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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혁 경무관 일대기, 드라마 ‘탄금대’로…
6.25 전쟁 중 일화·전후 행적 등 전개 예정차일혁(왼쪽에서 두 번째) 경무관이 1954년 충주경찰서장 재임 당시 지인들과 탄금대를 방문했다. (후암미래연구소 제공) 8.15를 앞두고 숨은 영웅의 행적이 조명을 받고 있다. 고(故) 차일혁(1920~58) 경무관이다. 지난 6월 KBS 1TV '역사스페셜'은 '전쟁 속에 문화재 구한 숨은 영웅들'이란 제목으로 차 경무관이 6.25 동란 중 불탈 뻔한 '1000년 고찰' 화엄사를 구한 사실을 방송했다. 최근에는 차 경무관이 일제 시대 독립투사들을 괴롭힌 악질 형사 사이가를 저격했다는 증거가 새롭게 나오고 있으며, 차 경무관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기획되고 있다. 사이가 암살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인 사이가 시치로(齊賀七郞)의 악명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해방 후 경성일보는 그를 '사상경찰의 악마'라고 규정하고 '20년에 걸쳐서 허다한 우국 선각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감옥에 보내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글을 실었다. 그런 사이가가 1945년 11월 2일 오후 6시 30분 무렵 서울 원남동 자택 근처 우체국 건너편 노상에서 권총 두 발을 맞고 죽었다. 사이가는 일본에서는 '일 잘하는 형사'로 유명했다. '일본 소설의 거인'이라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는 소설 '북의 시인 임화'에서 사이가의 최후를 묘사했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이런 대화를 한다. "검은 외투를 입은 사나이가 푹 쓰러졌다고 합니다. 쏜 사람은 군중 속으로 도망쳐, 누군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사이가 경부가 틀림없는가?" "물론이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으니까요.…결국은 사이가도 천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사이가 저격의 실체가 최근 드러났다. 사학자 이문창은 저서'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에서 '차일혁·김성수·이규창·공형기 4인이 사이가를 저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후속 연구를 통해 '4인 중 직접 총을 쏠만한 인물은 차일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차 경무관의 아들인 차길진 법사는 "해방 후에도 일본 형사들은 치안 유지를 원하는 미 군정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 땅에서 실력을 행사했다. 30년대 후반부터 해방까지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가 사이가를 처단한 것"이라면서 "사이가 저격 사건은 앞으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일혁 경무관의 아들인 차길진 법사.(이호형 기자) 53년만의 경무관 추서 차일혁은 지난 6월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추서됐다. 53년만의 일이다. 경찰청은 차 경무관과 함께 6.25 동란 중 공을 세우고 전사하거나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경찰관 709명도 한 계급씩 특진시켰다. 차 경무관은 2008년 화엄사 외 5개 고찰을 지킨 공로로 경찰로는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아산경찰교육원에 2000석 규모의 차일혁 홀이 개관되기도 했다. 드라마 '탄금대'로 '문화경찰' 차일혁의 일대기는 소설 및 드라마 시나리오로 쓰이고 있다. 빠르면 내년중 '탄금대'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선보일 예정이다. 충주 탄금대는 6.25 후 차 경무관이 충주경찰서장으로 재임하며 즐겨 찾던 상징적 공간. '탄금대'는 차 경무관의 6.25 후 행적을 증심으로 전쟁 중 일화들과 오버랩되며 전개된다. 차 경무관의 에피소드는 가극 '눈물의 여왕', 오페라 '카르마', 연극 '충주시대' 등으로도 소개된 바 있다. 차 경무관을 연구해온 후암미래연구소 측은 "차 경무관 재직 시절 충주비료공장이 세워졌다. 차 경무관은 충주에 극장과 직업소년학교를 만들고, 명인들을 초청해 공연을 열었다"면서 "시대를 앞서간 분"이라고 평했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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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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