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제자품(弟子品)-2
- 불제자들의 어려움
佛告大目健連하사대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目連이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我不堪任詣彼問疾이니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入毘耶離大城하야 於里巷中에 爲諸居士說法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來謂我言하되
부처님께서 대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대목건련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해보니 제가 옛적에 일찍이 비야리대성에 들어가서 마을의 길거리에서 여러 거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였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唯大目健連이여 爲白衣居士說法인댄 不當如仁者所說이니라.
夫說法者는 當如法說이니 法無衆生이라. 離衆生垢故며, 法無有我라. 離我垢故며, 法無壽命이라. 離生死故며, 法無有人이라. 前後除斷故며, 法常寂然이라. 滅諸相故며, 法離於相이라. 無所緣故며, 法無名字라 言語斷故며, 法無有說이라 離覺觀故며, 法無形相이라 如虛空故며, 法無戱論이라 畢竟空故며,
‘여봐요, 대목건련이여, 백의거사(白衣居士)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려면 스님이 설한 것과 같이해서는 옳지 않습니다.
대저 설법이란 마땅히 여법하게 설해야 합니다.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때(垢, 번뇌의 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나(我라)는 것이 없으니 ‘나’라는 번뇌의 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수명이 없으니 생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인(人, 남, 타인이라는 차별의식)이 없으니 전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은 항상 고요하니 온갖 형상을 소멸하였기 때문입니다.
법은 상(相, 현상)을 떠났으니 반연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명자(名字, 명칭)가 없으니 언어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설함이 없으니 지각하고 관찰함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형상이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희론이 없으니 필경에 공하기 때문입니다.
法無我所라 離我所故며, 法無分別이라 離諸識故며, 法無有比라 無相待故며, 法不屬因이라 不在緣故며,
法同法性이라 入諸法故며, 法隨於如라 無所隨故며, 法住實際라 諸邊不動故며, 法無動搖라 不依六塵故며, 法無去來라 常不住故며,
법에는 나의 것이 없으니 나의 것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분별이 없으니, 모든 의식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비교할 것이 없으니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인(因)에도 속하지 않으니 연(緣)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법성과 같으니 모든 법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법은 진여를 따름이니 따르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실제에 머무나니 모든 치우친 것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동요가 없으니 6진(六塵, 六境, 색, 성, 향, 미, 촉, 법) 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거래가 없으니 항상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法順空隨無相하고 應無作하며, 法離好醜하고 法無增損하며 法無生滅하고 法無所歸하며, 法離好醜하고 法無增損하며 法無生滅하고 法無所歸하며, 法過眼 ․ 耳 ․ 鼻 ․ 舌 ․ 身 ․ 心하고, 法無高下하여 法常住不動하고 法離一切觀行이니
법은 공(空)을 수순하며 상(相) 없음[無相]을 수순하며 지음이 없음[無作]에 응합니다.
법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떠났습니다.
법은 더하고 줄어듦이 없습니다.
법은 생기고 소멸함이 없습니다.
법은 돌아갈 바가 없습니다.
법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지나갔습니다.
법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법은 항상 머물러서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법은 일체의 관행을 떠났습니다.
唯大目連이여 法相如是어늘 豈可說乎아.
夫說法者는 無說無示하고 其聽法者는 無聞無得이니 譬如幻士가 爲幻人說法이라 當建是意하여 而爲說法이니라.
여보시오, 대목건련이여, 법의 모습은 이와 같거늘 어찌 가히 설할 수 있습니까?
대저 법을 설하는 사람은 설함도 없어야 하고[無設] 보임도 없으며[無示], 그 법문을 듣는 사람은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어야 합니다[無聞無得]. 비유하자면, 마술사가 마술로 만든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이러한 뜻을 세워서 법을 설해야 할 것입니다.
當了衆生의 根有利鈍하며 善於知見에 無所罣碍하며 以大悲心으로 讚於大乘하고 念報佛恩하야 不斷三寶然後說法이라하니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八百居士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我無此辯일세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또 마땅히 중생의 근기에 영리하고 둔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견이 훌륭하여 걸리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큰 자비심으로 대승법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해서 삼보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법을 설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하였을 때에 8백명의 거사가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재(辯才)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출처: ① 불교경전 2, 유마경-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 불전간행회 편- 무비 옮김, 민족사
② 다음 카페/ 염화실/ 유마경 강설
첫댓글 두번째 제자품은 목건련 제자님께 설하신 설법에 관한 법문입니다.
오늘 법문은 매일 독경하는 반야심경을 독송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법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원순스님 법문도 떠오르고요.
부처님 법은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바로바로 존중이며 공경입니다. 보현행원!!!
다함없는 부처님 법!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唯大目健連이여 爲白衣居士說法인댄 不當如仁者所說이니라.
夫說法者 當如法說
法無衆生 離衆生垢故,
法無有我. 離我垢故,
法無壽命 離生死故,
法無有人 前後除斷故,
法常寂然 滅諸相故,
法離於相 無所緣故
法無名字 言語斷故
法無有說이離覺觀故
法無形相 如虛空故며
法無戱論 畢竟空故
夫說法者 無說無示
其聽法者 無聞無得
譬如幻士 爲幻人說法
當建是意 而爲說法
當了衆生의 根有利鈍
善於知見 無所罣碍
以大悲心 讚於大乘
念報佛恩 不斷三寶然後說法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八百居士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오늘 유마힐 법문은 화엄 경계입니다.
단박에 알아 보셔야 하는데!
唯大目健連이여 爲白衣居士說法인댄 不當如仁者所說이니라.
夫說法者 當如法說
法無衆生 離衆生垢故,
法無有我. 離我垢故,
法無壽命 離生死故,
法無有人 前後除斷故,
法常寂然 滅諸相故,
法離於相 無所緣故
法無名字 言語斷故
法無有說이離覺觀故
法無形相 如虛空故며
法無戱論 畢竟空故
---이 내용은 바로 화엄의 특징, "대긍정"의 자리에서 중생과 중생의 생노병사를 설하는 내용입니다.
목련의 분상에는 중생도 있고 무명도 있고 적멸도 있오 극복해야 할 죽음도 있지만,
유마의 분상에는 중생이란 없고 모두가 청정무량한 부처님뿐입니다.
이 경계를 위와 같이 설하고 있어요
普賢.10:48 새글
夫說法者 無說無示
其聽法者 無聞無得
譬如幻士 爲幻人說法
當建是意 而爲說法
이 부분은 반야부에 자주 나오는 삼륜청정시(三輪淸淨施, 보시를 할 때 주는 물건도 받는 물건도, 또는 준다는 생각도 받는다는 생각도, 주는 물건도 없는 보시)의 다른 버전.
그래서 설법을 해도 설법한 게 없고
들어도 들은 게 없고
얻어도 얻은 게 없는 자리에서 설법을 하고 또 설법을 듣는 겁니다.