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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내의 방식
<광남일보> 2022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고성혁
망할 놈의 여편네. 새벽 댓바람부터 어딜 휘젓고 다니는 건지 눈을 뜬 순간부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밥때가 지난 지 한참이었다. 아내 대신 내가 안친 밥은 벌써 윗부분이 말라가고 있을 터였다. 나는 예초기를 멈추고 오랜만에 허리를 폈다. 여름 해가 참나무 위로 높이 솟아 있었다. 덜덜거리는 예초기를 몇 시간이나 잡고 있었는지 팔 전체가 묵지근했다. 시골의 여름은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었다. 예초기에 잘린 비릿한 풀 냄새가 후텁지근한 바람에 실려 왔다. 아내가 쓰는 오이비누 냄새 같기도 했다. 수건으로 목을 훔치는데 드디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프지라?
지금이 몇 신데 그걸 말이라고! 성질 같아서는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나는 시위하듯 도랑가에 널브러진 풀들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리어카로 댓 번은 실어 날라야 할 것 같았다.
갑시다. 얼릉 밥부텀 묵읍시다. 나도 배고프요.
아내가 갈퀴를 빼앗아 던지고는 팔짱을 꼈다. 아내에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도랑가에 던져진 갈퀴와 예초기에 자꾸만 눈이 갔다. 저걸 저대로 두면 안 될 텐데…
이 짝은 동네서 누가 그걸 집어가겄어요. 밥 묵고 나와서 마저 할라믄 도로 갖고 나와야 할 것인디 그냥 두고 가는 게 더 편치.
아내는 의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해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아내는 허구헌 날 뒤통수를 맞았다. 사촌 동생이라는 놈이 고추를 트럭 가득 싣고 와서는 이거 팔아 갚겠다며 돈 좀 빌려달라고 하자 냉큼 달라는 대로 내주었다. 그 뒤로 녀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내가 열통이 터져 있는 대로 욕을 했더니 아내는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오죽하먼 글겄어요.
아내의 가만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열통이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아내가 당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열불이 치솟았다. 등친 놈은 남이니 화풀이 상대는 당연히 아내일 수밖에 없었다. 얼매나 당해야 정신을 차릴랑가! 자네가 바보여 천치여! 왜 번번이 등신처럼 당하냔 말이여, 당하길! 그러면 아내는 정말 천치처럼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긍게. 내가 참말로 등신인갑소. 그럴 때의 아내는 정말 등신 같았다. 찰싹 달라붙은 아내에게서 퐁퐁 풍기는 오이향에 나도 등신처럼 어느새 스르르 마음이 녹고 말았다.
새벽 댓바람부텀 어디 다녀오능가?
목욕탕.
목욕탕은 왜?
어머니와 장모님이 돌아간 뒤로 아내는 목욕탕에 잘 가지 않았다. 매일 샤워하는데 뭐.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괜히 뒤가 켕겼다. 어머니 살아생전 아내는 매주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시어머니라고는 하지만 생판 남, 제 알몸을 보이는 게 아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와도 목욕탕에 간 적이 없었다. 장인과도 물론 가지 않았다.
항림댁 할매 모시고 다녀왔제.
엊저녁 퇴근길에 만난 항림댁 할머니가 말했다. 사방 디가 쑤시고 아플 때는 목욕탕보다 좋은 디가 없어. 삭신이 갱엿 녹듯 녹는다니께. 꼬로난가 먼가 땜시 철장했던 목욕탕이 내일 하루 연다고 방송하등만.
할매가 한 시간이나 걸어서 목욕탕에 간다는디 그럼 어쩌요. 내 차로 모시고 갔다왔제. 간 김에 나도 오랜만에 때 좀 벳기고. 근디 할매가 얼마나 깔끔한지 살껍닥을 벗길 기세드란 말이요. 아직도 때가 남았다고 더 벳기겠다고 허는 것을 내가 간신히 달래서 지금 왔소.
간다고 말이라도 하제!
당신이랑 삼십오 년 넘게 살았소. 그런 것쯤은 인자 그냥 넘어갈 때도 됐구먼.
아내가 나를 흘겨보고는 종종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몸에 묻은 풀 조각들을 꼼꼼히 떼 내고 마루에 올라서자 화장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오지랖은 세계 최고인 사람이 비위치레는 못해 남의 집 화장실을 잘 쓰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몇 시간은 족히 참았을 터였다. 결국 아침상 차리는 것도 내 몫이었다.
물 묻은 손을 탁탁 털어 거실 바닥에 물방울을 튕긴 아내는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손바닥을 쓱쓱 비비더니 냉장고에서 밑반찬 몇 가지를 그릇 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구멍까지 잔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빤히 쳐다보는 아내의 눈길을 어쩌지 못해 국을 한 대접 퍼 아내 앞에 내려놓았다.
아따 맛나요.
아내가 한입 가득 욱여넣고 감탄한 그 된장국은 그제 저녁 아내가 끓인 거였다. 나는 순간 그 된장국을 내가 끓였나 착각할 뻔했다. 옹골차게 밥을 씹던 아내는 가만, 풋고추는 없으까? 하며 내 얼굴을 살피더니 신발을 끌고 문을 밀었다. 제발 옷 좀 털고 들어오라는 얘기를 수백 번은 들었을 텐데도 아내는 풋고추 몇 개를 손에 든 채 바지에 도꼬마리 가시를 수북이 묻히고 들어왔다. 그 꼴로 자리에 앉은 아내는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우걱우걱 씹었다. 내가 젓가락을 들고 깨작거리고 있는 사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쫌 더 먹어야 쓰것네, 라며 또 밥을 퍼 왔다. 곧 그마저 해치우더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숟가락을 놓았는데도 아내는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기미가 없었다. 아내를 멀거니 쳐다보다 결국 내가 몸을 일으켰다.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내자 아내가 탄성을 질렀다. 여보! 군에서 재난지원금 십만 원씩 또 준대! 휴대전화를 보며 벙글거리는 아내가 딴 세상 사람 같았다. 디저트도 내 몫이었다. 텃밭에서 딴 방울토마토를 씻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귀신같이 그걸 주워 먹은 아내는 우리 커피는 안 마셔? 라고 물었다.
당신이 타! 커피라도 당신이 타야지.
나 뭐 좀 보고 있어. 당신이 좀 타 주면 안 돼?
아내가 배시시 웃는 바람에 나는 또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바람이 부는지 창틀이 덜컥거렸다. 창문 너머 포도 줄기는 더 심하게 흔들렸다. 집 마당에 나무가 많다는 걸 칠 년 전 늦가을 이사 왔을 때는 몰랐다. 다음 해 여름이 되자 온 마당이 나무 그늘로 뒤덮였다. 소나무가 제일 많았고 감나무도 여러 그루, 자두와 호두, 꾸지뽕, 살구, 복숭아와 배나무도 한 그루씩, 마당이 비좁을 지경이었다. 마루 앞에 심어진 포도는 기둥을 따라 지붕까지 뻗어 있었다. 포도나무만큼은 베고 싶었지만 아내가 극구 손사래를 쳤다.
친구를 따라 우연히 이곳에 들렀던 아내는 집 건너 숲 풍경에 완전히 꽂혔다. 나는 결사반대했다. 읍내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 무엇보다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늙으면 고래 심줄처럼 질겨진다더니 내 말이라면 고분고분 잘 듣던 아내가 뜻밖에 고집을 부렸다.
지금까지 당신 맘대로 했으니 이번에는 내 말 쫌 들으씨요.
내심 뜨끔했다. 아내는 내가 자기와 상의도 하지 않고 명퇴한 걸 두고두고 속상해했다. 뒤끝 무른 아내가 명퇴 건은 잊지도 않고 틈날 때마다 구시렁거렸다. 뒤늦게 아내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퇴직을 아내조차 모르게 한 게 미안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다는 아내에게 져줬다. 사실은 겁 많은 아내가 산골에서 얼마나 버티겠냐 싶었다. 새집을 짓는 대신 낡은 집을 대충 고쳐 이사 온 것은 돈보다 아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계산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이곳 생활에서 아연 활기를 얻었고 나는 나날이 지쳐갔다. 제일 큰 문제는 차였다. 이사하면서 내 차는 출퇴근해야 하는 아내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발을 잃으니 도무지 움직일 길이 없었다. 나가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 술 한잔하자고 불러도 나갈 수가 없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나날이 무력해졌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아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친구가 문자를 보냈네. 점심이나 같이하재. 점심때 시내 좀 나갔다 와도 되겠지?
누구?
희덕이. 당신 기억하지?
기억하다 뿐인가. 내 돈을 빌린 뒤 육 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은 사람인데.
우리가 산골에 들어온 지 일 년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저녁밥을 해놓고 아내를 기다렸다. 백수의 생활이란 게 그랬다. 아침에는 늦잠을 자는 아내 대신 밥솥 스위치를 눌렀고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마루에 나앉아 벌레가 갉아먹고 남은 텃밭의 무, 배추를 일없이 바라보곤 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잔 후에는 마당에서 까불대는 직박구리가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지 세다 말기를 반복했다. 내 손으로 사직서를 쓴 직장이 그리울 줄은 나도 몰랐다. 동면하는 곰처럼 이불 속에 박혀 멀거니 천장만 쳐다보던 어느 날엔 무척이나 낮술이 당겼지만, 동네엔 가게가 없었다. 오갈 길이 없어 친구들의 번개팅까지 씹다 보니 단톡방에서조차 밀려나 마치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의 허수아비 같았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이었다. 퇴직하기 전까지 제일 아끼던 후배 성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태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천만 빌려달라고 했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백수인 사람에게 돈을 빌려달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아끼던 후배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데야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성태는 긍정적인 데다 인성도 좋고 부지런했다. 누가 한잔 사면 자기도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다. 나는 나갈 수도 없는 처지라 직장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이너스 통장 하나를 만들어 후배에게 송금하라고 말했다. 아내는 묻거나 따지는 대신 이천만 원은 너무 많소. 천만 보냅시다, 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내의 오랜 친구인 희덕 씨가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연락한 것은 공교롭게도 성태에게 돈을 보낸 며칠 뒤였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여고 동창이 갑작스럽게 급전이 필요하게 됐다는 아내에게 차마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대출한도가 찼다는 아내의 말에 내 명의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군내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갔다 오느라 하루를 허비했다.
채무관계가 생겼지만 그 뒤로 한 삼 년은 성태와 허물없이 잘 지냈다. 녀석은 주말이면 뻔질나게 우리 집에 드나들었고 더러 두 부부가 동반해 저녁을 먹기도 했다. 명절이면 잊지 않고 배 한 상자라도 보내는 녀석이라 꿈에서도 꿔준 돈을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희덕 씨였다. 돈을 빌려 간 이후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도 아무 말이 없는 걸 보아 따로 만나는 눈치가 아니었다. 사실 빌려줄 때도 나는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희덕 씨는 요양보호사였다. 남편은 십여 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운신을 하지 못했다. 그런 형편에 무슨 재주로 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모으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희덕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희덕 씨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몇 번 만난 사이라고 해도 늘 서먹서먹했다. 언젠가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희덕 씨 말이야. 사람이 왜 그렇게 쌩콩해?
아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희덕이, 가는귀먹었어. 어릴 때 개장수에게 덤비다 맞았거든. 잘 안 들리니까 말수가 적은 것뿐이야.
것도 모르고 쌩콩하니 어쩌니, 볼멘소리나 늘어놓았으니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런 말을 남편에게조차 하지 않은 아내에게 짜증이 치밀어 엄한 불똥이 희덕 씨에게 튀었다.
희덕 씨 말이야. 빌려준 돈이 내 마이너스 대출인 것 안가?
아내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휙 고개를 돌리고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희덕이는 납부금을 제때 못내 나랑 함께 교무실로 불려 다녔던 찐 친구야.
그래서? 돈을 갚는다고 안 갚는다고? 나는 불만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그 소리를 내지 못했다. 무슨 말이든 덧붙였다가는 아내의 눈에서 불길이 솟을 것 같았다.
희덕 씨가 연락이 없는 채로 내 속을 태우는 사이 성태의 연락도 뜸해졌다. 재작년인가 격무부서로 옮겼다는 말을 전한 이후에는 아예 연락을 끊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견디던 어느 날 옛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성태가 주식으로 망조가 들었다는 얘기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성태에게 곧장 문자를 보냈다.
연락 좀 하소. 무슨 일이 있는가? 하도 연락이 없으니 별생각이 다 드네.
그런데도 녀석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자네 정말 이럴 건가, 라고 다시 문자를 남겼다. 중국 출장 중이니 며칠만 말미를 달라는 답이 왔다. 며칠 뒤에는 녀석의 전화기가 아예 꺼졌다. 그제야 나는 녀석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돈을 빌리지 않은 데가 없었다. 다음 날 성태를 찾아갔다. 못 본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된 녀석은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싹싹 빌었다. 형님, 일 년 뒤에 퇴직입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퇴직금으로 해결하겠습니다.
녀석은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겠다며 퇴직하기 전 우리가 자주 찾던 국밥 골목으로 앞장섰다. 성태의 허옇게 센 머리와 닳은 구두 굽이 자꾸 눈에 밟혔다. 비 온 뒤끝이라 성태의 닳은 구두 굽이 땅을 디딜 때마다 질척거리는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삼겹살집으로 녀석을 끌고 가 내 돈으로 소주를 사 먹였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그 뒤로 성태는 다시 연락을 끊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력을 봤다. 칠월 일 일, 성태의 퇴직일은 유월 삼십 일이었다. 일요일이니 이미 퇴직금을 수령했을 것이다. 나에게만 퇴직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겠는가. 성태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 모두 퇴직금만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바빠진 나는 협탁 위의 휴대전화를 줍다가 떨어트렸다. 그걸 줍는다고 허우적거리다 벽에 머리를 찧는 나를 보며 아내가 웃었다. 그런 아내를 흘겨보면서 나는 성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피하는 건가, 불안해질 때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형님, 웬일이세요?
첫마디에 나는 마음이 상했다. 웬일이라니. 제 입으로 퇴직금을 받으면 청산하겠다고 한 게 불과 일 년 전이었다. 나라면 당연히 퇴직금을 받자마자 자동이체했을 것이다. 마음이 너무 상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별일 아니라는 듯 녀석이 느물거리며 말했다.
아, 돈 때문에 전화하신 거죠?
그 말이 나에게는 고작 돈 천 갖고 사람 피곤하게 하냐는 말로 들렸다. 뒷간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보낼게요.
성태의 그 말이 더 걱정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을 기세라 나는 얼른 한마디 했다.
잠깐 보세. 아니, 그보다 그 돈 자네가 가지고 나오소.
아,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한 시에 선약이 있어서요. 은행 일은 오후 늦게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돈을 갖고 나올 수도 없고 부쳐줄 수도 없다는 의미였다. 칠십 노인들도 폰뱅킹을 하는 이런 시대에 말이다.
그럼 이른 점심이라도 하세.
오전에는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요. 나는 침묵했다. 녀석의 숨소리만 듣고 있었다. 잠시 후 기가 꺾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열한 시 반에 지하철역에서 보시게요.
이렇게라도 몰아쳐야 우선해서 내 돈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녀석의 느물거리는 몇 마디 말이 나를 이렇게 몰아치게 만들었다는 편이 정확했다. 아내는 어느새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빨래집게에 걸려 쨍한 햇볕을 받고 있는 팬티에서 뭔가 나풀거렸다. 고마리에서 풀린 실이었다. 닳고 닳은 엉덩이 부분에는 좁쌀만 한 구멍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저 팬티의 앞부분에는 원래 진홍색 장미 한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신혼 때 입던 요일 팬티 중 하나였다. 아내는 화려한 장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내가 제일 바쁜 월요일에 장미 팬티를 입었고, 주말에는 데이지 팬티를 입었다. 흰 바탕에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 데이지가 오돌도돌한 문양으로 수 놓인 그 팬티를 나도 아내도 제일 좋아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수 놓인 연분홍 데이지는 꼭 아내 같았다. 하루가 머다고 삶아 눈부시게 하얬던 데이지 팬티를 아내가 장미 팬티 옆에 널었다. 삼십오 년의 세월을 견뎌낸 요일 팬티는 더 이상 하얗지 않았고, 꽃무늬도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빨래를 집으러 허리를 숙이는 아내를 바라보며 오늘 끝장을 낼 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고샅을 나선 아내가 동네 어귀를 가리켰다. 밭 가운데 고추밭을 매는 할머니가 보였다. 동네 가운뎃집에서 몸이 불편한 육십 대 아들과 사는 효천댁 할머니였다. 마음 바빠 죽겠는데 무슨 일이냐고 불퉁거렸지만 아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고추밭으로 내달렸다. 쇼핑백을 건네자 할머니가 멍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쇼핑백을 사이에 두고 받아라, 못 받는다, 한동안 몸짓으로 실랑이를 벌였다. 아내는 결국 밭고랑에 쇼핑백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가 돌아서는 아내를 향해 소리쳤다. 손주놈 등록금도 아직 못 갚았는디…. 몇 년 전 손자 등록금 좀 빌려달라는 할머니의 눈물 바람에 마음이 약해진 아내는 다음 날 거금 오십오 만원을 건네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오지랖이 발동했겠지. 나는 보지 않았어도 쇼핑백에 든 물건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아내와 산책을 하러 나선 길이었다. 여름 해가 길긴 하지만 밥때가 지난 시간인데도 효천댁 할머니는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상 밭에서 살았다. 아내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할머니는 선 듯 만 듯 ㄱ자 허리로 우리를 올려다봤다. 까맣게 탄 주름투성이 얼굴에 호미를 든 손마디가 나무토막 같았다. 손톱엔 까맣게 흙이 들어 있었다. 잠시 쉬었다 하세요. 아내가 할머니에게 물을 건넸다. 우리는 밭고랑에 쪼그려 앉아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의외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친정에 끼니꺼리가 없어 보신 한 짝 없이 열일곱에 시집이라고 왔소. 맨발인 나를 보고 시아버지가 달구새끼가 맨발로 다닝께 지금이 오뉴월인 중 아냐? 그럽디다. 얼매나 부끄럽던지. 영감도 살아볼라고 어떻게나 꼽꼽을 떨어 아직까지 동동구루무 한 번 못 바르고 살았소. 그 말이 밟혀 화장품을 산 게 분명했다.
이 은혜를 어치케 갚아야 할랑가 모르겄네. 머리털로 짚신을 삼아줘도 모지랄 것이여.
할머니가 아내의 등 뒤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엄마가 생각나서.
돌아온 아내가 나직이 말했다. 나도 나지막이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넘 동동구루무 사 줄 돈이 있으먼 지 빤쓰나 새로 사 입제.
아내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 찰나,
대문 고리에 걸어둔 오이는 먹었으까?
할머니가 잊었다는 듯 아내를 보며 소리쳤다.
아,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있어요.
아내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아니어. 그깟 것이 머시라고. 할머니의 그르렁거리는 혼잣말이 댓잎 스치는 소리에 묻혔다. 산모롱이를 도니 뜨거운 태양이 벌판 가득 내려앉고 있었다. 동네 초입 주차장에서 직사광선을 맞은 차 안은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에어컨도 시원찮아 집 나선 지 몇 분 만에 우리는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럴 걸 새벽 댓바람부터 목욕은 무슨 목욕이란 말인가.
십오 년이 넘은 차는 복날 두들겨 맞은 개처럼 덜덜거렸다. 이런저런 불안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신호등에 멈춰선 아내가 해 가림막을 올렸다. 차창 너머 몰티즈가 보였다. 기다란 털이 사랑스러웠다. 애완견이라도 키워보고 싶었지만 가격을 확인하고 포기했던 건 내 헌 양말을 종아리까지 끌어올리고 다니는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의 옆얼굴을 힐끔거리다 장난치듯 물었다.
어이, 당신 친구 혹시 오늘 돈 주는 것 아니어?
아내가 피식 웃었다.
희덕이가 많이 힘들어. 지난번에 통화했는디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있다고 헙디다.
희덕 씨 친정엄마는 몇 달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로 면회까지 막혀 불안해진 희덕 씨가 친정엄마 얘기를 꺼내자 시어머니는 두말없이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좋은 양반이기도 하지만 희덕이도 평소 시어머니한테 잘하제. 그런디 훈이 아부지.
아내가 혼잣말을 씨부렁거렸다.
희덕이 같이 좋은 사람 드문디 어째 그렇게 힘들게 사까이.
희덕 씨 근심부터 앞서는 아내가 답답했다. 희덕 씨보다야 낫겠지만 우리 형편이라고 크게 나을 것도 없었다. 큰애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반가운 마음보다 집은 어찌해야 하나 걱정부터 앞서는 형편이었다.
사정이 어떠냐고 물어는 봤는가?
돈 얘기? 그런 친구한테 먼 말을 허것어.
돈 받기는 글렀구만.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화를 삼키는지 아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조그만 입술을 쑥 빼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역에 떨궈놓고 구청 방향으로 쌩하니 사라졌다. 나는 머쓱하게 좌판 할머니 앞에 서서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급하다고 채근했던 내가 무색하게 성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이었다. 역시 안 나타날 모양인가, 빌려 간 놈은 태평하고 빌려준 놈만 애간장이 녹는 이 상황은 뭔가, 별의별 생각으로 심사가 복잡할 때, 성태가 뒤통수를 긁으며 다가왔다.
코로나가 정말 오래가네요.
변죽 좋은 성태 말에 빈정이 상해 아무 말도 받아치지 못했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녀석이 생각난 듯 별일 없느냐고 물었다. 성태와 희덕 씨를 빼면 우리집은 늘 그날이 그날이었다.
녀석을 따라 들어간 백반집엔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네 셋뿐이었다. 나는 앉자마자 반찬을 안주로 소주를 들이켰다. 녀석은 내가 잔을 비우는 족족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자네는 안 마셔? 저는… 말씀드린 대로 일이 있어서.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공원에서? 녀석은 한참 만에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오늘 반드시 보내겠습니다.
돈은 단 오 분이면 찾을 수 있었다. 아니, 휴대전화로 바로 보낼 수도 있었다. 엊그제까지 공직에 있었던 놈이 폰뱅킹을 못할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굳이 은행에 가서 오늘 반드시 보내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여야 할지 막막했다. 싸움도 해본 놈이 이기는 법이다. 노상 당하는 아내를 등신이라고 번번이 몰아붙였지만 내가 당하고 보니 나 또한 당하지 않는 법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다 맥없이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아버지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소주를 따라 한잔 더 마셨다.
이번에 과장 진급한 아들이 아버지를 뵈러 온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지금 가봐야겠습니다.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묵묵히 녀석 얼굴을 바라보다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내 형편이 좀 어렵네.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려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천진난만한 눈빛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자식 둘 대학까지 가르치기는 저나 나나 마찬가지, 저만 어렵고 나는 어렵지 않은 줄 알았다는 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예, 알겠습니다. 정말 오늘 안에 입금하겠습니다.
꼭 좀 부탁하세.
내 돈 내놓소. 당당하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말았다. 돌아서 질금질금 사라지는 녀석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지 아들은 과장으로 진급이라도 했지. 내 아들은… 둘째는 공시생으로 삼년을 보내고 공사 시험을 본다며 고시원에 들어간 지 이 년째였다. 서른 중반에 이른 녀석도 녀석이지만 아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둘째 밑으로 들어가는 돈도 한두 푼이 아니었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었다. 여름 볕에 꾸들꾸들 말라가고 있을 아내의 색바랜 빤쓰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밥은 한술도 뜨지 않은 채 소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마신 나는 커피믹스를 빼 천천히 공원으로 향했다. 몇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술기운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늘 밑이라고는 해도 뜨겁게 달아오른 땅에서 훅 솟구치는 지열에 숨이 막혔다.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았다. 아내가 도착하려면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은 한량없이 흘렀다.
해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얼굴이 뜨거웠다. 얼굴을 찌푸린 내가 응, 소리와 함께 손을 내저으며 깨어났을 때 가까이 아내 얼굴이 있었다.
깨우지 않고 왜 그러고 있어!
성태에게는 큰소리도 못 친 주제에 아내 앞이라고 나도 모르게 버럭 큰소리가 나왔다. 아내가 피식 웃었다.
그 얼굴로 큰소리는.
아내가 내 옆에 앉았다.
일은 잘됐어?
모르겠어. 하여간 오늘 중으로 송금하라고 조져놨어.
조져? 당신이?
그래, 꽉 아금받아 놨지.
팔베개 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문지르는 사이 아내가 내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며 말했다.
퍽이나 잘 했겠수.
아내는 그닥 볼품은 없지만 무던한 여자였다. 읍내 한과 공장에서 삼십 년 넘게 경리로 일했다. 그 세월 동안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와 어머니와 아이들의 식사를 챙겼다. 아이들이 크고 학교에 가고 우리 곁을 떠났어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내는 낡은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다니면서 하루도 빼지 않고 어머니의 점심상을 차렸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입원했을 때 의회의 군정 질의를 미리 파악한답시고 군의원들과 술이나 퍼마시는 나를 대신해 일주일 넘게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간병한 것도 아내였다. 큰아이가 결혼한 뒤 집이 없어 떠돌자 읍내 아파트를 팔 생각을 한 것도 물론 아내였다. 산골생활이 좋다고 우긴 이유가 그거였다는 걸 깨달은 날 나는 내 손으로 닭백숙을 해 아내에게 먹였다. 아내는 산골로 들어온 뒤에도 일을 계속했다. 모르긴 해도 둘째를 위해 악착같이 저축하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고물차는 여전히 털털거렸다. 술이 거진 깼는데도 속이 불편할 정도였다. 성태에게 돈을 받으면 아내를 위해 중고차라도 사야 할 모양이었다. 차가 갑자기 용트림을 하듯 요란하게 덜커덕거렸다. 아내는 재빨리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픽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대로변이었다. 차가 멈춰 섰는데도 아내는 나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내가 운전할 때는 쌩쌩했던 차였다. 하기야 내가 탄 것만 해도 십 년, 여기 이사 온 게 칠 년, 똥차가 되고도 남을 세월이었다. 아내가 차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나는 엔진 소리가 시끄럽긴 해도 별 문제는 없는 줄만 알았다. 창고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이십 년 넘은 아내의 자전거를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라구. 견인차를 부를 작정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걱정 없어. 쫌만 기다리면 돼.
시동이 꺼졌는데 무슨 소리야! 견인차를 불러서 야무지게 손을 봐야지.
오 분만 기다리면 돼요. 노상 그랬는디 뭘. 야도 늙어서 우리처럼 왔다 갔다 한당게.
아내가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다 늙어빠진 경리가 멀라고 출근을 서두르느냐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아내는 긍게 더 일찍 가야제라, 배시시 웃었다. 늙었다고 회사에서 눈치를 주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고, 그게 다 나의 무능 탓인 것 같아 면목이 없었는데 낡은 차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새 차 뽑아달라고 철없이 닦달하는 편이 훨 나을 것 같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에 왜 자꾸 심사가 뒤틀리는지 나는 눈을 감은 채 시동이 걸릴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며 시동을 켰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나더니 한참 만에야 시동이 걸렸다. 나는 괜스레 손마디만 툭툭 꺾었다. 한창 물오른 들판의 벼들이 춤추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산자락 자투리 밭에도 호박잎과 고추들이 손을 맞잡은 꼬마들처럼 앉거나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아내 손에 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누구 줄 거겠지 싶어 또 짜증이 치밀었다. 내 표정을 읽지 못한 아내가 내 손을 잡아끌며 소파에 앉았다. 아내는 뒤늦게 앉은 나에게 봉투를 통째로 안겨주었다. 한창 일할 때 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와 자식들에게 건넬 때의 나처럼 아내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봉투 입구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불룩한 오만 원짜리 뭉치와 통장이었다.
말 안 해도 알제?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네. 당신이라도 받아서.
말 그대로 아내라도 받았으니 좋은 일인데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건 왜인지 몰랐다.
근디, 그 거 천 아니고 구 백이어, 구 백.
아내는 점심때 이녁이 계산할 요량으로 곰탕이나 먹자고 말했다. 희덕 씨는 굳이 생선구이 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아내는 돈도 없는 친구가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순순히 뒤따랐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뽑아 오려고 일어서는데 희덕 씨가 이번에는 카페를 가자고 했다. 옛날에 한 잔 천 원 하는 다방 커피도 비싸다며 자판기 커피나 뽑아먹자던 희덕 씨였다. 희덕 씨는 이름도 생소한 헤이즐넛 라떼를 두 잔 시켰다. 하트 표시가 구름처럼 떠 있는 라떼를 앞에 두고 희덕 씨는 오만 원짜리 이백 장이 든 은행 봉투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아내는 불룩한 고액권을 보고 놀랐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기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이번에는 걱정이 앞섰다. 그동안 친구는 남편 약값을 대느라 요양보호와 식당 서빙, 심지어는 길거리에 전단지 붙이는 일까지 죽을 둥 살 둥 뛰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다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아내는 그 돈을 빌려주며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희덕 씨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육 년 전, 그러니까 희덕 씨가 돈을 꾸어간 그 무렵, 이번에는 희덕 씨의 외동아들이 회사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성 간부전증이었다. 간 이식 외에 아들을 살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희덕 씨는 너무나 억울해 죽을 수조차 없었다. 희덕 씨는 자기가 그 병에 걸렸어야 했다며 병원에서 미친 듯 울었다. 다행히 희덕 씨의 공여자 검사 결과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 희덕 씨는 곧바로 아들에게 자기 간을 이식했다. 아내에게 빌려 간 돈은 그 수술비용이었다.
그런 친구가 수술비용이 필요하다는데 어떻게 모른 척 하것소. 손 내밀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디.
그런 말을 미리 좀 해주지, 왜 나만 나쁜 놈을 만드는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알았다 한들 받을 수 없을 게 뻔한 돈을 빌려주겠다는 아내에게 잔소리하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 없어서였다. 성태에게 돈을 빌려줄 때 나는 받을 수 없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차마 돈뭉치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통장을 괜히 뒤적거렸다. 거기, 희덕 씨 이름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통장을 찬찬히 살폈다. 매달 칠 일,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이자를 넣은 게 기록되어 있었다. 나를 보면서 아내가 바람 없는 날의 쑥부쟁이꽃처럼 가만히 웃었다.
첫째 땜시 내가 퇴직금 중간 정산한 것 기억하지라? 그걸로 마이너스 통장을 없앴응게 그날 이후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소. 친구사인께로. 계산해봉게 그 이자가 이 백 가까이 됩디다. 그래서 그 돈을 희덕이한테 줬제라. 펄쩍 뜁디다. 둘이 말싸움을 벌리다가 결론을 냈소. 자, 우리 백만 원씩 나눠 갖자, 그라고. 그랬더니 희덕이가 웁디다, 막 웁디다.
아내도 울었을 것이다. 나도 울컥하는데 오지랖 넘치는 아내야 오죽했을까? 나는 사람들이 아내를 좋은 사람이라 치켜세우는 게 늘 의아했다. 불알친구들도, 직장동료들도 아내를 만난 뒤로 나보다 아내를 더 좋아했다. 내 눈에는 쓸데없이 오지랖 넓고, 맨날 손해나 보고, 제 몸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엄벙덤벙 마음만 앞서 늘 사고나 치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뿐인가. 솔기 터지고, 보풀 일어나고, 낡아서 해진 옷을 부끄러운 줄도 입고 다니는 변변찮은 사람, 남의 눈 무서운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그 바보 같은 마음이 희덕 씨의 마음을 울린 것일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띵. 휴대전화 문자 알림이 울렸다.
김성태님으로부터 3,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삼백만 원? 문자와 금액을 두 번씩 읽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은행 앱의 문자뿐 녀석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성태에 대한 분노인지 나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 성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아내가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따, 나한테 꽁돈이 이렇게 생겠는디, 오늘은 기쁜 맘으로 축하만 합시다.
가슴 한쪽이 쩌르르했다. 이상하게 그 순간 희덕 씨의 몸을 째고 떼어 낸 피 묻은 간 조각이 머릿속에 생생해졌다. 희덕 씨는 그 몸으로 어떻게 돈을 모았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따박따박 보냈던 이자를 돌려준다고 했을 때 희덕 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녀석과 나는…, 도대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제야 나는 성태가 왜 주식에 빠지게 됐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태 아버지가 어떤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는지도 당연히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묻지 않아도 뭐든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뒷산 등성이에 걸린 해가 팽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긴 그림자가 마당 아래 구름처럼 흔들렸다. 아내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따뜻한 아랫목 온돌 냄새가 났다. 갑자기 왜 그러요? 먼 곳인 양 그녀의 목소리가 아스라했다. 이제껏 들리지 않던 세상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둥지에서 알을 낳는 암탉의 신음소리, 개 목줄 끌리는 소리, 조심조심 몸을 움츠리며 걷는 고양이 발소리. 댓잎 비비는 소리, 그리고 참나무 밑동에서 버섯이 쑤욱 몸집을 불리는 소리…. 세상에는 내가 지금껏 듣지 못한 소리들이 그득했다. 해거름에 소쩍새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