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고 독촉 혹은 원고 청탁을 받는 신나는 경험을 해보더니, 이제는 원고 청탁을 하
는 또 다른 신나는 경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몇 번 클릭하여 까페에 들어 왔는데, 글이건,
그림이건, 동영상이건 새로 뜬 것을 한 편도 찾아 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때, 적막함이
나 우울함, 답답함 등 슬픈 느낌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최소한 중독 1기다. 까페 중독 말
이야. (답답한 느낌도 있거든. 새 글이 등장하지 않아서 예전 글이 몇 주 째, 심지어 몇
달 째 초기 화면에 방치되어 있는 싸이트에 한번 들어 가 봐.) 나처럼 원고 청탁을 하고 나
서면 중독 2기는 되는 거고, 우리 까페의 전문 용어인 이른바 ‘도배’ 증상을 보이는 재한
이 등은 중독 3기, 자기가 까페 주인인 줄 아는 영복이와 광식이 등은 국내 의료 기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중독 4기지.
내가 오늘, 공개적으로, 글이나 그림을 올려 주기를 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천식(원천식)
이다. 몇 달 전 재국이가 천식이의 학위 수여 소식을 전한 적이 있잖아? 바로 그 천식이
야. 외국어 대학교에서 국제 관계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지. 천식이의 전문 분야
는 동북 아시아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이라고 하더라. 중국과 관련하여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중국에 대해서건, 무엇에 대해서건, 천식이는 아는 것이 많은 친구이다. 예컨대
텔레비젼 드라마에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실존 인물인지를 물으려치
면, 연개소문의 가계와 더불어 영양왕과 을지문덕 가문의 집안 내력까지 다 들어 줘야 하
며, 혈중 알콜 농도가 몇 프로를 넘어서면 음주 운전으로 걸리는가를 물으려치면, 우리 나라
의 규정을 자세하게 말해 준 후, 곧바로 ‘국제 비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서
말을 끊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친구의 진짜 특징은 아는 것이 많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몸이 가볍다는 데에
있다. 제법 뚱뚱한 편이 아니냐고? 몸무게가 어느 정도 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는 모
습은 아주 가볍고 경쾌하다. 몇 해 전 겨울 화진포로 가던 중이었는데, 이 친구, 횡계(용
평)에 잠깐만 들르자고 하더니, 모델 하우스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아파트를 하나
덜렁 계약하더라. 몇 년간 잘 썼지만, 결국은 사기를 당한 꼴이 되어 (임대 주택이었거든)
몇 천 만원을 날려 버렸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몇 달 전에는 진부에 아파트를 또
하나 장만했는데, 그 일 역시, 내가 보기에는, 너무 서둘러서, 혹은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졌
다. 나는 며칠 전에 가 봤는데, 이 놈에 아파트, 볕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천장과 벽면이
곰팡이 천지이고, 화장실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져 큰 볼 일을 보고 나면 바지가 다 젖는
다. 그래도 이 친구는 태평이다. 사람들에게 당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서 그런지도 모른
다. 예쁘면서 뻔뻔스러운 여자 동업자한테 걸려들어 몇 년에 걸쳐 크게 당한 이력도 있거
든. (프라이버시를 건드릴까 봐 더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여간 이 친구는 “이거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그냥 한다. 수많은 학위를
따낸 것도 그런 습성의 발로일 것이다. 정말 학위 수가 많다. 언젠가 궁금해서 그 숫자를
물어 봤더니, 자기도 확실히는 모르는지 하나 하나 세어 보더라. 학사, 석사, 박사 합쳐서
무려 열 개. 더 놀라운 것은 그 행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외 여행을 자
주 나가는 것 역시 그런 습성의 발로일 것이다. 주로 동북아, 동남아를 누비고 다니는데,
중국 여행만 해도 스무 번이 넘는다고 한다. “어디가 좋다던데......” 하는 말을 들으면
그냥 가보 는 모양이다.
내가 천식이에게 기고를 권유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 여행기이다. 이 친구, 얼마 전에는
티벳 가는 ‘하늘 열차’라는 것을 타 보겠다고 하면서 출국하였는데, 귀국해서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 기차는 타지 못했지만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더라. 현지 여행
사를 통해 중국인 여행객들과 같이 움직였는데 -- 중국 사람보다도 더 중국 사람처럼 생겼잖
아? -- 그 중 젊은 여교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캠코더로 찍어 주었
대나 어쨌대나. 이 친구 여행은 이런 식이다. 패키지 관광을 하는 우리 나라 관광단에 소
속되어 돌아 다니는 것은 일찌감치 졸업했을 뿐 아니라, 중국인들이 타는 침대 기차를 타고
그들이 자는 여관에서 자고 그들이 먹는 것을 먹고 눈에 잘 띠지 않는 그들의 뒷골목을 들여
다본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이지. 이 친구는, 물
론, 그게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을 혼자만 끌어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나누어주면 좋지 않겠어? 귀국한 지 보름도 안되어 또 나간 모양인
데, 이번에 들어오면 꼭 글을 올려 주기 바란다.
일 주일 말미를 주겠어. 그 기간 안에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예쁘면서 뻔뻔스러운 그 동
업자(일명 임청하)에게 당한 사연을 폭로하겠다. 연작으로 만들면 5 부작은 족히 나오겠
지. 물론 농담이야. 공갈협박은 농담으로 한 것이지만, 원고 청탁은 농담으로 한 것이 아
니지. 세월은 빨라서, 벌써, 한 낮에도 햇볕이 부드럽고 그림자가 길다. 늦여름은 금새 사
라지는 법, 곧 가을이 오고 스산한 바람이 불텐데, 쓸쓸해서 어떻게 살래? 마음 붙일 데가
없어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그 대부분이 허망한 것이잖아? 마음이 허전한 아저씨, 아
저씨들,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들, 까페에 중독되어 봐. 이것 역시 허망한 것일지 모르지
만, 여기에서는 최소한 사기당할 일은 없잖아?
카페 게시글
♡자유토론 이야기방♡
원고청탁(1): 황야의 외로운 이리에게
조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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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3 00:1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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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는 영태한테 원고독촉 내지는 청탁을 받지 않았고 받을 일도 없겠지만, 영태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영태가 내 정체를 폭로할 사연도 안가지고 있을 만큼 조용한 얼음공주시대를 경험한 학창시절이니까 마음은 편하다만... ^^
10개의 학위 가진 사람 사기친 예쁘면서 뻔뻔스러운 임청하 보고싶네. ^^ 글로 보아 이 시대의 기인(?)일지도 모를 천식이...(어째서 늑대가 아니고 이리가 됐는진 모르겠으나) 얘길 나도 꼭 듣고 싶구먼. 소시적 한자 도사 천식이 부탁하네~~~
점잖게 조영태가 청탁(?)할 때..황야의 외로운 이리라 불리는 원천식아...친구들을 위해 이야기 보따리 좀 풀어 보지그레~~ 괜히 영태의 만년필에 찍히지 말고
ㅎㅎ 영태표현으로 카페중독 4기인 영복과 광식이 젤 좋드라~ 원천식이 그런면이 있었구나~ 압력좀 넣어야긋네..근데 요즘은 누가 잴로 친하게지내냐?
내가 영화본것 보다 영화본 살람이 이야기한것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영태야 여햄담 보담 임청하파일이 더궁금하게 만들어 놨으니 어떡할래 ? 천상 술집으로 초대해야~~~~~~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