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없는 지방… 원정출산용 숙소-전용 구급차까지 등장
[산부인과 찾아 원정출산]
전국 분만실 8년새 20% 급감… 지자체 지원에도 원정출산 ‘고행’
“둘째 낳는 건 상상도 못 할 일”… 취약지 산부인과 접근성 높여야
# 충북에는 올해 1월부터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6대 생겼다. 충북소방본부가 보은 옥천 괴산 증평 음성 단양 소방서에 있는 예비 구급차를 임신부 전용으로 바꿔 운영하는 것이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이 구급차를 타고 검진이나 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다닐 수 있다. 구급차에는 이동 중에 아이를 낳게 될 상황에 대비한 탯줄가위와 시트 등이 담긴 분만키트도 있다. 임신부 전용 구급차가 등장한 건 이 6개 지역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1시간 넘게 걸리는 지역에 있는 산부인과까지 힘겹게 오고 가는 임신부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 강원도에는 화천 인제 양구 등 5개 지역의 임신부들이 출산 3주 전부터 잠시 머물 수 있는 아파트가 1채 있다. 이들 지역 역시 차로 1시간 이내에 분만 산부인과로 접근하기 어려워 정부가 ‘분만 취약지’로 지정한 곳들이다. 언제 양수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신부들이 최대한 빨리 강원대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강원도 예산으로 병원 옆에 마련한 집이다.
이 두 지역처럼 지방자치단체마다 임신부들을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찾고 있는 건 현재 분만 인프라 붕괴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분만실은 2014년 1468개에서 2018년 1328개, 2022년 1176개로 급감했다. 특히 출산율이 낮고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방의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분만 인프라 부족에 “둘째는 상상도 못 해”
분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임신부들은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아 떠돌고 있다. 경기 안성에 사는 이모 씨(29)는 올해 1월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안성 지역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어 아예 친정어머니가 있는 광주광역시에 가 아이를 낳았다. 이 씨는 “임신 초기에는 2주마다 안성과 광주를 오갔고 마지막 달에는 아예 광주에서 머물렀다”며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건 상상조차 못 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불편한 차원이 아니라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 및 생명에 대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서울대 의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만취약 지역의 평균 유산율은 4.55%로 비(非)분만취약 지역(3.56%)보다 높다. 게다가 최근엔 노산 등 고위험 산모가 늘면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유례없는 초저출산 상황에서 산모를 제대로 돌볼 곳이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분만 인프라가 붕괴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저출산으로 ‘수요’ 자체가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2031년 인구 5000만 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수도권 큰 병원으로 쏠리는 현상도 심화된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장은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하다 보니 중소병원보다는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가 기피 과목이 되면서 분만 의사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분만의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잦고 의료소송 위험성이 큰 탓이다.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서울이 그나마 지방보다 분만 인프라 부족 문제를 덜 겪는 건 기존 의사들이 한계까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 의사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신규 인력은 투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뿐 아니라 분만실 간호사 구인난도 겪고 있다. 홍정아 순천향대 구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실 간호사들이 수도권으로 떠나거나 병원 내 다른 파트로 옮기면서 분만실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며 “2021년 5월부터 병원에서 자연분만은 불가능하고 제왕절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왕절개는 시기를 정할 수 있어서 자연분만보다 더 적은 수의 의료진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접근성 높이고 분만 취약지 지원 늘려야”
전문가들은 먼저 분만 취약 지역에서 산부인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는 고위험 산모의 건강을 출산 전에 미리 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소방 등과 연계해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가용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분만 취약지에 대한 재정 지원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취약지에 있는 분만 산부인과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10여 년 동안 그대로”라며 “현실적으로 분만 산부인과를 신설하기 어렵다면 기존에 있는 병원이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분만 과정에서 아이나 산모가 사망하면 병원 과실이 없어도 피해보상금을 국가와 병원이 7 대 3으로 보상한다. 이 같은 ‘무과실 보상’ 체계도 전액 국가가 보상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이런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오상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무과실 보상) 관련 제도가 마련될 때 이 제도로 인해 신규 산과 의사 지원율이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강행됐다”며 “산과 의사들이 과실이 없는데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이문수 기자
지자체 작년 출산 지원 예산 27% 늘었지만, 출산율 역대 최저
[산부인과 찾아 원정출산]
출산 예산중 현금성 지원이 70%
“지원금 효과 오래 못 가” 지적도
방과후 학교 등 인프라 확충해야
동아DB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전국 시도와 시군구가 출산지원금에 투입한 예산은 5700억 원이었다. 이를 포함한 전국 지자체 출산 정책 예산은 총 1조809억 원으로 전년보다 26.8%나 늘었다.
보건복지부와 육아정책연구소가 12일 공개한 ‘2022 지방자치단체 출산 지원 정책 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지자체의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은 1조809억 원으로, 2021년 8522억 원보다 약 2288억 원(2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예산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가족 등 전 단계에 걸쳐 출산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강원도의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이 1673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 1169억 원, 대전 838억 원 순이었다.
출산 지원 정책 예산 1조809억 원 중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현금성 지원이 7496억8400만 원(69.4%)으로 가장 많았다. 현금성 지원 중에서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출산 후 일정 기간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이 가장 큰 비중(76.5%)을 차지했다. 광역지자체 17개 시도 중 서울, 경기, 충북, 전북, 전남, 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지역에서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광역지자체의 출산지원금 예산은 2021년(2371억 원)보다 52.4%가 늘었다. 출산지원금 규모가 가장 큰 강원도는 첫째와 둘째 출산에 대해 48개월 동안 매월 50만 원씩 지급한다.
기초지자체의 경우 전체 226곳 중 89.4%에 해당하는 202개 지역에서 출산지원금을 지원했다. 지자체별로 출산지원금 액수가 차이가 났는데 둘째 출산 기준으로 전남 영광군은 1인당 최대 1200만 원인 반면에 대구 동구는 10만 원이었다.
이처럼 출산 지원 정책 예산이 늘었음에도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하면서, 현금성 지원보다는 인프라 구축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의 출산지원금이 출산율 제고에 일시적인 효과가 있지만 인구 감소 지역일수록 출산지원금과 출생률의 연관성이 낮다는 연구도 축적되고 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금성 지원보다도 아이를 키우기 용이한 환경을 제공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영유아 보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질 좋은 방과 후 학교 지원을 늘리는 등의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녀의 출산은 보육, 교육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과정이므로 단기적 지원으로는 출산율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