던 지적기준점을 소실해 급한 대로 복구한 기초 자료를 사용해 측량이 완료된 기준이 현재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도해지역 지적도는 등록된 경계와 실제 현황이 일치하지 않는 탓에 지적 불부합지로 분류돼 지적재조사 사업의 대상이 되는데요. 그러나 사업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다 보니 그 사이에 발생하는 토지 경계 관련 분쟁은 부득이하게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토지경계 분쟁에 있어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사실은 토지 소유권의 기준입니다. 위 사례에서 A씨는 토지대장을, B씨는 현실의 경계인 담장을 기준으로 삼은 상태에서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명확한 법적 지표가 필요할 텐데요.
판례는 "어떤 토지가 지적법에 의해 한 필지로 지적공부에 등록되면 그 토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등록으로 특정되고 그 소유권의 범위는 현실의 경계와 관계없이 공부상의 경계에 의하여 확정된다"며 지적공부상의 경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적공부란 지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작성된 토지대장·임야대장·공유지연명부·대지권등록부 등의 종이 서류나 컴퓨터 파일 등을 말합니다. (지적법 2조 1호)
지적도상의 경계 표시가 분할측량의 잘못 등으로 사실상의 경계와 다르게 표시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토지를 매매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실의 경계와 관계 없이 지적공부상의 경계와 지적에 의해 소유권의 범위가 확정된 토지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대법원 1998. 6. 26. 선고 97다42823 판결)
이를 사례에 대입해보면 B씨가 A씨의 토지를 침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A씨가 B씨의 담장을 허락 없이 철거해버린다면 되레 A씨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경계침범죄가 인정돼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건데요. 경계표를 손괴, 이동 또는 제거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토지의 경계를 인식 불능하게 한 사람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경계란 과거부터 경계로서 일반적으로 승인되어 왔거나 이해관계인들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하는 등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통용되어 오던 사실상의 경계를 의미합니다.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담벼락이나 수목이나 유수 등과 같은 자연물이라도 일단 경계표지로 승인된 것이면 경계표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도8973 판결, 대법원 2007. 12. 28., 선고, 2007도9181 판결)
이때 해당 경계가 법률상의 정당한 경계인지 여부는 범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종래 통용돼 오던 사실상의 경계를 둘러싸고 적법성 다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상의 경계가 법률상 정당한 경계가 아니라는 점이 이미 판결로 확정된 것과 같이 경계로서의 객관성을 완전 상실하는 것으로 볼 만한 특단의 사정이 없는 이상 여전히 경계침범죄에서의 경계에 포함됩니다.
다만 단순히 경계표를 망가뜨린 것만으로는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토지의 경계를 인식불능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범죄가 됩니다. 실제로 20년 넘게 경계의 역할을 하던 담을 사전 허락없이 임의로 허물고 새로운 경계를 세운 행위는 경계침범죄를 구성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도8973 판결)
그럼 A씨는 어떤 방법을 활용해 토지 소유권을 온전히 획득할 수 있을까요? 먼저 B씨에게 담벼락 철거 및 토지 인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담장이 침범한 부분에 대해선 B씨가 A씨 토지를 원인 없이 사용한 셈이 되므로 임차료 명목의 부당이득반환청구도 가능합니다. 다만 민사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기에 그보다 이전의 임차료는 받기 어렵습니다.
철거 소송을 하게 되면 침범한 부분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명확히 측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계측량 시에는 토지 등록 당시의 측량 방법에 따르는 동시에 측량 당시의 기준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등록 때의 측량방법으로 정확한 기지점을 찾기 힘들 때에는 경계복원측량을 진행하게 됩니다.
경계복원측량이란 지적공부에 등록된 경계 또는 수치지적부에 등록된 좌표를 바탕으로 하여 지적공부에 등록될 당시의 원래의 지상경계를 찾아내 지표 상에 표시하는 일종의 행정처분입니다. 이 또한 등록할 당시의 측량방법과 동일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법원은 "당시의 측량방법이나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정확성이 없다 하더라도 경계복원측량을 함에 있어서는 등록 당시의 측량 방법에 의해야 하는 것이지, 보다 정밀한 측량 방법이 있다 해서 곧바로 그 방법에 의해 측량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 1997. 2. 14. 선고 93다56381 판결)
측량 과정에서 큰 이변이 없다면 A씨는 무사히 토지를 인도받을 수 있을 텐데요. 만약 B씨가 점유시효취득을 이유로 토지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어떨까요? 취득시효란 일정한 사실상태가 계속된 경우에 그것에 대해 일정한 효과, 즉 권리의 취득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20년 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는 원칙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타인이 점유하는데도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사람을 법이 굳이 보호해주지는 않는다는 의미인데요.
점유시효취득은 추정됩니다.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시효취득을 막으려는 사람이 직접 소유의 의사가 없는 점유임을 주장하여 점유취득시효 완성을 부정해야 하며, 그 입증책임 역시 원 소유주에게 있습니다. (대법원 1986.2.25. 선고 85다카1891판결)
여기서의 점유란 자주점유여야 합니다. 자주점유란 소유자가 행사할 수 있는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의사를 말합니다. 실제 부동산 소유자처럼 건물을 올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면 자주점유가 인정됩니다. 반대로 소유자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소유의 의사 없이 단순히 지배만 했다면 타주점유가 됩니다. 예컨대 토지소유주에게 지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거나 내지 않더라도 임차계약을 체결했던 경우 등은 타주점유에 해당합니다.
나아가 착오로 점유하게 된 인접 토지가 상당히 넓을 때에도 자쥬점유 추정 원칙은 깨집니다. 매매대상 대지의 면적이 등기부상의 면적을 상당히 초과한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 당사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매도인이 그 초과 부분에 대한 소유권까지 따로 이전해준다고 약속하는 등의 사정이 없는 이상 해당 부분의 점유는 권원의 성질상 타주점유에 해당한다는 게 판례의 입장입니다. (대법원 1998. 11. 10. 선고 98다32878 판결 등 참조)
B씨가 옆집 토지와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아 그 중 일부를 자신이 취득한 토지에 속하는 것으로 믿고 20년 넘게 점유를 해왔다면 점유취득시효 규정이 적용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B씨가 담장을 세운 땅 주인이 얼마 전 A씨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취득시효기간이 경과한 후 원 소유자가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제3자에게 넘겨주는 경우, 20년간 자주·평온하게 점유했더라도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제3자에게는 시효취득을 이유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B씨가 A씨에게 땅을 판 사람에게는 점유시효취득을 이유로 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언정 A씨에게는 어렵습니다. (대법원 1964.06.09 선고 63다1129)
#법률N미디어 정영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