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바오로 신부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 1,39-56
내 삶에 줌아웃(zoom out)
영화 촬영 기법 중 ‘줌인(zoom in)’과 ‘줌아웃(zoom out)’이 있습니다.
‘줌인’은 렌즈의 초점 거리를 변화시켜 촬영물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촬영하는 기법이고,
‘줌아웃’은 촬영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팬데믹, 전 세대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홍수와 같은 우리 일상은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 속에 함몰된 채 내 삶에 ‘줌인’하며 살아가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교회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줌아웃’의 시선을 가져보라 초대합니다.
제1독서(묵시록 11장 19ㄱ절 / 12장 1절-6ㄱㄷ절.10ㄱㄴㄷ절)는 로마 제국 통치하에서
신앙 때문에 핍박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글입니다.
성부 하느님께서 ‘여인’으로 표상되는 마리아를 통해 ‘아들’, 즉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을
긴 인류 역사 안에서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고 전합니다.
현재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가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드라마라는 넓은 관점에서
상대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제1독서는 고통받는 현재의 삶에 대한
‘줌아웃’의 시선을 제시합니다.
한편 제2독서(코린토 1서 15장 20절-27ㄱ절)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이들을 향해
바오로는 부활 신앙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에 이어 부활하셨듯,
그리스도인들도 그분 안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합니다.
비록 지금은 무의미해 보이는 부활 이야기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바오로는 삶에 대한‘줌아웃’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복음 1장 39절-56절)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여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벌어졌던 상황을 묘사합니다. 구약성경 율법에 따르면,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와 임신할 경우
간음죄로 간주 되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 처녀가 한 남자와 약혼을 하였는데, 성읍 안에서 다른 남자가 그 여자와 만나 동침하였을 경우,
너희는 두 사람을 다 그 성읍의 성문으로 끌어내어,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신명기 22장 23절-24절)
그러나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비천한 자신 안에 이루실 위대한 구원 업적을 찬양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 안에 완성하실 구원을 바라보며 기쁨에 넘쳐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성모님의 모습 또한 신앙인들이 현재 삶에 대한 ‘줌아웃’의 시선을 견지하도록 이끕니다.
몇 년째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고, 또다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반복되는 이 고단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면,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줌아웃’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모님의 승천을 묵상하며 지금 우리가 곱씹어 볼 수 있는,
그리하여 우리를 살찌울 수 있는 의미 있는 화두일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