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동이트기도전에 부엌에서 달그닥달그닥 소리가 들린다 다 버려도 아깝지않을 오랜 세월 손때묻은 낡은부엌이지만 행주하나 그릇하나모두가 반짝반짝 윤이난다 올해93세이신엄마는 60이넘은 막내딸이.해외에서왔다고 아침을 준비하신다 밥상을 앞에놓고 차마 먹을수없다 온맘다해 만든 음식들을 차마 입에넣고 씹을수가없다 애써 눈물을 삼킨다 관속에누워있다가도 자식일이라면 벌떡일어나실 그런 우리엄마가 부모는 암보다 무섭다는 치매를 앓고계신다 기억을 차츰 잃어가신다 애써 자식이며 증손주며 눈에 많이 담아두시려 애쓰시는 모습이 가슴이 저리다 밤에 자려.누우니 옛날애기를 하신다 아직 기억속에 많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어릴적 기억을... 내노라하는 양반가부잣집 맏딸로 태어나 부족한것없이 자라다가 또 양반을 찿아 안동에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결혼하시고 결혼때 혼수를 팔아 아버지 대학을 다니셨다고... 일제시대를 겪고 6.25를 겪고 지금 코로나를 겪고계신다 일세기에 참 많은일이 일어나고있었다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닐때도 학교이사장으로 지낸 외할아버지덕에 많은 혜택을 누리셨다 그 시대는 공부는 뒷전이고 어린아이들도 농사며 노동을 시켰다고... 그 일들을 외할아버지 빽으로 안하셔도 됐다는...
어느날 동네에 트럭한대가 오고 어린 아가씨들제법 실려있었고 엄마는 외할아버지덕에 그 트럭을 타지않으셨고 그 어린 아가씨들은 그 길로 가서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않았다고... 세월이 지나 그것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것을 알았다고... 제법 많은 어린 여자들이 그렇게 끌려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않더라는 세월이지나 그것이 위안부였다는것을 아셨다고 무서운 일이였다고 기억을 하신다 대화도 넋두리도아닌 혼자의 독백처럼 누워서 애기는 계속됐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친정에 있을때6.25가 터져 아버지는 군대로가시고 친정에서 이북군인이 집으로 먹을걸 얻으러 외가집으로왔는데 사상은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예의바르고 점쟎게 먹을것을 달라하더라는... 곳간에 양식을 꺼내주니 고맙다는말을 수없이 하며 이집이 내노라하는 양반집인걸 안다며 나도 성이같다며 북한돈을 주며 쓰라고 주고 가더란다 전쟁통에 대포소리에 놀라 외할머니는 시력을.잃은채 남은생을 사셨다 작은 몸으로 툇마루에서 늘 앉아계시던모습이 눈에 선 하다 어린내가 가면 내 이름을 부르며 얼굴이며 손이며 만지시고는 하셨다 전쟁은 다시겪으면 안된다며 총소리대포소리가 참으로 무서웠노라고... 양반집 아들셋중에 막내아들이셨던 아버지는 당신밖에 모르셨다 친할머니가 그렇게 키워놓으셨다 재주가많던 막내아들을 보면 버선발로 쫓아나오시며 금지옥엽으로 키우셨다 세상에 그보다 잘나고 귀한아들은 할머니에겐 없었을듯... 없던시절에 먹을게 귀하던시절 먹을게있으면 자식은 뒷전이고 당신먼져 드신다 그리고 조금 남으면 그게.우리들 몫이였다 그때는 그게당연하다고 느꼈는데 내가 자식을 키워보고 엄마를 보니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였는지... 세상에 제일좋은그림은 자식입에 먹을게 들어가는 그림이라는 엄마의 말은 지금먹거리가 흔하디흔해도 맞는것같다 자유로운영혼의 아버지는 늘 책과함께였고 영화감독에 작곡가에.발명가에 늘 집에도 안계셨던것 같다 빵점짜리 가장이셨지만 혼자를 놓고봍때는 참 대단하신분일지도 모른다는... 나는 집에서보다 아버지얼굴을 잊을때쯤이면 가끔 티비에서 책에서 신문에서 아버지 얼굴을 보곤했다 재물복은 없어서 인지 돈은 늘 뒷전이였다 아버지가 평생에 잘한 한가지는 부부가 국립현충원에 이쁘게 잠드실 자리가있다는것 그거 한가지인듯하다 어려운 살림에 자식은 온전히 엄마몫이였다 귀하게 큰 엄마는 자식 먹여살리느라 힘든일하시며 끔찍히도 자식을 아끼셨다 당신 목숨보다더... 양반자식은 뼈속까지 양반이라며 딸 셋을 엄하게도 키우셨다 요즘나는 또 엄마가 양반 애기를하시면 엄마! 요즘은 돈만많으면 양반이래~~ 하면 그게 아니라고 고개짓을 하신다 치매를 앓고계시는데 신기하게도 옛날일은 하나도 안 잊어버리고 또렷이 기억을.하고계신다 어느날은 나를 작은방으로 부르시더니 당신 성격만큼 빳빳하게 풀먹여놓은 모시적삼을 꺼내시며 나를 입으라하신다 당신이 손수 만들어놓은옷을... 요즘은 이런 삼배가 나오지도않는.거라며 아까우니까 버리지말라고 돌아서서 애써 눈물을 감춘다 그리고는 안방으로오셔서 티비를 키니 옛날 가요가나오니 따라부르신다 나즈막히... 엄마의 잃어가는 기억처럼 불꺼져 티비의 희미한불빛에 막내딸이 우는것을.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무심히 노래를 부르고계신다 강하지만 약하기 짝이없는 엄마는 자식이울면 부모는 피눈물.난다고 ... 그래서 엄마앞에서는 차마 눈물을 보일수없다
지금은 또 코로나를 겪으시며 이 몹쓸 병이라며 안타까워하시는...
이제는 너무 오래살았다며 이제는 하나님곁으로.가시고싶다는... 당신 할일도 다 하셨다고 독백처럼 말씀하신다 딸셋을 누구도 부럽지않게 키워놓으셨다고 이제는 원도 한도 없다고... 나는 가까이있지못하고 내가받은사랑 자식에게 물려주려 멀리와있으니 늘 엄마걱정이다 당신은 죽어 새가되어 훨훨 날고싶다고 훗날 이곳의 수많은 새들중 행여 엄마일까 싶어서 나는 또 얼마나 쫓아다닐까?
엄마기억속에 자식잊어버리는 그런 가슴 아픈날이 오지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사가 부르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곱게 예쁘게 그렇게 사시기를 눈물로 기도한다 내가 다 못한효도는 하늘에서 만나면 그때 다시 하겠노라고... 그리고 가시는 날에는 꼭 일주일만 편챦으셔서 내가 마지막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마지막 인사는 할수있는 시간이 될수있는날이기를 ... 그리고 햇살.가득한봄날 눈보다 더 하얀 꽃비가.내리는날 당신을 그길로.보내드릴수있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다시봄이오고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꽃피우고 다시꽃비가내리면 아름다운 당신을 추억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전형적인 선비댁 안 주인이며, 어머님이셨네요.
외지에 산다고 임종도 못한 불효자는 벌써 웁니다.
부디 코로나가 끝나고 좋은 시절에 가족들과 꽃비를
보셨으면 합니다.
엄마를 앵각한다는것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눈이뜨거워지는...
선생님은.임종도못하신 그심정
이해할것같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이선생님 잘 사시기만을
바라시고 가셨겠지요
잘 사시는것이 또한 효도인듯.싶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을 담담하게 기록하셨네요.
누구보다 효녀신 것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현대판 '사모곡'을 대신했다고 봅니다.
명희님~~
좋은말로 효녀지만
멀리있으니 아무것도 할수없는...
그래서
그리움에 목이맵니다...
내자식 살게도와준다고
부모떨어쳐있어도
언제나 엄마는 나는.괸찮타!!!를
외치시니
그래서 또 눈이 뜨거워요 ㅠㅠ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 정 철
애틋한 마음, 잘 읽었답니다.
사람이 하루앞을못보니
이리.후회를 하네요...
이리 떨어져 지낼줄알았으면
곁에계실때 원도한도없이 해드릴것을...
후회한들 다시돌아갈수없는
못다한 지나간 날들이
상처처럼.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