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부상및 입원등의 사유로 자전거를 많이 타지 못해 열심히 자전거를 타는중입니다...
한2달 뛰엄뛰엄 운동을 했더너 갑자기 살도 찌고 또 요즘 스트레스도 많이 쌓여 라이딩으로 늘 스트레스를 풀곤합니다..
역쉬 어제도 종일 셔틀벙개를 하고 회사들렸다 집에오니 집사람이 시골집에 들어가자는 군요...
시골집은 포천 고모리에 있는데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십니다....
참고로 전 그곳을 들어가는것을 상당히 귀찮게 생각합니다만 현명한 집사람 덕분에 자주 방문하고 거기서 기르는 채소나 과일도 날라다 먹고 하면서 나름 주말은 시골의 웰빙생활을 하는 편입니다.....
어제는 시골집에 들어가다 저번주에 본 아버지의 등산화가 생각났습니다...
갈색 등산화에 검은 락카스프레이을 시꺼멓게 칠해 놓셨더군요....장날표 일이만원도 채않아는 그런 등산화에....
전 그냥 하도 낡아서 그런 모양이구나 하구 담주에 하나 사다 드려야 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명 노스000 매장에 들어가서 첨으로 몇십만원 하는 등산화를 하나 샀죠....
정말 아버지를 위해 이런것을 산적은 거의 없었던거 같더군요....
제생각엔 나이드신분들이 더더욱 메이커에 집착하시는거 같더라구요...
특히 스포츠 하는 분들은요...그래서 꿀리시지 말라고 나름 비싼걸 한번 장만했습니다...
너무 과용했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실 많은 가정이 마찬가지 겠지만 전 아버지와 그리 사이가 좋은편은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안그랬지만 고등학교로 들어서면서 많이 타락을 해서......
음악에 심대하게 미쳐 가출,음주,잦은외박,여자문제로 많이 부모님 속을 썩여 드렸죠....
그러면서 아버지와 참 많이도 대립해봤고 예전 아버지가 잠시 한눈을 파신사실을 알고 무척 대들고 싸우기도 많이 했죠....
그러면서 어느정도 유복하던 저희집 살림도 아버지의 계속적인 실패로 제 대학시절쯤에는 많이 힘들었죠...
그당시 제가 생각한게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자 였습니다....
어떨때는 아버지의 모든게 다 미웠던 적도 있었죠...
그러다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하시면서 다시 기울었던 가세를 새우는가 싶었는데 다시 일으켜진 아버지의 외도와 나태에 참 힘든나날을 보냈죠....어머니가 얼마나 딱했는지 이혼을 생각해도 괜찮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그덕에 전 대학 졸업후에도 집에서 생활을 하지않고 본의 아니게 독립을 하게됬습니다....
그덕인지 참 저역시 힘든 나날을 많이도 보냈죠.....저역시 스물일곱즈음에 나름 사업을 시작해 홀라당 말아먹고 집에 들어가기 쪽팔려서 거의 거지생활도 해봤죠....그냥 집에 들어가면 될것을 그고집이 뭔지.............
내돈 떼어 먹은놈에게 돈받아 낸다며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을 페인처럼 살았습니다...
라면 하나로 하루끼니를 때우고 아파트현장 같은데서 자구 그랬었네요....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지만..........
저에게 돈한푼 안보태주는 아버지가 미웠죠...무척이나...
다른집 아버지랑 많이 비교도 해가면서......
그러면서 결국에 이도 저도 안되니 사랑하는 사람도 제곁을 떠나구 친구들도 서서히 멀어지고 하면서 거의 인생의 끝을 경험한듯 싶습니다...동해로 자살한다고 떠나서 자살시도까지....헉....물론 회만 먹구 왔지만....ㅋㅋㅋ
마음고쳐 먹고 다시 직장생활부터 시작했죠....남들보다 2배이상 열심히 뛰었습니다....
돈도 아껴쓰고 직장끝나면 알바도 하고 주말엔 중장비 운전일을해서 일당을 벌고 하면서 참 열심히 살았나 봅니다...
하루에 4시간씩 자가며 몇년 그렇게 생활하니 몇천만원하던 빚도 없어지고 나름 건실한 청년이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마음 독하게 먹고 지금의 채널.엘이디(옥외광고업및 전자)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금 3백만원......고물 승용차 한대....... 버려진 가구 주워다 만든 100에 15만원짜리 사무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그땐 그렇게 시작했네요......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지금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그렇게 열심히 했더니 지금은 직원도 14명이나 되고 꾀나 괜찮은 회사가 되었네요..
그때 몸에밴 생활습관인지 나름데로 절약을 많이 하는 편이죠...물론 자전거랑 술먹는거에는 별루 절약을 안하지만.......
차도 늘 작은차나 똥차를 끌고 다니니 협회 회의나 거래처에서 종종 무시도 받지만.....하나도 게의치 않게 되더군요...
그냥 편안히 생각하면 되니까요...'그래 난 이제 30초반에 이정도지만 너희들은 그나이에 그정도 아니냐.....난 은행에 사람많아두 번호표 안뽑고 들어간다...이 양반들아....' 모든건 시간이 해결해 주나 봅니다.....그렇게 생활고에 찌들었던 저역시 한가하게 자전거를 탈수도 있고....세상사는 고생한 만큼만 보상해주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더 많이 고생을 해야겠습니다..ㅋ
또한 그시간은 제 아버지까지 늙게 만들더군요...
이제는 원망보다는 걱정과 딱함이 먼저드니 말입니다...
얼마전 베어스타운 종일경비로 취직이 되신 모양입니다....
하루종일 근무하시고 하루종일 쉬시는 격일제 근무더군요....
힘들지 않냐구 단한번두 물어보질 못했습니다...
등산화에 검은색 락카스프레이를 칠한것은 복장을 그렇게 해야한다는 이유랍니다...검은색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배움이 짧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15살때부터 사회생활을 했다고 합니다..그래서 인지 많은 부분 꽉막힌 부분이 있죠...
이제야 제사업을 인정해 주시지만 첨엔 기술이 최고다,,공무원이 최고다...이러시면서 반대를 많이 하셨죠...
그러면 저는 '아버지가 돈 보태주는것도 아니면서 왜 참견이냐'며 몇달간 말도 안하고 뵈러 가지도 않고 그랬져....
어제는 슬쩍 사온 등산화를 내어놓으니 내심 좋으면서 뭐 이런걸 사냐고.... 이런거 말고 돈으로 달라고 하시더군요....
"노인네....좋으면서....."
그러고 보면 저 참 무심한 아들이었습니다.... 지는 수백만원짜리 자전거 몇대나 바꿔치기하고 가지고 있으면서 이제 고작 아버지 등산화 하나 사드렸네요....어찌나 제 자신이 부끄럽던지요.....
저녁에 가족들끼리 모여앉아 술한잔 먹으면서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했네요....
제가 어려울땐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아들딸랑 하나 있는게 참 부모님 많이 못살게 굴었네요.....
그렇게 거나하게 술에취에 잠을자고 숙취에 새벽에 잠시 잠을 깨니 아버지가 출근준비를 하시네요...
새벽 일찍 나가시니까요.... 근데 밖에서 계속 뭘 하시길래 봤더니 제가 사다드린 등산화를 요리조리 계속 만지고 안에들어있는 설명서를 보고 계시네요...영어로 된건데......-_-
언제 저런 웃음을 봤어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웃으시면서........
계속 몰래 지켜보니 한참을 만지작 거리시더니 도로 박스에 넣으시고 검은색 락카스프레이로 칠한 신발을 신으시더군요....
가시려고 할때 제가 나가서 왜 그거 신냐고 다시 박스에서 새 등산화를 꺼내서 신겨 드렸습니다...
괜히 쑥스러우신지 뒷머리를 긁적이시더군요....
그러면서 저에게 난생처음으로 "고맙다"라고 하시고는 제가 예전에 일때문에 타다 아버지 드린 고물 이스타나를 타시고 출근을 하셨습니다.. 껌껌한 새벽에 차불빛이 없어질때까지 지켜봤네요.....
"아버지 내년엔 더 열심히 일해서 아버지가 타고 싶다는 rv차 사드릴게요...비싼걸루다...."
다시 잠자리로 와서 누웠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네요....초등학교이후로 처음 운듯 싶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집사람이 놀래서 일어나구......전 잠을 못이뤄 컴퓨터 앞에 앉아 가만히 글을 몇자 적어봅니다...
이제야 해가 떠오네요....좀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도 가슴이 져며옵니다.....아마도 살면서 오늘이 제일로 가슴벅찬 새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히 사세요...그래야 좀더 싸우면서 살거 아닙니까...........사랑합니다...아버지.............."
첫댓글 오렌지님의 어버지를 생각하는 효심이 묻어나는 글이었습니다.그렇습니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더군요. 어느날 문득 보면 돌아가시고 안 계신거예요.
^^; 아침부터 감동이로군요... 저도 중학교 사춘기 이후로 아버지(전 아직 아빠라고 부릅니다만...)와 대화가 없다가 군대가서 철들고..'얼마나 외로우셨을까~'라는 생각에 눈물을 한없이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제대하고 아버지랑 등산도 다니고..싸이 일촌도 맺고 자주자주 통화하면서 애교도 부린답니다. 처음엔 쑥쓰럽더니 지금은 저도..아버지도 한없이 즐거워요~
어르신께서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칠순 또는 팔순때 연략 주세요. 여르신도 뵙고 싶네요.
이거 프린트해서 아버지께 편지 보내드려봐요. 그게 진정한 "용기" 입니다. 형도 아들이 생기면 아버지를 조금더 이해 할수 있지 않을까요... 형 멋져요.
어제가 돌아가신지 십년된 아버지 제사였습니다 ...... 아버지 그이름만 들어도 울컥해집니다.. 아직도...
가슴 찡한 글이네요..
제작년에 돌아가신 울 아버지가 생각나네요...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이제 철이 좀 들고보니 아버지는 세상에 안계시고.......후..............우렌지님..........아버님께 정말 잘 해드리세요...........아버님께서도 표현은 안하시니만 훌륭한 아들 오렌지님을 한없이 자랑스러워 하실꺼에요...
오렌지님의 고백성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아들들은 다 똑같나 봅니다. 저도 맘 속으로만 있고 잘 표현을 하지 못하네요.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잘 찾아뵙지도 못하구요. 오늘은 아버지나 뵈러 가야겠습니다.
같은 또래의 남자로써... 존경스럽네요~~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게 만드네요^^
이제야 오랜지님 글을 접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부모도 우리도 다 똑같은 것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게되면 다 알게 되는법이죠...모든것을 다 이해하게된 오랜지님은 이제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죠...지금부터라도 더욱 잘 해드리시고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마시기바랍니다. 참고로 전 어머니가 살아계시지만 아직도 오랜지님처럼 그런 찐한 고마움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찡해지는 오랜만에 읽는 좋은 글입니다. 오렌지님 정말 멋져부러~~
용기씨 멋집니다.. ㅠ.ㅠ 같은 나이인데 왜 저는 왜이리 철이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